제9화. 사소하면 지나칠 수 있을까? (2)
당장은 괜찮을 것 같았다.
“종진아, 환자 준비됐어?”
“첫 번째 환자는 지금 내려오고, 두 번째 환자는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뭐? 지금까지 뭐했어? 인마, 빨리 혁원이한테 연락해서 준비하라고 해. 어깨 쪽에 인공 혈관 연결하는 환자라고 확실하게 전해. 참! 모레 복막 투석용 도관 삽입해야 하는 환자는 입원했어?”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입원하면 바로 알려 줘. 신기동 선생님은 처음 수술하는 환자를 제일 신경 쓰신다는 거 알지? 그리고 내가 내준 리포트 내일까지 제출해.”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신기동 교수의 수술이 있는 날이면 무참하게 깨졌다.
어인 일인지 최근 들어 더욱 살벌하게 비수를 날리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한 터라 특별한 이유는 찾을 수 없었다. 어쨌든 수술실에서만은 최고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여느 날처럼 오후 느지막 수술이 시작됐다.
변함이 없었다.
“김지훈, 요새 유방 수술 안 들어가? 겨드랑이 박리할 때 혈관이 보이잖아. 그때 잘 봐 두면 어디가 덧나? 너 내 수술 얼마나 들어왔지?”
“4개월 됐습니다.”
“전공의 때까지 하면 도대체 얼마야. 라파로도 이젠 제법 한다며? 그런데 이게 뭐야? 전공의가 퍼스트를 서도 너보다 낫겠다.”
이제는 나종진이 있어도 비수가 휙휙 날아다녔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정도를 떠나 자존심까지 팍팍 상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김지훈 역시 교수들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였다. 그저 선처만 바랄 뿐이었다.
‘아! 요새 왜 이러시지? 사모님과 사이가 안 좋으신가? 일석아! 빨리 제대해서 나 좀 살려 줘.’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공의 때 응급실에서 혈관 봉합까지 했다. 환자의 사연은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데 교수가 돼서 더 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 손이 혈관에는 안 맞나? 아니면 퇴보를 한 거야?’
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송재덕 교수와 이혁민 교수는 물론 스승까지 표정이 좋다는 사실이었다. 신기동 교수의 수술이 벌어지는 몇 시간만 넘기면 만사가 무탈했다.
‘아무리 기초가 중요하다지만, 간담도에 위장관에 혈관까지 모든 파트에 집중할 수는 없잖아? 사실 어떻게 보면 혈관은 정말 특수한 파트인데, 전공으로 택하지 않는 이상 이 정도만 해도 되지 않을까?’
솔직히 약간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혈관 파트까지 최선을 다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3개 파트에 모두 집중하기에는 체력은 물론 투자할 시간도 거의 없었다. 일정 정도 수준에만 도달한다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심하게 타고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지, 문제 될 것도 없었다.
아무리 뛰어나도 만능인 사람은 없지 않은가!
이준영 교수도 그런 마음을 엿본 모양이었다.
“김지훈, 혈관 수술이 힘들어?”
“열심히 한다고는 하는데, 신기동 선생님 마음에는 안 드시나 봅니다. 시간도 많이 부족하고요.”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야. 신경 써.”
“예, 선생님.”
스승의 말에 뭔가 찜찜하기는 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묻혀 그런 마음도 시나브로 사라졌다. 힘들기는 해도 날카로운 비수만 제외하면 만족스러운 나날이었다.
어느새 6월도 거의 다 지났다.
오늘도 멋지게 복강경으로 담낭 하나 떼고, 탈장 수술 하나 했다. 유난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탈장 수술에 필요한 수처도 점점 손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제는 김지훈이 마이너 수술을 할 때마다 당연한 듯 퍼스트를 서는 이혁원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선생님, 마이너는 모두 선생님이 하시네요.”
어느 틈엔가 외래로 오는 탈장이나 아뻬 등 파트를 구분하기 어려운 질환은 자연스럽게 김지훈의 몫이 됐다.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니요. 저야 좋죠. 그런데 그냥 갑자기 일이 너무 많으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혈관도 만만치 않으시잖아요.”
어라? 약점을 찔러?
“아주 그냥 재로 만들기 전에 리포트나 제대로 써, 인마. 종진이나 너나 요새 좀 빠진 것 같다.”
찌릿한 눈길에 이혁원이 흠칫 놀라며 딴청을 부렸다.
그때 수술 방 간호사가 손짓을 하며, 신기동 교수가 외래에서 급히 찾는다고 했다.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수술하는 날도 아닌데, 왜 찾으시지?’
부리나케 외래로 내려가자 신기동 교수가 눈길 한 번 주고는 응급실로 향했다.
아직은 시간이 일러 한산했다. 간호사가 구석 침대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바로 안내를 했다.
생기를 잃은 까만 얼굴에 비쩍 마른 육신.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면서도 신경질적인 표정.
증상이 악화된 전형적인 만성 신부전 환자였다.
슬쩍 차트를 보니 신환이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신부전 환자가 왜 내과로 안 가고, 외과 응급실로 왔지? 그런데 당직들은 어디 간 거야? 혹시 이 자식들이 콜을 안 받았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의국에서 곡소리가 날 것이다. 지레짐작으로 얼굴을 구기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자의 우측 손목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신환이니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좌측 손목에 동정맥 연결 수술을 한 흉터까지 보였다.
‘신부전 환자들은 신경 쓸 것도 많고, 투석 때문에 함부로 병원을 옮겨 다닐 수가 없는데 이상하네. 이미 수술을 받은 병원이 있는데 바꿀 생각인가?’
신기동 교수가 직접 환자의 손목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우측 손목의 상처를 보니 수술을 한 지 며칠 돼 보이지 않았다.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데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다.
수술 부위를 살핀 신기동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선생, 확인해 봐.”
김지훈이 신중하게 수술 부위 위에 청진기를 댔다. 반드시 들려야 할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면 동맥의 강한 혈류가 정맥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때 연결 부위를 통과한 혈류의 빠른 흐름 때문에 슉슉 소리가 난다. 청진 상 이런 소리가 뚜렷하게 들릴수록 수술이 잘됐다는 의미였다.
소리가 희미하기만 했다.
“연결이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 환자분, 아까 연락받았습니다. 일단 수술 부위를 확인해 보고, 살릴 수 없으면 팔꿈치 부분에서 다시 연결을 해야 합니다.”
환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왼쪽도 일 년을 못 써먹었고, 오른쪽도 수술한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또 다른 혈관을 이어야 하나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
“투석을 안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일단 지금은 다시 칼을 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태로는 써먹질 못합니다.”
눈가를 잔뜩 찌푸린 환자가 투덜거렸다. 수술한 병원과 의사를 욕하는 것 같았다.
‘이 환자에게는 혈관이 생명과도 같은데 화가 나겠지. 증상이 악화돼서가 아니라, 수술을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에 얼굴이 이렇게 안 좋았구나. 그래서 신기동 선생님을 찾은 모양이네.’
사실 신기동 교수도 수술을 100퍼센트 성공시키진 못했다. 아주 드물게 보는 일이었지만 혈관이 약하거나, 혹은 알지 못할 이유로 재수술을 요하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불가항력적인 일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맛이 썼다.
빠르게 수술 준비가 시작됐고, 곧 환자를 수술실로 옮겼다. 재수술이기에 바짝 긴장을 한 채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이 눈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수술을 실패한 원인은 찾았다. 동맥과 정맥을 연결한 부위가 좁아진 채 다소 단단하게 느껴졌다. 내부에 혈전이 생겨 통로를 막은 것이 틀림없었다.
문제는 혈전이 만들어진 이유였다. 신부전 환자치고는 건강한 혈관이었다. 수술이 잘못됐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네. 왼쪽도 1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하더니, 재수가 무척 없는 환자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덮고 다시 수술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신기동 교수가 루뻬(수술용 돋보기)를 착용하며 뜻밖의 말을 했다.
“김지훈, 재수술하자. 잘하면 살릴 수 있겠다.”
“예? 기존에 봉합한 걸 풀고 나서 다시 연결해 줄 혈관벽을 확보할 수 있습니까?”
“그건 안 되지. 하지만 혈전이 생긴 이유가 이거라면 가능할 수도 있어. 신부전 환자는 혈관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거 잘 알잖아?”
신기동 교수가 봉합 부위의 끝을 가리켰다. 교수의 눈에는 보이지만, 김지훈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수가 있다는 의미였다.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안 보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못 보는 게 당연한 건지, 볼 수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
신기동 교수가 혀를 차며 수술을 진행하고자 했다.
그때 김지훈이 눈을 반짝이며 갸우뚱거렸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보인 것이다.
“선생님, 혹시 끝부분의 봉합이 불규칙한 것 같은데 이것 때문입니까?”
“늦었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잘못 짚은 모양이었다.
혈관 겸자로 동맥과 정맥을 잡은 신기동 교수가 자신이 가리킨 부분의 실을 끊었다. 신중하게 혈관 벽을 벌리자 검붉은 혈전이 보였다. 헤파린이 섞인 식염수를 뿌리며 조심스럽게 혈전을 제거했다.
신기동 교수가 한동안 혈관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김지훈은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고, 어떻게 재건을 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수술 진행하자.”
신기동 교수의 손이 움직였다.
정교한 손놀림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해결했다. 다시 봉합된 연결 부위가 깔끔했다. 혈관 겸자를 풀자 동맥의 강한 혈류가 정맥으로 힘차게 흘러 들어갔다.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웠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였다. 노련한 혈관 전문의와 펠로우의 한계는 확연하게 달랐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지훈을 힐끗 쳐다본 신기동 교수가 환자에게 결과를 설명했다.
“환자분, 운이 좋게도 다시 연결했습니다. 결과는 이틀 정도 후에 알 수 있으니까 일단 지켜봅시다. 혈관이 또 막히면 새로운 혈관을 수술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확실한 결과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환자에게는 가물의 단비 같은 말이었다. 짜증과 신경질 대신 기쁨이 실려 있었다.
“아닙니다. 김지훈 선생, 나 좀 보자.”
신기동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관이 막힌 이유는 네가 말한 것처럼 불규칙한 봉합으로 판단돼. 단 한 바늘의 실수지. 아니면 눈으로 보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든지. 어쨌든 수술한 의사는 그게 문제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결과는 너도 본 것처럼 치명적이야. 이것이 혈관 수술의 어려움이고, 무서움이다. 간담도를 택했다고 해도 다르지 않아. 우리가 사소하게 넘기는 일이 환자에게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어.”
수술 방에서 나온 김지훈이 신기동 교수의 말을 곱씹었다. 경우만 다를 뿐,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가슴에 바윗덩어리 하나 올려놓은 듯 답답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신기동 교수가 끊임없이 태우는 이유는 결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것.
그것이 문제였다.
수술마다 특별하게 주의할 점이 있다. 그 점만 유의한다면 손이 거칠다고 해도 큰 문제를 일으키진 않는다.
혈관 수술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꼼꼼하게 수술을 하고, 퍼스트를 선다는 말이 사소한 것까지 모두 염두에 두었다는 말이 아니었다.
어쩌면 다른 수술에서도 사소하게 생각하고 간과한 것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후우! 환자에게 사소하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또 잊고 있었어.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어쩌면 스승님도 그래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는 말씀을 하셨는지도 모르겠네.’
얼굴이 화끈거렸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수했거나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
김지훈이 눈을 크게 뜨며 입을 꽉 다물었다.
갑자기 혈관 수술이 기다려졌다. 알지 못할 기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지금까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은 없었다.
물론 차가운 비수를 날리는 신기동 교수의 혈관 수술에 국한된 일이었다. 간담도 수술과 집도를 하는 모든 수술을 앞두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항상 떨렸다. 그런 차이가 교수들의 눈에는 뚜렷하게 보였는지도 몰랐다.
혈관 수술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질환에 대한 지식 역시 기본이다.
김지훈이 외과 수술 책은 물론 논문과 내과 책까지 펼쳤다. 당직 때면 밤이 늦도록 연구실 불이 꺼지질 않았다.
물론 전공의들에게도 당연히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종진아, 수준에 오를 때까지 혈관에 관한 이론 공부를 시작할 건데, 생각 있으면 같이하자. 이혁원, 너도 전 텀에서 수술만 봤으니까 이론이 필요하지 않겠어? 정 시간이 안 되면 신경 안 써도 돼.”
생각 있으면.
정 시간 없으면.
강한 의미가 담긴 가정이었다. 여기서 고개를 가로저으면 온몸에 기름을 두르고 시뻘겋게 타오르는 장작불을 향해 질주하는 꼴이다.
그야말로 새카맣게 타 죽는 것이다.
“당연히 저희도 공부해야죠. 뭐부터 준비할까요?”
김지훈이 스윽 준비할 것들을 내밀었다.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두툼했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혀를 빼물었다. 그날 이후 전공의 두 명이 책과 논문에 파묻혔다.
드디어 새로운 각오로 맞는 첫 혈관 수술이다.
이혁원이 서도진에게 허락을 받고 수술에 참여했다. 나종진이 있는 자리에서 비수를 날렸는데, 전공의 한 명 더 있다고 봐줄 신기동 교수가 아니었다.
“김지훈, 똑바로 좀 하자. 마지막 마무리할 때 그런 식으로 손이 들어오면 안 되잖아. 한 놈도 아니고 둘이나 지켜보고 있는데 이따위로 할래?”
여전히 같은 말을 들었지만 무언가 감이 왔다. 벌게진 얼굴과 창피함도 가릴 겸 부리나케 책을 펼치고 꼼꼼하게 확인했다.
체면이고 뭐고 따질 때가 아니었다.
배움에는 위아래가 없는 법이다.
“종진아, 혁원아, 아까 말씀하신 부분이 이거지?”
“예? 그 부분이 맞지 않을까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이혁원과 나종진이 얼굴을 들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