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결코 작지 않은 전환점 Ⅰ (2)
우측 간은 한 손으로는 도저히 잡지 못할 정도로 크다. 게다가 우상복부 깊숙이까지 위치하고 복막과 단단히 연결돼 있다. 그것이 수술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눈으로만 잘 보일 뿐 손을 움직일 공간은 도리어 협소해져 절제의 어려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김지훈이 어렵사리 우측 간의 끝부분을 확보했다.
왼손으로 간을 받치고 오른손만을 이용해 간을 잘랐다.
사각! 사각!
모스키토로 간을 조금씩 가늘게 부쉈다.
타이를 하는 이준영 교수도 어려움을 느끼는지 눈가에 잔주름이 생겼다. 쉬지 않고 피를 닦아내 시야를 확보하고, 때론 예상외의 출혈을 잡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보비(전기소작기). 타이!”
그때마다 등짝이 서늘해지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바닥에 쌓여가는 뻘건 거즈가 점점 수북해졌다.
수술실에 있는 모든 의료진이 단 한시도 한눈을 팔지 못했다. 조그만 변화라도 놓치면 수술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었다.
시계바늘이 어느 새 한 바퀴를 또 돌았다.
구역 절제술이라고 하지만, 우측 간을 절제하는 수술 이상으로 절단면이 컸다.
반복적인 동작이 수없이 지속됐다. 전이된 암 조직과 충분한 간격을 두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선생님, 이 부분의 간격이 적당할까요?”
“CT로 판단하면 최소 1센티미터 이상 여유를 두고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어차피 더 이상 절제할 수도 없잖아.”
간간이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수술 부위에 집중한 채 잠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수술복은 물 먹은 것처럼 축축했고, 허리와 어깨에서 은은한 통증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담낭을 포함한 우측 간이 상당 부분 절제됐다.
이제 곧 우측 간에 위치한 위험 구조물들이 나올 것이다. 다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집중력과 강한 체력을 요구하는 순간이었다.
오후 2시 30분이다.
5시간이 넘는 동안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마취과. 바이탈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김지훈이 손을 빼며 마취과 간호사를 보았다.
“간호사, 5분간 쉴 거니까 우유 좀 갖다 주세요.”
이준영 교수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목과 어깨를 가볍게 돌렸는데 우두둑 소리가 났다. 체력적인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사실 이런 수술은 가장 체력이 좋은 전공의들조차 힘들어한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고 말았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저 혼자서도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하얀 우유가 이럴 때는 꿀맛이다. 짧은 휴식도 의외로 피로를 상당히 씻어 준다. 갈증과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래고 수술을 재개했다.
다시금 수술실이 조용해졌다.
수술 기구를 조작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우측에 위치한 혈관과 담도가 위치한 부분에 도달했다. 이미 절제된 좌측 간과 불과 3~4센티미터 정도 남았지만, 가장 위험한 부분만 남았다.
혈관이나 담도 중 어느 하나라도 터지거나 찢어지면 아예 한 쪽 간을 모두 절제해야 할 수도 있다. 이미 진행된 수술이 있기 때문에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치명적인 일이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김지훈 역시 두려움에 빠져 한동안 칼을 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예전의 이준영 교수처럼 말이다.
수술 팀의 긴장이 치솟았다.
김지훈은 더욱 신중해졌고, 이준영 교수 역시 수술 부위에서 단 1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수술 기구를 건네는 고경아의 손길도 조심스럽기만 했다.
우측 간 동맥과 정맥이 지나는 부분부터 절제했다.
한 번에 불과 몇 밀리미터만 자를 수 있었다. 혈관과 간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동액과 정맥이 보이면 안 된다. 혈관처럼 보이는 조직이 보일 때마다 손상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후우! 당황하면 엉뚱한 짓을 한다. 침착하게. 침착하게.’
이미 수 십 번도 더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평소 수술할 때와는 달랐다. 마치 혈압이 잡히지 않는 환자의 비장을 뗄 때처럼 불안한 마음이 한 구석에서 떠나질 않았다.
점점 공간이 좁아졌다.
우측 간은 더 이상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대신 좌측 간을 움직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혈관과 인접한 좌측 간을 절제했다.
공간을 확보하며 좌우측 간을 번갈아 잘라 갔다.
남은 부분이 적어질수록 가장 조그만 기구인 모스키토마저 위험해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끝이 살짝만 빗나가도 혈관에 손상을 줄 수 있었다.
손에서 힘을 빼기 어려울 정도였다.
목덜미를 따라 땀이 축축하게 맺혔다.
3센티미터, 2센티미터, 1센티미터.
끝이 보였다.
반대로 시야는 가장 나빠진 상태다.
간은 단단한 데다 함부로 잡아당기거나 밀어낼 수 없다. 조금이라도 무리하게 조작하면 도리어 절제된 간의 무게로 인해 남은 부분이 뜯겨 나올 수도 있었다.
“호석아, 간 잘 받쳐. 흔들리면 안 된다. 진우야, 긴장 늦추지 말고 확실하게 끌어.”
사각! 사각!
단 몇 밀리미터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이준영 교수도 눈가에 힘을 주며 타이에만 집중했다.
끝이 보였다.
어김없이 피가 흘렀다.
거즈로도 석션으로도 함부로 피를 제거할 수도 없었다. 시야가 확보되는 극히 짧은 순간에 의지해야만 했다.
남은 1센티미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스키토를 조작하던 김지훈이 손을 뺐다.
“타이!”
이준영 교수의 신중한 타이가 이어졌다.
수술 모자가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컷!”
드디어 간을 연결하고 있던 모든 구조물이 잘렸다. 담낭을 포함해 절제된 간 전체가 툭 하고 떨어져 나왔다. 상당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혹시 남아있는 간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절대 그럴 리는 없지만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구역 절제술을 했음에도 상당한 크기가 절제됐다. 그러나 남은 간 역시 충분했다.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간을 건드리면 출혈이 가장 큰 문제다. 세심하고 꼼꼼하게 출혈을 확인하고, 일일이 잡았다.
지혈에 도움이 되는 약제를 절단면에 도포하고, 헝겊처럼 생긴 지혈용 패치를 덮었다.
아직도 거즈를 대면 검붉게 물들었지만, 더 이상 지혈할 방법은 없었다.
조심스럽게 배 속을 씻어 내고, 수술 부위를 다시 확인했다. 담낭과 하부 간이 있었던 자리가 휑하다. 육안으로는 암 조직이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했다.
절제를 해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눈가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준영 교수를 보고서야 확연한 현실로 다가왔다. 그런데 흥분보다는 담담함이 다시 가슴을 지배했다.
이 모든 일의 목적은 단 하나다.
“마취과. 환자 상태 어떻습니까?”
“괜찮습니다만 빨리 끝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피로에 젖은 김진호 교수의 목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수술 팀의 안도감이 눈에 보였다.
어느새 5시가 넘었다.
아직 마무리가 남았지만 무려 8시간이나 흘렀다.
극심한 긴장의 연속 때문인지 힘들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집도의가 이 정도인데 퍼스트를 선 이준영 교수의 피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이 시간에도 외래 환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김지훈이 꾸벅 인사를 하며 말했다.
“선생님, 마무리는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잠시 김지훈을 보았다.
자랑스럽다!
정말 잘해냈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수고했어.”
물론 목소리는 항상 무뚝뚝하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야 가슴이 두근거리며 수술을 성공했다는 흥분과 기쁨이 찾아왔다. 수술 팀 모두 그렇게 느꼈다. 김지훈과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힘찼다. 그중에서도 이혁원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이준영 교수가 힐끗 눈길을 주고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수술실을 나갔다.
배를 닫아야 하고 교육은 이어진다.
송진우가 퍼스트 자리에 섰다.
제법 잘 쫓아왔지만 김지훈의 눈에는 성이 차지 않았다. 어디서 힘이 나는지 살벌한 불길을 토했고, 송진우는 빨갛게 익다 못해 결국 새카만 재가 되어 흩날렸다.
“선생님, 진우 이 자식 백 일 당직 한 번 더 시킬까요? 집도까지 한 놈이 수처하고 타이가 엉망이네요.”
“죽이든 살리든, 그건 치프가 알아서 해. 아! 혁원이 저 자식 책임도 크니까, 시킬 거면 같이 시켜.”
송진우의 미숙보다는 절개창이 워낙 커 배를 닫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이혁원이 송진우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김지훈과 안호석의 농담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그렇게 백선희 환자의 수술이 끝났다.
10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피부 봉합이 끝나자 백선희가 나직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긴 수술을 잘 버텨 주어서 고마웠다. 다시 한 번 수술을 성공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환자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더없이 기뻤다.
그 때문일까?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주고받는 말인데 오늘따라 다르게 다가왔다. 수술 팀과 김진호 교수, 그리고 고경아와 함께 나누어야 하는 말이었다. 그걸 이제야 피부로 깨달았다.
수술은 결코 혼자 하는 게 아닌 것을 말이다.
“이 교수, 수술 잘 끝났지? 간 못 자를까 봐 나 마음 많이 졸였다. 그렇게 되면 환자나 지훈이나 얼마나 힘들었겠니.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이준영 선생님, 지훈이 그노마 손이 이제는 궤도에 오른 모양입니다. 솔직히 이번 수술은 내심 불안했는데, 수술 잘 끝나서 정말 마음이 놓입니다.”
“이 과장, 김지훈도 교수야. 이준영 선생님과 함께했는데 불안할 게 뭐가 있어? 자식! 엊그제만 해도 수련을 받던 놈이 언제 이렇게 컸는지 모르겠네.”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커피를 입에 물고 묵묵히 듣기만 할 것이다.
“이 교수. 말 좀 해라. 말 좀. 거 제자 하나 잘 키웠으면 자랑해도 된다고 내가 몇 번이 말했는데 왜 그래? 왜? 지훈이. 그놈이 대장했어야 했는데 대장을. 그랬으면 경석이하고 둘이 대장 환자 다 살렸을 거다. 다.”
우연히 들른 외래 문틈 사이로 교수들의 말이 들려왔다. 수술을 해낼 수 있었던 이유가 더욱 확연해졌다.
신뢰하든 불안하든, 혹은 냉소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결국에는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선생님들과 동료들, 후배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수백 번을 되풀이해도 과하지 않은 말일 것이다.
돌아서던 김지훈이 힘차게 어퍼컷을 날리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입이 거의 찢어질 지경이었다. 이런 날은 눈치 안 보고 기뻐해도 좋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
***
수술은 치료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마이너 수술을 한 환자도 신경이 쓰이는 마당인데 백선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간을 상당 부분 절제했기에 전신 상태는 물론 출혈에 특히 유념해야 했다.
수술 후 첫날.
백선희의 안색이 창백했다. 수술 중 흘린 피가 적지 않은 탓이었다.
“지난밤에 심한 통증을 호소해 데메롤 두 번 투여했습니다. 오늘 아침 드레싱에서 거즈가 모두 피로 젖었습니다만, 고여 있던 피와 수술 부위에서 약간의 출혈이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검사 결과 확인하고, 빈혈이 심하면 수혈하겠습니다.”
이혁원의 노티를 들으며 환자를 살폈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 갑갑한 코 줄과 소변 줄, 배를 감싼 복대까지 모두 다 환자에게는 고통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수술 부위에서 전해지는 통증으로 호흡조차 버거워 보였다. 이겨 내야 할 일이었다.
“환자분, 수술은 잘 끝났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간은 많이 아프실 겁니다. 참지 마시고 그때마다 간호사나 우리를 찾으세요.”
백선희가 입을 벙긋거렸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꼬박 밤을 샌 진상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수술 후 이틀째.
특별한 변화는 없었지만 빈혈 소견이 심해 수혈을 했다. 백선희는 물론 진상미도 불안한 눈치였다. 환자와 보호자를 안심시키는 것도 의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수술 부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빈혈이 지속되면 건강한 사람도 수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백선희의 목소리가 탁하게 갈라졌다.
진상미의 눈가는 여전히 붉었다.
수술 후 3일이 지났다.
이제는 수술 부위와 연결된 드레인에서 나오는 삼출물의 변화가 보여야 할 때였다.
“혁원아, 어제하고 비교해서 어때?”
“큰 변동은 없습니다만, 조금은 옅어진 양상입니다. 혈액검사도 괜찮고, 소변량도 정상적입니다.”
“다행이네. 환자분, 앞으로 이삼 일 정도 더 지켜봐야 하지만, 지금 상태만 유지하면 회복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슬슬 일어나 앉아 보실까요?”
ABR(Absolute Bed Rest:절대 안정).
침대 머리맡에 달려 있던 딱지를 뗐다.
이혁원과 함께 환자를 부축했다.
절개 창만 무려 25센티미터다. 우상복부를 가로로 열었기 때문에 정중앙만 열 때와는 달리 근육 손상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몸을 일으키려면 배에 힘을 주어야 한다.
백선희가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단지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배를 쥐어짜는 통증을 느낄 것이다. 이제야 조금씩 홍조를 찾아 가던 얼굴이 더욱 시뻘게졌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사흘 만에 침대에서 등을 뗐다. 그마저도 무척 힘든지 이마에 땀까지 맺힌 백선희가 숨을 헐떡였다. 주먹을 꼭 쥐고 있던 진상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어째 안색이 환자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진상미 씨, 병원 생활은 보호자도 환자만큼 힘듭니다. 병 수발을 제대로 하시려면 잘 주무시고, 충분히 드셔야 합니다. 아셨죠?”
“네, 선생님. 우리 언니는 괜찮은 거죠?”
“생각보다 경과가 좋아 보입니다.”
김지훈의 말처럼 며칠 사이 몰라보게 초췌해진 진상미가 이제야 미소를 머금었다. 치료할 때마다 차마 수술 부위를 보지 못할 정도로 걱정이 많았다. 수술이 잘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회복까지 순조롭다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