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신뢰는 자신감의 원천이다 Ⅱ (1)
1년차 첫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이 눈을 반짝였다.
강병옥의 자신감과 의욕이 넘쳤다. 1년차답지 않게 상당히 매끄러운 진행을 보였다. 간혹 무리한 모습을 보이곤 했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조용히 강병옥의 급한 손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감탄까지 터트릴 뻔했다.
‘자식! 정말 열심히 준비했네. 잘한다. 후배들 중에서는 도진이하고 혁원이가 제일 뛰어나다고 여겼는데, 병옥이도 만만치 않네. 제대로 가르치면 정말 괜찮은 외과 의사 하나 만들 수도 있겠다.’
곧 동맥을 잡고 아뻬까지 절제했다. 1년차치고는 손도 상당히 빨랐다. 수술을 시작한 지 이제 40분이 조금 지난 후였다.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무언가 멋을 부린다고 할까?
누구나 자신감이 지나치면 의욕을 넘어선 욕심까지 부릴 수 있다. 그 점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자칫 자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제 1년차를 시작했다. 자만은 독약을 마시는 것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다.
‘1년차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력은 나무랄 데가 없어. 하지만 이게 자만으로 이어지면 정말 곤란해.’
수술이 끝난 후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강병옥, 수술을 빨리한다고 잘하는 게 아니야.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기본이야. 그래야 정확하고 안전하게 수술을 할 수 있어. 욕심 부리지 말고 원칙에 충실해. 알았어?”
“명심하겠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심하게 태운 것은 아니지만 강병옥의 자세도 좋았다.
김지훈이 힐끗 눈길을 주고는 수술실을 나갔다. 동시에 강병옥이 얼굴을 찌푸렸다.
‘첫 수술을 50분 만에 끝냈으면 잘한 거 아닌가? 원래 그런 줄은 알지만, 잘했다는 말 한마디 안 하시네. 지금부터 인정을 받아야 확실하게 남을 수 있는데, 점수를 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경석 선생님이나 홍재순 선생님에게는 잘 보여야 별 의미가 없을 것 같고, 어떻게든 교수님들에게 총애를 받는 김지훈 선생님 눈에 띄어야 돼. 설마 나랑 비교도 안 되는 진우를 아끼시는 건 아니겠지?’
그 시간, 집으로 가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자식! 수술 잘한다만, 학교 다닐 때도 그러더니 얼굴색 하나 안 변하네. 진우 그놈은 반응이 너무 심해서 탈인데 말이야. 뻘건 놈, 허연 놈, 멀쩡한 놈. 가지가지다. 하하하!’
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다. 수련 기간 내내 담금질을 하면 또 한 명의 훌륭한 일반 외과 의사가 탄생할 것이다. 왠지 기대를 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정말 기대하지도 못했던 평화가 찾아왔다. 하루 종일 방구석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밥 먹고 책 보고 조는 사이, 어느새 어둠이 찾아왔다.
따르르릉!
당직인데 한 번은 더 울릴 줄 알았다.
아뻬였다.
첫 수술에서 받은 인상이 강해서 그런지 강병옥에게 한 번 더 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다소 급하고 거친 손이야 결국 고쳐질 것이다. 하지만 마음가짐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스스로 잡아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고민이 됐다.
그런데 강병옥이 아니라 송진우가 보였다.
“광호야, 백 일 당직 기간인데 1년차가 토요일, 일요일 번갈아 수술 당직을 서? 병옥이가 들어와야 하는 거 아냐?”
“원칙적으로는 그게 맞는데, 드레싱이 밀렸다고 사정을 해서 바꾸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드레싱을 해?”
“병옥이도 진우만큼 열심히 합니다. 농땡이 피우거나 그럴 놈이 아닙니다. 오늘은 그동안 밀린 일을 하다가 시간을 놓친 것 같습니다.”
일견 이해는 할 수 있지만, 환자 치료는 신뢰와 관계되는 문제였다.
더구나 아침은 몰라도 저녁에 하는 드레싱은 가뜩이나 불규칙할 수밖에 없어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주말만큼은 시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알았어. 다음에는 이런 일 없도록 확실하게 해. 응급 수술도 없는 주말에 드레싱 시간을 어기면 어떻게 해? 혁원이 너도 병옥이 나이 많다고 할 말 못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 지금은 니가 선배야. 알았어?”
조금은 화가 났지만 솔직히 이런 실수는 누구나 한다. 김지훈 자신도 1년차 때는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더구나 피곤이 극에 달하는 100일 당직 기간이다. 지금은 가벼운 주의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주중에 아뻬가 뜬다는 보장도 없는데,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네. 얼굴이 얼마나 벌게질까?’
“진우 준비시켜.”
역시나 수술을 준다는 말을 듣자마자 송진우의 얼굴이 뻘겋게 물들었다. 집도에 대한 기대감과 흥분이 고스란히 보였다.
피식 웃으며 수술실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었다. 이혁원의 ‘다시’라는 말이 살벌하게 울렸다.
아름다운 소리다.
수술이 시작됐다.
약간은 떨리는 손에서 송진우의 긴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탓인지 지나치게 신중했다. 급기야 아직 복막도 열기 전인데 힐끗힐끗 김지훈의 눈치를 보았다.
묵묵히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천광호와 이혁원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문득 예전의 홍재순이 생각났다.
‘긴장한 것만이 아니라 실수할까봐 불안한 것 같네.’
그간 새카맣게 태워 가며 철저하게 가르쳤다. 집도보다는 부담이 적다지만 퍼스트도 여러 번 세웠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송진우였고, 아뻬를 집도할 실력도 갖췄다.
결국 자신감 부재가 문제였다.
복막을 잡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얼굴은 점점 뻘게졌다. 더 이상 지켜볼 수는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동맥을 잡다가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집도를 중지시켜야 할까?
‘아니야. 그건 예전 홍재순 선생님처럼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어. 자신감을 갖게 해야 돼.’
스승은 제자에 대한 신뢰를 확고한 눈빛과 짧은 말로 대신했다. 이혁민 교수처럼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구구절절 말이 많아야 역효과만 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한다고 뾰족한 방법이 나올 일이 아니었다. 그냥 마음을 전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진우야, 잠깐만.”
송진우가 흠칫 놀라며 김지훈을 보았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듯 천광호는 입맛을 다셨고, 이혁원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복막을 열고도 손을 떤다면 그때 손을 바꾸자.’
“난 널 믿는데, 넌 왜 네 자신을 못 믿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입국식 할 때가 돼서 수술을 준 게 아니야. 송진우, 지금은 네가 집도의고, 이 수술은 니 수술이야. 잊지 마.”
조용히 송진우의 손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천광호와 이혁원이 소리 없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었다. 다른 때였으면 재촉했을 마취과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얼굴이 뻘겋기만 한 송진우가 이를 악물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복막 열겠습니다.”
복막을 잡는 손이 떨리지 않았다. 아뻬를 찾는 손이 조금씩 과감해졌다.
느리지만 침착하게 동맥을 묶고 아뻬를 잘랐다.
단 한 번도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째깍! 째깍!
한 시간이 훌쩍 지나서 수술이 끝났다. 강병옥과 확연한 실력 차이가 났지만 김지훈은 웃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덕목인 원칙과 기본을 확실하게 지켰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태울 시간이다.
툭하면 벌게지는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정신력은 강한 놈이다. 희한한 일이긴 했지만 웬만큼 태워서는 기죽을 송진우도 아니었다.
결코 틀린 생각이 아닐 것이다.
“송진우, 동맥과 아뻬를 처리할 때 신중한 것도 좋지만 주저하면 안 돼. 그게 실수를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거 몰라? 퍼스트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야. 그리고 배 닫을 때 다른 생각 했지? 수술 중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모기 소리가 들렸다.
“끝까지 수술을 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어이구! 이놈 봐라. 너희들한테 고맙다는 말 듣자고 수술을 주는 사람은 없어.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 확!”
인상을 팍 쓰고는 수술실을 나왔다.
잠시 후 천광호가 혀를 차고, 동시에 이혁원의 살벌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잘했다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옷을 갈아입던 김지훈이 웃었다.
‘그래. 수술 시간이 중요한 때가 아니지. 병옥이도 그렇고, 잘한 건 잘했다고 칭찬 한마디 해 줄 걸 그랬나?’
환자가 잘 회복됐는지 확인하고 병원을 나섰다.
그때 누군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송진우가 숨을 헐떡거리며 뭔가를 내밀었다.
“뭐야?”
“커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도 하기 전에 꾸벅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멍하니 커피를 보던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송진우의 진정이었다. 결코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문득 음성에서 스승의 책상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던 커피 한 잔이 생각났다.
송진우도 같은 마음일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과 먹먹함이 가슴속을 꽉 채웠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냉장고에 캔 커피를 고이 모셨다. 한동안 송진우가 건넨 커피만은 마실 수 없을 것 같았다.
방심은 필히 뭔가를 초래한다.
딸깍!
“아! 시원해. 웬일로 커피를 다 사 왔어요?”
눈 깜짝할 사이였다. 남다른 의미를 가진 소중한 커피가 한 모금 한 모금 사라졌다.
멍청히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이 마셨으니 그걸로 족하다.
한 모금은 남겨 주었다. 블랙커피가 이렇게 달고 고소할 줄은 몰랐다.
‘스승님도 그렇게 느끼셨을까?’
음성 병원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 강병옥이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하필이면 아뻬가 떴을 때 티도 안 나는 드레싱에 왜 목을 맸지? 진우한테 시키든지, 아니면 좀 미뤘어야 했나? 그래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니까, 1년차 중 가장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기에 충분하겠지.’
아직도 첫 수술의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송진우를 보는 눈이 웃고 있었다.
***
성큼성큼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수요일이 다가왔다.
백선희와 마주 앉았다. 함께 온 진상미가 더 초조해 보였다.
병원에 오자마자 시행한 초음파 소견을 확인하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겉으로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혈액검사상 황달 수치도 정상을 벗어난 상태였다.
모든 검사는 단 하나의 결과를 가리켰다.
간에 직접 전이가 된 담낭암.
잠시 생각을 정리한 김지훈이 백선희와 눈을 마주쳤다. 환자의 충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것이 더 불안할 것이다.
‘지금은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 방침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환자분, 담낭암이라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
“검사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담낭이 붙어 있는 간에 전이가 됐습니다. 임상적으로는 말기 암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치료 방법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환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상미는 겁에 질려 입도 열지 못했다.
이런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하는 것이 정말 미안했다. 감정을 앞세우면 안 된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환자와 진상미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한참 만에야 백선희가 입을 열었다.
“어떤 치료가 가능한 거죠?”
생각 외로 담담한 목소리였다. 암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자신이 암 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심적 부담을 가지고 있던 김지훈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불행히도 암이 우측 간과 좌측 간을 모두 침범했습니다. 담낭과 간을 절제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만,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수술 범위와 동반되는 위험성을 설명했다. 최악의 상황까지 말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방어 진료라고 하지만, 그보다는 현실적으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기에 의사는 알릴 의무가 있고, 환자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개복만 하고 손을 못 댈 수도 있습니다. 솔직히 간에서 가장 위험한 부위 근처를 절제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 중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을 각오하고 결정하셔야 합니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있던 환자의 몸이 휘청거렸다.
진상미는 눈물이 가득 맺힌 눈으로 백선희의 손만 꼭 잡고 있었다.
“선생님, 수술을 받으면 완치가 가능한가요?”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 싶은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가슴이 답답해져 눈가를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환자 얼굴을 똑바로 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절대 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이 정도로 진행된 암은 완치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평생 관리하고 치료하셔야 합니다. 다만, 암을 제거하지 못하면 몇 개월 못 사십니다.”
“얼마나 살까요?”
가슴 아픈 물음이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알겠습니까만, 길어야 6개월 정도일 겁니다.”
“수술을 하면요?”
“단언할 수 없지만 효과는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 때문에 수술을 권유할 수밖에 없고,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의사로서 수술을 권유드립니다.”
“정말 수술하면 희망이 있을까요?”
모든 정보를 전했다. 결정은 환자의 몫이지만, 스스로 확신을 갖지 않으면 어떤 말도 믿지 못할 것이다.
희망과 바람을 넘어 결과를 확신해야 했다. 이젠 위험성은 물론 사망 가능성까지 잊어야 했다. 오로지 긍정적인 생각만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말했다.
“있습니다. 반드시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