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88화 (588/1,329)

제1화. 교육의 또 다른 의미 Ⅱ (1)

이혁원이 신중하게 수술을 시작했다.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2년차치고는 제법이다. 순환 근무가 폐지된 이후 경험도 충분하지 않았을 텐데 머뭇거리질 않았다.

배를 열고 어렵지 않게 아뻬를 찾았다. 여기까지는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하지만 역시 2년차였다. 가장 중요한 과정인 동맥 처리부터 툭툭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과감했지만 거칠었고, 신중해야 할 때는 도리어 성급하기도 했다. 때론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지 김지훈에게 시선을 주곤 했다.

‘잘하고 있는 건가?’

김지훈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이 자식 봐라. 집중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어딜 보는 거야? 이혁원, 수술에만 집중해.’

서도진과 수술할 때와는 달리 손을 맞추기 위해 신경을 써야 했다.

언뜻 보면 서도진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확실히 수준 차이가 났다.

아뻬를 절제하고 배를 모두 닫을 때까지 지적할 거리들이 하나둘 쌓여만 갔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해 주고 싶었지만 꾹꾹 참아 눌렀다. 제자들의 집도 중에는 묵묵히 지켜만 보았던 스승과 교수들이 생각난 것이다.

‘그래. 여기서 지적을 해 봐야 손만 꼬일 거야. 수술을 준 이상 믿어야 하고,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나중에 지적을 해도 늦지 않아.’

내심 불만족스러웠지만 불과 35분 만에 수술이 끝났다.

송진우 때문인지 자청해 써드를 선 서도진이 힐끗 이혁원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선생님, 혁원이가 저보다 빨리 끝냈네요. 어우! 창피해. 이혁원, 소문내면 죽을 줄 알아.”

“선생님 환자는 뚱뚱했고, 제 환자는 비쩍 말랐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빨리 끝낸 것도 사실이었다. 내심 칭찬 한마디를 기대한 이혁원이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김지훈을 보았다.

칭찬을 해야 할까?

누구보다도 아끼는 후배이기에 더욱 생각이 많아졌다.

그럴 필요도 있지만 수술은 사람에게 한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삐끗하면 환자와 의사에게 모두 치명적이다.

조금이라도 미숙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소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나중에 원망을 들을지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했다.

“이혁원, 오더 내고 탈의실로 와.”

약간은 냉랭한 목소리다. 수술이 끝날 때마다 하는 인사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서로를 보았다.

김지훈이 수술실을 나가자마자 이혁원이 눈가를 찡그리며 서도진에게 물었다.

“선생님, 제가 뭐 잘못한 거 있나요?”

“잘했는데, 왜 그러시지?”

서도진이 고개만 갸웃거렸다.

김지훈이 눈가까지 찡그리며 고민에 잠겼다.

지금까지 열심히 태웠고, 이혁원은 절대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은 일반 외과 의사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었다. 차트나 리포트에 빨간 줄을 긋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더구나 처음으로 준 수술이다.

‘제대로 지적하지 않으면 도리어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말해야 하지? 스승님은 핵심을 확 잡아 주셨는데, 그렇게 하려면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할까?’

지난 5년 동안 탔고, 지금도 타고 있다. 타는 데 일가견이 있다면 태우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수술이어서 그런지 의외로 고민스러웠다.

불현듯 태우는 것도 기술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진이 수술은 내 눈에 거의 흠잡을 부분이 없었는데, 어떻게 수술을 했지? 혁원이와의 차이는 무엇일까?’

같은 수술이라고 해도 의사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런 면은 전문의나 전공의 간의 차이가 없다.

결국 다른 점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서도진의 수술 모습을 상기했다.

이혁원의 손과 하나하나 비교했다.

조금씩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 부분들 처리가 미숙했고, 전체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진행하질 못했어.’

그런데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의 얼굴이 편해지기는커녕 도리어 눈살을 찌푸렸다.

문득 이제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 여긴 아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도진의 손에서 배울 것이 있었다. 신기동 교수의 끊임없는 지적에 대한 답을 얻을지도 몰랐다.

이혁원의 미숙함과 부족함이 자신의 손에도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가르치려고만 했다니, 가슴이 서늘해지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었다. 도리어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3살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더니, 딱 맞는 말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펠로우들에게 때 이른 교육을 맡긴 이유일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겸손함과 동시에 자신감을 유지하고, 자만을 멀리하는 것은 어느 일에나 적용되는 자세였다.

어느 틈엔가 스승과 교수들, 그리고 자신과 후배들이 어떻게 수술하는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였다.

펠로우가 된 이후에도 스승과 교수들이 왜 혹독하게 밀어붙이는지도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네.’

이혁원이 들어왔다. 잠시 눈길을 주던 김지훈이 얼굴을 굳혔다.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누구보다도 강한 정신력을 가진 이혁원이다. 개인적인 아픔까지 같이했다. 무지막지하게 탄다고 해서 굴할 놈이 아니었다.

막상 얼굴을 보니 복잡하기만 했던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됐다.

‘넌 좀 강하게 커도 돼. 스승님도 좋아하실 거야.’

“앉아.”

“예, 선생님.”

이혁원이 엉거주춤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이미 각오한 얼굴이었다.

“아뻬에서 가장 위험한 구조물이 뭐야?”

“동맥입니다.”

“그럼 가장 중요한 구조물은?”

“충수돌기입니다.”

“그걸 아는 놈이 수술을 그따위로 해? 동맥은 끊어져도 되고, 아뻬 자른 자리는 새도 돼?”

화르륵! 휙휙휙!

불과 비수가 마구 튀어나왔다.

이혁원의 얼굴이 허옇게 떴다.

“빨리한다고 잘하는 게 아니야. 차라리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기본이 되는 과정은 정확하게 해야 그게 수술이지. 겉멋 부릴 거면 내 수술엔 들어오지 마.”

“선생님, 구체적으로 제가 무엇을 고쳐야 합니까?”

“백번 말해야 네가 스스로 알아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도 없어. 선생님들과 선배들이 어떻게 수술하는지 두 눈 똑바로 뜨고 봐.”

김지훈이 벌떡 일어나 옷장 문을 열었다. 머뭇거리던 이혁원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어깨가 축 처지는가 싶더니,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역시 내 후배 이혁원이야. 어후!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할 말도 없었는데 큰일 날 뻔했네. 스승님께 태우는 방법까지 배워야 하나?’

탈의실을 나온 김지훈이 들려오는 소리에 씨익 웃었다.

“송진우, 오늘 잘 보라고 하신 건 다음번에 퍼스트를 세운다는 말이야. 김지훈 선생님이 퍼스트 어떻게 섰는지 모르겠어? 다시.”

송진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잠시 후, 다시라는 말이 또 울렸다. 그런데 이혁원이 슬쩍 끼어든 모양이었다.

“혁원아, 너 수술 잘했다는데 뭘 가르쳐 달라는 거야? 난 지적할 게 없어. 잘했어, 인마.”

“새카맣게 탔다니까요. 동맥하고 아뻬 자를 때 분명히 잘못한 게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어쩌라고. 난 모른다고. 정 답답하면 김지훈 선생님한테 직접 물어봐.”

“스타일 아시잖아요. 스스로 찾지 못하면 정말 살벌하게 탈 겁니다. 아니, 죽을지도 몰라요. 선생님, 살려 주세요.”

한쪽에서는 티격태격, 한쪽으로는 태우느라 서도진의 목소리만 점점 높아졌다.

좋은 일이다. 애정이 없으면 저런 대화가 오고 갈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송진우가 선배들의 살벌한 애정을 알려면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집으로 향하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느리기만 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채였다.

‘진우가 퍼스트를 서는 모습에서도 배울 것이 있을까? 분명히 있겠지. 최소한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는 될 테고,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거야.’

참 많이 배운 날이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놀렸다.

가만히 보니 아뻬를 하고 있었다.

라파로 아뻬?

아니다. 가장 경험이 많은 개복을 한 아뻬다.

***

정신없이 또 한 주가 흘렀다.

김지훈의 수술을 열심히 들어온 송진우는 결국 퍼스트를 서지 못했다. 피부 봉합을 할 때 수처나 타이는 받았지만 성에 찰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서도진은 빤뻬리를, 이혁원은 아뻬를 또 하나 받은 마당이었다.

도리어 상대적으로 수술을 적게 들어간 강병옥과 다른 1년차들이 먼저 퍼스트를 섰다.

이경석과 홍재순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퍼스트를 세우거나, 수술을 주는 것은 각자의 재량이기에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토요일 오전 일과가 끝난 후, 서도진이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왜 퍼스트를 안 세우세요? 진우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타이도 잘하던데요.”

옆에 있던 이혁원도 귀를 쫑긋거렸다.

“충분하지. 그런데 내가 문제네. 너희들은 이미 기본을 다졌지만, 진우는 이제 시작이잖아. 기본을 어떻게 알려 주어야 할지 이제야 감이 조금 와.”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내가 대가라면 모를까, 아직도 배워야 할 게 산더미야. 너희들 수술하는 거 보면 나도 기본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여튼 다음 아뻬할 때는 퍼스트 세울 거니까, 진우 초조하지 않게 잘 다독여.”

서도진과 이혁원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보이기 위한 겸손이라면 내심 투덜거리기라도 하겠지만 김지훈은 정말 진지했다. 공연히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너무 심각했나?’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완전히 풀이 죽어 있을 송진우에게 희망을 줄 때였다.

“말 나온 김에 준비 철저히 했는지 볼까? 진우 불러.”

송진우가 잔뜩 긴장한 채 앞에 앉았다.

“진우야, 키 160에 몸무게 80이면 꽤 뱃살이 많겠지? 그런 환자를 수술해야 돼. 시작해.”

헉 소리가 들렸다.

같은 아뻬라도 뚱뚱한 환자에게는 필요한 기구나 주의할 점이 조금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크기부터 다른 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1년차는 가장 무난한 케이스인 젊고 마른 환자를 수술할 때 퍼스트를 세운다.

당연히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교육을 시킨 놈이나 받은 놈이나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번 주 내내 교육을 맡은 이혁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두 번째 아뻬를 받은 날도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탔다. 자칫하면 교육 부실까지 겹쳐 뜨거운 불똥이 튀기 십상이었다.

눈가를 잔뜩 좁힌 송진우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벌써부터 얼굴이 벌게졌다.

서도진과 이혁원이 초조한 기색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래. 잘하고 있다. 그렇게 가야지.’

초반은 훌륭했다. 하지만 김지훈은 절대 사소한 과정도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어느 순간 서도진이 눈가를 찡그렸고, 이혁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5센티미터 정도 열었는데 시야가 그렇게 좋아? 아뻬가 배 속에 있는데 손가락이 거기까지 들어가겠어? 손가락이 10센티미터여도 안 들어가겠다. 다시.”

침착한 목소리다.

“진우야, 환자 뚱뚱하다. 니가 말한 기구로는 수술 시야 확보가 안 돼. 다시.”

슬슬 높아진다.

한 번 꼬이면 연속으로 꼬이기 마련이다.

다시! 다시! 다시!

총체적 난국이다.

김지훈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벌겠던 송진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혁원은 식은땀을 흘리고, 서도진은 헛기침을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송진우,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자.”

천신만고 끝에 첫 번째 설명을 마쳤다.

이후, 세 차례나 반복하고서야 통과가 됐다.

김지훈의 눈이 매서워졌다.

“서도진, 이혁원, 교육시켰다며. 똑바로 하자.”

“예, 선생님.”

“송진우, 수술 원칙과 기본만 잊지 않으면 어떤 아뻬가 와도 똑같아. 당황하면 익숙한 수술도 못할 수 있어. 명심해.”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시뻘게진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힘찼다.

‘이 자식, 설마 안면 홍조증인가?’

볼수록 은근히 희한한 놈이다.

송진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일어서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이혁원이 갑자기 차렷 자세로 김지훈을 보았다.

“이준영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을 찾으십니다.”

“예. 김지훈입니다.”

(외래에 아뻬 하나 있다. 내려와서 환자 보고 준비해.)

“예, 알겠습니다. 외래에 계실 겁니까?”

(왜?)

“수술 준비되면 노티 드리려고요.”

(환자한테 다 얘기했어. 수술해.)

아뻬라고 절대 수술을 피할 스승이 아니다. 결국 제자에게 수술 기회를 한 번이라도 더 주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김지훈을 믿기 때문이겠지만, 그 전에 담긴 스승의 마음이 무겁게 다가왔다.

잠시 입을 열지 못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큰일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머리까지 툭툭 쳤다.

‘어라? 오늘 원주 가기로 했는데 빨리 준비해야겠네. 1시 전에 끝낼 수 있을까?’

주말 오프인 줄 어떻게 알고 외래 시간에 맞춰, 그것도 하필이면 스승에게 아뻬가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이제 막 11시가 넘었다. 준비부터 수술까지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혁원아, 아뻬 있단다. 가자.”

응급실에서 수술 준비를 했다.

준비는 빠르게 진행해도 환자는 항상 여유를 가지고 대하는 것이 원칙이다. 불안하게 만들면 엉뚱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설명을 하고 동의서를 받았다.

차트를 보던 이혁원이 묘하게 웃었다.

“백오십오에 75킬로? 참! 어떻게 환자 몸집까지 비슷하지? 진우가 퍼스트 서면 정말 이런 대박이 없네.”

과연 그렇게 될까?

김지훈이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말했다.

“치프가 회진을 빼먹을 수는 없고. 혁원아, 신기동 선생님께 수술 있다고 말씀드리고 들어와. 진우, 너도 인턴 한 명 데리고 들어와.”

그것으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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