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86화 (586/1,329)

제10화. 교육의 또 다른 의미 (1)

생각지도 못한 소견이 보였다.

동시에 이준영 교수도 고개를 돌렸다.

흔히 맹장이라고 불리는 충수돌기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염증이 없는 경우 통상 4센티미터 전후여야 할 충수돌기가 무려 10센티미터가 넘었다.

문제는 그 끝이 위치한 부위였다.

기구를 이용해 살살 상행결장과 소장을 밀어내며 확인했다. 오른쪽 아랫배에 있어야 할 충수돌기의 끝이 간 바로 아래이자 담낭 옆에까지 뻗어 있었다.

정말 무지막지하게 긴 충수돌기였다.

서도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와! 이렇게 긴 아뻬도 있네요. 선생님, 끝이 엉뚱한 곳에 있는데 이거 그냥 지켜봐도 될까요?”

정확한 지적이었다.

70대는 충수돌기염이 빈발하는 연령은 아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충수돌기염이 발생한다면 거의 100퍼센트 오진할 가능성이 높았다. 염증은 맹장과 이어진 뿌리 부분이 아니라 맨 끝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충수돌기 끝과 맞닿아 있는 당남의 염증으로 오인할 수 있었다.

혹은 원인을 빠르게 찾지 못해 복막염으로의 진행을 막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경우 복부를 크게 열어야 하고, 이는 환자에게 대단한 육체적 부담을 유발시킬 것이다.

시쳇말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꼴이었다.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을 홀랑 태우는 일일 수도 있었다. 따라서 반드시 예방적인 조치가 필요했다.

김지훈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Incidental Appendectomy.

(부수적 충수돌기 절제술)

제왕절개를 시행하는 산모들의 경우 사전에 동의를 받고 아뻬를 절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유는 분명하고도 간단하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외과 질환인 데다 쓸모가 없는 장기다.

또한 정상적일 때 수술을 하면 수술 후 합병증이나 여타 부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권태경 환자 같은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절제할 수 있으면 무조건 절제하는 것이 환자를 위한 가장 적절하고도 정확한 판단이었다.

결정을 내린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물론 서도진도 같은 생각이었다.

“선생님, 절제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은 간단했다.

“보호자 동의 받고 자르는 게 좋겠다.”

“간호사, 보호자 불러 주세요.”

잠시 후, 보호자가 불안한 얼굴로 들어왔다.

좋은 일 때문에 수술 중 보호자를 부를 리 없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더구나 시간도 많이 지체됐다. 생전 처음 보는 수술실이 주는 차가움에 두려움까지 느끼는 것 같았다.

“선생님, 뭐가 잘못됐나요?”

목소리까지 떨렸다.

“아닙니다. 일단 탈장 수술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흔히 맹장으로 알고 있는 충수돌기가 조금 이상하게 생겼네요. 지금 화면을 보시면 쥐꼬리처럼 기다란 게 보이시죠?”

기구로 충수돌기를 가리키며 문제점을 설명했다. 보호자의 얼굴에서 불안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맹장을 잘라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저렇게 큰 걸 자르려면 수술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닙니까? 아버님 연세도 있고, 솔직히 비용 문제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당연히 감안해야 할 요인들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뻬를 절제하는 것은 나무를 자르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보호자분, 수술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굵기가 같으면 1미터짜리나 10미터짜리 나무나 자르는 일은 똑같지 않겠습니까? 맹장도 마찬가지로 아래만 자르면 됩니다. 그리고 비용도 거의 들지 않을 겁니다.”

부수적 충수돌기 절제술은 대단히 저렴하다. 환자 본인 부담이 일이만 원 정도 느는 선이었다.

사실 이런 수술만이 아니라 일반 외과 수술 수가 자체가 처참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훗날 수가가 오르긴 하겠지만, 그 역시 다른 외과와 비견할 수준은 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흉부외과는 동병상련이다.

어쨌든 보호자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동의를 받고 수술을 이어 갔다.

추가로 준비할 것은 클립뿐이었다.

탈장은 수처의 어려움이 발목을 단단히 잡았지만, 아뻬는 그럴 일이 없었다. 동맥을 포함한 장간막과 아뻬를 분리하고, 각각 클립으로 잡으면 끝이다.

라파로 기구 역시 손에 익도록 연습을 한 김지훈이다.

툭! 툭! 툭!

몇 번 손을 움직이는 순간 동맥이 확보됐다.

“클립.”

끼이이익! 끼이이익!

이중으로 잡은 후 동맥을 잘랐다. 남은 부위는 아뻬였고, 자르는 일은 더욱 간단하다. 염증이 없는 상태라 조직도 건강하고, 단단해 찢어질 염려도 없었다.

“아뻬 나갑니다. 콘돔 주세요.”

정말 비교도 할 수 없이 쉽게 끝났다.

고개를 흔들며 김지훈의 실력에 감탄하던 수술 팀이 배 밖으로 나온 아뻬를 보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실제로 보아도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길었다. 만일 충수돌기염이 발생해 수술을 했다면 엄청난 땀을 흘려야 했을 것이다. 개복을 해도 말이다.

수술 팀의 시선이 아뻬에서 떠나질 않았다.

‘이 자식들 봐라.’

“아뻬는 나중에 보고 수술에 집중해. 아직 안 끝났어.”

김지훈이 단호한 목소리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다들 흠칫 놀라며 표정을 감췄다. 수술 중 한눈을 팔다니, 결코 지나칠 일이 아니었다.

“서도진, 특별한 이상 없지?”

도진이가 아니라 서도진이다.

“예. 없는 것 같습니다.”

“마무리하고 끝내자.”

수술이 끝날 때까지 김지훈은 말이 없었다.

서도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이혁원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변했다. 물론 송진우는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를 것처럼 얼굴이 시뻘게진 채였다. 눈 한 번 잘못 돌렸다가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를 일이었다.

김지훈은 여전히 심각하기만 했다.

수술 중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아뻬에 눈이 쏠린 수술 팀의 자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라파로가 얼마나 어려운 수술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분명 자신감이 넘쳤다. 어제 담낭 절제술을 무난하게 한 덕에 마음도 편안했다.

다소의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처일 뿐인데 탈장 수술 내내 땀을 흘려야 했다. 기분이 가라앉다 못해 맥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그때 송재덕 교수가 들어왔다.

“이제 수술 끝나는구나. 지훈아, 교수야, 힘들었지. 이 교수도 3시간은 걸릴 거라고 했으니까 신경 쓸 거 없다. 고생했다. 응? 그런데 웬 아뻬니? 뭐가 이렇게 커? 허어! 지금까지 수술한 이유가 탈장이 아니라 이거였어? 그랬구나. 탈장 하고 아뻬를 하느라 지금까지 수술했구나. 잘하네. 정말 잘해. 이 교수, 우리가 틀렸다.”

순간 거대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았다.

칭찬이 칭찬으로 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준엄한 질책으로 들렸다.

스승은 물론 송재덕 교수도 3시간을 예상했다. 그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수술이라는 말인데, 경험도 없는 주제에 한 시간 반이면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름 아닌 자만이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수술 자체의 난이도, 혹은 기술의 부족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자신감으로 포장됐던 자만이란 놈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개복하는 아뻬도 경우에 따라서는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물며 집도 경험조차 거의 없는 라파로 탈장 수술이었다. 땀이 날 정도로 힘들었던 탈장과 정말 손쉽게 진행된 아뻬가 중첩되며 자만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스승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첫 정규 수술이란 흥분과 탈장쯤이야 하는 생각에, 그렇게 강조했던 가르침을 잊은 것이다. 어려웠던 수술보다 더 뼈아픈 일이었다.

‘어후! 이제 펠로우 시작한 주제에 자만을 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스스로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침울한 기분으로 수술을 끝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술실을 나가는 이준영 교수의 등 뒤로 전과는 확연히 다른 김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칫거렸던 이준영 교수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게실로 향했다.

‘탈장이 어렵게 진행됐다고 주눅 들 놈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힘이 빠졌을까? 이유 없이 저럴 놈이 아니야. 분명 무언가를 배우고 느꼈다는 말인데, 그게 뭔지 궁금하네.’

스승에게 전해진 마음과는 달리, 후배들에게 전해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서도진까지 전전긍긍하며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혁원아,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지? 가서 슬쩍 김지훈 선생님 얼굴 좀 보고 와. 아무래도 오늘 한눈판 것 때문에 혼 좀 나겠다. 에이! 그놈의 아뻬는 왜 그렇게 길어 가지고 이 말썽이야. 에이! X 됐다.”

서도진은 표현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이혁원은 입도 열지 못했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이럴 때는 일이 많은 것도 행운이다. 그나마 송진우는 다음 환자를 옮기느라 정신이 없어 불안감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수술 팀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김지훈은 자만이란 놈을 경계하며 눈을 부릅떴다.

서도진과 이혁원은 물론 송진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들 다른 생각이었지만, 이준영 교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흡족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만 하자.”

“수고하셨습니다.”

전공의들의 힘찬 목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에도 눈은 김지훈에게 향해 있었다. 역시 까마득한 교수보다는 바로 윗선배가 가장 무서운 모양이다. 년차를 엄격히 따지는 전공의 때와는 달리, 전문의가 되면 어려웠던 사이도 풀리기 마련인데 희한한 일이긴 했다.

혹시 전공의 5년차 같은 펠로우기 때문일까?

***

일과가 모두 끝날 때까지 지속된 김지훈의 굳은 얼굴에 분위기가 서늘했다. 마치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것처럼 회진까지 꼼꼼하게 돌았다. 특히 권태경 환자에게는 보통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이혁원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어후! 말씀을 안 하시니까 더 무섭네.’

“혁원아, 권태경 환자 차트 좀 가져와.”

목소리마저 착 가라앉아 있었다. 한 장 한 장 차트를 넘기는 김지훈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남은 환자들 차트를 찾아 일일이 수술 기록지를 확인했다.

‘이 환자들을 수술할 때는 어땠지?’

김지훈에겐 고민이지만, 이혁원에게는 점입가경이다.

‘잘못한 건 맞지만, 이런 식으로 화를 내실 선생님이 아닌데 왜 이러시지? 혹시 첫 정규 수술이라서 그런가? 아니야. 환자 문제는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분이라는 걸 잊고 있었어.’

수술 중에 또 다른 실수를 한 적이 없는지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던 이혁원이 흠칫 놀랐다. 어느 틈엔가 김지훈이 서늘한 눈길을 주고 있었다.

“이혁원.”

“예? 말씀하십시오.”

반응이 예전하고는 다르다.

‘이 자식이 아까부터 왜 이래?’

“너 오늘 당직이지?”

“예. 당직입니다.”

“확실하게 서자. 잘 아는 질환이라고 방심하지 말고.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 나는 거 알지?”

이혁원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다른 때와는 달리 김지훈의 행동이 다소 이상하긴 했지만, 분명 잘못한 일을 거론한 것이라 여겼다.

그 모습을 본 서도진이 송진우에게 눈짓을 하며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김지훈이 눈을 껌벅거렸다.

“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수술실 일 때문에 화가…….”

“수술실? 무슨 일이 있었어?”

“예? 아니, 그 아뻬 나왔을 때 저희가 한눈을…….”

피식 웃음이 터졌다.

오해도 이런 오해가 없었다. 후배들의 입장과 처지를 생각하지 않은 탓일 것이다.

“지금 그것 때문에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도진아, 나도 그런 아뻬 보면 눈 돌아가. 별게 다 미안하다. 그리고 너 치프야, 인마. 그것도 총치픈데, 혼날 일이 따로 있지. 진우라면 모를까.”

송진우만 흠칫 놀랐다.

“그런데 왜 오늘 하루 종일 표정이 그렇게 안 좋으셨어요?”

“내가 그랬나? 어이구! 미안하다. 반성할 일이 좀 있어서 그랬어. 너희들 때문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기운이 쫙 빠질 정도로 허탈한 말이다.

“미안하다.”

또다시 들려온 말에 맥이 다 풀리는지, 서도진과 이혁원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송진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작년하고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요.”

박순용의 말에 서도진이 중얼거렸다.

“이준영 선생님 닮아 가시는 것 같지 않아요?”

응? 듣고 보니 그렇다.

삼사 년차의 시선이 스윽 애먼 놈에게 쏠렸다. 이혁원이 딴청을 부리며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버지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그날 밤, 김지훈이 고경아와 마주 앉았다.

오늘 느낀 점을 두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해 주는 모습에 고맙기만 했다.

“이제 시작했는데 초조해하지 말아요. 지훈 씨는 누구보다도 잘해 낼 거예요.”

고경아는 인생의 동반자이며, 훌륭한 조언자였다.

‘그래.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고,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무시하고 지나치면 언젠가는 큰 문제를 만들 거야.’

“경아 씨, 같이 고민해 줘서 고마워요.”

고경아가 배시시 웃는다.

순간 뜨거운 눈빛을 교환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치솟았다. 방문 잠그고, 은은한 조명을 켠 후 손을 잡았다.

고경아의 뺨이 발갛게 물든다.

이제 끌어당기기만 하면 된다.

따르르릉!

하! 하! 하!

병원이다.

오늘은 이경석과 맞바꾼 당직 날이다.

어느새 날이 훤하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

새로운 한 주가 눈 몇 번 뜨고 감는 사이에 끝났다.

3주라는 시간도 제법 긴 시간인지 펠로우로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 갔다.

아침 7시까지 출근한다.

응급실 보고를 한 후, 교수들과 커피 한 잔을 한다. 스승도 매일같이 함께 커피를 즐긴다.

고소함이 사라지기도 전에, 김지훈 자신의 파트까지 네 파트 회진을 돈다.

선택과 집중이라지만, 환자 수는 생각도 하기 싫다.

여기까지가 2시간 내에 할 일이다.

항상 숨이 차지만, 이제는 조금 덜 차긴 한다.

잠시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수술을 들어가거나, 혹은 가물에 콩 나듯 외래 환자를 본다.

일이 없으면 구내식당에서 교수들과 점심을 먹는 행복을 누린다.

스승에게 간간이 받는 수술은 가물에 단비다.

잊을 만하면 비수를 날리는 신기동 교수 때문에 가끔 속이 더부룩하긴 했다. 물론 절대 티를 낼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오후 회진을 돌면 정규 일과가 끝난다.

펠로우의 밤은 극과 극이다.

특히 김지훈의 밤은 그랬다.

당직을 서는 날은 거의 예외 없이 눈이 벌게지고, 입안이 텁텁해진다.

대신 환자들에게 문제만 없다면 오프 날은 고경아와 즐거운 밤을 보낸다. 때론 뜨겁게 보내기도 한다.

어떻게?

‘그때그때 달라요.’

손만 잡을지, 눈빛만 교환할지, 혹은 둘 다 할지는 그날의 컨디션에 달렸다.

맞벌이기에 어느 한쪽만 컨디션이 좋을 때는 어금니 꽉 물고 잠만 자야 한다. 물론 언제나 고경희의 동태를 잘 살펴야 한다.

“경희야, 잠귀가 밝지는 않지? 혹시 들리는 건 아니지?”

어쨌든 병원 일 아니면 집안일로 바쁘긴 매한가지였다.

아! 한 가지가 더 있다.

따르륵! 따르륵!

끼익! 끼익! 슥슥슥!

김지훈의 손에서 나는 소리다. 충격을 안겨준 라파로 기구만이 아니라 개복 시 사용하는 수술 기구까지 춤을 췄다. 전공의들 특히 이혁원에게는 그것이 충격이었다.

따르륵! 따르륵!

이혁원의 손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3월의 마지막 주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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