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첫 정규 수술 (2)
마취 : 전신 마취
수술실 : 3번 수술실
환자 : 73세 남자 환자 권태경
진단명 : 우측 서혜부 탈장
수술명 : 복강경을 이용한 탈장 복원술
집도의 : 교수 김지훈
마취과 : 교수 김진호
드디어 정규 수술 스케줄에 이름을 올렸다.
응급 수술은 종이 한 장 내고 수술하면 끝이다. 관심 있는 사람만 알 수 있다.
반면 그날 예정된 모든 수술이 담긴 정규 수술 스케줄은 수술 방 앞을 비롯해 병원 곳곳에 붙는다.
의료진이라면 누구나 김지훈이라는 교수가 라파로 탈장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론 환자까지도 말이다.
전공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이었구나.’
잠시 스케줄을 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오늘 당직이잖아? 폭탄 맞으면 내일 수술에 지장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당직을 바꿔 달라고 할까? 너무 늦었나?’
복불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지난 2주가 너무 험난했다.
첫 정규 수술이니만큼 말짱한 몸과 마음으로 수술에 임하고 싶었다.
부리나케 이경석을 찾았다. 당직을 바꿔 달라는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히 바꿔 줘야지. 야! 너는 정규 수술 스타트를 끊는데, 난 언제 하냐. 역시 일복 많은 놈이 뭐든 빠를 수밖에 없겠지?”
“형, 외래 환자를 많이 보니까 금방 하실 거예요. 당직 바꿔 줘서 고마워요.”
전에 당직을 못 챙겨 먹었던 이혁원이 생각났다. 진정한 선배라면 이런 일은 꼭 기억해 주어야 한다.
“혁원아, 오늘이 아니라 내일 당직 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집에 가도 좋은 년차인 2년차지만 늦은 시간이었다. 동기들을 붙잡고 통사정을 해야 할 것이다.
만세!
이혁원이 오프라는 말은 누군가 김지훈의 당직을 피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어디선가 환호성을 지르는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애잔하게 들려왔다. 집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귀를 벅벅 후벼 팠다.
***
하! 하! 하!
역시 일복 있는 놈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침 일찍 상쾌한 몸과 마음으로 응급실 보고를 준비하던 김지훈이 입맛만 쩝쩝 다셨다.
정말 평온한 밤이었다. 당직이나 오프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제길! 그냥 설걸.’
“지훈아, 교수야, 네가 당직이었는데 환자가 이렇게 없는 날도 있구나. 일복이 다 날아갔나 보다. 어떻게 하지? 그래도 밤새 푹 잤지? 좋겠다. 좋겠어. 이런 날도 있어야지. 암! 그래야지.”
‘환자가 이렇게 없어도 안 되는데.’
송재덕 교수가 당직을 바꾼 줄도 모르고, 은근히 끓어오르는 속도 모르고 입맛을 다셨다.
환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두고 다른 마음, 같은 얼굴이다.
조금은 묘한 김지훈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고 바로 넘겨짚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지훈아, 교수야, 얼굴이 왜 그래? 아! 신혼이지, 신혼.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속은 쓰렸지만 100퍼센트 틀린 말은 아니었다. 라파로 탈장 준비를 함께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밤이긴 했다.
어쨌든 즐거운 아침이다.
절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밉상이었던 환자도 이송됐고, 곧 첫 정규 수술을 한다.
그것도 라파로다.
회진의 끝이 보일수록 가슴이 두근거렸다. 수술 방 앞에서 보호자를 만났을 때는 뿌듯하기만 했다. 자꾸만 수술 스케줄에 적힌 이름에 눈이 갔다.
‘교수 김지훈!’
왠지 수술 방에 들어온 사람들이 모두 눈길을 주는 것 같았다.
수술실에 들어섰을 때는 어깨에 힘까지 들어갔다. 온몸에 전에 없는 자신감이 꽉 들어찼다. 김진호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고경아와 힘찬 눈빛을 나누었다.
‘경아 씨, 어제 준비한 대로만 합시다.’
‘지훈 씨, 파이팅!’
환자가 들어왔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집도의는 수술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할아버님, 잠깐 주무셨다 일어나면 수술 끝나 있을 겁니다. 마음 푹 놓으세요.”
“내가 우리 선생님은 믿는데, 마취도 위험하다고 안 그랬나? 나 잘 깨어나겠지?”
김진호 교수가 헛기침을 했다.
“우리 병원에서 마취를 제일 잘하시는 선생님이 오늘 마취를 하시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난 우리 선생님만 믿어.”
그사이 정맥으로 마취제가 투여됐다.
“자! 환자분, 제가 그 마취과 의사입니다. 시작할 테니까 천천히 하나부터 열까지 세어 보실까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
많이도 센다.
“긴장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환자분, 제 말 들리시면 눈 떠 보세요. 못 뜨시겠죠? 준비합시다.”
항상 신중하지만 즐겁게 마취를 거는 김진호 교수다.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머금던 서도진과 송진우가 김지훈의 찌릿한 눈길에 수술 준비를 했다. 이혁원은 이미 언제든 손을 거들 차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날 무렵, 이준영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제와 똑같이 수술복 차림으로 팔짱을 낀 채 수술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참관만 하겠다는 의미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술실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역시 뿜어져 나오는 기운 자체가 다르다.
김지훈도 살짝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스승 때문인지 자신감은 도리어 강해졌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예상 시간은 한 시간 반. 난 충분히 할 수 있다.’
배꼽 옆을 절개했다.
카메라가 들어갔다.
이어, 두 곳을 더 절개했다.
모든 기구가 안전하게 들어갔다.
“환자 다리 쪽 높여 주세요.”
위이이잉!
수술 침대가 나직한 기계음을 울리며 한쪽으로 기울었다. 소장과 대장이 슬슬 시야에서 사라졌다.
포셉을 이용해 남은 장기를 가슴 쪽으로 밀어내고 탈장이 발생한 부위를 찾았다.
고환 동맥과 정맥이 통과하는 부분이 보였다. 장이 빠져나가는 통로다. 탈장 구멍의 크기를 가늠하며, 기구 끝으로 주변을 확인했다.
고령으로 인해 주변 조직이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다.
탈장 수술의 원칙은 복벽을 강화시키는 것이고, 라파로 탈장은 패치를 이용해 복벽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복벽을 대신할 수술용 패치를 생각보다 넓게 대 주어야 할 상황이었다.
“고 간호사, 패치 주세요.”
‘동맥의 오른쪽으로 장이 빠져나가니까 구멍은 왼쪽으로 치우쳐 뚫자.’
탈장 통로를 막을 패치를 받아 들고는 신중하게 재단을 시작했다.
고환 동맥과 정맥이 지나갈 구멍을 동그랗게 뚫었다.
화면을 보며 탈장이 발생한 부위를 충분히 덮을 수 있는 패치의 크기를 가늠했다.
가로세로 5센티미터.
크다. 최소 20바늘은 꿰매야 한다.
김지훈이 살짝 콧등을 찡그렸다.
라파로 탈장 수술의 핵심은 패치를 조직에 얼마나 단단하게 봉합하는지에 달렸다. 한 바늘이라도 헐거워지거나 풀리면 재발할 수도 있다. 배 속의 압력은 예상외로 강하고 소장은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기라, 조그만 틈으로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더 약하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꼼꼼하고, 확실하게 수처해야 한다.’
패치를 집어넣었다. 고환 동맥과 정맥을 이미 뚫은 구멍으로 통과시키고, 패치를 정확한 자리에 위치시켰다. 이제부터는 수처와의 싸움이다.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
솔직히 이미 자신감은 넘치는 상태다.
“수처.”
라파로용 니들 홀더(Needle Holder:바늘을 잡은 봉합용 기구)에 실을 물렸다.
조심스럽게 수술 부위에 접근시키자 몇 배 커진 크기로 화면에 나타났다.
이보다 시야가 좋을 수는 없지만 수처의 어려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라파로 특성상 몸이나 손을 움직여 바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또한 30센티미터에 달하는 기다란 기구의 한쪽 끝만 고정시킨 채, 상하좌우 네 방향으로 각각 수처를 해야 한다.
결국 상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 기구 끝에 달린 바늘의 방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법뿐이었다.
당연히 그 정도 어려움은 예상했다. 전공의 때 스승에게 수처를 받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감을 유지했다.
외과의에게 경험만큼 큰 자산은 없었다.
‘어렵기는 했지만 쩔쩔맬 정도는 아니야.’
일단 패치를 고정시키기 위해 각이 진 네 부분부터 봉합을 시도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대로 바늘을 조작할 수가 없었다.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저절로 몸이 비틀렸다.
말 그대로 쩔쩔매고 있다.
처음부터 난관이다. 완벽한 오판이었다.
끙 소리가 절로 났다.
‘스승님은 쉽게 하시던데, 왜 이렇게 어렵지?’
간신히 네 귀퉁이를 고정시켰다.
고작 네 바늘에 땀이 났다.
상대적으로 쉽다고 하는 좌우 면부터 봉합했다.
역시 상대적이다.
불과 여덟 바늘이었다. 손으로 직접 한다면 순식간에 끝날 일에 하염없이 시간을 소모했다.
그나마 단 한 번이지만, 전공의 때의 경험마저 없었다면 정신없이 헤맸을지도 몰랐다.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상하 면이 남았다.
첫 바늘을 뜨는 순간 생각이 확 바뀌었다.
이건 절대적 어려움이다.
손으로 직접 하는 수처는 아예 잊어야 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아무리 용을 써도 지름길이나 쉬운 방법은 없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본 대로, 배운 대로 해야 했다.
끙! 끙!
입 밖으로 터지는 소리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간담도에 라파로를 전공으로 하고 싶다는 놈이 이걸 못하면 안 되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수처는 기본이잖아.’
고경아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지훈 씨, 힘내요.’
수술 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이준영 교수만이 본연의 무뚝뚝한 얼굴이다.
‘그간 수술을 하며 자신이 상당히 붙었을 거야. 솔직히 지금도 예상 밖으로 잘하고 있지만, 지훈이 넌 당황스러울 정도로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번 수술을 통해 어떤 수술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실감하면, 그 이상으로 큰 교훈도 없을 거다. 3시간 내에 끝내면 정말 잘한 거야.’
째깍! 째깍!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한 시간 반으로 잡았던 예정 시간이 이미 30분이나 지났다. 아직도 수처는 많이 남았다.
별별 자세를 다 취하며 어떻게든 용이한 방법을 찾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후우! 방금 전에 했던 식으로 하는데, 왜 더 어려워졌지?’
골반의 미세한 굴곡 차이.
긴 라파로 기구로 바늘을 조작해야 하는 어려움.
부족한 경험.
남은 것은 집념과 끈질김뿐이었다.
그로부터 30분이 더 지났다. 마침내 마지막 봉합을 끝냈다. 온갖 인상을 쓰던 김지훈이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훅 숨을 내뱉었다.
눈빛이 좋지 못했다.
누구보다도 자신했던 수처 때문에 온몸을 땀으로 적실 줄은 몰랐다.
수술 전에 가졌던 자신감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결코 오래 걸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대로 봉합을 한 걸까?’
몇 번이고 패치를 끌어당기며 단단하게 봉합됐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헐거운 부분은 없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당연히 스승의 의견을 구했다. 이준영 교수는 모니터에 시선을 둔 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최소한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벌써 끝냈어? 아직도 날 놀라게 하는구나.’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스승의 마음을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무언의 침묵은 긍정이다. 수술을 제대로 끝냈다는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도진아, 주변 장기 확인하고 끝내자.”
김지훈의 목소리가 나직했다.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서두르면 예기치 못한 실수를 하게 된다. 끝까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수술 부위 주변과 대장 및 소장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거의 다 확인했다.
그때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