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83화 (583/1,329)

제8화. 수술 팀의 의미 (2)

배를 닫기 전에 도착해 정말 다행이었다.

“이 교수도 와 있었구나. 언제 왔어?”

“중간에 들어왔습니다.”

초조함이 깃들었던 송재덕 교수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김지훈과 수술 팀, 그리고 이준영 교수의 표정만으로도 수술 결과를 안 것이다.

“지훈아, 수술 끝났니? 어디가 터진 거야? 잘 해결했지? 장을 다시 잘랐구나, 다시. 힘들었겠다. 힘들었겠어. 그래도 잘했다. 잘했어.”

본래의 말투를 되찾았다.

홍재순이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고는 바로 손을 씻고 들어왔다.

안호석이 재빨리 자리를 비켰고, 김지훈은 어디서 출혈을 했는지, 어떻게 해결을 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수술 부위와 잘라 낸 조직을 살펴보던 홍재순이 입술을 모았다. 한눈에도 쉽지 않았을 텐데 깔끔하게 보일 정도였다. 수술 잘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네 덕분에 살았어. 또 신세를 졌네.’

“김지훈 선생, 고맙다. 고생했어.”

홍재순의 마음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수술한 부위 다 확인하셨으니까 보호자에게 직접 설명하실 거죠?”

비록 뒤늦게 들어왔지만, 일차 수술을 한 홍재순이 설명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합병증이 발생한 데다 보호자들이 신뢰를 하기에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었다.

“같이 설명했으면 좋겠어. 그렇다고 책임을 같이 지자는 말은 아니다.”

“에이! 선생님, 그런 말씀 마세요.”

“아이고! 수술 잘 끝나서 다행이다, 다행. 그래도 지훈이 네가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나도 안 초조하더라. 재순이 너도 그랬지? 그치? 빨리 닫고 가자. 가서 설명하자. 이 교수, 우린 펠로우들에게 맡기고 이제 퇴근하자. 피곤하다.”

홍재순과 함께 마무리를 시작했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편안해졌다. 교수 두 명과 펠로우 두 명, 그리고 치프까지 확실하게 끝났다고 확인한 이상 불안할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힘이 팍팍 들어간 목소리였다.

덧 가운을 벗으며 힐끗 고개를 돌리던 김지훈이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모든 시선이 김지훈에게 향한 채였다.

비록 몇 건 안 되지만, 수술을 마칠 때마다 들었던 소리였다. 그런데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았다.

스승을 보며 느꼈던 감정의 일부가 수술 팀의 눈빛에 담겨 있었다.

믿음은 믿음을 부르는 모양이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식들! 새삼스럽게 왜 이래?’

한편으로는 쑥스럽기도 했다.

“수고했어.”

김지훈이 손을 흔들며 재빨리 수술실을 나갔다.

교수들과 함께 보호자를 만났다.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설명했고, 홍재순과 송재덕 교수가 사과의 말을 전하며 양해를 구했다.

어떤 결말이 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환자의 회복이 훗날을 좌우할 것이다.

토요일 밤의 고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 보호자의 표정을 봐서는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좋을 것 같았다.

김지훈이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때 보호자가 김지훈에게 달려왔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을 텐데 웃고 있었다.

그 어떤 말보다 값진 말이었다.

‘절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지훈이 아무 말도 못하고 꾸벅 고개만 숙였다.

***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홀로 때늦은 늦은 회진을 돌았다.

비록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수였지만, 모두 다 직접 입원시키고 수술한 환자들이었다.

굳이 치료에 관한 말이 아니어도 좋았다.

웃는 사람.

심각한 사람.

아직도 입에 욕을 다는 사람.

모두 이해하고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었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점점 생각이 많아졌다.

수술하고 퇴원만 하면 끝이 아니었다.

이들과 똑같은 질환, 혹은 더 심한 상태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무사히 수술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다.

다양한 질환으로 내원하는 환자.

갖가지 원인으로 외상을 입은 환자.

특히 칼에 찔린 경우.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한 환자 등등.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새로운 지식을 쌓고, 보다 발전된 의료를 제공하는 일은 의사의 의무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지식을 더욱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승님과 선생님들 모두 항상 교과서와 논문을 읽고 확인하시는 이유가 바로 그런 거겠지? 연구실에 채워야 할 자료는 분명 새로운 것만이 아니야.’

아직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면 험악하기 짝이 없는 한 주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조금은 더 구체적인 계획이 서기 시작했다.

연구실은 쉬라고 준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연구하고, 공부하라고 준 것이다.

당직 인턴을 호출했다.

“인턴 선생, 부탁할 게 있어. 월요일까지 자상에 관한 논문하고 수술 후 합병증 중 동맥 손상에 관한 논문 좀 찾아와. 고맙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가 불빛으로 환하다.

밝은 만큼 어둠이 깊다는 말이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한껏 기지개를 켜고는 집으로 가기 전에 먼저 응급실로 향했다. 혹시 환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노티 시간이 안 맞으면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나와야 할 수도 있었다.

전공의와 인턴, 그리고 간호사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단 한 명의 환자만 있어도 누군가는 긴장하고, 누군가는 뛰어야 한다.

왠지 고마웠다. 그들이 있어 두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되게 고맙네.’

다행히 일반 외과 환자는 없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서던 김지훈이 연구실을 보았다.

생각만 하고 몸이 안 따라가면 그보다 바보 같은 짓은 없다. 차라리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다음 주에 라파로 탈장이 있고, 당장 아뻬도 라파로로 해야 할지 모르는데 준비는 해야지.’

주중에 준비한 라파로 자료들을 들고 나왔다.

급할 것은 없었다. 한잠 푹 자고 내일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슬슬 펼쳐 보면 될 것이다.

‘아뻬가 오면 어떻게 하지? 설마 먼저 라파로로 해 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응? 권유를 해야 하나? 아니야. 어제오늘 너무 무리했어. 수술도 좋지만 나도 좀 쉬자.’

이 고민, 저 고민 하는 사이 집에 도착했다.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 순간 그대로 잠에 빠졌다. 고경아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는 자장가였다.

이대로 쭉 쉴 수 있을까?

일복 터진 놈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일요일 오후까지 빤뻬리와 아뻬 두 개를 했다. 간격도 정말 짠 것처럼 쉴 만하면 환자가 왔다.

입원 환자는 모두 7명으로 늘었지만 대신 잠을 반납했다.

고경아와 일요일 저녁을 같이할 수 있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뻬도 라파로로는 아직 무리한 시도일까? 스승님은 많이 하셨는데,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히네.’

그래도 단 일주일 만에 손은 확실하게 풀었다.

펠로우가 칼바람을 날리면 전공의에겐 폭풍이다.

안호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대단한 일복이다.”

이혁원과 송진우는 거의 넋이 빠졌다.

김지훈이나 안호석은 그나마 사이사이 쉴 수나 있었지만, 일이 년차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직이라도 적당한 휴식을 기대했던 주말이기에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 밤, 송진우가 두 손을 정성스럽게 모았다.

‘제발! 오늘 밤만은.’

이혁원이 그 마음을 안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러다 일을 배우고 실력을 키우기는커녕, 그 전에 죽을 판이었다. 고생 끝에 2년차가 됐는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다.

아침 일찍 드레싱에 나선 송진우가 좋다고 웃었다.

그때 이혁원이 드레싱 카를 요란하게 끌고 나오며 투덜거렸다. 아직도 눈에 졸음이 가득했다.

“2년차 돼서도 아침 드레싱을 이렇게 일찍 해야 하나? 송진우, 넌 뭐가 좋다고 그렇게 웃어?”

“선생님, 잠은 잤잖아요.”

“어이구! 많이 자서 좋겠다.”

겨우 서너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좋단다. 1년차에 100일 당직이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혁원에겐 너무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오프 다녀와서 밤새 쿨쿨 잠에 빠진 동기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놈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아침 회진을 올라온 김지훈은 멀쩡했다. 숱한 경험을 한 안호석도 은근히 놀랄 지경이었다.

“혁원아, 회진 돌자.”

다시 시작이다.

오늘도 김지훈이 당직이다.

죽거나, 살거나 둘 중의 하나다.

하! 하! 하!

어김없이 새벽에 눈 뜨고 있어야 했다.

***

정말 원없이 수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주말에 한 생각을 잠시 접어야 할 지경이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였다.

바로 간담도와 라파로다.

틈이 나는 대로 항상 눈이 시뻘게져 있는 이혁원과 함께 라파로 탈장을 준비했다. 테이프를 보고, 또 보며 머릿속에 확실하게 박았다.

휙휙 시간이 지나갔다.

신기동 교수의 비수도 휙휙 허공을 갈랐다.

수요일이다.

김지훈에겐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환자가 꼭 입원해야 하는데.’

전화벨이 울리거나, 찾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귀가 활짝 열렸다. 오전이 지나고 오후가 되어도 원하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4시가 넘었다.

시계를 보던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외래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어, 하루 종일 스승의 수술만 참관했다.

라파로 탈장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기 위해 눈 부릅뜨고 본 결과 허탈함만이 남았다.

스승은 오늘도 라파로 3개와 개복 수술까지 모두 4개의 수술을 끝냈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수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잘됐고, 이제는 송재덕 교수도 울고 갈 정도였다.

‘어후! 일단 라파로를 시작이라도 해야 저런 경지를 넘볼 텐데. 죽겠네.’

수술실을 나가던 이준영 교수가 슥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어?”

“예? 아닙니다, 선생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를 모를 리 없었다. 모른다면 김지훈의 스승이 아니다.

“라파로 환자는?”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올 사람은 꼭 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호사가 전화를 가리켰다.

외래 간호사였다.

73세 남자 환자 권태경이 입원 수속을 밟고 있다는 말에 김지훈의 입이 찢어졌다.

이준영 교수가 피식 웃었다. 물론 마스크로 완벽하게 입을 가린 것도 모자라 고개까지 돌린 채였다.

회진이 정말 기다려졌다.

이혁원이 어서 노티하기만을 기다렸다.

교수 회진을 따라 돌며 병실 환자들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권태경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입원 수속을 했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을까 봐 초조하기만 했다.

급해 죽겠는데 이준영 교수 앞으로 컨설트가 두 개나 나왔다. 함께 내과 병동으로 가면서도 정신은 온통 외과 병동으로 쏠려 있었다.

‘지금쯤은 병실에 와 있지 않을까? 기회 봐서 전화라도 할까? 아니야. 급할 것 없어. 차분하게.’

첫 번째 컨설트 환자를 찾았다.

몇 마디 말이 오가고, 곧바로 수술 날을 잡았다.

환자와 보호자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강한 신뢰를 보였다. 수많은 경험을 쌓은 노련한 외과의의 힘이었다.

더구나 이제는 복강경 수술에도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는 이준영 교수였다.

컨설트 용지에 계획을 적은 후 전과시키라는 오더를 내리는 모습이 자연스럽기만 했다.

‘부럽다. 언제쯤이면 스승님처럼 될 수 있을까?’

웃긴 놈이다.

일이 년도 아니고, 근 2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 성급해도 너무 성급했다. 자고로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어야 하는 법이다.

두 번째 환자를 찾았다.

환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이미 안면이 있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며칠 사이에 간수치가 많이 내려갔지만, 언제 또 오를지 모르기 때문에 곧바로 수술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별한 원인이 없다지만 아무래도 담석이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언제 가능할까요?”

“내일 하시죠.”

목요일은 이준영 교수가 수술하는 날이 아니다. 외래 환자를 보아야 하는데 의아한 일이었다. 게다가 한창 설명을 하다 말고 갑자기 김지훈을 가리켰다.

“그리고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여기 김지훈 선생과 함께 수술할 예정입니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환자가 김지훈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전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 모르지만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당황스러워 미처 입도 열지 못했고, 이준영 교수는 힐끗 눈길만 주고는 병실을 나갔다.

스테이션을 그냥 지나쳤다.

“선생님, 컨설트에 대한 답은…….”

서도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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