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82화 (582/1,329)

제8화. 수술 팀의 의미 (1)

수혈하는 속도보다 출혈 속도가 더 빨랐다. 서서히 혈압이 떨어지며 소변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혈량성 쇼크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까지 몰렸다.

초조하기만 했다. 안호석과 이혁원도 눈가만 찡그리고 있었다.

‘수술 방 내려가고 마취까지 최소한 30분은 걸릴 텐데, 더 이상 기다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태야. 어떻게 해야 하지?’

“호석아, 홍재순 선생님은?”

“이제 수원 근처를 통과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밀리는 구간만 남았다.

더 늦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열자. 이러다 환자 놓친다.’

안호석과 이혁원을 조용히 밖으로 불러냈다.

“호석아, 당장 열어야겠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만, 선생님 환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모든 책임을 지셔야 할 수도 있습니다. 수혈할 라인 하나 더 잡고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수술 후 합병증이기에, 만에 하나 환자가 잘못되면 더욱 큰 책임이 뒤따른다.

더구나 김지훈은 일차 수술을 한 의사가 아니다. 섣불리 수술을 했다가는 도리어 홍재순보다 더 치명적인 상황에 몰릴 수 있었다.

치프 정도 되면 이런 상황이 의사에게도 얼마나 심각한지 알기에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환자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수술을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과가 나쁘면 보호자들도 사람인 이상 의사의 판단을 십분 이해하고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혁원은 아예 입을 열 생각도 못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버티면 호석이 말대로 한 시간 정도는 기다릴 여유가 있겠지. 환자에게 그 한 시간이 어떤 영향을 줄까?’

냉정해야 했다. 의사지만 의사의 입장을 최대한 배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의사의 기본적인 의무를 방기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짊어질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칼에 찔린 중환자실 환자가 그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안호석, 당장 수술해야 하는지, 아닌지만 말해.”

“환자에게는 그게 가장 안전하긴 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하자.”

“선생님, 홍재순 선생님 환자입니다. 자칫…….”

김지훈이 말을 뚝 잘랐다.

“누구 환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런 문제 때문에 환자를 최악의 상황까지 밀어붙일 수는 없어. 책임져야 한다면 내가 진다. 당장 준비해.”

홍재순과 다시 통화를 했다.

(지훈아, 기다릴 수 없겠어?)

“환자가 버티기는 하겠지만, 선생님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결과가 좋지 못할 겁니다.”

(네 환자가 아니잖아. 그러다…….)

“선생님, 지금은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너무 늦게 수술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초조할 홍재순조차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직접 환자를 보지 못했기에 그럴지도 몰랐다.

송재덕 교수가 전화를 이어 받았다.

(지훈아, 지금 바로 열어야 하니? 지켜볼 수는 없겠어? 수술 바로 하면 괜찮겠어?)

“예.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수혈하면서 한 시간 정도는 지켜볼 수 있겠지만,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저혈량성 쇼크에 빠질 상황입니다.”

(그래. 알았다. 재순아, 지훈이 판단을 믿고 수술하는 게 좋겠다. 혹시 모르니까 이 교수한테 나가 보라고 연락하마. 재순아, 뭐해? 최종 결정은 네가 해 줘야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훈아, 부탁할게.)

홍재순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라고 해도 김지훈에게나 환자에게나 정말 면목이 없고, 힘든 결정일 것이다.

어쨌든 결정이 났다. 환자 이외의 문제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었다.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선생님이 수술하신다고요?”

보호자가 눈가를 찌푸렸다.

“예. 지금은 제가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호자분, 저도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수술하겠습니다.”

“수술한 사람도 아닌데, 그러다 잘못되면…….”

여러 가지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책임 문제라면 이미 각오한 일이다.

“환자분 회복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책임져야 할 일이 생긴다면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살짝 표정이 변했다.

내심 홍재순이 없다는 사실에 불만과 짜증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판이었다.

환자의 얼굴이 창백해질수록, 의료진들의 발걸음이 다급할수록 불안감이 짙어지기만 했다.

사실 교수인 김지훈이 곁을 지키지 않았다면 이미 폭발했을지도 몰랐다. 그것도 모자라 김지훈의 눈에서 강한 책임감과 진정을 보았다.

자신의 환자도 아닌데, 모든 위험과 책임을 무릅쓰고 수술을 하겠다는 의사를 보기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력이 없다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잠시 김지훈을 응시하던 보호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수술해 주세요. 단, 선생님의 말씀은 고맙지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하지만 환자 이외의 다른 문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최선을 다해 환자를 수술하고, 문제없이 퇴원시키는 것만이 중요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되는 대로 수술하겠습니다. 안호석 선생, 이혁원 선생, 마취과에 연락해서 환자 내린다고 해.”

일반 외과 병동이 긴장에 휩싸였다.

수술 방으로 들어가는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눈가를 좁혔다. 창백한 혈색의 환자의 손이 힘없이 흔들렸다.

보호자들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바짝 마른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숨기려 했던 초조함이다.

문득 송재덕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분명히 전화를 끊자마자 연락을 하셨을 텐데 스승님은 왜 안 오시지? 수술 중 별문제 없겠지?’

보호자와 전공의들 앞에서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가슴이 은근히 떨렸다. 책임에 대한 부담감과 환자에 대한 불안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스승과 함께 수술한다면 긴장은 할지언정 걱정이나 두려움 따위는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다.

‘스승님이 계시면 든든하겠지만 내가 수술을 결정했고, 집도의는 나다. 불안해할 것 없어. 환자는 반드시 좋아지게 돼 있어. 내 손을 거치면 반드시 좋아진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불안을 떨쳤다.

오직 환자와 수술에만 집중해야 할 때였다.

일차 수술을 한 홍재순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무작정 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점적으로 확인해야 할 부분들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소장 수술 후 이 정도 출혈이 야기될 정도라면 십중팔구는 수술 부위의 동맥이 원인이었다.

‘어딜까? 소장 동맥 분지 중 하나일까? 아니면 엉뚱한 부분에 손상을 주기라도 한 걸까?’

생각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불안하다는 말이었다.

마취가 시작될 때도, 손을 씻고 수술용 가운을 입을 때도 집중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어느새 안호석과 이혁원이 빠르게 복부를 소독하고 자리에 서 있었다.

지체할 틈이 없었다.

집도의 자리에 들어서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가위!”

간호사가 막 가위를 건네는 순간 누군가 수술실로 들어왔다. 이준영 교수였다.

순간 그렇게 각오를 했건만 안도의 한숨이 훅 터져 나왔다.

습관처럼 손이 멈췄다.

당연히 수술을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잠시 시간이 지연됐다.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준영 교수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김지훈, 뭐하고 있어? 넌 지금 수술을 결정한 집도의로서 그 자리에 서 있는 거야. 다른 수술과 다를 바가 없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엄한 질책이었다.

그렇다. 전문의이자 교수로서 이 자리에 섰다.

지금 이 시간 어디에선가는 홀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수술에 임하는 전문의가 있을 것이다.

상의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스스로 기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실수를 깨달은 김지훈이 눈빛을 굳혔다.

오직 수술에만 집중해야 한다.

툭툭툭툭!

피부와 피하지방을 봉합한 실을 잘랐다. 헐겁게 붙어 있는 조직을 벌리고, 근육과 복막을 꿰맨 실을 모두 자르자 복막이 쭉 벌어졌다.

검붉은 피와 핏덩어리들이 보인다.

드레인(Drain:심지)이 삽입된 구멍을 통해 들어온 공기와 피가 접촉한 탓에 응고된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 어떤 양상으로 출혈하는지 모르기에, 함부로 핏덩어리를 제거하거나 석션을 해서는 안 된다.

신중한 결정과 빠른 손이 필요한 때다.

“이리게이션(Irrigation:세척).”

수술 시야를 확보하고, 자연스럽게 핏덩어리들을 제거하기 위해 세척부터 실시했다.

배 속에 고였던 피와 헐겁게 붙어 있던 일부 핏덩어리들이 제거되며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수술 중 과도한 기구 조작으로 내부 장기가 손상받았을 수도 있었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간과 비장 손상부터 빠르게 확인했다.

다행히도 깨끗했다.

남은 부위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소장 봉합을 한 부위다. 수술 부위 주변에 넣은 드레인을 빼내자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봉합 부위 위에 넓고 끈적하게 달라붙은 핏덩어리 사이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이 속에 출혈 부위가 있다.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수술한 부위인 데다 출혈까지 겹쳐 상당히 약해져 있을 게 분명해. 기구로 혈종을 제거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지금은 손이 가장 안전한 수단이었다.

봉합 부위와 핏덩어리 경계를 따라 손으로 박리를 시도했다. 물컹한 핏덩어리가 갈라지고 쪼개지며, 수술 부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장 봉합을 위해 자르고 이은 장간막이 보였다.

성긴 지방조직 사이로 스며든 피 때문에 검붉게 부풀어 오른 상태다.

조금만 과도한 힘이 가해져도 찢어질 것처럼 연약했다. 줄줄 흐르는 피에 장갑이 미끈거릴 지경이었다.

가슴이 서늘해지며, 입에 침이 마른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에만 집중했다.

장간막과 핏덩어리에서 전해지는 이질적인 느낌을 따라 신중하면서도, 때론 과감하게 손을 움직였다.

여전히 확실한 출혈 부위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다른 부위의 출혈은 생각할 수도 없다.

마침내 봉합된 소장과 장간막이 모두 노출됐다.

그 순간 심장박동을 따라 쭉쭉 피를 내뿜는 동맥이 보였다. 본능처럼 손을 내밀었다.

“켈리.”

따르륵!

정확하게 동맥 끝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약한 상태다.

“조심해서 타이하자.”

타이를 하던 안호석이 눈가를 찌푸렸다.

동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을 받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꽉 잡아야 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끝에야 이중으로 타이를 할 수 있었다.

“물, 석션.”

배 속을 깨끗이 씻었다. 이제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분명 출혈 부위를 잡았는데 김지훈과 수술 팀은 물론 이준영 교수까지 눈가를 찡그렸다.

한동안 조용히 수술 부위만 응시했다.

출혈의 원인은 동맥이 포함된 장간막의 부분적 괴사였다. 그로 인해 동맥벽이 손상을 받았고, 결국 압력을 못 이겨 벽이 터지고 만 것이다.

매우 드물게 보는 수술 후 합병증이었다.

타이한 실이 풀렸다면 모르지만, 조직 괴사는 불가항력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수술 팀을 긴장하게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하필이면 소장을 연결한 부위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이 손상받은 것이다.

이미 연결 부위는 회색빛을 띠고 있었다. 다른 동맥이 있기에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심각한 혈류 부족이 지속된 결과였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연결 부위가 터지며 복막염까지 유발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도 소장은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 중이다.

묶은 동맥을 다시 이어 줄 방법은 없다. 따라서 죽어 가는 소장을 살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더구나 이미 건드린 부위다. 출혈로 인한 부종과 심각한 조직 약화까지 발생한 상태다.

다시 자르고 이어 주는 일은 첫 수술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훨씬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가장 피하고 싶은 경우였다. 더구나 부담과 책임에 심한 압박까지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김지훈의 얼굴이 의외로 담담했다. 바로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줄 스승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김지훈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자라고 무작정 보고 계실 분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내야 하는 수술이기에 아무 말씀도 없으신 거다.’

“안호석, 다시 자르고 잇자. 켈리.”

단호한 목소리와 함께 수술이 진행됐다.

장간막을 다시 잘랐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조직이 약했다. 타이만으로도 염증성 삼출액과 스며들었던 피가 새어 나오며 조직 일부가 찢어졌다.

안호석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이혁원과 송진우는 리트랙터를 꽉 잡은 채 최대한 미동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출혈 부위를 찾을 때보다 더욱 진한 긴장감이 흘렀다.

안호석이 타이를 할 때마다 김지훈을 보았다.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타이를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순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스승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확고한 믿음이자 신뢰다.

불안을 잊고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런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잠시 잊었다. 집도의가 수술 팀을 믿지 못하면 이보다 더 간단한 수술이라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안호석은 신뢰할 수 있는 후배이자 의사다. 집도의는 수술 팀, 특히 퍼스트를 믿어야 한다. 스승처럼 확고한 믿음을 보여야 할 때였다.

긴말은 필요 없다.

“타이!”

김지훈의 목소리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안호석의 손에 점차 자신감이 실리기 시작했다.

극도의 긴장이 적절하게 누그러지며, 수술 팀 본연의 자세를 되찾았다.

묵묵히 지켜만 보던 이준영 교수의 눈이 반짝였다.

‘지훈아, 집도의는 자신과 수술 팀을 확고하게 믿어야 해. 모두들 잘하고 있다.’

장간막을 새로 자르고, 회색으로 변한 소장까지 모두 잘랐다.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며 다시 연결했다.

긴장은 여전했지만 김지훈과 안호석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끝났다.

철저하게 수술 부위를 재차, 삼차 확인했다.

“호석아, 괜찮겠지?”

“예, 선생님.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마무리만 남았다.

김지훈이 스승을 보았다. 분명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는 생각에 이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송재덕 교수와 홍재순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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