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책임 Ⅱ (1)
코 줄과 소변 줄이 불편하고 아프다며 난리를 쳐 기본적인 준비조차 쉽지 않았다.
연락을 받고 온 보호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경찰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난장판이 됐을 것이다. 어쩌면 폭력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환자와 직접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이혁원과 송진우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환자까지 치료를 해야 하나?’
고맙다는 말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수술 받고 문제없이 퇴원하기만을 바랐다.
또 쌍욕이 들려왔다. 의사의 책임과 함께 진료 거부라는 단어가 떠오를 지경이었다.
계속 한숨만 나왔다. 수술이 끝나는 대로 이송이 가능하다면 바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지금 기분으로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환자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시간이 꽤 흘렀다.
문득 응급실이 조용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설이 들리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이혁원이 다급한 얼굴로 뛰어들어 왔다.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선생님, 환자 바이탈이 갑자기 흔들리면서 의식까지 흐려졌습니다.”
비상사태다.
병원에서 치료 도중 환자가 나빠지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순간 불길하게도 손가락을 흥건히 적셨던 피와 우상복부에 난 칼자국이 떠올랐다.
김지훈이 벌떡 일어나 그대로 달려 나갔다.
환자의 안색이 창백했다. 흐릿한 의식 상태로 온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끊이질 않고 울렸다. 믿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환자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혈압 팔십에 육십, 심박동수 백십 회, 호흡수는 삼십 회가 넘습니다. 소변량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저혈량성 쇼크였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수액 추가로 달고 수혈 시작해! 인턴 선생, 비지에이 빨리 나가자. 간호사, 수술 방에서 연락 없었어요?”
“방금 전에 올리라는 연락이 왔어요.”
“도진아, 혁원아, 바이탈 잡히는 대로 올리자.”
당직 전공의들에 응급실 인턴까지 모두 달려들었다.
“CT상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아무래도 내부 장기 손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환자 혈압이 잡히면 즉시 수술을 하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나빠진 환자 상태를 설명하자 보호자들이 거세게 항의를 했다.
“뭐야? 환자를 어떻게 보는 거야? 내 동생한테 문제 생기면 당신 가만히 안 놔둬. 니들 다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XX! 저러다 죽는 거 아냐?”
시간이 지체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의료진들도 할 말은 있었다. 환자와 보호자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떤 처치나 치료도 제때 이루어질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을 무시하고도 남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감정을 앞세워 칼에 찔린 환자는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환자가 잘못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김지훈 자신의 몫이었다. 사람의 목숨 앞에서는 어떤 말도 변명이나 핑계에 불과했다.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엉뚱한 일에 시간을 뺏길 수는 없었다.
순간 보호자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혹시 입원 수속은 하셨습니까? 수술 동의서에 서명은 하셨나요?”
보호자가 움찔했다. 여태 소리만 지른 것이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 덕에 큰 소리가 조금은 잦아들었고, 환자에게 집중할 여유를 얻었다.
전공의들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바이탈이 잡혔다.
드르륵!
즉시 수술 방으로 환자를 옮겼다.
띠띠띠띠!
삐이이익!
그사이를 못 버티고 혈압이 또 떨어졌다.
김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바이탈이 이 정도로 불안정하다면 제법 굵은 혈관이나 주요 장기를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CT에선 특별한 소견이 안 보였는데, 설마 간이나 혈관이 나갔나? 어떻게 두 시간이 넘도록 바이탈이 유지됐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혈압이 안정되자마자 마취를 걸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단 1초도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 과감하게 열었다. 시뻘건 피가 흥건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장기는 간이다.
‘간만 괜찮으면 큰 문제 없어.’
우상복부에 손을 밀어 넣었다.
얇은 비닐처럼 투명하고 질긴 막으로 싸인 간에서 반질반질한 촉감이 전해졌다.
자상이 난 부위의 바로 아랫부분을 확인했다. 순간 목덜미가 섬뜩해졌다.
두툼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막 아래 고인 핏덩어리다.
장갑이 시뻘건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혁원아, 세게 끌어.”
무영등 초점을 맞췄다.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간의 일부가 손상받은 것이 확실했다.
내원하자마자 찍은 CT에서 별 소견이 없었다는 사실이 의아했지만 이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취과, 간 출혈이니까 바이탈 확실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간호사, 탭 빨리 주고 간 수처 준비해요.”
당장의 출혈을 막기 위해 탭으로 압박했다.
어디까지 손상을 받았을까?
손상이 너무 심해 일차 봉합으로 해결되지 못하면 간을 절제해야 할 수밖에 없다. 수술이 겉잡을 없이 커지는 것이다. 입안이 바짝 말라 들고,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압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손상 부위에 가늘고 기다란 수술 기구를 밀어 넣었다. 대략 5센티미터 정도 수직으로 들어갔다. 웬만한 힘으로는 배를 뚫는 것도 쉽지 않은데, 아예 죽이려고 작정을 했는지 깊게도 찔렀다.
간은 무척 큰 장기라고 해도 결코 작은 손상이 아니었다. 만일 주요 구조물들까지 손상받았다면 일차 봉합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런 손상이 왜 안 보였지? 설마 메인 혈관이나 담관이 잘린 건 아니겠지?’
반드시 확인해야 했다.
“간호사, 환자 CT 좀 걸어요. 도진아, 확실하게 압박해.”
그나마 다행이었다.
손상 부위와 CT를 비교한 결과, 굵은 혈관과 담관은 확실히 비껴 나갔다. 일차 봉합이 가능하다는 의미였지만 확신할 수가 없었다.
둥그렇게 휘어진 간 봉합용 바늘은 지름이 7센티미터 정도 된다. 그런 바늘을 수직으로 5센티미터 이상 찔러 넣어 봉합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상 부위만 꿰매는 것이 아니라 주변 간 조직까지 충분하게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했다. 정확한 판단을 해야 한다.
‘간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봉합하면 가능할 수 있어. 만일 일차 봉합으로 피가 안 멈춘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지혈이 될 테니까, 지금 절제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준비해서 재수술을 하는 편이 낫다.’
결정을 내렸다.
손상 부위 속에 분포한 가는 혈관과 담관이 끊어졌겠지만 일일이 찾아 봉합할 방법은 없다.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은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한 번에 떠야 한다. 여러 번 뜨면 손상만 가중시킨다.’
“수처하자.”
서도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깊이가 5센티미터나 되는데 가능할까요?”
“해 봐야지. 지금은 자르는 게 더 위험해.”
간을 가능한 한 힘껏 눌렀다. 손상 깊이가 5센티미터 이하로 줄었을 것이다.
과감하면서도 섬세해야 한다.
끝이 뭉뚝한 바늘이 거의 다 들어갈 정도로 깊숙하게 떴다. 부드러운 간 조직과는 다른 혈관과 담관의 질긴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절대 바늘로도 손상을 입히면 안 되는 구조물들이다.
신중하게 손을 놀려 혈관을 피해 가며 봉합을 시도했다. 한 바늘을 뜨는 데도 땀이 날 정도로 긴장이 다가왔다. 바늘 자리를 따라 피가 흘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첫 바늘을 떴다.
“타이!”
서도진이 조심스럽게 타이를 했다.
간 조직이 굵은 실에 단단히 조여졌다.
간을 찌를 때마다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길이는 불과 2센티미터에도 못 미쳤지만, 출혈을 막기 위해 세 바늘이나 떠야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다. 이제는 탭으로 압박을 하며 지혈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일단 소장하고 대장 확인하자.”
복부 중앙 자상 부위의 복막이 뚫린 것은 이미 확인했다. 걱정한 대로 소장 동맥 분지 중 하나가 끊어져 있었다.
소장 파열은 없었고, 가는 동맥이었기에 수월하게 묶을 수 있었다.
재빨리 켈리로 잡은 후 타이를 했다.
더 이상의 출혈 부위는 없었다.
‘다행히 장을 자르지 않아도 되겠어. 재수도 좋네. 후우! 누구 재수가 좋은 거야? 나야, 환자야?’
다시 확인이다.
간을 압박했던 탭을 치우고 출혈 여부를 살폈다. 봉합 부위를 거즈로 닦아 낼 때마다 검붉은 피가 계속 묻어 나왔다. 몇 장의 거즈가 젖어 나갔다.
지속적인 출혈인지, 아니면 이미 흘러나온 피가 배어 나오는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믿을 것은 경험과 수술 팀의 의견이었다.
“도진아, 어때? 아직도 출혈을 하는 것 같아?”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확신하기 힘든 상황이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집도의의 몫이다.
만일 제대로 봉합되지 않았다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 환자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된 상태라면 모르지만, 응급 수술이 연이어진다면 치명적인 문제가 뒤따를 수도 있었다.
감당하기 힘든 부담감이 느껴졌다.
상행결장을 절제한 환자와는 달랐다. 환자와 보호자의 거친 태도가 아니라, 방심을 한 탓에 자칫 환자를 놓칠 수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도 응급실에서 말이다.
집도의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하고, 책임 또한 얼마나 큰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스승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도움을 청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저혈량성 쇼크까지 발생한 이상 최대한 빨리 수술을 끝내는 것이 원칙이기도 했다.
‘후우! 침착하자. 여기서 더 해야 할 치료가 있을까? 간의 회복력을 믿고 닫아도 될까?’
수많은 생각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을 되살렸다.
어떤 교수도 이 이상 간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여기저기 건드렸다가는 도리어 추가 손상을 줄 가능성만 커질 뿐이었다.
거즈에 묻는 피의 양상과 환자 상태를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
“마취과, 바이탈 어떻습니까?”
“스테이블(Stable:안정적)합니다.”
사람의 목숨 앞에서 최선이란 말은 무의미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두 번, 세 번 다시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도진아, 닫자.”
이젠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곧바로 보호자들에게 환자의 심각한 상황을 설명했다.
욕설이 뒤섞인 항의가 있었지만, 때마침 강력계 형사들까지 와 있어 별다른 소란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언제쯤 이송이 가능할까요?”
“일단 이번 주말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환자를 감시할 인력이 부족해서 가능한 한 빨리 이송했으면 좋겠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환자가 걸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중환자실에서 24시간 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의료진들 안전에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회복과 의료진의 안전이 걱정이지만, 형사들의 관심은 사건이었다.
각자 자신의 업무에 충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때문에 도리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형사 한 명이 덧 가운을 입고 환자 옆에 앉았다. 제법 신경이 쓰였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정말 여러모로 힘든 환자네.’
“혁원아, 드레인은 어때?”
“아직도 피가 좀 나옵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간 손상 환자에게서는 당연하게 보이는 소견이었지만, 불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득 그동안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 일인지 새삼스러웠다.
잠시 환자를 보던 김지훈이 CT를 다시 확인했다.
수술 전 완벽한 준비도 중요하지만, 수술 후 미흡했던 점을 되돌아보는 것 또한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역시 특별한 이상은 관찰되지 않았다. 칼이 들어갔던 자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최소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야 했다.
‘이런 환자가 또 왔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어. 내가 간과했거나 놓친 것이 무엇일까?’
김지훈의 고민이 깊어졌다.
고형 장기인 간 조직 자체의 압력과 질긴 막에 막혀 출혈이 억제됐다, 한계를 넘자 갑작스러운 대량 출혈이 야기됐을지도 모른다.
가늘고 날카로운 칼이 수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1센티미터 간격으로 촬영되는 CT에서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혹은 지금도 칼자국을 간 구조물의 일부로 판단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모두 막연한 추측에 불과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었다.
김지훈이 머리가 아픈지 잔뜩 인상을 썼다.
“혁원아, 아침에 바로 방사선과에 가서 CT 판독 받아 와. 아무래도 우리가 못 보는 게 있는 모양이다.”
일거리가 또 생겼다.
몰려오는 피로감에 창밖을 바라보던 이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세 번째 중환자실 환자다. 게다가 형사까지 들어와 있다. 전공의 생활 중 가장 힘든 주라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었다.
김지훈은 어떨까?
어느새 다가와 팔짱을 낀 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전공의였던 시절에도 자주 봤던 모습이었다.
분명 오늘 일을 다시 상기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그냥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이 곧 발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일 것이다.
김지훈이 침묵을 깼다.
“혁원아, 환자에게 선악이 있을까?”
엉뚱한 물음이었지만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의사에게 선택권이 있을까? 사실 환자가 이 지경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속으로는 수술하기 싫었거든. 깡패, 양아치라는 이유로 말이야. 우린 정말 최선을 다한 걸까? 조금만 더 늦었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책임을 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방기했다는 게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질문인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만약 환자가 세상 사람 모두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흉악범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감정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환자로만 볼 수 있을까?”
이혁원이 입술을 모았다.
의사가 된 이후 가끔은 나누었던 문제였다. 답은 없었다. 아니, 답을 낼 수가 없었다. 일종의 양립할 수 없는 가치 충돌일지도 몰랐다.
“전 잘 모르겠지만, 환자는 그냥 환자라고 생각하면서 치료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습니다. 지금 입원 중인 환자 중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정말 나쁜 사람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우문현답이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허경발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환자에겐 선악이 있을지 모르지만, 의사의 치료는 가치중립적이다. 의사는 환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방법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다.
솔직히 그때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세상이 모두 손가락질하는 사람을 치료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큰 스승님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의 개인적인 기준을 따라 환자를 선택한다면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금경태! 돈과 명예를 기준으로 삼았던 의사가 어떤 짓까지 하게 되는지 눈앞에서 봤잖아. 그래. 환자는 환자일 뿐이야. 절대적인 기준은 결국 사람의 목숨이야.’
의사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한 탓에 집도의로서 감수해야 할 위험과 책임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평생 고민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다른 환자들을 대하듯 이 환자를 대했다면 지금보다는 결과가 좋았겠지. 그래도 이런 환자는 안 왔으면 좋겠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일종의 후회이기도 했다.
응급실에서, 혹은 진료 현장에서 온갖 욕을 하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혹은 절박함에 진의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깡패? 양아치? 혹은 술에 취한 사람?
그들보다 더한 사람도 의사에게는 환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간과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깊게 생각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할 문제였다.
김지훈의 고민이 깊어졌다.
금요일 새벽을 그렇게 꼬박 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