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타오르는 불길들 (1)
송재덕 교수 파트 치프인 천광호가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다. 무척이나 다급해 보였다.
순간 싸한 느낌이 목덜미를 스쳤다.
“선생님, 잠깐만요.”
“왜?”
“죄송한데, 환자 한 명만 봐주세요.”
“환자? 무슨 환자?”
“게실염으로 내과에 입원한 환잔데,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 자식들은 일과 중에 연락하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툭하면 끝날 때 연락을 하네요.”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게실염(Diverculitis)은 약물 치료가 우선이고, 종종 치료에 반응하지 않아 수술을 해야 하는 질환이었다. 따라서 내과에서 입원 치료를 한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의뢰하는 시간이었다.
천광호 말대로 하루 종일 붙잡고 있다가 꼭 퇴근쯤에 연락하는 것이 탈이었다. 가장 바쁜 과이기에 회진 때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외과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간에 응급 수술을 들어가면 못해도 서너 시간은 잡아먹기 마련이었다. 가뜩이나 바쁜 전공의들에게는 입이 쭉 나올 일이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김지훈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이경석은 이제 막 수술을 들어갔다. 펠로우들이 있는데 백듀티인 교수에게 연락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 말, 저 말 해 봐야 전공의가 책임질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사실 응급 수술 여부만 결정하면 되는 일이기에 부담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좋게 생각할 일이었다.
“에휴! 사정이 있겠지. 가 보자.”
‘오늘 당장 해야 하면 경석이 형 칼바람 좀 날리겠네.’
퇴근이 조금 미뤄졌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의뢰된 환자를 찾았다.
간호사 말로는 상행결장에 발생한 게실이라고 했다.
대장에 발생한 게실이 합병증을 일으켰다면 부분 절제는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행결장 절제술을 시행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응급인지, 아닌지가 관건이었다.
순간 욕심이라는 놈이 고개를 내밀었다.
문득 수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김지훈이 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이놈의 고질적인 수술 병이 또 도지는 모양이었다.
안 될 일이다. 직장인이라면 출퇴근을 해야 한다. 신혼 기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신성한 의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스승님 수술이 잔뜩 있긴 하지만, 내일 정식으로 환자를 받아서 내가 수술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니지. 어차피 송재덕 교수님이나 경석이 형이 하겠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술할 일은 없었다. 당직이 아닌 이상 욕심을 부릴 일도 아니었다.
깨끗하게 마음을 접고 차트를 보던 김지훈이 입술을 내밀었다.
입원 3일째였다. 수술 얘기가 벌써 나오다니, 게실염의 일반적인 경과를 생각하면 무척이나 빠른 진행이었다.
대장 검사 및 복부 CT를 확인하는 순간 눈가를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CT 소견이 상당히 험악했다. 상행결장을 따라 상당히 큰 농양이 보였다. 빠른 진행과 농양의 크기로 봐서는 장기 사이로 고름이 퍼졌을 수도 있었다.
무조건 응급이다.
“게실이 한두 개가 아니네. 3일 만에 농양이 저렇게 커질 수가 있나?”
환자 상태는 어떨까?
점입가경이다.
빤뻬리하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환자 상태가 나빴다. 그나마 젊은 나이가 아니었다면 벌써 패혈증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검사 결과와 바이탈 등으로 판단할 때 이미 초입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된 거야?”
김지훈의 물음에 뒤늦게 달려온 내과 전공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 갑자기 환자 상태가 나빠졌습니다. 다른 질환도 없는데 진행이 너무 빨라서 저희도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양승철 교수님께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환자분께 말씀하셨는데, 응급 수술이 가능할까요? 보호자들 걱정이 많고, 화도 좀 내서요.”
불가피한 일이라고 해도, 이제 와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할 환자나 보호자는 없었다. 의사에게는 3일이지만, 환자에게는 3주와 같았을 것이다.
“알았어. 일단 전과시켜. 광호야, 늦으면 패혈증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바로 수술 준비해.”
“선생님이 수술하시려고요?”
“오늘 당직은 이경석 선생님이다. 고생 좀 하겠네.”
이경석에게 직접 얘기를 해야 빠르게 수술을 이어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술 방으로 내려간 김지훈이 환하게 불이 켜진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제 막 배를 열고 있었다. 이경석의 얼굴이 왠지 심각해 보였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이밀며 배 속을 보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위궤양이 터진 것은 맞는데, 사이즈가 너무 큰 데다 위치까지 안 좋았다.
왜 왔는지 묻지도 않았다.
“지훈아, 잘 왔다. 이거 잘라야 하겠지?”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그냥 봉합하면 며칠 안 돼서 100퍼센트 다시 터지겠어요.”
“그래. 자르자. 근데 너 왜 들어왔어?”
이제야 묻는다.
“내과에서 상행결장 게실염 환자를 의뢰했는데, 바로 수술해야 할 상황이에요. 농양이 크게 발생해서 상행결장 절제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바로? 게실염인데 그 정도로 급해?”
“이상하게 진행이 엄청 빨리 됐더라고요. 나이도 젊고, 입원한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패혈증이 발생하기 직전이에요. 농양이 터질까 봐 걱정이 될 정돕니다.”
여러모로 조건이 안 좋았다.
이미 9시가 훌쩍 넘었다. 위절제술을 해야 하기에 백듀티를 서는 교수에게 연락도 해야 했다. 수술이 끝나고 나면 아무리 빨라도 1시가 넘을 것이다. 곧바로 이어 한다고 해도 새벽 4시는 돼야 모든 수술이 끝난다는 말이었다.
이경석이 콧등을 찡그렸다. 대장을 전공하기에 위절제술보다 더욱 욕심이 났지만 패혈증이라는 소리가 마음에 걸렸다. 그 자체로 응급인 데다 농양이 터지기라도 하면 치명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한마디로 몸속에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며 터질 때만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더구나 김지훈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은 오프고, 몸은 하나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난감한 일이었다.
그때 누군가 덧 가운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왔다. 내과 소화기 센터장인 양승철 교수였다.
직위가 높다고 해도 의사다. 게실염 환자 때문에 이 시간까지 퇴근을 못했을 것이다.
“이경석 선생이 당직이지? 수술 끝나려면 멀었어?”
“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게실염 환자 얘기 못 들었어?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빨리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난처하네. 송 교수님한테 연락을 드렸더니 곧 나오신다고는 하는데, 펠로우 선생들에게 먼저 연락을 했으면 하시더라고. 김지훈 선생은 오프지? 환자는 급한데 어떻게 해야 하나?”
일순 수술실이 조용해졌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해도 원하는 바는 빤했다.
다들 입장이 곤란했다.
‘가급적 빨리했으면 좋겠는데, 김지훈이라면 오프라고 해도 기꺼이 수술을 하지 않을까?’
‘어후! 오프인지 빤히 알고 있으시면서 왜 날 보시지? 솔직히 수술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하지만, 경석이 형이 당직인데 내가 먼저 나설 수도 없는 일이잖아. 어? 그것만 문제가 아니지. 경아 씨한테는 또 뭐라고 해?’
‘양승철 교수님이 수술실까지 직접 찾아오셨는데 기다리시라고 해도 되나? 그렇다고 어젯밤을 꼴딱 새운 지훈이한테 수술해 달라고 하기도 그렇고.’
수술하던 중에 마냥 고민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슬슬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과 수술을 하고 싶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던 김지훈이 꿀꺽 침을 삼켰다.
눈빛들이 심상치 않다.
“이경석 선생님, 수술을 이어 하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수술 방 사정도 고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마취과까지 가세했다.
불가항력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이경석이 헛기침을 했다.
“지훈아,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게.”
양승철 교수가 반색을 했다.
“야! 역시 일반 외과 펠로우들답네. 믿음직스럽다.”
대답도 안 했는데 어깨를 툭툭 치며 수술실을 나갔다.
이경석은 어느새 수술에 집중하고 있었다. 옆에서 벼락이 쳐도 고개를 돌릴 것 같지 않았다.
수술도 좋지만 이렇게 일이 몰려오면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필요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숙명과도 같은 일반 외과 의사의 삶이다.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숙명을 뛰어넘는 운명은 어찌할까?
고경아와의 삶은 운명이다.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알콩달콩한 시간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사정을 이해하고 웃어 주기는 하겠지만, 그 속이 어떨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훈 씨,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 괜찮겠어요?)
“최대한 빨리 끝내고 들어갈게요.”
(알았어요. 밥 차려 놓을 테니까 내가 자고 있더라도 꼭 챙겨야 돼요. 그냥 자면 안 돼요. 아우! 어떻게 해.)
걱정이 태산이었다. 짜증이라고는 눈곱만치도 부리지 않았다.
김지훈이 한숨을 쉬며 콧등을 찡그렸다.
수술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미안함이 섞인 감동의 눈물이다!
***
양승철 교수와 함께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 정확한 상태와 수술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김지훈을 보는 시선이 애매모호했다. 갓 교수 된 티가 온몸에 철철 흐르고 있으니 서운해할 일이 아니었다.
“경과가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돼 저희도 당황스럽습니다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수술을 할 김지훈 선생은 제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의사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수술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승철 교수의 말에 조금은 신뢰를 보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에 대한 일차적인 신뢰는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얻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하고 완벽하게 수술하는 게 최선이야. 못해 본 수술도 아니고 잘할 수 있어.’
한시가 급했다.
“광호야, 혁원이 들어오라고 해.”
“예? 그럼 1년차는요?”
“혁원이는 써드 세울 거야.”
빠르게 수술 준비가 이어졌고, 곧 수술 방에서 연락이 왔다. 환자를 최대한 안심시킨 후, 재빨리 수술 방으로 내려갔다. 눈을 마주친 이혁원이 난리 났다는 표정을 짓다 말고 태연한 척했다.
‘아! 정말 대단한 일복이다. 리포트는 언제 쓰지?’
김지훈은 이혁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곰곰이 수술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CT 소견만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수술이기에 얼굴을 펴지 못했다.
밤 10시에 마취가 시작됐다.
일이 있는지 송재덕 교수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
습관처럼 수술 과정을 상기하고는 천광호, 이혁원, 송진우와 함께 수술을 시작했다.
‘염증이 무척 심할 거야. 신중하게 하자.’
배를 열었다.
답답한 신음 소리가 터졌다.
예상보다 훨씬 염증이 심했다. 만져 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상행결장과 주변 조직이 약해져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그대로 쭉 찢어질 것만 같았다.
긴장감이 확 퍼졌다.
“광호야, 신중하게 하자. 어디 한 군데라도 찢어져서 변이 새어 나오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거 알지?”
치프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조심스럽게 상행결장을 노출시킨 후 농양을 확인했다. 장을 따라 고름이 퍼져 있었다.
판단은 적정했다. 시간을 더 끌었다가는 패혈증에 빠졌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농양 윗부분을 살짝 절개하자 역겨운 냄새가 확 올라왔다. 이런 냄새를 처음 맡았는지 송진우가 눈가를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곧 적응이 될 것이다.
“석션.”
농양 내 고름을 제거하고 상행결장을 절제할 준비를 했다. 게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안다고 해도, 농양이 발생한 이상 상행결장을 모두 제거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수술 자체의 어려움을 넘어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자를 부분을 확인하는 김지훈의 손이 전에 없이 신중하기만 했다. 첫 번째 타이를 하는 천광호가 극도의 긴장에 숨을 몰아쉬었다.
수술 팀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송재덕 교수를 기다리는 편이 안전할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순간 집도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내가 불안해하면 수술 팀 전체가 불안해한다. 책임은 내 몫이고, 수술 팀을 이끄는 것이 내 역할이다. 난 집도의로서 이 자리에 섰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술이잖아.’
자만이 아닌 집도의의 자신감은 수술 팀의 힘이다.
“광호야, 왜 이렇게 긴장해? 이런 수술 많이 들어가 봤잖아. 하던 대로만 하면 돼. 이혁원, 송진우, 피곤하지? 우리 집중해서 빨리 수술 끝내고 쉬자.”
김지훈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었다. 수술 팀의 긴장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때 송재덕 교수가 들어왔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힐끗 눈길을 주고는 조심스럽게 배 속을 살폈다. 눈가에 미소가 걸린 것 같았다.
‘그래. 집도의는 그래야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스스로 깨달으면서 진짜 일반 외과 의사가 돼 가는 거야.’
“지훈아, 염증이 꽤 심하지?”
“예. 생각보다 훨씬 심합니다.”
“그래도 자르는 건 마찬가지다. 어려울 것 없어.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하자. 빨리. 너도 피곤하잖아. 경석이는 위를 자르고 너는 대장을 자르고, 이거 뭐 바뀐 거 아니니? 그러게 대장 했어야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지훈아, 교수야, 대장 하자. 대장.”
이 정도 심한 병변이면 바로 들어올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말이었다.
천천히 해야 한다는 속마음을 평소처럼 반대로 말하며 농담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확고한 믿음이었다.
지금 이 순간 김지훈에게 송재덕 교수는 든든한 방패였다. 자신감과 편안함을 동시에 얻은 김지훈의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알게 모르게 과도한 긴장이 서렸던 손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가장 먼저 동맥을 잡았다.
이어, 부채꼴 모양으로 장간막을 제거했다.
상행결장이 까맣게 죽어 갔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과감한 듯, 그러나 신중하게 후복막 속에 묻힌 상행결장을 들어냈다. 염증으로 너덜거리는 부분도 단 한 곳의 손상도 없이 박리했다.
김지훈의 손은 물론 천광호의 어시스트도 흠을 잡을 곳이 없었다. 이혁원도 조용히 송진우에게 신호를 보내며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불안을 지운 수술 팀 전체에 활력이 넘쳤다.
송재덕 교수의 눈가에 흐뭇함이 스쳤다.
‘그래. 네가 잘해야 수술 팀이 사는 거야. 누가 이놈을 이제 막 전문의 된 놈으로 보겠어? 조금 있으면 내가 나올 일도 없겠네.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서운하지? 가끔 잔소리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할까 봐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