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복? 폭탄? (2)
아침 회진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다리는 무겁고 눈은 뻑뻑한데, 세 파트 회진을 모두 따라다니자니 보통 힘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파트 하나만 돌면 되는 전공의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어이구! 다리야. 간만이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힘들지? 어째 저 자식들보다 내가 일이 더 많은 것 같네.’
“치프들아, 일은 저렇게 하는 거야. 저렇게. 얼마나 보기 좋니. 실력이 팍팍 늘겠다. 김지훈 선생, 밤새 환자 보고 수술하고 회진 도니까 좋지? 그치?”
하마터면 ‘아니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꾹꾹 눌러 담고 송재덕 교수의 말에 미소를 보여야 했다. 그것이 바로 펠로우의 도리다.
“저 봐. 좋아하지? 내 말이 맞지? 치프들아, 커피 타라. 커피. 맛있게 타라.”
어째 뭔가 당한 것 같다. 입안이 깔끄러워지며 찜찜한 맛이 확 감돌았다.
수술 방에 들어가고 나서야 슬슬 몸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난 수술 방 체질이야.’
수술 준비를 하는 고경아와 슬쩍 눈을 마주쳤다. 안쓰러운 듯, 뿌듯한 듯, 사랑을 전하는 듯 묘한 눈빛을 보는 순간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체질이 다는 아니다. 사랑의 힘은 절대적이다.
따스해지는 가슴을 느낀 김지훈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장갑을 끼다 말고 눈을 반짝였다. 이혁민 교수 파트 1년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까 병옥이랑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
“강병옥, 너 간만이다. 난킴(예비역)으로 들어온 거지?”
“예, 선생님.”
인턴 마치고 곧바로 군대를 다녀온 강병옥은 2년 후배였다.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떤 성격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빠릿빠릿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선배들에게도 상당히 예의 바르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학교 동기지만 이제는 전공의 선배가 된 3년차들과도 잘 지낼 것이다.
송진우까지 괜찮은 후배가 들어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어제 보고도 그냥 지나쳐서 미안하다. 잘 들어왔어. 힘든 만큼 보람이 있을 거야. 열심히 하자.”
강병옥이 입술을 꽉 깨물며 각오를 보였다.
“도진아, 피곤하지?”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데 어제 시작 부분만 하셨다면서요? 이혁민 선생님도 배 열고 나면 바로 들어오실까요?”
“그러시겠지. 깔끔하게 열자. 나 타기 싫다.”
“설마 펠로우가 되셨는데 태우시겠어요?”
이미 신기동 교수에게 한바탕 탔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른 교수들에게도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도진의 말이 맞아야 했다.
잡담은 여기까지다. 이혁민 교수 역시 스승처럼 주요 과정을 앞두고 들어올 것이다.
시계를 본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고경아가 건넨 메스가 손에 착 감겼다.
신중하게 배를 열었다.
비록 시작 부분만 담당하지만, 이것 또한 펠로우의 역할이자 수련의 연장선이었다. 한 발 한 발 꾸준히 전진하다 보면 머지않아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미 위암 2기를 넘어선 환자였기에 원격 전이 여부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복부 CT에서 확인한 임파선 전이 이외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괜찮네. 도진아, 너도 확인해 봐.”
배 속을 확인하던 서도진이 손을 빼자마자 이혁민 교수가 얼굴을 보였다.
“김지훈 선생, 다 열었나? 어때?”
김지훈이 재빨리 한 발 움직여 써드 자리에 섰다.
“예정대로 수술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보자.”
담담한 말투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손을 가진 이혁민 교수의 수술이 시작됐다. 스승과의 수술에서도 느꼈지만 전공의 때와는 기분 자체가 달랐다.
‘간담도 수술을 잘하려면 다른 파트 수술도 잘할 수 있어야 돼. 눈 크게 뜨고 이혁민 선생님이 가지신 걸 모두 뺏어 먹자.’
써드로 밀려난 김지훈이 눈을 부릅떴다.
펠로우의 각오를 감지한 서도진과 강병옥이 바짝 긴장했다. 한 놈만 예외였다. 잠깐 써드를 섰던 인턴이 만세를 부르며 나갔다. 외과에 마음이 없는 인턴에게 수술 방보다 힘든 곳은 없었다.
“타이, 석션, 컷.”
잔잔하다. 위암 덩어리가 주변 조직과 함께 한꺼번에 떨어져 나올 때까지 흥분이나 조급함은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열정하고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노련한 외과 의사의 마음은 지금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4시간 동안 오로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자 원동력이었다.
“서도진, 배 닫아라. 김지훈 선생, 잘 봐라.”
역시 마무리는 전공의의 몫이었다. 그마저 펠로우가 한다면 수련에 심대한 지장을 줄 것이다. 아무리 간단한 과정이라도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진짜 실력이 되는 법이다.
어쨌든 김지훈은 만족스러웠다.
조곤조곤한 말투가 나오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써드를 서면서도 수술 내내 눈 크게 뜨고 집중할 수 있었다. 어쩌면 펠로우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4년차 때 써드를 섰다면 아마도 졸음에 겨워 다리가 풀렸을 것이다.
“마취과에서 다른 수술 방을 바로 준다고 했다. 이 환자 마무리하는 동안 다음 환자 내리고, 이경석 선생에게 시작하라고 전해라.”
수술 전에 이미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다소 힘에 부치는 수술 일정이긴 했다. 위암에 갑상선 암 수술 두 개, 그리고 유방 종물까지 쭉 이어서 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저녁 회진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음 수술은 이경석 선생이 들어가는 겁니까?”
“그래야 하지 않겠나.”
덕분에 쉴 시간을 얻었다. 그 탓에 긴장이 풀렸는지 눈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도 새벽에 수술한 환자를 등한시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혈복막에 빤뻬리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중환자실로 향했다. 이혁원이 때 아닌 드레싱을 또 하고 있었다. 이 정도 정성이면 별도의 노티를 하지 않는 한, 믿고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한동안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이혁원을 보던 김지훈이 머뭇거렸다. 눈치 안 보고 쉴 곳이 마땅치 않았다.
결국 본관을 나와 연구실까지 가 잠깐 눈을 붙였다.
책상에 엎드려 30분.
온몸이 뻑적지근했다. 머리는 전보다 더 아팠다.
찬물에 세수를 하고, 체조까지 온갖 난리를 다 부리고 나서야 몸이 좀 풀렸다.
잠깐 갑상선 수술에 대해 살펴보고 수술실로 들어가자 이미 다음 환자가 내려와 있었다. 생각해 보니 시작하라는 오더는 받았지만 수술 팀에 대한 오더는 없었다.
갑상선 수술은 시야가 무척 좁아 세컨도 거의 수술 과정을 볼 수가 없다. 관심 분야라면 모르지만 치프에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재량을 발휘해도 좋을 것이다. 마침 서도진은 아직도 두 번째 수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정도는 나 혼자 결정해도 괜찮겠지? 갑상선이라 조금 빠르지만, 혁원이가 퍼스트를 서는 것도 좋을 거야.’
일단 수술 시작은 이혁원을 퍼스트로 세웠다.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현실적인 면도 고려한 결정이었다. 펠로우 입장에서는 2년차가 가장 만만했다.
겸사겸사 모종의 기회가 또 왔다. 마취가 된 환자의 자세를 잡고 목 전면부를 절개했다.
시작부터 눈에 걸리는 문제들이 보였다. 이혁민 교수가 자신을 볼 때도 그럴 것이다.
“이혁원, 이혁민 선생님 스타일 알지?”
“예, 선생님.”
“그런데 지혈할 때 이렇게 거칠게 들어오면 어떻게 해? 꼼꼼하게, 세심하게, 부드럽게. 몰라?”
이혁원의 얼굴이 허옇게 변했다.
‘이 자식이 원래 이랬나? 뻘게지는 게 정상 아냐?’
“죄송합니다.”
“2년차 퍼스트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지 마. 지금은 니 손이 아니라 집도의 손에 맞출 때야. 알았어?”
내리사랑이다.
할아버지 눈에는 자식보다 손자, 손녀가 더 예쁘듯, 삼사 년차보다는 일이 년차가 더 예뻐 보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김지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날카로운 비수가 예리한 빛을 뿌리며 이혁원을 난도질했다.
“이혁원, 내 말 무슨 말인지 몰라?”
목소리까지 높아졌다. 이혁민 교수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피를 흠뻑 뿌린 후였다.
살벌한 분위기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인턴이 함께 들어온 강병옥을 보자 반색을 했다.
“분위기가 묘하다.”
일단 수술 팀 구성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별일 없었습니다.”
“그래? 하긴 가르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시작하자.”
눈치가 백단이다.
이혁민 교수도 그랬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다르진 않았다.
곧 본격적인 갑상선 절제가 시작됐다.
“김지훈 선생, 이거 신경 먹은 거 아냐?”
“이 정도면 건드리지 않고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래도 조심해야 된다. 방심하면 꼭 말썽이 생기는 법이다. 니는 너무 과감해서 걱정이야.”
아슬아슬하다. 말 그대로 여기서 방심하면 조곤조곤한 태움에 땀을 한 사발은 흘려야 할 것이다. 자칫 신경을 건드리면 무엇보다도 환자에게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었다.
“주의하겠습니다.”
김지훈의 손이 더없이 신중해졌다.
신경과 바짝 붙은 종양이 무사히 박리됐다. 확실하게 지혈을 한 후 수술을 마무리했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술실을 나갔다.
‘언제 봐도 손은 참 좋네.’
“마무리해라.”
이번에는 퍼스트가 2년차인 데다 목 전면부를 절개했다. 흉이 최대한 남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마무리는 당연히 김지훈의 몫이었다.
수처를 하는 김지훈의 손에서 두 쌍의 눈이 떨어지질 않았다. 100일 당직 이틀 만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곤으로 도배가 된 강병옥도 필사적으로 졸음을 쫓고 있었다.
기특하다. 이런 후배들은 반드시 태워 줘야 한다.
“강병옥, 피곤하고 졸리지?”
“아닙니다.”
“다행이네. 그럼 수처할 때 눈 부릅뜨지 말고 수술할 때 눈을 떠. 수처와 타이는 기본이니까 이미 다 익히고 왔을 거 아냐? 수술을 배워야지, 수술을. 똑바로 하자. 근무한 지 이제 이틀 됐다.”
목소리가 서늘했다.
강병옥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살짝 맛만 보여 준 정도에 불과했지만 정신력이 마음에 든다. 송진우나 강병옥이나 활활 태워도 결코 중도에 포기할 놈들이 아니었다. 물론 슬슬 어르고 달래는 것은 반드시 쳐야 할 양념이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진우도 그렇고 다들 괜찮네.’
마무리를 하는 중에는 딱히 이혁원을 태울 거리가 없었다. 같은 일을 두고 바로 또 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후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수하다.
“이혁원, 내일까지 갑상선 수술에서 주의할 점과 핵심적인 수술 방법 작성해서 보여 줘.”
“내일까지요?”
“왜? 바빠?”
거의 하루 반을 쉬지 않고 근무한 김지훈 앞에서 할 말이 아니었다. 이혁원이 눈가를 좁히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설마 오늘은 당직도 아니신데 일을 몰고 오시는 건 아니겠죠? 밤에 수술만 없으면 충분합니다.’
오프인데 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 수술인 유방 수술을 들어온 서도진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마지막 수술까지 무사히 끝났다.
김지훈이 슬며시 기지개를 폈다. 뻣뻣해진 목과 어깨가 비명을 질렀다.
이제 회진만 돌고 나면 푹 쉴 수 있다. 그런데 수술실을 나가던 이혁민 교수가 머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또 일거리다.
“아 참! 까먹을 뻔했네. 김지훈 선생, 조금 빠른 일이지만 석사 따야 하잖아? 지금부터 준비해야 펠로우 끝날 때 석사 딸 수 있다. 논문 주제 고민 좀 해라. 그리고 주말 집담회 때 대답할 것들도 미리 준비해. 펠로우라고 그냥 지나가진 않을 거야. 이왕이면 질문거리도 미리 생각해 보고. 이젠 펠로우들이 앞에 서야 하지 않겠나?”
이제 화요일 저녁인데 온갖 일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불현듯 주어진 일에만 충실하면 됐던 전공의 시절이 그리워졌다. 어중간한 위치기에 더욱 할 일이 많아지는 모양이었다.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래도 퇴근은 할 수 있다. 저녁 회진이 끝을 보이면 보일수록 머리가 개운해지며 몸에 활기가 돌았다. 고경아와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환자에게는 불행이지만 당직인 이경석에게 좋은 일까지 벌어졌다. 응급실로 빤뻬리 환자가 온 것이다. 퇴근길에 함께 응급실에 들렀다.
“형, 프리 에어(Free Air)가 아주 예쁘게 떴네요.”
이경석이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드디어 자신의 앞으로 첫 수술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이다. 당직 치프인 안호석이 수술 준비까지 깔끔하게 마친 상태였다.
축하해 줄 일이었다.
이왕이면 수술 방으로 올라가는 것까지 보고 싶었다. 이경석은 보호자에게 어떤 식으로 설명할지도 궁금했다. 배울 것이 있으면 머리에 꼭 담아 두어야 할 일이었다.
큰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역시 실력과 마음이네.’
“형! 파이팅!”
주먹을 힘차게 흔들어 보이고는 응급실을 나왔다. 발걸음이 가볍기만 했다. 하늘은 어둑어둑해진 지 오래였지만 병원 밖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들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전공의 때는 꿈도 못 꾸었던 출퇴근하는 맛이 이런 걸까?
룰루랄라! 만세!
누군가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병원 정문을 막 나서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