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74화 (574/1,329)

제4화. 복? 폭탄? (1)

명치부터 배꼽까지 단번에 절개했다. 강하고 질긴 피부의 저항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점점이 검은 핏방울이 맺힌다. 혈류가 상당히 나쁘다는 방증이다.

귓가를 울리는 심박동 소리도 급박하기만 하다.

서둘러야 한다.

“보비(전기 소작기).”

피하지방이 타들어 가며 하얀 연기와 함께 특유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익숙한 냄새다.

복벽 중앙에서 혈관이 없는 백색선이 보인다.

“메스.”

조심스럽게 백색선을 1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포셉으로 절개 면을 잡는 순간, 서도진이 동시에 반대편을 잡았다. 번쩍 들어 올린 후, 수술용 가위로 과감하게 백색선과 함께 복막을 잘랐다.

이혁원과 송진우가 리트랙터를 걸었다.

배 속이 환하게 드러난다. 온통 피로 가득 차 검붉기만 하다.

띠띠띠띠띠!

출혈 부위를 압박하던 압력이 사라지자 심박동 소리가 빨라진다. 혈압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머뭇거리는 만큼 환자의 상태는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다. 먼저 수술 시야부터 확보해야 한다.

“탭(수술용 천), 석션(Suction:수술용 흡입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친다.

적절한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 길게 숨을 내쉬어 과도한 긴장을 풀었다.

배 속에 넣은 탭이 순식간에 피로 물든다.

서도진의 손에 들린 석션기를 따라 검붉은 피가 줄줄 석션통으로 떨어진다. 예상보다 출혈량이 많다.

주어진 시간은 거의 없다.

뒤를 받쳐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도망갈 구석은 없고, 책임질 사람은 바로 집도의 자신뿐이다.

바이탈은 마취과에게 맡기고 수술에만 집중해야 한다.

출혈 부위를 찾아야 한다.

가장 무서운 부위는 간이다. CT에서는 멀쩡하게 보였다고 해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손상 유무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손을 밀어 넣어 간을 촉진했다. 매끄럽고 미끈미끈한 감각이 전해진다.

정상적인 소견이다.

“탭.”

탭을 이용해 소장과 대장을 우측으로 밀었다. 좌측 복부 깊은 곳에 위치한 비장의 끄트머리가 보인다. 주변을 가득 채운 검붉은 피가 비장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

“석션.”

서도진이 석션을 한다.

찌이익! 찌이익!

피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약간은 거북하게 들린다.

이내 비장이 드러난다.

무영등 초점을 맞추자 상부의 절반이 깨져 있다. 지금도 심장박동을 따라 피가 울컥울컥 새어 나온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도진아, 비장부터 제거하자. 켈리.”

과감하게 비장과 위를 연결하고 있는 조직을 잡았다.

따르륵! 따르륵!

서도진이 정확하게 반대편 조직을 잡았다.

어딘가에 숨어 있을 비장 동맥을 찾아야 한다.

결합 조직을 자르기 전에 먼저 손으로 만져 동맥 유무를 확인했다.

단단하고 길쭉한 조직의 감촉이 느껴진다.

비장 동맥이다.

“동맥 잡는다.”

따가각! 따가각!

켈리를 이용해 이중으로 동맥을 잡고 잘랐다.

“타이.”

서도진의 손은 빠르고도 정확했다.

동맥이 단단하게 묶이며 비장으로 향하는 혈류가 완전히 차단됐다. 남은 결합 부위를 제거하고 비장을 들어냈다.

예상보다 빠른 진행이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졌지만, 또 다른 출혈 부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리게이션(Irrigation:세척).”

적절하게 데워진 물로 배 속을 씻어 냈다. 상당한 양을 소모하고 나서야 배 속이 깨끗해졌다.

“대장부터 확인하자.”

전공의 때 가장 손을 많이 맞췄던 후배가 서도진이다. 예전의 기억이 손에 박힌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다.

상행결장부터 상부 직장까지 확인한 후 소장을 꺼냈다.

여기저기 타박으로 변색된 곳이 보인다. 미세하게라도 파열된 부분이 동반될 수 있다. 신중하게 확인해야 한다.

손상 부위다.

공장 시작 부위에서 2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파열된 소장이 보인다. 동맥 손상까지 입어 심장박동을 따라 핏줄기가 솟구친다. 다행히 가는 동맥이다.

“모스키토(Mosquito:켈리보다 작은 수술 기구).”

손상된 동맥을 잡았다.

“타이.”

서도진의 신중함이 눈에 보인다.

동맥은 상당히 강한 조직이다. 하지만 주변 조직 손상 정도로 보아 조금만 힘을 잘못 주어도 끊어지기 쉬운 상태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열심히 수술에 임했고, 충분한 경험까지 쌓았다는 의미다.

후배이기 전에 믿을 수 있는 동료다.

파열된 부위를 포함해 소장 일부를 잘라야 한다. 이미 동맥을 잡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대략 10센티미터 정도 자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선다.

간호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스키토.”

모스키토를 이용해 부채꼴 모양으로 장간막을 절제했다. 혈류가 차단되며 검게 변색된 소장 양끝을 장겸자로 단단히 잡고 잘랐다.

“수처.”

흡수성 봉합사로 일차 봉합을 한 후, 비흡수성 실인 실크로 이차 봉합을 했다.

회복에 가장 중요한 조직인 점막이 빠지지 않도록 신중을 기했고, 서도진 역시 최대한 집중했다.

소장과 소장이 연결됐다. 봉합과 타이가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서도진의 타이는 충분히 신뢰하고도 남았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수술 후 연결 부위가 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만족스럽다.

남은 과정은 배 속을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간을 비롯한 장기들의 손상 유무를 다시 확인하고, 수술 부위를 점검했다. 비장을 절제한 부위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출혈을 잡았다.

이제는 깨끗하다. 마무리만 남았다.

드레인을 넣으며 물었다.

“마취과, 환자 바이탈 어떻습니까?”

“안정적입니다.”

“배 닫겠습니다.”

차례차례 복벽을 봉합했다.

마지막으로 피부만 남았다.

아직은 전공의들에게 손을 넘길 위치가 아니었다. 서도진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메이저에 준하는 첫 수술이기에 서도진과 끝까지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이혁원과 송진우에게 타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줄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도진아, 피부 봉합도 타이하자.”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짓던 서도진의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것이다.

한 바늘 한 바늘 피부를 봉합할 때마다 타이를 했다.

“진우야, 타이 연습 열심히 해라.”

잠깐 졸았는지 송진우가 흠칫 놀란다.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진다.

“예, 선생님.”

이혁원은 눈가를 좁히며 타이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좋은 습관이다. 직접 하는 이상의 경험을 얻을 것이다.

마지막 수처를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는 환자를 보며 수술실을 나왔다.

“혁원아, 이 환자 오늘은 중환자실에서 보자.”

교수 휴게실 겸 탈의실이 보인다.

수술복은 전공의 탈의실에서 갈아입었다.

갑자기 망설여진다.

‘홍재순 선생님도 아직 전공의 탈의실을 이용하는데, 정규 수술 때는 들어가기가 좀 그렇지?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누가 볼세라 발소리를 죽여 가며 옷을 가져와 교수 탈의실로 들어갔다.

샤워실은 물론 화장실부터 옷장까지 급이 다르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두 다리 쭉 펴고 잠시 분위기를 즐겼다. 의자가 편안한 탓인지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이러면 안 된다.

어느새 아침 7시가 넘었다.

순간 세 가지 생각이 스친다.

‘보호자! 경아 씨! 환자 보고!’

화들짝 정신이 난다.

시간이 촉박했다. 보호자들에게 수술 결과를 설명한 후 부리나케 달려야 했다.

외과 센터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전화기부터 집어 들었다.

일단 집에 보고부터 해야 했다.

교환에게 외부 전화를 부탁했다. 전공의 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교수에게 주어진 일종의 특권이라 할 수 있었다.

‘이것도 은근히 기분 좋네.’

가운 주머니 속에서 청진기와 함께 묵직한 무게를 전하는 휴대폰은 도대체 언제 쓸까?

그것도 장인어른이 축하한다고 사 준 선물이다.

바보다.

“경아 씨, 일어났어요? 수술이 있어서 집에 못 들어갔네요. 난 병원에서 해결할 테니까 아침 꼭 챙겨요. 이따 수술 방에서 봐요.”

(지훈 씨 피곤해서 어떻게 해요. 틈나는 대로 눈 좀 붙이세요.)

“첫날이라 신고식을 하나 봐요. 사실 내가 뭐, 하루 이틀 이러고 살았나. 난 괜찮아요. 올 때 조심해서 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난 몇 달 동안의 달콤했던 편안함의 여운이 아직도 진하게 남은 모양이었다. 왠지 미안하다는 마음이 앞섰다.

당직실에서 나와 지난 하루 동안 내원한 환자를 파악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비볐다.

피곤하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곧 송재덕 교수가 올 시간이었다.

문득 눈이 벌겐 응급 의학과 1년차와 응급실 인턴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피곤에 절은 모습이었다. 초턴이 응급실을 돌자니 더욱 힘들 것이다.

“인턴 선생, 힘들지?”

“아닙니다, 선생님. 거의 잠을 못 주무시고 수술까지 하셨는데, 제가 피곤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말이 참 예쁘다.

피식 웃으며 인턴의 등을 두드리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가를 찡그렸다.

당직이라고는 하지만,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이제 딱 하루 지났다. 당직 전공의들보다야 잠을 더 잤겠지만, 그게 그거였다.

전공의 5년차!

이 추세로 간다면 말로만 듣던 전설의 전공의 5년차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순간 등짝이 서늘해지며 온몸이 절로 떨렸다.

‘이거 심각한데. 그럴 리가 없어.’

그때 송재덕 교수가 도착했다.

“굿모닝! 야! 간만에 아침 공기가 좋다. 좋아. 차가 많이 안 다닌 모양이야. 상쾌하다. 상쾌해. 지훈아, 아니 김지훈 선생, 잘 잤지? 간밤에 환자 많았니? 많았지?”

“예. 보고드리겠습니다.”

보고 내내 송재덕 교수가 싱글싱글 웃었다. 김지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수술했구나, 수술. 내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일복이 있네. 신혼 기간인데 수술까지 겹치니까 눈이 벌걸 수밖에 없지. 바쁘다. 바빠. 그래도 좋을 때다. 좋을 때야. 그치? 내 말이 맞지?”

상황 빤히 알면서 신혼이 왜 나올까?

설마 이러저런 이유로, 가령 황새를 기다리느라 밤을 꼴딱 새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농담인 줄은 알지만 기운이 쭉 빠졌다.

할 말이 없었다.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들며, 피로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재덕 교수가 웃음을 머금은 채 외래로 향했다.

“지훈아, 고생했다. 고생했어. 그래도 네 덕분에 환자 한 명 살았잖니. 그게 외과 의사다, 외과 의사. 그 맛에 우리 이러고 사는 거잖아. 그치? 내 말이 맞지?”

갑자기 피로가 쫙 풀렸다. 게다가 커피까지 직접 타 주겠다며 잔을 들고 있었다.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지만 손사래를 치며 끝끝내 커피를 탔다.

한 잔 더.

웬일인지 아침 일찍 출근한 이준영 교수까지 함께 커피를 마셨다.

고소한 커피 향 사이로 묵직한 목소리가 퍼졌다.

“어제오늘 입원한 환자들만 첫 환자가 아니다. 앞으로 네가 입원시키고 수술하는 환자들은 모두 첫 환자야. 항상 처음이라는 기분으로 환자를 봐. 시작이 좋아야 끝이 좋은 법이다. 오늘 이 과장 수술 잘 보고.”

김지훈도 놀랄 정도로 정말 길게 말했다.

스승의 예외적인 행동에는 언제나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이었다.

“예, 선생님.”

“그래그래. 준영이 말이 맞다. 그래서 난 매일매일 처음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출근해. 그러면 없던 힘도 생기더라. 준영이 너는 안 그러니? 너도 그렇지?”

이준영 교수의 입이 살짝 움직였다. 일순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송재덕 교수가 입맛만 쩝쩝 다셨다.

즐거운 미소를 머금던 김지훈이 시계를 보다 말고 흠칫 놀라며 일어섰다.

아직도 환자 파악을 다 하지 못했다. 각 파트 회진 전에 오늘 수술한 환자 상태도 살펴야 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중환자실로 향했다. 대기하고 있던 보호자들이 우르르 다가왔다.

“경과부터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에 빠진 환자의 볼이 발그스름했다.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안심하긴 이르지만 기분 좋은 징후였다.

이혁원이 조심스럽게 드레싱을 하며 환자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했을 텐데, 손끝에 열의가 실려 있었다.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을 닮았나? 에휴! 아들인데 당연한 소리지.’

왠지 목소리에 힘이 쫙 들어갔다.

“혁원아, 환자 상태 어때?”

“예. 의식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고, 바이탈은 안정적입니다. 드레인도 깨끗합니다.”

“언제 올라갈 수 있겠어?”

이혁원이 순간 당황을 했다. 지금까지 환자의 치료 여부를 홀로 결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신중하게 고민한 후 대답을 했다.

“내일 아침까지 이상 없으면 병동으로 올리겠습니다.”

“그래. 환자 잘 봐. 신기동 선생님 회진 준비도 철저하게 해. 환자 제대로 못 보거나 버벅거리면 죽는다.”

중환자실 앞에서 보호자들을 만났다.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쌩! 하고 스쳐 지나갔다. 이혁원이었다.

다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년차가 없는 파트이기에 드레싱은 당연히 이혁원 몫이다. 문제는 지금쯤이면 1년차들이 한창 드레싱을 하고 있을 때라는 것이었다. 십중팔구 사용할 수 있는 드레싱 카는 없다.

그렇다고 빼먹으면 죽음이다. 신기동 교수는 물론 김지훈 역시 절대 용납하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사정을 짐작한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설명을 마저 마쳤다. 보호자들의 얼굴이 좋아 다행이었다.

“그럼 오후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되게 젊어 보이는데 교수라니 대단하네.”

“실력이 있으니까 저 나이에 교수가 됐지. 수술도 두 시간밖에 안 걸렸잖아.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엄청 빨리 끝난 거라고 하더라고.”

병동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또 웃었다. 들리는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불현듯 드레싱을 안 하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습게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전공의 5년차는 아니지?’

카르페 디엠!

불과 하루 만에 몇 번을 외쳤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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