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5년차? (1)
수술 팀과 눈을 마주친 김지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절개할 부위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메스.”
‘수술에만 집중한다.’
은색 메스가 무영등 불빛에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
환자의 복부를 절개했다. 다소 말랐다고는 하지만 불과 3센티미터도 안 되게 열었다.
퍼스트를 서는 이혁원이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컨 경험조차 없는 또 다른 1년차 강병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2센티미터 조금 넘겠네. 이 정도면 충분해.’
김지훈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손의 감각이 돌아왔다.
순식간에 배가 열렸다.
긴 포셉으로 장을 뒤적이는 순간, 아뻬가 배 밖으로 툭 튀어나왔다. 생각 이상으로 빨갛게 잘 익었다. 하루만 더 묵혔어도 터졌을 것이다.
이혁원의 시선이 따가웠다.
순간 펠로우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경험으로 얻은 팁(Tip)을 전해 줄 때였다.
“작게 열 때는 아뻬를 배 밖으로 빼내야 수월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크게 여는 것과 차이가 거의 없어.”
따가각!
동맥을 잡았다.
“타이(Tie)!”
이혁원이 신중하게 타이를 했다.
따가각!
아뻬를 잡았다. 이혁원의 타이가 이어졌다.
김지훈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절제된 아뻬가 고경아에게 건네졌다. 동반된 질환 유무를 확인한 후 배를 닫았다.
“컷(Cut)!”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동시에 환자가 몸을 비틀었다.
불과 25분 만에 수술이 종료됐다. 비록 아뻬지만 김지훈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야! 6개월 만에 하는 수술인데 여전하네.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수술이라도 했어? 어째 더 빨라진 것 같다.”
김진호 교수가 감탄을 터트렸다. 이혁원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고, 강병옥은 눈을 가늘게 뜬 채 입술을 모았다.
고경아의 눈이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때 수술실 창문으로 언뜻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김지훈은 똑똑히 보았다. 이준영 교수였다.
이제 막 교수가 된 제자의 첫 수술을 지켜본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더욱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기 전에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수술 중 눈에 밟힌 것을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2년차 때 반드시 익혀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잊지 않았다.
김지훈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혁원, 퍼스트의 역할이 뭐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집도의의 손을 방해하면 수술이 제대로 되겠어? 내 손이 어디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하면서 퍼스트를 서야 할 거 아냐? 내가 너한테 맞춰야 해?”
이혁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번에도 이런 식이면 퍼스트 못 세운다.”
스승인 이준영 교수처럼 수수께끼를 던질 공력은 없었다. 신기동 교수처럼 직접적으로 차가운 비수를 던지는 것이 지금은 편하고, 확실한 전달 방법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신기동 선생님 수술은 몇 시에 있어?”
“5시 30분에 시작합니다.”
김지훈이 시계를 보았다.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이준영 교수의 수술이 아직 안 끝났지만, 환자 파악은 그 이상으로 중요했다. 더 이상 미룰 시간이 없었다. 세 파트 환자를 합치면 무려 백 명에 육박해, 틈이 나는 대로 차트를 확인해야 했다.
“환자 깨면 바로 병동으로 올라와. 환자 파악하자.”
“예,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가 우렁차다.
‘그래. 그래야 이혁원이지. 마음 놓고 태워 주마.’
수술실을 나가던 김지훈이 뭔가를 잊은 듯 뒤돌아섰다.
“강병옥, 반갑다.”
“예,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이혁원만큼 목소리가 힘찼다. 의욕과 자신감에 찬 1년차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
혈관 파트 환자부터 파악을 시작했다.
김지훈이 첫 번째 차트를 집어 들었다.
“이 환자 무슨 환자야?”
이혁원이 급히 주머니에서 환자 리스트를 꺼냈다. 그 순간 김지훈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이혁원, 15명이 많아? 벅차?”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주말에 뭐했어? 회진은 제대로 돌았어?”
차트가 넘어갈수록 분위기가 점점 살벌해졌다.
이혁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열지 못했고, 주변에 있던 전공의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환자 파악이 끝나기도 전에 이혁원은 이미 초주검이 됐다. 하얗게 변한 얼굴을 보며 끌탕을 하던 김지훈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내일 수술할 환자는 무슨 수술을 해?”
“AV Fistula(동정맥루) 두 개 있습니다.”
“읊어 봐.”
어깨가 축 처졌던 이혁원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준비를 단단히 했다는 표정이었다.
“환자의 요골 동맥과 정맥을 Side to Side 방식으로…….”
초반 과정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앞은 뚝 잘라먹네. 2년차다 이거야? 이혁원, 기본은 평생 지켜야 한다는 걸 굳이 내 입으로 또 말해야 돼?”
휙! 휙! 휙!
비수가 날아다녔다. 이혁원이 난도질을 당했다.
마지막 차트를 넘긴 김지훈이 일어서자 정신이 바짝 든 이혁원이 재빨리 앞장섰다.
펠로우와 2년차가 환자를 머릿속에 확실하게 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벌였다.
같은 노력이면 전공의가 100퍼센트 불리하다.
회진을 끝낸 이혁원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똑바로 하자. 내일 수술 준비 확실하게 해.”
“예, 선생님.”
훌쩍 한 시간이 지났다. 할 일이 아직 태산이었다.
인턴이 모아 둔 이혁민 교수 환자들의 차트를 집어 들던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사실 이혁원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2년차가 되자마자 홀로 한 파트를 책임지기에는 경험이 부족하고, 힘이 부칠 뿐이었다.
‘자식! 노력한 티는 팍팍 나네. 어이구! 내일 위암하고 갑상선 수술이 있다고 했는데, 이럴 때가 아니지.’
한동안 차트와 씨름하며 끙끙댈 일만 남았다.
“어휴! 많아도 너무 많네.”
아무리 펠로우라고 해도 파트 3개를 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환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김지훈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첫날부터 일이 산더미였다.
어느새 5시가 훌쩍 넘었다. 이준영 교수의 수술은 이미 다 끝났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혁원에게 전화가 왔다. 신기동 교수 앞으로 갑자기 수술 하나가 뜬 것이다. 그것도 두 건이었다.
‘어이쿠! 이건 또 무슨 일이냐?’
다시 수술실이다.
아침부터 병동에 수술실과 외래까지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점심은 이미 건너뛰었고, 저녁도 제때 먹기에는 글렀다. 배 속이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지만 간만에 일을 시작한 탓인지 기분은 좋았다.
마지막 수술을 끝낸 이경석과 마주쳤다.
“지훈아, 벌써 아뻬 하나 했다며?”
“예. 내 앞으로 입원시켰죠. 하하하!”
이경석의 눈에서 부러움이 뚝뚝 떨어졌다.
“어휴! 일복 터진 게 이럴 땐 좋네.”
“이게 일복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형, 이왕 이렇게 된 거 월목에 내가 당직 설게요. 형은 화금 서고, 홍재순 선생님이 수요일 하루 서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래. 내가 홍재순 선생님한테 말씀드려 볼게. 신기동 선생님 수술 있다며? 비수에 찔리기 전에 빨리 들어가.”
늦으면 죽음이다.
수술실로 들어가자 이혁원이 환자를 옮기고 있었다. 수술 준비를 미리 하라는 말은 없었지만 펠로우로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었다.
국소마취로 수술을 하기 때문에 즉시 준비를 했다.
“선생님,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불과 한 시간 전에 새카맣게 탔는데 이혁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찼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앞으로 쭉쭉 한없이 태워도 될 것이다. 그만큼 확실하게 배울 테니 말이다.
‘그래. 그래야지. 예쁜 놈.’
드랩(Drap:소독 천으로 수술 부위를 덮는 일)을 막 끝냈을 때 신기동 교수가 들어왔다. 눈가에 슬쩍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쳤다.
“환자분, 마음 편히 가지세요. 이혁원, 언젠가는 너도 퍼스트를 서야 하니까 눈 크게 뜨고 잘 봐. 김지훈 선생, 시작하자.”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한 수술인데, 신기동 교수는 언제나 신중하면서도 정확함을 유지했다.
환자의 좌측 손목 부위를 절개한 후 꼼꼼하게 지혈을 하고 동맥과 정맥을 찾았다. 김지훈도 많이 본 수술이 아니었기에 더욱 신중하게 퍼스트를 섰다.
‘혈관 수술은 확실히 어려워.’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는 사이, 주요 과정이 끝났다.
혈관을 잡았던 겸자를 풀자 동맥과 이어진 정맥으로 강한 혈류가 흘러들었다. 심장박동을 따라 혈관이 벌떡벌떡 뛰었다. 수술이 잘 끝났다는 표시였다.
이제 한두 달 후면 정상 크기보다 몇 배로 부풀어 오른 정맥을 통해 투석을 하게 될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김지훈 딴에는 말이다.
“이혁원, 밖에서 기다렸다가 다음 환자 데리고 들어와. 김지훈 선생은 나랑 얘기 좀 하자.”
의아한 일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수술이 끝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이혁원이었다. 문득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이 다가왔다.
‘단둘이 할 말이 뭐가 있을까? 혹시?’
순간 서늘한 느낌을 받은 김지훈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신기동 교수의 눈이 김지훈을 꿰뚫을 것처럼 번쩍였다. 마침 아무도 없어 거리낄 것도 없다는 표정이었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김지훈, 펠로우야, 전공의야?”
“예?”
“똑바로 하자. 2년차 보기 창피하지도 않아? 혈관 수술은 꼼꼼하고 정확해야 한다고 내가 얼마나 강조했는데, 그새 그걸 잊어 먹었어? 너 교수야, 교수.”
비수가 휙휙 날아들었다.
“전문의 시험 끝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놀기만 했어? 펠로우 확정됐다고 아주 만사태평이었네. 이래 가지고 후배들을 가르칠 수나 있겠어?”
삐질삐질 땀만 흘렸다. 이혁원에게 날렸던 비수가 그대로 돌아왔다.
전공의 때보다 더 아팠다.
얼굴은 창백해지는데, 가슴은 사정없이 화끈거렸다.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특히 이혁원이 없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하기만 했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비수에 한탄 아닌 한탄까지 터트렸다.
‘어후! 말씀처럼 펠로우도 교순데 적당히 하시면 안 될까요?’
물론 입안에서만 맴도는 생각이었다. 잘못 꺼냈다가는 그대로 사망이다.
드르륵! 드르륵!
침대 바퀴 소리가 나자 신기동 교수가 싹 표정을 바꿨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혁원은 열심히 환자를 옮겼고, 김지훈은 슬며시 천장을 보며 딴청을 부렸다.
아! 창피하다. 이혁원을 볼 수가 없다.
아직도 타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태울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평생 이렇게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일반 외과 의사의 숙명일지도 몰랐다. 순순히 받아들일 일이었다.
카르페 디엠!
다음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이 초긴장 상태에서 퍼스트를 섰다. 단 하나의 실수가 수십 개의 비수로 변해 날아들 상황이었다. 원칙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한 손 한 손 최선을 다했다.
손목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혈관 수술의 특성상 세컨은 거의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이혁원 역시 두 눈을 부릅뜨고 수술에 집중했다.
신기동 교수의 눈빛이 묘했다. 비수를 던질지, 말지 고민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눈치를 보면 집중을 하지 않았다고 수술 후 치도곤을 당할 것이 빤했다.
아슬아슬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 더욱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 수술이 끝났다.
신기동 교수가 날카로운 눈빛을 던진 후, 아무 말도 없이 수술실을 나갔다.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는 얼굴이었다.
긴장이 탁 풀리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진 김지훈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혁원이 내심 감탄사를 터트렸다.
‘와! 수술할 때 얼마나 집중을 하셨으면 땀을 저렇게 흘리셨을까? 신기동 선생님이 별말씀을 안 하는 것도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역시 김지훈 선생님이야.’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고 했다. 사람 얼굴은 자신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김지훈이 힐끗 이혁원을 보며 눈가에 힘을 주었다.
“이혁원, 너 표정이 왜 그래?”
“예? 제 얼굴이 왜요?”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환자 빨리 옮겨.”
이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환자를 회복실로 옮겼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입맛을 다셨다.
‘혹시 저 자식이 나 태우는 소리를 들었나?’
왜 갑자기 발이 저릴까?
코끝에 침을 묻혀야 했다.
마냥 수술 중에 있었던 일에 매달릴 때가 아니었다. 부리나케 병동으로 올라가자 신기동 교수는 이미 회진을 돌기 직전이었다. 다른 파트 회진은 이미 끝난 지 오래였다.
잠시 후, 이혁원이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왔다.
신기동 교수의 회진이 끝나자마자 바로 맡은 파트 환자들에게 문제가 없는지 확인했다.
오늘 아뻬 수술을 한 환자까지 보고 난 후에야 일과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혁원아, 오늘 당직 치프한테 혹시 응급실에서 도와달라는 콜 오면 나한테도 연락하라고 해.”
“예? 우리 과 환자 아니어도요?”
“그래. 송재덕 선생님 오더야.”
9시가 넘었다. 전공의 때라면 당연하게 여겼겠지만 펠로우다. 아직 환자 한 명도 없는, 아니 입원 환자 딱 한 명 있는 처지에 첫날인데 너무 늦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경아 씨, 나 지금 가요.”
(이제 수술 끝난 거예요? 배고프겠네. 김치찌개 맛있게 끓여 놨으니까 빨리 와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힘이 났다. 한편으로는 똑같이 피곤할 텐데 고경아 혼자 식사 준비를 했다는 사실에 미안하기도 했다.
‘경아 씨, 앞으로 쉬는 주말에는 내가 밥합니다. 자취할 때 익힌 실력 잘 알잖아요. 고마워요.’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