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첫 수술 환자 (2)
‘표정이 왜 이래?’
서도진이었다.
(선생님, 22세 남자 환자입니다. 아뻬가 의심됩니다.)
“아뻬?”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수술 환자다. 자신의 이름 앞으로 입원시킬 수 있는 환자다.
밥 생각이 싹 사라졌다.
김지훈이 바람처럼 사라졌다.
‘식사를 못할지도 모르는데, 뭐가 저렇게 좋으실까?’
외래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외과 센터 응급실이다.
부리나케 달려온 김지훈이 문을 열기 전 복장을 확인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장 기본적인 수술인 아뻬를 앞에 두고 호들갑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수술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전공의가 아닌, 4년간의 수련을 훌륭하게 마친 펠로우다.
‘침착하자. 흥분하면 안 돼.’
수술이 없는 전공의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몇 달 전만 해도 김지훈 역시 같은 모습으로 교수들을 기다렸었다. 어쩐지 전공의들의 눈빛도 달라진 것 같았다.
이젠 환자를 보고 홀로 최종적으로 수술을 결정해야 한다. 그만큼 큰 책임이 뒤따르겠지만, 전공의 내내 꿈꿔 왔던 일이었다.
정말 뿌듯하다.
“당직을 어떻게 정하셨는지 모르지만, 이경석 선생님이 수술 방에 계셔서 선생님께 먼저 노티 드렸습니다.”
운도 좋다. 오늘은 당직을 서고도 남을 이유가 넘쳐났다.
“잘했어. 오늘 오는 환자는 나한테 연락해.”
서도진에게 자세한 노티를 듣는 내내 김지훈은 표정 관리를 하느라 얼굴이 뻘게질 지경이었다. 담담한 척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환자부터 보자.”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력부터 자세하게 들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손은 신중하기만 했다.
아뻬가 분명했다. 수술 결정을 내린 김지훈이 입을 열려다 말고 멈칫거렸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다시 한 번 환자의 배를 촉진했다.
확신이 들었다. 실수할 일은 없었다.
“보호자분, 맹장염이 확실합니다. 수술해야 합니다. 여기 서도진 선생에게 수술과 마취에 따른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들으시고, 동의하시면 수술 방이 나오는 대로 바로 수술하겠습니다.”
“혹시 선생님이 하시나요?”
보호자의 표정과 말투가 묘했다. 틀림없이 다 같은 전공의로 보았을 것이다.
서도진이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이미 외래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김지훈이 슬며시 서도진을 막아섰다.
절대 기분 나쁜 일이 아니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십분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처해야 할 때였다. 첫 수술부터 보호자와 환자의 믿음을 얻지 못하면 다른 환자를 볼 때도 계속 같은 상황에 처할 것이다.
김지훈이 나직하면서도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이준영 교수처럼 말이다.
“예. 제가 직접 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은근히 못미더운 눈치로 잠시 김지훈을 보던 보호자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가운에 적힌 교수라는 두 글자를 이제야 확인한 것이다.
“젊어 보이셔서 실수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실제로도 젊습니다. 그럼 설명 자세하게 들으시고 결정해 주십시오. 서도진 선생, 진행해.”
첫 수술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진행하고 싶었지만 이제부터는 서도진이 해야 할 일이었다. 개인 병원이라면 모르지만 대학 병원이기에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었다. 후배들이 경험을 쌓지 못하면 그것 또한 책임 방기였다.
서도진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라파로로 하실 거죠?”
내심 라파로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마지막 수술을 한 지 6개월이나 지났다. 가장 익숙하고 자신 있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안전했다. 다행히 환자가 마른 편이라 절개 부위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개복하자.”
“개복이요? 라파로로 충분히 하실 수 있잖아요.”
“6개월 만이야. 일단 손부터 풀어야지.”
당직실로 들어간 김지훈이 의자에 앉아 연락을 기다렸다. 불과 1분도 안 돼 벌떡 일어나 당직실을 서성거렸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안 한다고 하면 어쩌지? 도진이가 제대로 설명하겠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려. 환자도 최신 경향을 알지 모르는데, 라파로로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일 분이 한 시간 같았다.
똑똑똑!
김지훈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서도진이 문을 열고는 활짝 웃었다.
“선생님, 수술 동의서 받았습니다.”
‘오케이! 됐다.’
지금까지 서도진에게 들었던 말 중 가장 반가운 소리였다.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려던 김지훈이 급히 표정을 바꿨다. 별일 아니라는 듯 평소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알았어. 스케줄 내.”
“어디 계실 건데요?”
“어디긴, 수술 방이지.”
“수술은 어떻게 들어갈까요?”
‘아! 수술 팀을 정해야지.’
펠로우가 당직 삼사 년차를 데리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이 년차와 인턴이 딱 적당했다. 누구를 퍼스트로 세울지는 바로 답이 나왔다.
신기동 교수의 비수에 난도질을 당하겠지만 가장 시간이 많은 놈이자 윗년차 없이 파트를 도는 놈,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은 놈, 바로 그놈이다.
“혁원이하고 수술 들어갈게.”
“펠로우 되시고 첫 수술인데, 제가 들어가면 안 될까요?”
기분 좋은 말이었지만 경우라는 것이 있다.
“도진아, 아뻬다. 치프가 왜 들어와?”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짓는 서도진과 함께 스테이션으로 나온 김지훈이 볼펜을 꺼내 들었다. 마침내 그렇게도 부러웠던 또 하나의 일을 하게 됐다.
입원장에 사인(Sign)을 하는 일이었다.
Prof(교수). 김지훈.
멋지게 사인을 한 김지훈이 훅 숨을 내뱉었다.
온몸이 전율과 희열로 부르르 떨렸다.
감동의 순간이다.
잠시 후, 이혁원이 내려왔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시키며 꾸벅 인사를 했다.
혹독한 1년차 시절을 마친 2년차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인 일과 중 숨어 자는 잠도 마다한 얼굴이었다.
‘자식! 2년차 초반인데 잠 좀 자지.’
“할 일 많아?”
이혁원이 머리만 긁적였다.
김지훈이 피식 웃었다.
신기동 교수 수술은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에 벌어진다. 파트 윗년차가 없으니 잠을 잔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다. 한동안 약간의 여유를 갖는 것도 괜찮을 텐데, 후배지만 참 열심히 하는 놈이다. 이혁원을 특별히 주시하고 있는 선배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김지훈의 눈이 묘하게 반짝였다. 즐거움으로만 끝나면 후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열심히 하겠다 이거지. 좋았어. 조금 힘들겠지만 나중에는 다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다. 살려는 줄게. 이혁민 선생님과 신기동 선생님께 허락은 나중에 받아도 되겠지?’
“혁원아, 내가 신기동 선생님 파트까지 맡은 거 알지?”
“예, 선생님.”
“그럼 내 환자는 누가 보고, 내 수술에는 누가 들어와야 할 것 같아?”
어라? 피곤이 묻어 있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제가 들어가는 겁니까?”
“그렇지. 따라서 앞으로 내가 당직 때는 너도 자동 당직이다. 다른 당직 2년차가 있어도 응급실 환자 노티까지 반드시 니가 받아야 돼. 알았어?”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목소리에도 힘이 팍팍 실렸다.
혹시 아직 사태 파악을 못한 걸까?
“잠자기 힘들지도 모르는데 뭐가 고마워?”
“수술 들어가잖아요.”
이제는 순환 근무가 없어 2년차 때는 수술을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대개는 그 핑계로 한동안 쉬고 싶어 하기 마련인데, 이혁원은 수술이라는 소리에 쌍수를 들고 반색을 하고 있었다.
천생 외과 의사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혁원도 따라 웃었다.
그 순간 김지훈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싹 사라졌다.
“이혁원, 뭐해?”
수술할 환자를 파악하고 준비해야 할 때였다. 화들짝 놀란 이혁원이 꾸벅 인사를 하고 후다닥 사라졌다.
1년차와 서도진에게 이것저것 묻는 모습을 보며 김지훈도 수술 방으로 향했다.
‘한 시간 후에 방을 준단 말이지? 스승님 수술을 들어갈 틈이 없겠네.’
그새 점심시간은 휙 지나가 버렸고, 이준영 교수는 오후 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김지훈이 수술에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에 서서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마치 손으로 직접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기구를 다루는 모습은 언제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어느새 수술이 끝을 보였다. 절제한 담낭을 콘돔에 넣던 이준영 교수가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환자 있어?”
역시 스승의 손바닥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예. 아뻬 환자 한 명 있습니다.”
“누구랑 들어가?”
“혁원이를 퍼스트 세울 생각입니다.”
더 이상 말이 없다. 묵묵히 수술만 진행할 뿐이었다. 아들을 두고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스승도 아니었다.
그런데 수술을 끝내고 안호석에게 마무리를 맡긴 이준영 교수가 뜻밖의 말을 했다.
“고 간호사, 다음 수술 들어올 필요 없어.”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뻬 들어가. 첫 수술인데 제일 노련한 간호사가 들어가야지. 2년차가 퍼스트니까 신경 많이 써야 돼.”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사고는 수술의 크기와 의사를 가리지 않는다.
스승의 속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제자의 첫 수술이 아무 문제 없이 잘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의 축하까지 받길 바라는지도 몰랐다.
그것만으로도 감동인데, 장갑을 벗던 이준영 교수가 결정타를 한 방 더 날렸다.
“김지훈 선생, 체력만 믿지 말고 밥은 꼭 챙겨.”
김지훈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드디어 첫 수술이다.
이준영 교수가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김지훈도 수술 방 앞에서 보호자를 다시 만났다.
으레 하는 말들이 오고 갔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믿음을 얻고, 안심을 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수술실에 들어선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김진호 교수가 직접 마취를 걸고 있었다. 일반 외과 수술 중 가장 간단한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기구를 준비하는 고경아의 손은 신중하기만 했다.
고마웠다.
이혁원과 1년차가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지금쯤 손과 팔을 소독하고 오면 모든 준비가 끝나 있을 것이다. 전공의 때와는 달리 사뭇 여유가 있었다.
고경아의 도움을 받아 수술용 장갑을 끼고, 덧 가운을 입었다.
수술 팀의 긴장된 얼굴이 눈에 환히 들어왔다. 오염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집도의 자리에 섰다.
환자의 전신을 덮은 깨끗한 천에 손을 얹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단순한 아뻬가 아니었다.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첫 수술이었다.
‘22세 남자 환자, 오영식.’
환자의 이름과 나이를 상기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훈이라는 의사의 두 손에 오영식 환자의 건강이 달려 있다.
문득 이준영 교수와 함께한 첫 수술이 떠올랐다. 그때와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책임감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마치 메이저 수술을 앞둔 것 같았다.
모두들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