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70화 (570/1,329)

제2화. 첫 수술 환자 (1)

각오를 다지던 김지훈이 화들짝 놀랐다.

“김지훈 선생, 펠로우 됐다고 여유 부리는 거야? 지금 시간이 몇 시야?”

마취를 준비하던 김진호 교수가 눈을 쫙 찢으며 노려보고 있었다. 눈가에 주름까지 잔뜩 만들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진이 이제 끝났습니다.”

“회진? 호석이는 아까 들어왔는데 무슨 회진을 지금까지 돌았다는 거야?”

“이혁민 선생님하고 신기동 선생님 파트까지 맡았습니다. 환자가 많아서 최대한 서둘러도 조금은 늦을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김진호 교수가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하여간 일복은 타고났네. 어쨌든 축하해.”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취과 간호사를 비롯해 보는 사람마다 축하의 말을 건넸다. 수술을 들어온 고경아가 김진호 교수의 말에 살짝 인상을 쓰다 말고 고개를 돌리며 활짝 웃어 주었다.

‘지훈 씨, 축하해요. 사랑해요. 파이팅!’

‘고마워요, 내 사랑.’

강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날리는 갈대처럼 마음이 또 스르르 풀렸다. 간지러운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만큼은 힘든 문제를 잊고 마음껏 기분을 내도 좋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

앞으로의 일은 펠로우라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지금은 결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곳인 수술실에 있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다.

‘후우! 펠로우가 돼 처음 하는 수술이네. 정신 바짝 차리고 최선을 다하자.’

시나브로 다가오는 설렘과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김지훈이 연거푸 헛기침을 하며 눈가에 힘을 주었다.

곧 마취가 끝나고 수술이 시작됐다.

복부 세 곳을 열고 라파로 기구를 삽입했다. 모니터 화면에 비치는 내부 장기들을 꼼꼼하게 살피고, 어떻게 수술을 진행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상기했다.

몇 달간 손을 놓은 탓인지, 아니면 펠로우가 돼 처음으로 하는 수술인 탓인지 생각보다 강한 긴장이 다가왔다.

너무 뜸을 들인 모양이었다.

안호석이 재촉을 했다.

“선생님, 시작하시죠.”

“응? 그래. 시작하자. 근데 이준영 선생님은 왜 안 들어오시지? 최소한 노티는 드리고 시작해야 하는 거 아냐? 호석아, 그게 맞겠지?”

“어? 그러네요. 큰일 날 뻔했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이준영 교수가 떡하니 등으로 수술실 문을 밀며 들어섰다. 이미 손을 깨끗하게 닦고, 소독까지 한 후였다.

순간 감이 왔다. 퍼스트를 서거나 대기를 하며 참관할 태세가 아니었다. 펠로우로서 할 일은 여기까지였다. 김지훈이 조용히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준영 교수의 눈이 써드 자리에 머물렀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선생님, 저 펠로운데 써드는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아무 반응도 없다.

아니, 이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비록 입 밖으로 내진 못했지만 김지훈 나름의 강력한 항의는 무력함 그 자체였다. 부풀었던 가슴이 구멍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왠지 눈물이 난다.

이준영 교수가 아무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라파로 기구를 잡았다. 그제야 슬쩍 고개를 돌려 눈길 한 번 더 주었다. 역시 표정은 없었다.

‘손 놓은 지 몇 달 됐으니까 잘 봐.’

‘예, 스승님.’

차칵! 차칵!

치이이익!

나직한 기계음과 기구를 조작하는 소리만 들렸다.

조직을 박리할 때마다 흐르는 피.

지혈 때마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

서서히 떨어져 나오는 담낭.

간만에 다시 수술실에 섰는데, 집도의도 퍼스트도 세컨도 아닌 써드다. 기구 하나 잡지 못하고 오직 눈으로만 봐야 했다. 그 때문인지 수술하고 싶다는 열망이 점점 강해졌다.

가끔 이준영 교수의 손을 따라 움찔움찔 손이 움직였지만 하릴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수술은 언제나 긴장을 주면서도 마음을 들뜨게 한다. 스승의 수술은 특히나 더 그렇다.

‘야! 예전보다 점점 더 매끄럽게 진행하시네. 난 언제 저렇게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어느새 담낭이 제거됐다.

이준영 교수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눈길이 머문 곳에 김지훈은 없었다.

“안호석, 마무리해. 김지훈 선생, 수술 끝나는 것 확인하고 다음 수술도 시작하고 있어.”

“예, 선생님.”

허탈하다. 이상하게도 이마에 땀까지 맺혔다.

펠로우가 수술실에서 할 일은 결국 교수들의 수술을 참관하는 것이었다.

안호석이 다소 당황스러운 얼굴로 퍼스트 자리에 섰다. 입술을 모은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지훈이 돌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작년에 홍재순 선생님은 첫 한 달 동안 칼도 못 잡았었는데, 수술 시작이라도 하는 게 어디야.’

최대한 좋게 생각할 일이었다.

곧 다음 환자가 내려왔다.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 김지훈이 이제 막 수술실에 들어서는 이준영 교수를 보며 시계로 눈을 돌렸다.

10시 50분이었다. 11시에 외래 환자가 예약돼 있다.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수술 중인데 언제,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조금 늦더라도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야 할까?

전공의 때는 교수들의 오더만 충실히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펠로우고, 시간 여유도 없었다. 이혁민 교수의 말처럼 펠로우는 자신의 스케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했다. 수술 중이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만 지킨다면 충분할 것이다.

더구나 스승이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외래 환자 보고 오겠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나직하면서도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지훈 선생, 펠로우도 교수야.”

교수라는 말이 더없이 크게 들렸다.

힐끗 시선을 준 이준영 교수는 집도의 자리에 서서는 묵묵히 수술을 시작하고 있었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꾸벅 인사를 한 김지훈이 재빨리 수술실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다 말고 피식 웃었다.

‘스승님에게 선생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교수라고 하셨나? 후우! 선생님들 앞에 서면 지금도 전공의 같네. 곧 적응이 되겠지. 늦었다. 서두르자.’

외래로 들어서자마자 옷매무새부터 살폈다.

모든 환자를 똑같이 대해야 하겠지만, 평생 단 한 번만 경험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비록 스승이 수술한 환자였지만 김지훈에게는 특별한 시간일 수밖에 없었다.

환자 차트를 꼼꼼하게 살폈다. 마지막 장을 넘기도록 조용하기만 했다. 환자가 조금 늦을 수도 있는 일인데 걱정부터 앞섰다.

‘혹시 스승님이 아니라 내가 진료한다고 안 오면 어떻게 하지? 환자 눈에도 교수로 보일까?’

째깍! 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별생각이 다 들며 슬슬 초조해졌다.

그때 반가운 말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환자분 부를까요?”

외래 간호사의 말에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세를 바로잡고 다시 한 번 차트를 확인한 후,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환자분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기미선 환자분 들어오세요.”

첫 외래 환자다.

응급실과 병동에서 그렇게 많은 환자를 보았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게다가 전공의 때와는 달리 외래 간호사가 바로 옆에 서 있다. 의자에 앉으며 눈을 마주친 환자는 어색한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저… 이준영 선생님이 왜 진료를 못 보시죠? 그리고 죄송한데, 선생님도 교수님 맞으세요?”

말꼬리를 심하게 흐렸지만 똑똑하게 들렸다.

상당히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젊은 나이가 탈이었다.

전문의 마치고 군대까지 다녀오면 무조건 30대 중반은 된다. 그런데 이제 서른이 조금 넘은 김지훈이 떡하니 앉아 있으니 미덥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소아과라면 동안의 의사를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외과 환자들은 경험 많은 의사들을 찾는 경향이 강했다. 경력을 알지 못하는 한 대개는 나이가 먹어 보여야 나름의 신뢰를 갖고, 안심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이리저리 둘러대 봐야 말만 꼬일 것이다. 솔직하게 말할 일이었다.

“올해 전문의 따고 오늘부터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정 자리가 불편하시면 이준영 교수님 앞으로 다시 예약을 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실밥 풀러 오셨는데, 그럴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실밥만 풀면 되는 건가요?”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더 있긴 합니다. 퇴원 후에 불편하신 점이 있으셨거나, 특별히 궁금한 문제가 있으신지 확인은 해야겠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난 5년간 열심히 근무한 보람이 있었다. 의외로 술술 말이 나왔다.

그 덕인지 기미선 환자의 눈빛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사실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실밥 푸는 것이다. 단지 그 때문에 또 병원을 찾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그럼 선생님께 진료를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실밥부터 풀까요?”

기미선 환자가 침대에 누웠다.

신경 하나 쓰지 않고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손이 저절로 신중하게 움직였다. 정성스럽게 드레싱까지 하고는 환자와 마주 앉았다.

“그동안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수술한 자리가 따끔한 것 말고는 특별히 불편한 일은 없었어요.”

“다행입니다. 하지만 담낭을 제거하셨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화불량이나 거북함 등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혹시 그런 일이 생기시면 부드러운 음식을 드시고 기름진 음식은 피하셔야 합니다.”

“그래요? 그것 말고도 주의할 점이 또 있나요?”

“드물게는 위염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동안 나직한 대화가 오고 갔다.

수술만 잘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환자는 도리어 수술 전보다 더욱 많은 것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성심성의껏 대답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된 시간이 다 지났다.

기미선 환자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섰다.

“선생님께 진료받길 정말 잘한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안녕히 가세요.”

김지훈이 환자의 뒷모습을 보며 씨익 웃었다.

‘외래 진료도 은근히 적성에 맞는 것 같네. 환자가 어떤 문제를 궁금해하는지도 많이 알 수 있겠어.’

시간에 쫓기며 엄청난 부담을 가져야 하는 응급실 환자와는 달리 대화 내내 여유가 있었다. 예전에는 미처 환자들과 나누지 못한 사안들까지 주고받는 것 역시 무척 즐겁고 흥미로웠다.

바로 다음 환자가 들어왔다.

‘이번 환자는 조금 갑갑하네.’

5개월 전, 간 내 담석으로 수술한 환자였다. 복부 CT를 다시 시행했고, 여전히 배에 꽂혀 있는 T-tube 관리도 필요했다. 그 탓인지 기미선 환자보다 주저하는 기색이 더욱 역력했다.

솔직하게 상황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환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진료에 응했다.

꼼꼼하게 T-tube 기능을 확인하고, 복부 CT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재발은 하지 않았고, 환자의 질문에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러나 경험 부족은 금방 티가 나기 마련이다.

간 내 담석증은 복잡한 질환인 데다, 외래 경험까지 없는 탓에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하는 실수를 했다. 운이 좋은 건지, 환자 성격이 좋은 것인지 몰라도 그런 면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도리어 자신의 몸이고 건강이기에 같은 소리도 열심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어떻게든 만회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말이 꼬였고, 마침내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어후! 아까 한 말을 또 했네. 설마 다른 소리를 한 건 아니겠지? 이거 생각보다 훨씬 어렵네.’

어려울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배웠다.

어지러운 머릿속을 수습하고, 환자를 대하는 의사의 기본적인 자세를 최대한 유지했다. 스승의 마음에 부응하고, 절대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다행이다.’

환하게 웃고 나가는 환자가 너무 고마웠다. 제법 당황했었는지 뒷덜미가 축축했다.

김지훈이 털썩 의자에 몸을 기댔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기미선 환자는 첫 환자라고 하늘이 도운 모양이었다.

마지막 환자가 들어왔다.

복강경으로 아뻬를 한 환자였다.

아뻬라면 거의 100퍼센트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질환이다. 환자들의 의문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환자는 이러저런 걱정이 많았다.

“맹장 수술을 하고도 장이 꼬여서 또 수술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드물게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복강경으로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에 장 유착이 발생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런데 흉은 여기서 더 안 없어지나요?”

입이 쉴 틈이 없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수술 이후에 이상하게 잠이 안 오고,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혹시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요?”

“갱년기 증상일 수도 있겠네요. 죄송한데, 그 문제는 산부인과 선생님과 상의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희는 아무래도 수술을 하는 과라 부인과 쪽 문제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전문의신데 정말 모르시나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뒤로도 몇몇 질문이 이어졌다.

결국 꼬박 한 시간을 다 쓰고서야 환자 3명을 다 볼 수 있었다.

성심성의껏 무사히 봤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는 했다. 하지만 입안은 텁텁했고, 마치 긴 수술을 한 것처럼 어깨가 결리면서 맥이 탁 풀렸다.

보람과 피로는 확실히 비례했다.

“어후! 외래도 만만치 않네요.”

“선생님은 특히 그러시겠어요. 내과 안 하시길 정말 잘하셨네요.”

“갑자기 내과는 왜요?”

“한 시간 동안 3명 보셨어요. 내과는 환자 한 명당 3분밖에 진료를 못하는데 어떻게 보시려고요? 덕분에 저도 다리 아파 죽겠네요.”

“그러네요. 내과도 참 대단하네.”

고개를 끄덕이던 김지훈이 흠칫 놀라며 간호사를 보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앉아서 말만 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한 시간 내내 꼬박 서 있었다. 특별히 한 일도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미안하기만 했다. 앞으로 진료 방식을 바꾸든지, 아니면 다른 수를 찾아야 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럼 앞으로 내가 진료할 때는 상황 봐 가면서 우리 김 간호사도 여기 옆에 앉아서 같이 봅시다.”

“제가요?”

“문제 될 거 뭐 있어요? 진료 내내 힘들게 서 있는 것보다는, 내가 혹시 실수하거나 착각할 때 옆에서 바로 알려 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나도 그게 유리하고 편하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외래 간호사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말씀만으로도 정말 고맙네요.”

환자를 보는 원칙과 의사와 간호사 사이에 반드시 지켜야 할 자세만 준수한다면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다. 도리어 좋은 관계로 말미암아 환자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었다.

기대하지 못한 효과까지 바로 나타났다. 간호사의 손에 따스한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다.

입안 가득했던 텁텁함과 뻐근한 어깨 결림이 쌉쌀한 블랙커피의 향을 따라 사라졌다.

‘지킬 것만 확실하게 지키면 서로 친해져서 나쁠 일이 뭐가 있겠어. 의사와 간호사를 떠나 다 같은 동료잖아.’

커피 잔을 든 김지훈이 환하게 웃다 말고 콧등을 찡그렸다. 오래간만에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게다가 몇 달 동안 고경아가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 주었다. 그 탓인지 배 속에서 요란한 신호가 울렸다.

명색이 펠로우인데 이제 구내식당에서 시간 딱 맞춰 점심 식사를 해도 좋을 것이다. 마침 이준영 교수의 수술도 끝날 때가 됐다. 얼른 올라가서 함께 식사하자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기만 했다.

‘스승님과 점심 식사를 처음 함께하는 건가?’

우습지만 정말 처음이었다.

아니, 전공의 때는 점심 식사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남들이 들으면 웃겠지만 나름 희한한 기대를 걸며 일어서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외래 간호사가 약간은 안타까운 얼굴로 전화기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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