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66화 (566/1,329)

제10화 새로운 시작 (1)

막 샤워를 마치고 얇은 잠옷을 입은 고경아의 뺨이 수줍게 물들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살포시 안았다. 살짝 손을 빼다 못 이기는 척 품에 안겼다.

“사랑해요, 경아 씨.”

숨이 가빠진다. 은은한 조명 속에서 한 이불을 덮었다. 두 손을 마주 잡고 뜨거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부드러운 살결과 달콤한 입술에 온몸이 활화산처럼 뜨거워졌다.

됐다. 첫날밤이 이보다 더 세련되고 완벽할 수는 없다.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나머지는 황새가 아니면 삼신할미가 알아서 다 해 줄 것이다.

우워워워워!

늑대가 밤새 울었다.

첫날밤이 꿈결처럼 지나갔다.

***

제주 하면 볼거리도 많지만 먹거리 역시 유명하다.

싱싱하다지만 회는 어디서나 먹을 수 있다. 그보다는 객주리(쥐치) 조림, 흑돼지, 갈치, 혹은 고등어조림, 그리고 오분자기 뚝배기는 꼭 먹어 봐야 한다. 제주 고유의 고기 국수는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만 추천한다.

단, 관광지가 아니라 제주도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을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맛의 차이는 가히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부 음식은 시간이 지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비싸질 수도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오분자기 뚝배기가 그렇다. 어쩌면 전복 뚝배기보다 말이다.

택시나 버스 타고 이동.

밥 먹고 구경하고 또 이동.

승용차가 아니더라도 즐겁고 행복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시내버스를 타는 재미도 쏠쏠했다.

에메랄드빛 바다도 그때 처음 보았다.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고, 그 빛을 받은 고경아는 더욱 아름다웠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시도 때도 없이 늑대가 울었다. 두 번째 밤도, 세 번째 밤도 넘치는 힘으로 손을 잡고 눈을 마주쳤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말이다.

황새는 몰라도 삼신할미에게는 그 정성이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전해질 것이다.

행복한 시간은 참 빨리도 흐른다.

어느새 마지막 날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경아의 안색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한숨을 푹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날까?

비행기 표가 없단다.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카르페 디엠!

재빨리 장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려 주어야 할 그놈, 장인 친구 아들의 행적이 묘연했다. 설상가상 예약 번호를 모르면 새로 끊어야 한단다.

시간이 없다. 하룻밤 더 머물까 생각은 했지만, 결혼식 마무리는 신혼여행으로 끝이 아니었다.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그래도 운은 좋았다. 남은 좌석이 있었다. 대신 마치 신혼여행 동안 대판 싸우고 도장 찍으러 가는 부부처럼 따로 앉아야 했다.

자리를 바꾸려고 했지만,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누군지 알 수 없어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하필이면 그때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가 요동을 쳐 은근히 소름이 돋았다.

‘어후! 정말 별일이 다 벌어지네. 그런데 도대체 그 사람은 여행사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아는 사람일수록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거 아냐? 확 망해 버려라.’

김포에 도착하고 나서야 고경아와 눈물겨운 재회를 했다. 잔뜩 화가 나 장인에게 전화부터 하려는 고경아를 간신히 말렸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난 짜증 나 죽겠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요?”

“경아 씨,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우리만큼 재밌게 보낸 부부가 있을까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렇다. 정말 잊지 못할 결혼식과 신혼여행이었다. 장인 덕에 결혼식 날의 치명적인 실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고경아의 화살은 이제 깐깐한 장인에게로 향할 것이다.

원주로 가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는 동안 장인이 안절부절못했다. 고경아의 눈빛이 안 좋아질 때마다 옆구리를 툭툭 치며 눈치를 주었다.

좋은 날에는 좋은 소리만 하는 게 인생 잘 사는 법이다.

그 덕인지 장인의 목소리가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고경아와 속닥속닥 대화를 나눈 장모가 미안해하면서도 나중에 추억이 될 것이라며 등을 토닥였다.

사필귀정!

얼마 후, 여행사가 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것처럼 후련했다. 인생 실전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으면 그 정도 쓴맛은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좋아하면 안 되는데.’

입가에 미소가 절로 걸렸다.

***

공부할 분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고3 수험생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아침저녁으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먹고, 출퇴근할 때마다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걷는 재미는 누구도 모를 것이다.

그것이 부부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도 웃을 수 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의 등을 내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다만, 한동안 짓궂은 말을 감수해야 했다.

“지훈아, 어젯밤에 뭐했어? 눈이 완전히 토끼 눈이네. 아무리 좋아도 잠은 좀 자라, 인마.”

평소에 재미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영화가 시험 때는 이상하게 재밌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밤늦게까지 TV를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지훈아, 어젯밤에 뭐했어? 하루 종일 실없이 웃는 게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너무 티 내지 마라.”

밤과 웃음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단 말인가?

별 시답잖은 소리에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넘치는 체력이 아니었으면 웃음 대신 병든 닭처럼 졸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났다.

여느 때처럼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그때 문득 백제 병원을 리모델링한 외과 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거의 공사가 끝난 것처럼 보였다.

외과 센터를 알리는 커다란 간판, 반짝이는 외벽, 본관과 연결된 통로, 응급 차량이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는 도로.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얼마 전, 이혁민 교수에게 정식으로 펠로우 신청을 했다. 전문의 시험을 보기 전에 가부간의 결정이 난다. 병원에 남게 된다면 외과 센터에서도 근무하게 될 것이다.

궁금증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현수야, 오픈이 언제인지 알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내년 초로 알고 있어.”

“그래? 공사도 거의 다 끝난 것 같은데 생각보다 상당히 늦게 여네.”

“듣기로는 수술실까지 만들 예정이래. 진료부터 응급 수술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거지. 그것 때문에 설치해야 할 장비도 엄청 많지 않겠어?”

“야! 확실하게 만드네. 센터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일할 맛 팍팍 나겠다.”

손일석이 투덜거렸다.

“어이구! 그럼 뭐하나. 난 군대 가야 하는데. 경석이 형하고 너희 둘이 잘해 봐라.”

“아직 결정도 안 났는데 뭘 잘해 봐, 인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욕심이 났다.

첨단 시설을 구비한 외과 센터라면 지금 시설로는 구하기 힘든 환자들을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몇 달에 한 명일지라도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일단 전문의가 되고 볼 일이었다.

***

결혼한 날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월의 끝이 보였다. 서서히 단풍이 들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신현수가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인 덕에 교과서와 문제집을 예정 기한 내에 일독할 수 있었다.

뿌듯했다. 거의 한 달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충분히 붙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상대평가라면 모르지만 자격시험이기에 절대평가로 당락을 결정한다. 떨어지면 스스로에게도 정말 창피한 일이었다.

수련 때보다 몸은 편하지만, 머리는 극도로 밀어붙여야 할 치열한 일상이 이어졌다.

11월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어느새 옷깃을 여며야 하는 12월이었다.

어느 날 병원 직원이 조용히 김지훈과 이경석을 찾았다. 이사장실 직원이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면담을 원한다는 말과 함께 날짜를 주고 갔다. 드디어 결정을 내릴 모양이었다.

이경석이 심호흡을 했다.

“지훈아, 펠로우 얘기겠지?”

“그렇지 않을까요? 형, 우리 떨지 말고 당당하게 면담하고 내년에 꼭 같이 근무하죠.”

“그래야지. 내가 먼저 면담하니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으면 바로 알려 줄게.”

고경아의 근무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득달같이 수술 방에 전화를 했다. 반색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결정이 난 것처럼 좋아했다.

(지훈 씨, 축하해요. 우리 남편 최고!)

책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고경아와 퇴근을 할 때도 가슴을 좀처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바로 다음 날 면담이 잡히지 않았다면 초조하고 답답해 죽을 뻔했을 것이다.

다음 날 오후.

이경석이 시간에 맞춰 이사장실로 향했다. 누가 또 펠로우를 신청했는지 모르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남몰래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미 정해진 것일까?

면담을 하고 온 이경석이 입을 꾹 다문 채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지훈이 눈길을 주자 눈가에 힘을 주며 활짝 웃었다. 확실하게 결정이 난 것이다.

‘경석이 형, 축하해요.’

‘고맙다. 너도 축하해.’

별말이 없는 것을 보니 편안한 가운데 면담이 진행된 모양이었다.

숙소에서 나와 마음을 다잡고 옷매무새를 살폈다. 고경아가 미리 준비해 준 넥타이를 매고, 새 구두로 갈아 신었다.

고경아의 말마따나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똑똑똑!

“들어와요.”

“안녕하십니까? 김지훈입니다.”

“김지훈 선생, 앉아요.”

비서가 커피 한 잔을 내왔다. 이런 상황에서 커피가 넘어갈 리 없었다. 자세를 똑바로 하고 신동석 이사장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미 알고는 있겠지만, 펠로우 문제로 보자고 했습니다. 간담도를 세부 전공으로 택했다고요. 그러면 이준영 교수님과 함께 근무해야 하겠군요.”

신동석 이사장이 존대를 했다.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적인 자리다. 그만큼 말 한마디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덕분에 내 입장이 편해졌어요. 이경석 선생은 대장을 택하고, 신현수 선생은 위장관을 택했으니까 부딪칠 일도 없군요. 다행입니다.”

다행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신동석 이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외과와 외과 센터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꺼내며 확고한 비전(Vision)을 제시했다. 펠로우를 지원한 전공의에게 하는 말치고는 거창했지만 분위기상 거의 확실해졌다.

어제 고경아와 연습한 말을 해야 할 때였다.

“뽑아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미처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신동석 이사장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마치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것 같았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미 마음의 결정은 내렸어요. 그런데 김지훈 선생은 어디까지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 병원에서 끝까지 근무할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실력이 뛰어난 의사가 경력까지 쌓으면 여기저기에서 손을 내밀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중간에 떠날 사람에게 투자하고 싶지는 않아요. 욕심이 과하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그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교 병원이기도 했지만, 최고의 수술 팀을 꾸릴 수 있는 동기들이 모두 이 병원에 있다.

더구나 이준영 교수를 스승으로, 이혁원 교수는 멘토로 모시고 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총애하는 송재덕 교수는 물론 신기동 교수에게도 아직은 한참 더 배워야 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김지훈이 당장 답을 하지 못하자 신동석 이사장이 약간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갔다. 이상한 일이다.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솔직하게 말하죠. 이경석 선생과는 펠로우까지 정식 계약을 하기로 했지만, 김지훈 선생과는 보다 멀리 보고 계약을 하고 싶어요.”

“멀리 보다니요?”

“전임 강사는 물론 조교수까지 보장할 용의가 있어요. 물론 그만한 실적과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지금처럼 해 주면 정교수가 되는 일도 걱정할 것이 없다고 봅니다.”

펠로우는 시간 강사다.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반면 전임 강사부터는 정식 교직원 신분이기에 스스로 떠나기 전에는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실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 전문의 시험도 보기 전이었다.

“내가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까?”

“예. 솔직히 당황스럽습니다.”

신동석 이사장의 눈빛이 묘했다. 조금은 안심하는 눈치였다.

‘내가 놀랄 정도로 현수가 자네와 끝까지 함께 일하기를 바라고 있어. 자네 능력이 내 눈에 못 미쳤으면 그 자리에서 반대했겠지만, 사실 나도 굉장히 욕심이 나. 그런데 억지로 잡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더군. 내가 제안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니까 충분히 고민을 했으면 해.’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다 거두절미하고, 우리 병원이 김지훈 선생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어요?”

김지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일만도 아니었다. 이경석이나 훗날 손일석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했다.

개인적인 영달과 이익, 그리고 명예만을 쫓는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써전이 되는 것이 꿈이자 희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동기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최고의 수술 팀을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더군다나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결론을 내렸다.

“이사장님,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경석 선생이나 저나 다를 바가…….”

신동석 이사장이 갑자기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이래서 내가 김지훈 선생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다니까.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아들여도 괜찮아요. 그리고 특별한 대우라고 했습니까?”

“예. 그렇지 않습니까?”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면 맞는 말이겠죠. 김지훈 선생은 지금 합당한 제안을 받은 겁니다. 그리고 이 제안은 결코 김지훈 선생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병원에 큰 이익을 가져올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게 곧 내 이득이죠. 세상은 받은 게 있으면 그만큼이 아니라, 그 이상을 주어야 성공할 수 있어요. 난 내 자신과 병원을 위해서 김지훈 선생이 가진 모든 능력을 원하고, 김지훈 선생은 병원과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겁니다.”

수긍이 되면서도 약간은 혼란스럽다. 인생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그토록 바라던 일이 너무 수월하게 해결되다 못해 과분한 제안을 받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어쨌든 너무도 갑작스러운 제안에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입술을 모았다.

‘역시 능력 있는 의사를 잡는 게 쉽지는 않네. 결국 이준영 교수의 말까지 들어야 결정을 내릴 것 같군. 내 마음과 다른 결정을 내린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인연이 여기까지인 걸 어쩌겠어. 그게 순리고 말이야.’

과욕은 금물이었다. 사람은 마음으로 얻어야 한다. 무리한 인사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 금경태가 확실하게 알려 주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김지훈도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마지막 제안만이 남았다.

“김지훈 선생.”

“예, 이사장님.”

“이왕 특별하다고 느낀 이상, 조금 더 특별한 제안을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죠.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형식은 펠로우지만 내용은 전임으로 대우하겠습니다. 단, 과 내의 일은 교수님들의 권한이니까 경제적인 문제를 말하는 겁니다.”

파격적인 정도가 아니었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는 생각과 동시에, 고경아는 물론 이준영 교수와도 상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장래를 결정하는 일이 의외로 어렵게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허어! 너무 신중해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오래는 못 기다리고, 내일까지 결정을 해서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실타래처럼 꼬였다. 가슴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바깥바람을 쐬며 커피 한 잔을 했지만 정리가 되질 않았다.

‘무조건 좋은 일인데, 왜 도리어 힘들지?’

그때 이혁원이 반색을 하며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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