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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562화 (562/1,329)

제8화 수련의 끝 (1)

역시 짧은 이론과 부족한 경험이 문제였다. 그렇다고 해도 정말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어쩌면 교수들은 전공의 수준 이상을 원하는지도 몰랐다.

“창피당하기 딱 좋다.”

“왜 이렇게 이론이 부실하지? 이제 논문 좀 쓴다 싶었는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 이래 가지고 지식을 쌓는 것은 고사하고, 질문에 대답이나 제대로 할 수 있겠나?”

치프들의 준비를 함께 점검한 신기동 교수의 눈이 서늘해졌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차가운 기운이 감돌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송재덕 교수 역시 눈가를 찌푸린 채 혀만 찼다.

“이거, 이거 문제다. 니들 끝날 때까지는 야야야! 소리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지훈아, 치프야, 어떻게 생각하니. 응? 나 화나면 무섭다. 무서워. 알지?”

헉 소리가 터졌다. 수술 시연의 중요성은 알지만, 무의식 속에서도 최대 공포로 자리 잡고 있는 ‘야야야’까지 언급할 줄은 몰랐다. 식은땀을 죽죽 흘리던 치프들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교수들과 함께 수술 방으로 가 시연 준비를 점검했다. 교수 휴게실의 TV에서 라파로 화면이 뜨는 순간 긴장이 확 치솟았다. 병원과 의료진의 체면까지 달린 엄중한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지적받은 부분들 확실하게 점검해.”

부리나케 의국으로 달려가는 치프들을 보던 교수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송재덕 교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잘 자랐다. 해 준 것도 없는데 정말 잘 자랐어. 자자! 우리도 가자. 내일 시연 정말 재밌겠다. 기대된다. 기대돼. 그치? 준영아, 내 말이 맞지?”

교수들과는 달리 치프들은 초비상이었다.

김지훈은 아예 숨도 쉬지 못하고 달렸다. 다른 치프들보다 할 일이 훨씬 많았다.

모두 다 이준영 교수 환자다. 수술할 환자들을 만나 일일이 시연 시 촬영 동의를 받았다.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환자가 한 명 있어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의학 발전을 위한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하는 환자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시연을 점검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럴 때는 충분하게 자야 돼. 제발 응급만 뜨지 마라. 송미경 환자도 파이팅합시다.’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다. 창문 밖이 환해질 때까지 전화벨은 조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는 법이다. 한참 단잠에 빠져 있던 김지훈이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

공정식이었다.

(지훈아, 빨리 송미경 환자 병실로 와.)

심각한 목소리였다.

송미경 환자의 얼굴이 창백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보호자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정식아, 무슨 일이야?”

공정식이 조용히 화장실로 가 변기 뚜껑을 열었다.

시뻘겋다. 구강 출혈에 이어 대장 점막 출혈까지 발생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지만 다행히 바이탈은 안정적이었다. 송미경의 창백함은 심리적 충격 때문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지켜볼 여유는 없었다. 즉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노티를 했다.

송미경 환자의 상태를 본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피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피해야 할 치료가 수술이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하필이면 수술 시연 날이다.

“김지훈, 미룰 수 있겠어?”

“안 될 것 같습니다. 구강 출혈에 혈변까지 동반된 데다 방금 나간 혈액 검사에서 혈소판 수치가 2만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다른 합병증이 언제 발생할지 모릅니다.”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뇌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다. 누구도 그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기에 더욱 두려운 상황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내과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다. 혈변까지 발생한 마당이었다. 다른 선택은 없었다.

보호자가 바로 동의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술은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복강경으로 시도하겠습니다. 다만 중간에 문제가 생기면 개복을 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를 거론하긴 했지만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힐끗 김지훈에게 시선을 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믿는다는 말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수술의 위험성과 동시에 라파로의 당위성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라파로를 이용한 비장 절제술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김지훈은 입을 꾹 다문 채 눈빛을 굳혔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김지훈, 준비해.”

“예, 선생님. 특별히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없어. 너희들이 계획한 대로 하자.”

“수술 시연은 어떻게 합니까?”

이준영 교수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이 수술부터 하고 생각하자.”

응급 수술이다. 수술 방은 한참 정규 수술을 준비로 바쁠 것이다. 일단 첫 수술을 취소하고 송미경 환자부터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빨리 움직여야 했다. 수술 기구부터 시작해 준비할 것이 많았다.

“도진아, 송미경 환자 수술한다. 난 수술 챙겨야 하니까 이준영 선생님하고 회진 돌아.”

“예, 선생님. 근데 혹시 라파로로 하나요?”

“응. 라파로야.”

회진을 기다리고 있던 의국원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보았다. 함께 준비를 했건만 치프들 역시 놀라는 기색이었다.

“일석아, 정말 라파로로 할 모양이다?”

“형, 지금까지 쌔빠지게 준비했는데 당연하지. 이거 시연보다 훨씬 기대가 되네. 어라? 그럼 시연은 어떻게 되는 거야? 예정대로 진행하겠지?”

신현수가 시계를 보며 피식 웃었다.

“시간상 수술 시연이 네 개가 되겠네. 오늘 오시는 선생님들도 다른 수술은 봤겠지만 비장 절제술은 확실히 처음이겠지? 성공하면 상당히 놀라겠다. 좋은 기회야.”

실패할 가능성을 절대 배제할 수 없었지만, 성공하면 병원과 의료진의 위상이 달라질 것이다.

신현수는 전공의를 넘어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할 때일지도 몰랐다.

소식을 전해 들은 교수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야! 이거 기회다, 기회. 성공만 하면 환자도 좋고 우리도 좋고, 다 좋네. 이 교수, 긴장하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하자. 그러면 당연히 성공한다.”

평소 하던 대로 하라니, 전공의도 아닌데 별말을 다 한다. 내심 시연을 뒤로 미룰 생각을 하고 있던 이준영 교수가 살짝 눈길을 주었다.

다들 흥분과 기대 속에서 회진을 돌았다.

그 시간, 김지훈은 고경아와 머리를 맞댔다. 수술 과정을 설명하며 필요한 기구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고경아의 경험은 대단했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들을 말하며 몇 개의 기구를 더 준비했다.

“고 간호사, 고마워요.”

“긴장하지 마시고 퍼스트 잘 서세요.”

병원만 아니었으면 확 끌어안았을 것이다.

라파로로 비장을 절제할 사전 준비를 모두 끝냈다.

이제야 수술실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라파로 본체에서 교수 휴게실로 이어진 기다란 선과 구석에 설치된 비디오카메라를 보는 순간 새로운 긴장이 몰려왔다.

분명 송미경 환자의 수술도 보게 될 것이다. 불가피한 경우라면 모르지만, 실수로 인해 실패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체면이나 망신 때문이 아니라, 일종의 소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발전을 위한 도전, 그리고 환자의 회복.

‘환자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해야 돼.’

김지훈이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수술 방 한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낯선 얼굴을 따라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수술 시연을 보기 위해 온 의사들이었다. 생각보다 인원이 많았고, 일부는 직접 수술실에서 참관할 셈인지 덧 가운을 입고 있었다.

이준영 교수를 비롯해 교수들 모두 반갑게 맞이했고, 허경발 원장까지 얼굴을 보이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다들 기대를 품고 있었다. 여기에 첫 수술로 비장 절제를 한다는 말이 나오자 상당히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허허허! 국내에서는 첫 시도일지도 모르는데, 이 교수 어깨가 무겁겠어. 잘해 낼 것이라고 믿어. 김지훈 선생이 퍼스트를 서나?”

“예, 선생님.”

“이런 수술은 집도의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이 교수와 손을 잘 맞춰야 해.”

허경발 원장의 말에 김지훈이 눈가에 바짝 힘을 주었다.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참관할 의사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TV로 본다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지만, 보다 가까이서 생생하게 보고 싶다는 마음일 것이다.

이준영 교수도 긴장이 되는지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김지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고경아의 마스크도 불룩해졌다.

짧은 침묵이 끝났다.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예. 시작하십시오.”

“메스.”

이준영 교수가 배꼽 아래를 1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메스가 지나간 자리를 따라 뻘건 피가 흘렀다.

혈소판 농축액이 들어가고 있었지만 과도한 출혈 양상이었다. 일시적으로 수치가 상승한다고 해도 절대적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최대한 지혈을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과도한 출혈만 통제한 이준영 교수가 10밀리미터 트로카를 찔렀다. 전에 없이 신중했다. 복벽을 이루는 조직들의 감촉을 하나하나 느껴 가며 최대한 출혈 부위를 피했다.

툭!

복막이 뚫렸다. 카메라를 밀어 넣은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뱉었다. 뚫린 구멍에서 떨어진 피가 이미 장기를 적시고 있었다. 확대된 채 보여 실제보다 많아 보인다고는 하지만 무시하기 힘든 양이었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두 번째 구멍을 뚫었다. 카메라를 비추자 피가 뚝뚝 떨어졌다.

세 번째, 네 번째 구멍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통상 이 정도 출혈을 보인다면 먼저 지혈부터 해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김지훈이 도리어 고개를 끄덕였다.

‘개복을 했으면 지금보다는 지혈이 수월하다고 해도 출혈량은 훨씬 많았을 거야. 반드시 성공해야 돼. 배를 열면 정말 큰일 나겠어.’

배 속을 확인했다. 정상보다 1.5배 정도 커진 비장이 보였다. 위와 비장을 연결하고 있는 지방조직은 약해 보였다. 더구나 군데군데 점상출혈까지 보여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집도의와 퍼스트의 손발이 확실하게 맞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힐끗 김지훈을 본 이준영 교수가 켈리를 잡았다. 위와 연결된 지방조직의 끝 부분을 조심스럽게 뚫었다. 스르륵 피가 번지며 노란 지방조직을 빨갛게 물들였다.

지혈할 방법이 없었다. 우징(Oozing)처럼 조직에서 새어 나오는 피이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켈리를 조작해 구멍을 넓힌 후, 지방조직 양쪽을 잡고 잘랐다. 그 상태에서 위장 쪽은 두 개의 클립으로, 비장 쪽은 클립 하나로 잡았다.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피다. 또 피다.

절단면을 따라 흐르는 피를 석션까지 해야 할 정도다.

완벽한 지혈은 불가능하다. 단지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일 뿐이었다.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

조금씩 비장이 위에서 분리됐다. 마침내 비장 동맥을 묶어야 할 순간이 왔다. 그동안 담낭 절제술을 하며 무수하게 동맥 결찰 경험을 쌓아 왔지만, 굵기나 위험도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가장 작은 켈리로 동맥 주변 조직을 박리했다. 만일 주변 조직이 끼어 들어가 동맥이 느슨하게 묶인다면 수술 후 급격하고 과다한 출혈이 발생할 수 있었다. 손도 못 쓰고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준영 교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보조를 하는 김지훈은 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켈리는 계속 움직였다. 피가 번지며 주변이 뻘겋게 물들었다. 동맥은 아직도 확실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모든 의료진들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누군가는 입을 꽉 다문 채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누군가는 마치 자신이 수술을 하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다 말고 움찔거렸다.

째깍! 째깍!

시계 소리만 들렸다.

서서히 동맥이 맨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불과 2센티미터도 안 되는 길이를 확보하는 데 10분 이상이 걸렸다. 짧은 시간일 수도 있었지만 김지훈에게 이렇게 긴 시간은 없었다.

“클립.”

마침내 동맥을 클립으로 잡고 잘랐다. 비장이 급격하게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운 빛깔을 띠어야 하는데, 여전히 선홍빛이 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선생님, 부동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

하필이면 부동맥이 존재하다니, 지금까지보다 훨씬 위험하고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다. 비장 동맥보다 더 가늘고 약할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부동맥을 찾지 못한 채 지방조직과 함께 묶으면 환자의 몸속에 시한폭탄을 남기는 꼴이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의 손이 더욱 신중해졌다. 조금씩 조금씩 지방조직을 분리하고 잡았다.

단순한 과정의 반복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위험한 과정이었다. 위와 연결된 지방조직이 불과 3~4센티미터 정도만 남을 때까지도 부동맥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혹시 지나친 것은 아닐까? 불안이 엄습하던 그 순간 김지훈의 손이 갑자기 멈췄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돌렸다.

“앞부분에 부동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확신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방조직을 조심스럽게 제치는 순간 아주 가느다란 동맥이 보였다. 극도의 집중력이 아니었다면 지나치고도 남을 정도로 가늘었다.

누군가 나직한 탄성을 터트렸다. 김지훈의 귀에는 들릴 리가 없었다.

부동맥 주변 박리가 시작됐다. 단 1밀리미터라도 어긋나면 부동맥이 잘릴 수 있었다.

결국 마취과 간호사가 이준영 교수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야 했다. 김지훈 역시 온몸이 흠뻑 젖은 지 오래였다.

5밀리미터, 10밀리미터, 15밀리미터.

확연하게 드러난 채 심장박동을 따라 펄떡이는 부동맥을 잡았다. 가느다란 클립과 거의 비슷한 굵기였다. 동맥 끝에 매달려 있는 클립이 위태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묶었다. 이준영 교수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이제 조금만 더 진행하면 비장은 완전히 분리된다.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비장이 분리됐다. 이준영 교수가 이제야 살짝 기지개를 펴며 몸을 풀었다.

아주 짧은 휴식을 끝으로 수술을 재개했다. 비장을 어떻게 배 밖으로 끄집어낼지가 상당히 궁금한지, 모두들 흥미롭고도 기대 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 배를 연다면 정말 의미 없는 수술을 한 것이다.

“고 간호사, 비닐봉지 준비됐지?”

“예, 선생님.”

비닐봉지와 함께 콘돔을 집어넣었다. 거대해진 비장을 상당히 질겨 보이는 비닐봉지에 넣었다. 작은 라파로 기구로는 그조차 힘들었다.

이준영 교수가 라파로 기구 중 가장 큰 켈리로 비닐봉지 안에 든 비장 일부를 사정없이 짓이겼다.

김지훈이 가장 굵은 석션기를 이용해 비장 부스러기들을 제거했다. 흡입으로 제거하기 어려운 비장 조각은 콘돔에 넣고 끄집어냈다.

누가 보아도 무식한 방법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고, 그것이 최선이었다.

예상대로 작은 기구로 거대해진 비장을 부수는 것은 상당히 힘들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번갈아 가며 비장을 짓이긴 끝에 마지막 덩어리까지 제거할 수 있었다.

언제든 수술 부위에서 출혈이 발생할 수 있다. 우징처럼 새어 나오는 피라도 양이 많으면 개복을 해야 한다.

이를 사전에 알기 위해 배 속을 깨끗하게 씻고, 드레인을 심었다. 피부를 봉합하는 동안에도 드레인에서 피가 섞인 물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조금은 불안했지만 비장이 제거됐으니 더 이상 혈소판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보충되고 있는 혈소판은 분명 본래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다.

송미경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랐다.

마지막 봉합이 끝났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송미경이 거칠게 움직였다. 수술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가쁜 숨을 연거푸 내뱉었다.

‘환자분, 수술 잘됐으니까 꼭 좋아져야 합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자료조차 확보할 수 없었던 수술을 성공했다. 하지만 그보다 송미경의 힘찬 움직임에 가슴이 벅찰 뿐이었다. 치프들과 머리를 맞댄 보람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지금 느끼는 뿌듯함과 가슴 벅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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