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61화 (561/1,329)

제7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2)

목소리가 조금은 다급하게 들렸다.

(지금 시간 되면 우리 병동으로 좀 올래?)

“왜? 환자 있어?”

(일단 와서 상의부터 하자.)

정말 간만에 공정식과 통화를 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치프가 직접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과 병동으로 향했다.

어떤 환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공정식의 얼굴이 좋지 못했다. 차트부터 건네는 것을 보니 응급 수술을 요하는 환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많은 검사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내과 특성도 있지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탓에 차트가 상당히 두툼했다.

꼼꼼하게 차트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복부 CT에 주로 백혈병에서 시행하는 골수 검사까지 한 환자였다. 그런데 모두 정상 소견이었고, 단 한 가지 검사만 눈에 확 띄었다.

말초 혈액 검사상 백혈구와 적혈구는 약간 감소된 소견을 보였지만, 혈소판 수치가 심각하게 떨어져 있었다. 단위당 보통 15만에서 45만 사이가 나와야 하는데 3만에 불과했다. 입원 초기에는 채 2만을 넘지 못하는 상태였다.

“혈소판이 너무 많이 떨어졌네. 출혈은 없어?”

“혈소판 수혈까지 했는데, 점막 출혈이 계속 발생하는 상태야. 스테로이드에 반응을 잘 안 하네.”

‘이런 상황에서 면역 억제 요법을 시행해?’

공정식의 말을 듣는 순간 질환 하나가 떠올랐다.

“ITP야?”

“응. 이 상태로 가면 비장 절제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발생 빈도가 높지 않다고 하지만, 평생 동안 수술까지 필요한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할 수 있는 질환이었다. 대단히 드문 경우였다.

김지훈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ITP!

Idiopathic Thrombocytopenic Purpura.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또는 Immune Thrombocytopenic Purpura.

(면역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

이라고도 한다.

특발성이란 말의 의미처럼 특별한 원인 없이 혈소판이 단위당 15만 이하로 감소하는 질환이다. 즉, 발병 원인을 모른다는 의미다.

면역성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혈소판을 파괴하는 자가 항체가 생기는 면역 질환이기 때문이지만, 결국에는 같은 질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주로 소아나 젊은 여성에게 발생하며, 6개월 이상 지속 시 만성으로 판정한다.

ITP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초진 2주 이내, 단위당 혈소판 수가 2만 이하, 점막 출혈 등의 증상 발생, 또는 뇌출혈의 위험을 높이는 두부 외상 등의 경우에 치료를 시작한다.

치료는 혈소판 수혈이나 스테로이드, 혹은 면역 글로부린 투여 등의 대증요법을 시행한다.

문제는 이런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경우다. 심각한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혈소판을 파괴하는 장기인 비장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과 치프 중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공정식의 판단이었다. 환자의 증상이 심해지면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말이었다. 이는 외과에게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환자 좀 볼 수 있을까?”

공정식이 앞장섰다.

25세 여자 환자, 송미경.

얼굴이 푸석푸석하면서도 동글동글했다. 살찐 것이 아니라 흔히 달덩이 얼굴(Moon Face)이라 불리는 스테로이드 부작용일 것이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 왔다는 방증이었다.

“환자분, 외과에서 왔습니다.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잠시 진찰 좀 해도 될까요?”

송미경이 말없이 환자복을 걷어 올렸다. 자반(멍)이란 말 그대로 다리가 온통 멍투성이였다. 어디 부딪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발생한 멍이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말고 휴지에 침을 뱉었다. 점막 출혈 때문에 휴지가 빨갛게 물들었다.

치료 중인데도 전형적인 증상을 보였다. 심각했다.

송미경이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선생님, 수술을 꼭 해야 하나요?”

단언해 대답하기 힘든 문제였다.

ITP 환자의 비장 제거는 마지막 수단이다. 수술 중 통제할 수 없는 출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외상으로 인한 경우보다 훨씬 위험도가 높았다.

또한 내과 치료가 진행 중이라 이준영 교수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알 수 없었다.

“내일 교수님과 다시 오겠습니다. 약물 치료에 반응을 보여 수술까지는 안 하셨으면 좋겠네요.”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송미경을 뒤로하고 다시 공정식과 상의를 했다. 수술 위험이 너무 컸다. 정식으로 컨설트를 내는 한편, 지금은 일단 약물 치료를 하며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숙소로 돌아가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수술을 하게 되면 개복을 해야 한다. 복부 절개 창 및 수술 부위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수술 전후의 출혈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다. 송미경은 다른 어떤 환자보다도 복강경 수술이 필요한 환자였다.

‘비장 절제도 라파로로 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도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동안 라파로를 위해 수많은 논문을 뒤졌다. 다른 질환 때문이었다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케이스가 없다는 말이었다.

수술 기구도 문제였다. 어떤 기구를 써야 할지 난감했지만, 비장을 배 밖으로 어떻게 꺼낼 수 있을지는 아예 감조차 오지 않았다.

더구나 송미경의 비장은 비정상적으로 커져 있어, 배 밖으로 빼내기 위해 배를 연다면 개복 수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때 문득 홍채연의 수술과 라파로 수술들이 떠올랐다. 전통적인 수술 방법이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고심 끝에 첫발을 내디뎠을 것이다.

그들도 의사고, 김지훈도 의사다.

스승과 교수들, 그리고 동료들이 있다.

‘혼자 고민하면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난 혼자가 아니잖아. 우리 모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아니, 당연히 찾을 수 있어.’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개복을 피할 방법이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와락! 문을 열자 수술 시연 준비에 몰두하고 있던 치프들이 인상을 썼다.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표정이었다.

순간 김지훈 역시 시연 문제가 마음에 걸렸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 환자를 위한 길이었다.

“미안한데, 잠시 내 말 좀 들어 봐.”

손일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째 기분이 안 좋네. 지훈아, 너 또 무슨 일을 들고 온 거야? 난 시연 준비하기도 바쁘니까 사절이다.”

“일석아, 현수야, 경석이 형, 시연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어.”

“야, 인마!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이 판국에 그런 게 어디 있어? 넌 자신 있는 모양인데, 방해하지 마라.”

김지훈이 못 들은 척하고 송미경에 대해 설명했다. 치프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개복을 하면 비장을 제거하는 것은 수월하게 할 수 있지만 동반되는 위험을 모를 리가 없었다.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본론을 꺼낼 때였다.

라파로로 가능할지 물었다. 놀라운 제안이기는 했지만, 라파로로 아뻬나 탈장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적어도 아는 범위 내에서는 시도한 의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김지훈만 바라보았다. 한참 만에야 손일석이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 자식이, 이제는 별생각을 다 하고 있네. 지훈아, 본 적도 없는데 라파로로 비장을 어떻게 제거해? 어떤 기구가 필요한지는 알아?”

신현수도 눈가를 찡그리고 있었다.

“기구를 어디에 넣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잘못 뚫으면 기구끼리 엉켜서 개복을 하는 것만도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어.”

“그러니까 상의를 하자는 거 아냐. 고민 좀 해 보자.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개복보다는 훨씬 안전하잖아. 남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수술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어?”

“그건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막강한 공력이 있었겠지. 최소한 전문의였을 거 아냐? 우리 전공의 4년차다. 수련 중인데, 명색이 치프면 뭐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김지훈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급기야 방법을 찾기 위해 수술 시연에서 빠질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열정이다. 환자를 위한 마음이다. 발전을 위한 도전이다.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던 신현수가 은근히 뜨거워지는 가슴을 느끼며 볼펜을 탁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전화기를 집었다. 인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턴 선생, 내일 아침에 시간 나는 대로 라파로로 비장 절제를 한 케이스가 있는지 찾아와.”

손일석과 이경석이 입맛을 다시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현수 너까지 이런단 말이지. 좋아. 찾아보자. 까짓것, 자료가 없으면 맨땅에 헤딩하지, 뭐. 어이구! 하필이면 일복이 터지다 못해 만드는 놈이 친구일 게 뭐야.”

“오케이! 나도 돌아가진 않지만 머리 좀 보태마. 만일 성공하면 대단한 영광이잖아. 솔직히 수술 방법을 함께 찾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지 않겠어?”

모두 동의를 했다. 수술 방법을 강구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슴이 뜨거워졌다. 동기들과 또 한 번 모든 것을 쏟아부을 기회였다.

최고의 써전은 몰라도, 최고의 수술 팀은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다가왔다.

흥분과는 별개로 시간은 더 없어졌다. 무엇보다도 우선해 준비할 일도 끝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뜨고 각자 시연 준비에 몰두했다. 어떤 수술을 들어갈지 모르기에 준비할 양이 엄청나게 많았다. 수술 과정은 물론 그놈의 이론까지 발목을 단단히 잡았다.

누군가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훈아, 여기서 어떻게 나가는 거야?”

“지훈아, 탈장 수술할 때 이 부분이 걸리는데,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되냐?”

질문 공세에 시달리느라 정작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토론 자체가 공부다. 진지하게 답을 하며 상의를 하는 사이 차근차근 머릿속이 정리됐다.

일거양득이다. 김지훈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걸렸다.

다음 날, 송미경 환자를 본 이준영 교수가 내과 교수들과 심각한 기색으로 상의를 했다. 혈소판 수치가 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만일 증상이 악화되거나, 혈소판이 다시 2만 이하로 떨어지면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술 전에 특별히 준비할 것은 없습니까?”

당연히 출혈을 방지하기 위해 혈소판을 올려야 한다. 하지만 환자의 몸이 스스로 혈소판을 파괴하는 질환이다. 수술 전 수혈을 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준비할 것이 없었다.

“전신 상태만 신경 써 주십시오.”

환자와 보호자에게 수술 가능성 및 위험성을 설명했다. 막연한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오자 송미경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환자분, 아직 결정된 것이 아닙니다. 증상이 호전되면 수술은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마음 편히 가지시고, 잘 치료받으시길 바랍니다.”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이준영 교수가 할 수 있는 말도 그것뿐이었다.

“김지훈, 공정식 선생과 함께 환자 상태 잘 체크해.”

병동으로 향하며 환자에 대해 말하던 이준영 교수가 갑자기 주제에서 벗어난 말을 꺼냈다.

“김지훈, 좋은 방법 없겠어?”

이준영 교수 역시 라파로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라파로로 가능한지 함부로 말할 단계가 아니었다. 최대한 알아보고 준비한 후에 가부를 말하는 것이, 환자에게나 스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찾아보겠습니다.”

김지훈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힘이 담겨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볼 제자였다. 이준영 교수가 입술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턴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정규 일과는 변함없었고, 응급실도 북새통이었다. 수술 시연 준비는 여전히 만만치 않아, 라파로로 비장 절제가 가능한지 고민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환자가 가장 중요했다. 아침저녁으로 송미경 환자를 찾아 상태를 살폈다. 혈소판 수치는 아슬아슬하게 2~3만 사이를 오르내렸고, 구강 출혈도 확실하게 멈추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만 상황이 나빠져도 수술을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환자분, 마음 편히 가지시고 힘내세요.”

의사로서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

치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수술 과정은 개복과 다를 바가 없다. 라파로 기구로 어떻게 손을 대신할지가 관건이었다. 머리를 맞대 가며 하나둘 방법이 나왔다.

“일단 카메라 들어갈 자리와 클립 들어갈 자리는 10밀리미터 트로카를 써야 하고, 나머지 두 자리는 5밀리미터 트로카를 이용하면 충분할 것 같아.”

“어디에 뚫어?”

“배꼽 밑으로 카메라를 넣은 후 비장 상방에 클립 들어갈 자리를 뚫고, 나머지는 각각 대각선 방향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역시 신현수다. 이 와중에도 고민을 무척 많이 한 티가 역력했다.

신현수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치프들의 의견이 이어졌다.

먼저 구체적인 수술 순서를 상의했다. 비장 동맥을 잡을 때의 유의점을 비롯해, 수술을 하는 동안 주의해야 할 점도 빼놓지 않았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비장을 어떻게 끄집어낼지도 관건 중 하나였다.

“지훈아, 비장이 상당히 크던데 그걸 어떻게 꺼내지? 담낭은 길게 늘어나니까 콘돔에 담아 뺄 수 있다지만, 비장은 딱딱해서 1센티미터짜리 구멍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뺄 수가 없잖아.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거하고 뭐가 달라?”

“비유가 세지만, 틀린 말도 아니네. 그냥 확 부숴 버리면 편하겠다.”

이경석의 말에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석이 형, ITP에서는 굳이 조직 검사를 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럼 부숴도 된다는 말이네.”

“그렇게 되나? 근데 뭘로 부숴?”

“머리 돌려 봐야죠. 현수야, 좋은 생각 없어?”

일단 물꼬를 텄다. 치프들이 머리를 맞댄 채 고민을 이어 갔다. 결국 가장 무식한 방법을 도출해 냈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라파로 기구로는 최선이었다.

“어후! 머리야! 솔직히 이 정도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 아냐? 되든 안 되든, 수술도 안 했는데 이상하게 뿌듯하네. 모진 강호를 헤치고 살아온 보람이 이런 건가?”

애먼 말이었지만, 신현수와 이경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김지훈을 보았다. 찬찬히 그동안 나눈 말들을 상기하며 정리한 김지훈도 동의를 했다.

손일석이 개운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김지훈이 마무리를 했다.

“좋았어. 그럼 수술 시연 준비부터 빨리 마무리하자. 내일 이준영 선생님하고 이혁민 선생님의 최종 점검 통과하지 못하면 열외라는 거 잊지 않았지? 미안하지만, 혼자 못난 놈 되는 거야.”

어느새 수요일 밤이다.

이제 이틀만 더 지나면 수술 시연이다. 불현듯 다급해진 치프들이 후다닥 움직였다.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으면서도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라지질 않았다. 말은 안 했지만 모두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한 상태일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이게 진정한 한 팀이 아닐까? 다른 거 다 떠나서, 우리가 함께 고민해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 하나로도 난 정말 고맙고 즐겁다.’

다음 날 아침 회진을 돈 후, 이준영 교수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송미경 환자의 상태를 노티하고,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 가며 라파로를 이용한 방법을 말했다.

이준영 교수는 말이 없었다. 묵묵히 생각에 잠긴 채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혼자 생각한 거야?”

“아닙니다. 치프들과 함께 상의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이준영 교수의 입가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잘했다.”

그러고는 평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일어섰다.

짧은 말 몇 마디뿐이었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수술 방법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치프들과 함께한 과정은 분명히 칭찬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무엇이 감사할까?

당연히 감사한 일이었다. 음성에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올바른 가르침을 주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의 반응을 전해 들은 치프들이 휘파람을 불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야! 그럼 우리가 생각해 낸 방법으로 수술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네. 어이구! 가슴이 왜 이렇게 뛰냐.”

손일석의 말에 신현수가 고개를 저었다.

“일석아, 수술을 안 하는 게 최선이다.”

일순 침묵이 흘렀다. 흥분과 감격으로 환자를 잊고 있었다. 솔직히 김지훈이 아닌 신현수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휴우! 이젠 현수 덕분에 환자부터 생각하게 되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신현수의 담담한 얼굴에서 문득 전에 없는 긴장이 느껴지기도 했다.

뿌듯함은 여기까지였다. 잠을 아껴 가며 최선을 다했지만, 교수들의 눈에는 언제나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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