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58화 (558/1,329)

제6화 세상보다 사람이 어렵다 (1)

주말이다.

지금도 살림살이를 장만 중이다.

뭐가 이렇게 많을까?

가구는 물론 TV와 냉장고에, 그릇도 모자라 수저까지 보러 다녔다. 장모와 고경아 뒤에서 얌전히 서 있다가, 뒤를 돌아보며 의향을 물으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2주 전에 본 것들을 또 보고, 또 봤다.

그 통에 상당히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고경아의 들뜬 미소와 장모의 잔잔한 잔소리가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를 일이었다. 그릇 하나를 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에서는 가슴이 뭉클할 지경이었다.

결혼 후 살아야 할 집을 보러 다녔다.

어느 집이나 고만고만했지만 여자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화장실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살피며 심각하기만 했다.

“경아야, 언덕에 있어서 그런지 다른 집보다 싸고 크네. 출퇴근하려면 다리는 아프겠지만 괜찮아 보이는데, 어때?”

“엄마, 집도 깨끗하고 생각보다 넓어서 좋긴 한데 병원까지 너무 멀어. 그리고 밤에는 골목길이 조금 으슥할 것 같아서 불안하네.”

“그래? 김 서방, 자네 생각은 어때?”

고경아랑 살지, 장모랑 살 집이 아니다. 더구나 위험한 밤길은 절대 사절이다.

“저도 조금 위험해 보입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이 집보다 비싸고 좁더라도 전에 본 집이 더 낫겠다. 경아야, 다시 가 보자.”

발품 꽤나 팔았다. 하루 종일 쌓인 피로가 발끝에 몰렸다. 하지만 장모가 고경희를 챙기는 사이 고경아와 단둘이 자리를 하자, 언제 그랬나 싶게 온몸에 힘이 꽉꽉 차올랐다.

“지훈 씨, 아까 본 집이 이렇게 생겼잖아요. 장롱하고 TV는 여기다 두고, 침대는 창가 쪽이 어때요? 그 집이 남향이라 아침에 햇빛이 심하게 들어오지는 않을 거예요.”

별걸 다 안다.

“남향이 그래요?”

“그 정도는 기본이죠.”

쉬지 않고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눈썹까지 찡그리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지금도 가슴이 벅찬데, 함께 잠들고 함께 눈을 뜬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미 결혼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사랑하니까, 좋으니까 결혼하는 것이다.

데이트할 때만큼 시간이 빨리 가는 적은 없었다.

어느새 일요일 밤이 깊어 갔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3개월도 안 남았네.’

오는 내내 은근히 가슴이 떨렸다.

***

월요일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전공의 회진을 돌고, 수술 방으로 향했다.

정확한 날짜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번 주다. 눈 크게 뜨고 수술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수술은 하나둘 끝나 가는데, 이준영 교수는 말이 없었다. 평소 너무 고대한 수술이었는지 애간장이 탔다. 마지막 수술이 끝나고 나서야 기다리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금요일 첫 수술로 하자.”

“예,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힘찬 목소리와 함께 어퍼컷을 날리고 병동을 달려갔다. 일과를 가능한 한 빨리 마치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병실로 들어서자 정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영철아!”

“지훈아, 잘 지냈지? 치프 되더니 얼굴 좋아졌다.”

“4년찬데 당연하지, 인마. 니 얼굴도 정말 좋다. 어째 인턴 때보다 살이 더 찐 것 같아. 검사하러 입원한 거지? 근데 그동안 왜 얼굴을 못 봤지?”

다른 환자들이 무척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사적인 얘기를 하기에는 곤란한 자리였다. 김지훈이 슬며시 한영철과 복도로 나갔다.

“그러게. 벌써 삼 년 반이나 됐는데, 너희들하고는 이상하게 시간이 안 맞아 얼굴을 못 봤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이혁민 선생님이 이번 검사도 깨끗하면 내년에 마지막으로 검사하고 끝내자고 하셨거든.”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조기에 발견해 수술한 덕분일 것이다. 활짝 웃던 김지훈이 약간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말 잘됐다. 그런데 지금 뭐해? 취직했어?”

“그럼. 집에서 놀 순 없잖아. 보건소에서 근무해. 공무원이라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이라 나한테는 딱 좋은 자리야. 위에서 뭐라고만 하지 않으면 마음도 편하고, 환자가 주는 스트레스가 없잖아.”

편안한 얼굴이었다.

대부분 전문의가 되지만, 이 또한 의사가 택할 수 있는 길 중의 하나였다. 어떤 일을 하던 스스로 만족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다른 스트레스가 있겠지. 오늘 검사한 건 있어?”

“아냐. 내일 내시경 하고, 모레 CT 하고 초음파 할 거야.”

“알았어. 검사 나오는 대로 내가 먼저 확인해 볼게. 아니다. 아마 현수가 바로 알려 줄 거다.”

한영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훈아, 현수 그 자식 많이 변했더라. 인턴 때하고는 완전히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아.”

“원래 그런 놈인데 말을 안 해서 그렇게 보인 거지. 사실 그 자식 때문에 죽겠다. 가뜩이나 잘난 놈인데, 노력에 성격까지 좋아져서 쫓아갈 수가 없어.”

“천하의 김지훈이? 다른 놈 말이라면 믿어도, 니 말은 못 믿겠다.”

그때 손일석과 이경석이 다가왔다.

“와우! 한영철! 너 입원을 했으면 바로 형한테 보고를 해야지, 인마. 깜짝 놀랐잖아. 잘 지냈지? 근데 왜 이렇게 얼굴이 좋아? 이 자식 이거 수술한 놈 맞아?”

“영철아, 반갑다.”

아무리 뜸하게 보아도 친구는 친구다. 이경석에게는 영원한 후배였다. 반가운 인사가 오고 갔다.

곧 회진이 시작될 시간이 돼, 일과가 끝난 후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스테이션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오래간만에 봤는데 어제 본 것 같네. 자식! 편해 보여서 정말 고맙다. 정갑수 대신 영철이랑 함께 일했으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지난 일에 가정은 필요 없다. 하지만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한영철을 보니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친구를 떠나 한 명의 환자로서 무사히 질병을 이겨 냈다는 사실 또한 너무 고마웠다.

즐거운 일도 때에 따라서는 연이어 터지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영훈이 엄마, 홍채연이 첫 번째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을 했다. 이젠 파트가 달랐지만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었다.

“영훈이 어머니, 잘 지내셨어요?”

“어머! 김지훈 선생님, 내가 먼저 인사하려고 했는데 한 발 늦었네요. 시간 있죠? 주스 하나 드시면서 이것 좀 받으세요.”

홍채연이 모자 하나와 종이봉투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예요?”

“봉투에 든 건 와이셔츠예요. 달리 드릴 건 없고, 신현수 선생님 것도 가지고 왔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입으세요. 가게에 널리고 널린 게 와이셔츤데, 뭐.”

“어휴! 이런 건 왜 갖고 오세요? 그리고 모자는 또 뭐예요? 쓰고 다닐 시간이나 있을지 모르겠네.”

그때 신현수가 들어왔다. 홍채연이 호들갑을 떨며 같은 선물, 혹은 촌지를 꺼냈다. 종이봉투와 모자를 받아 든 신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동네 사람들이 항암 치료 받으면 머리 빠진다는 소리는 어디서 들었는지 모자를 잔뜩 사 갖고 왔지 뭐예요. 그걸 어떻게 다 써? 그래서 두 개는 남자 걸로 바꿔서 갖고 왔어요. 우리 집에 모자가 그냥 남아도니까 받으세요.”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하는 오지랖을 가진 홍채연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컸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홍채연의 밝은 얼굴이 더 고마웠다. 항암 치료는 누구나 두려움을 갖는데 말이다.

홍채연이 한술 더 떴다.

“신현수 선생님, 웃으면서 치료를 받으면 머리도 덜 빠지겠죠? 옆집 할아버지가 힘내야 한다고 즙을 하나 내려 줬는데, 먹어도 될까요?”

김지훈과 신현수가 동시에 웃었다.

“영훈이 어머니, 조기라서 약을 하나만 쓰기 때문에 머리는 안 빠져요. 대신 밥 먹기는 조금 힘든데, 그 정도는 잘 이겨 내실 것 같습니다. 그런 걱정 하지 마시고 식사에만 신경 쓰세요. 그리고 무슨 즙인지 모르지만, 즙은 안 됩니다. 우리가 성분을 잘 모르는 것들은 금지합니다.”

신현수가 그 외에도 항암 치료 중 주의해야 할 것들과 힘든 점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김지훈이 입을 내밀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한영철 말대로 신현수는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이젠 환자에게도 정말 세심하게 대하네.’

차근차근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채워 가는 신현수의 모습은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물론 라이벌이 점점 강력해진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다.

어쨌든 주말에 이어 한 주의 시작이 정말 좋았다.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라파로 준비에 한 치의 소홀함도 보일 수 없었다.

***

드디어 금요일 아침이 밝았다.

은근한 긴장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수술 준비 과정이 오늘따라 생소할 지경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수술 과정을 되새겼다. 이혁원은 여전히 눈가에 힘을 주며 수술 과정을 읊었다.

“다시.”

다시라는 소리를 하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모양이었다. 이혁원이 땀을 흘리며 더욱 집중을 했다. 결과는 역시 반복이었다.

‘그래. 거기서는 그렇게 나가야지.’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몰랐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지만 단단히 각오를 하고 수술대 앞에 섰다.

이준영 교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마취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도리어 이혁원이 제일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취가 끝났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집도의는 수술을 진행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준영 교수가 퍼스트를 선다고 하지만, 단 하나의 과정도 의존할 수 없다. 그렇게 배웠기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

‘침착하게 배운 대로 하자. 내 손을 믿자.’

심호흡을 한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메스!”

배꼽 아래를 1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끝이 뭉툭한 공기 주입기를 서서히 밀었다.

지방층을 지나 양측 복부 근육의 연결부인 백색 선의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툭 소리와 함께 질긴 가죽이 뚫렸다.

처컥! 처컥!

이산화탄소를 밀어 넣는 기계음이 나직하게 울렸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적정 압력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들렸다.

공기 주입기를 빼고 10밀리미터 트로카를 잡았다. 절개한 부위에 끼우고 강하게 밀었다. 백색 선과 복막이 한꺼번에 뚫리며, 안전장치가 작동하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준영 교수가 카메라를 넣었다. 복막이 뚫린 부위를 비롯해 주변 장기, 그리고 간까지 모두 확인했다. 손상받은 부위는 없었고, 담낭만 약간의 염증 소견을 보였다.

예정대로 수술을 진행해도 좋았다.

5밀리미터 트로카가 삽입될 자리 세 곳을 절개했다.

“5밀리미터 트로카.”

트로카를 힘차게 밀어 넣었다. 이준영 교수가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이동시켰다. 압력에 밀려 불룩해진 복막이 뚫리며 날카로운 금속이 반짝였다.

찰칵!

안전장치가 풀리며 트로카의 날카로운 끝이 장을 찌르지 않도록 보호했다.

카메라와 3개의 수술 기구가 제자리를 잡았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켈리로 담낭과 붙어 있는 간을 위쪽으로 밀어냈다. 담낭의 윗부분이 드러났다. 끝이 ‘ㄴ’ 자 모양으로 생긴 전기 소작기로 간과 담낭의 경계부를 살짝 열었다.

조직이 타며 하얀 연기가 배 속을 채우자, 이준영 교수가 재빨리 석션을 해 시야를 확보했다. 그러고는 간에 붙어 있는 담낭 벽을 켈리로 잡고 슬쩍 힘을 주었다.

간이 밀리며 담낭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수술 시야가 완벽하게 확보된 것이다.

켈리로 담낭 벽의 일부를 잡고, 전기 소작기로 박리를 시작했다.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릴 때마다 이준영 교수가 적절하게 석션을 작동시켰다.

역시 교수는 달랐다. 완벽한 퍼스트다.

‘이런 상황에서 실패를 할 수는 없어.’

다소의 중압감 속에서도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기구를 조작했다. 양손을 유연하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해 온 시간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왼손에 잡은 켈리와 오른손에 잡은 전기 소작기를 자연스럽게 조작했다. 약간의 힘만으로도 담낭 벽은 쉽게 박리됐다. 간만 조심하면 된다. 과감하고도 빠른 손으로 슥슥 담낭을 간으로부터 분리해 냈다.

담낭이 완전히 떨어져 나왔다. 간에 남은 움푹 들어간 자국만이 담낭이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 자리로 카메라가 들어왔다. 매끈한 면을 따라 출혈 여부를 확인했다. 점점이 약간의 피는 보였지만 저절로 멈출 양에 불과했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동맥과 담낭관이 있는 부위를 확대했다. 김지훈의 긴장이 치솟았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담낭을 분리하다 말고 개복을 해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거의 모든 실패가 다음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후우! 긴장 풀자. 동맥과 담낭관을 정확하게 찾아내기만 하면 돼.’

손으로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30센티미터 정도의 막대가 달린 기구를 통해서는 동맥의 감촉을 느낄 수 없다. 고도의 집중과 주의가 필요했다.

조그만 켈리로 담낭과 총수담관 사이의 지방조직을 신중하게 박리했다.

깔짝! 깔짝! 깔짝!

언제 동맥을 찾을지 모를 정도로 조금씩 전진했다. 이준영 교수 역시 이 부분에서는 그렇게 수술을 했다.

가느다란 혈관이 여기저기 분포하는 부위다. 피가 살짝 비쳤다. 이준영 교수가 석션을 해 출혈 부위를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전기 소작기로 지혈을 했다.

신중하기만 했던 손을 과감하게 움직였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부분은 아무리 출혈량이 적어도 시야를 방해하는 부위야. 신중하면서도 과감해야 해.’

출혈을 확실하게 해결했다.

지방조직을 박리하고, 또 박리했다. 하얗고 기다란 구조물이 나타났다. 심장박동을 따라 벌떡벌떡 힘차게 뛰고 있었다. 담낭 동맥이다.

그 옆으로 담낭관이 지나간다. 두 개의 구조물을 확실하게 찾은 후, 깨끗하게 노출시켜야 한다. 그래야 클립으로 잡고 자를 수 있다. 클립 사이에 지방조직이 끼어들면 끝까지 조여지질 않아, 나중에 동맥 출혈을 하거나 담즙이 샐 수 있기 때문이다.

땀이 났다. 아무리 수술 기구가 뭉툭하다고 해도 과한 힘은 손상을 줄 수 있었다. 신중하고 세심하게 손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떠올렸다.

마침내 또 하나의 가느다란 구조물이 보였다. 이제 동맥과 담낭관을 충분하게 노출시켜야 한다.

양손에 모두 켈리를 잡고 출혈을 잡으며, 둘러싸고 있는 지방조직을 제거했다.

확실히 약하다. 조금만 삐끗해도 어딘가가 찢어질 것 같았다. 입안이 바짝 마를 정도로 긴장이 다가왔다.

하지만 김지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서서히 동맥과 담낭관이 한겨울 나뭇가지처럼 또렷하게 드러났다.

충분한 길이를 확보했다.

“클립.”

동맥과 담낭관을 각각 클립 3개로 잡고 잘랐다.

담낭이 완전히 절제됐다. 콘돔에 담아 배 밖으로 꺼냈다. 수술 부위를 씻고 출혈이 있는지, 혹은 미진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깔끔하면서도 깨끗했다.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분명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이렇게만 하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눈빛이 교차했다.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무리하고 끝내자.”

피부를 봉합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나마도 몇 센티미터에 불과해 네 바늘로 끝이다. 절개 창에서 발생하는 통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것 역시 복강경의 최대 장점 중 하나다.

“수고하셨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드디어 라파로 수술의 기본이자 정수인 담낭 절제술을 했다. 실수는 물론 지적도 받지 않았다. 날아갈 것 같았다.

하루가 정말 즐거웠다.

눈 몇 번 깜짝한 것 같은데, 어느새 마지막 수술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이준영 교수도 기분이 좋은지 다른 날보다 훨씬 편한 표정으로 쉽게 수술을 했다.

그때 이혁민 교수가 들어왔다. 표정이 왠지 어두웠다.

나직한 목소리로 무언가 대화를 나누던 이준영 교수가 눈썹을 찡그렸다. 정말 보기 힘든 감정 표현이었다. 그러고는 환자가 채 마취에서 깨기도 전에 서둘러 수술 방을 나갔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왜들 저러시지?’

의아한 일이었다.

회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틀림없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회진 돌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교수들이 올라오지를 않았다. 치프들 모두 눈만 껌벅거렸다.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김지훈 선생님, 외래로 내려오시래요.”

“저만요?”

“네.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최근 의국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탓일지도 몰랐다.

눈가를 찡그리며 외래 문을 여는 순간,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형님?’

서정호 검사가 교수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 다들 얼굴이 어둡기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정체 모를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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