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마지막 텀이다 (1)
“프리(Free)입니다.”
박순용의 목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없었다. 가슴이 뛰며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아직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확실하게 절제를 했다는 흥분은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
위의 절단면에 소장의 중간 부분인 공장을 이어 주어야 한다. 이 역시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일단 기술적으로 정교하지 않으면 수술 후 연결 부위가 터질 수 있다.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상 구조를 제거했기 때문에 기능적인 면 또한 매우 중요하다. 수술 후에도 최대한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잠시 수술 부위를 보며 주의할 점을 생각한 김지훈이 손을 내밀었다. 두려움이나 불안이 아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한 때였다.
“니들 홀더.”
목소리에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위나 장을 봉합할 때의 원칙은 항상 동일하다. 점막이 빠지지 않도록 바짝 신경을 쓰고 이중으로 보강하는 것이다. 조직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수술 기구를 과도하게 조작하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김지훈의 손은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10센티미터에 가까운 절단면 중 2~3센티미터 정도만 남기고 완전히 막아 버렸다. 공장을 끌어 올렸다. 연결 부위에 압력이 가해지지 않도록 적당한 위치에서 충분한 길이를 확보했다.
아직 봉합하지 않은 절단면의 길이에 맞춰 공장의 일부를 열었다. 위 조직은 두껍지만 소장은 얇다. 이런 차이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한 바늘 한 바늘 수처가 이어지며, 서서히 위와 공장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모든 부분이 연결되고 가장 어려운 부분이 남았다. 이미 봉합한 절단면의 끝 부분이다.
연결 부위를 단순하게 표현하면 ‘-0’ 모양이다. 선은 봉합된 위 절단면이고, 원은 공장과 위가 연결되는 통로다. 두 개의 장기가 접하는 부분은 세 개의 봉합선이 만나기 때문에 틈이 생기거나 점막이 빠질 우려가 컸다.
‘수술 후 새면 100퍼센트 이 부분이다. 신중하자.’
모든 신경을 눈과 손에 집중시켰다.
세심한 손이 필요했다. 조금이라도 서두르면 실수를 유발할 것이다.
신중한 손길이 이어졌다. 조그만 틈이 점점 좁아지며 완전히 닫혔다. 마침내 위와 공장이 연결됐다.
김지훈이 긴장된 얼굴로 이혁민 교수를 보았다. 교수가 퍼스트를 섰다. 실수가 있었다면 그 즉시 바로잡았을 것이다.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그보다는 무엇이 얼마나 부족한지, 또 어떤 면에 신경을 써야 할지가 훨씬 더 중요했다.
‘이 정도면 딱히 지적할 것이 없네. 눈에 걸리는 부분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니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되겠지. 그저 좋다고 자만할 놈은 아니지만, 너무 빨라서 그게 걱정이네.’
“미숙한 부분이 제법 보인다. 원칙에 충실하고, 기본을 잊지 마라. 수술을 많이 한다고 해서 저절로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건 잘 알제. 명심해라.”
조곤조곤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칭찬이다.
“예,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나직한 목소리에 가벼운 흥분이 실렸다.
“그럼 마무리하자.”
이혁민 교수가 피부 봉합까지 함께했다.
눈가에 아쉬움이 걸렸다. 이제 3일 후면 김지훈의 손을 볼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환자를 보는 모습에 젊은 시절을 떠올리는 즐거움도 맛보기 힘들 것이다.
‘이놈처럼 가끔 흥분도 하고 들뜨기도 해야 하는데, 현수 그노마는 너무 침착해서 탈이야. 조금 심심해.’
별생각이 다 든 이혁민 교수가 피식 웃으며 수술실을 나갔다. 김지훈과 이혁원의 힘찬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확실히 신현수보다 목소리는 크고 힘찼다.
***
한 주의 남은 날이 흥분과 설렘 속에 지났다.
좋은 시절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주말 집담회에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탔다.
단 한 명도 예외는 없었다.
이준영 교수는 신현수를 까맣게 태우고, 송재덕 교수는 손일석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신기동 교수는 말 몇 마디로 이경석을 얼려 버렸고, 김지훈은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렸다. 조곤조곤한 말투는 왜 이렇게 적응이 안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휴우!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네.’
집담회를 끝낸 교수들의 웃음소리가 유난히도 즐겁게 들렸다. 만족스럽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웃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마지막 텀을 정리했다. 모두들 부산하게 인수인계를 하고, 새로운 파트의 환자를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야! 이번 텀만 지나면 수련도 끝이네. 지훈아, 파이팅하자. 유종의 미를 거둬야지. 신기동 선생님 비수를 막을 갑옷 좀 챙겨야겠다.”
손일석이 혈관 수술 책을 척 꺼내 들었다.
확실히 항상 즐겁고 긍정적인 놈이다.
그날 밤.
김지훈이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이제 3개월만 지나면 수련이 끝난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 있을 것이다. 결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하고 싶은 세부 전공에, 스승의 파트다.
‘후우! 마지막이 엉망이면 그동안 해 온 노력도 모두 허사가 되겠지? 최선을 다해서 끝나는 날에는 반드시 웃으며 인사를 드리자.’
진정한 의사이자, 최고의 써전이 되고 싶다는 꿈은 언제나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손일석의 말대로 유종의 미를 거둘 때였다. 인턴 때부터 지금까지 스승과 교수들에게 배우고, 스스로 깨달은 것을 되새겼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할까?
선택과 집중.
탄탄한 기본기와 원칙.
지식과 기술.
환자에 대한 열정과 이해.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
동료에 대한 신뢰.
이것 말고도 무수한 것들을 배우고, 몸으로 익혀야 할 것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아픈 사람이 가장 먼저 찾고 기대는 사람이 바로 의사이기 때문이다.
문득 스승의 모든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라파로를 포함한 모든 수술과 경험, 그리고 지식까지 빠짐없이 배워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어쩌면 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각오를 다지던 김지훈이 돌연 눈을 치켜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를 빼먹었다. 이준영 교수의 환자 대부분이 라파로 수술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곧 신현수 역시 엄청난 배움과 경험을 쌓았다는 말이었다.
최고의 라이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강렬한 자극일 것이다.
라파로 수술과 이준영 교수, 그리고 신현수를 떠올리던 김지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흔들었다.
“으샤! 파이팅!”
난데없이 터진 소리에 손일석이 화들짝 놀랐다.
“아니, 이 자식은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왜 이 지랄이야. 김지훈, 숙소는 공동생활 구역이니까 에티켓을 좀 지켜야 하지 않겠어? 총치프라고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지. 우리도 치프다.”
너스레를 떠는 손일석을 보는 김지훈의 눈빛이 매서웠다. 별말 없는 이경석에게 향한 눈빛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고의 라이벌은 1명이 아니라 3명이었다.
‘다 죽었어.’
살벌하기까지 했다.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5월의 마지막도 저물었다.
***
마지막 텀, 간담도 파트의 첫날이다.
이준영 교수의 주위에 4명의 전공의가 섰다.
김지훈, 서도진, 박순용, 이혁원.
막강하다. 이미 확실하게 환자를 파악했고, 오늘 수술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김지훈의 각오는 남달랐지만 일과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회진을 돌고 곧바로 수술실로 향했다.
환자가 오기 전, 이혁원이 말도 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수술 과정을 읊었다. 라파로 수술에서 퍼스트를 서는 것 자체가 아직은 한참 후의 일이겠지만 예외일 수는 없었다.
눈을 감고 함께 수술을 그려 가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았다. 빛바랜 메스는 여전히 가방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스승이 자신의 첫 집도에 사용한 메스를 주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것을 확실하게 깨닫기 전에는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이혁원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내가 후배들에게 메스를 줄 자격도 되지 않잖아? 아직도 한참 모자란데, 그런 생각 자체가 자만일 수도 있어. 혁원아, 언젠가는 네게 스승님의 메스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너나 나나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의사다운 의사가 되어 있을 때 말이야.’
돌연 김지훈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다.
“다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상태에서도 어디가 틀렸는지 똑똑하게 들렸다. 라파로 수술 과정을 확실하게 각인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100일 당직의 마지막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건만, 이혁원의 땀은 멈출 줄 몰랐다.
첫 수술이 시작됐다. 담낭 절제술이다.
간만에 스승과 수술을 해서인지, 언제나 다가오는 긴장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막상 수술이 시작되자 가벼운 흥분과 함께 난데없는 욕심이 생겼다. 라파로를 이용한 수술은 모두 해 보고, 또 해 보고 싶었다.
결정은 스승의 몫이다. 제자라고 해서 무턱대고 수술을 줄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을 쏟아붓는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음성에서 스승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눈을 부릅떴다. 사소한 과정 하나하나에도 바짝 신경을 썼다. 스승이 어떻게 수술하는지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이준영 교수의 눈에 그 모습이 안 보일 리가 없었다. 마치 라파로를 처음 보는 것처럼 열정적인 눈빛에 피식 웃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속이 빤히 보였다.
‘라파로를 달라는 소리야? 3개월이 적은 시간이 아니다. 조금 더 보고, 다시 익숙해져야지. 게다가 라파로 말고도 아직 경험하고, 배워야 할 수술들이 너무 많이 남았어.’
퍼스트를 서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준영 교수의 손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담낭 절제술도 이제는 불과 한 시간 반이면 끝냈다. 숨 몇 번 쉬었을 뿐인데, 어느새 마무리만 남았다.
마무리를 하라며 장갑을 벗는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순간적으로 이혁원에게 머물렀다. 그 모습을 모든 사람이 놓친다고 해도 김지훈만은 예외였다.
예전과는 분명 달랐다.
같은 수술대 앞에 선 아버지와 아들.
앞으로 3개월은 매일 보아야 한다. 아니, 수련이 끝날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그래야 할 것이다.
불현듯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제자이자 선배로서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아들도 새까맣게 태울까?
그때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마무리 안 하고 뭐해? 마지막 텀이라고 정신 놓고 똑바로 못하면 아무것도 없어.”
수술실에서는 조그만 방심이나 잡생각도 허용하지 않는 이준영 교수였다.
급히 마무리를 하던 김지훈이 흠칫 어깨를 떨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은 곧 수술을 안 줄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농담이 무엇인지 모르는 스승이다. 결코 경고로만 끝낼 스승도 아니었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이혁원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눈물을 펑펑 쏟아야 할 것이다.
‘예, 스승님. 긴장 타겠습니다.’
수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라파로를 이용한 담낭 절제술이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아뻬와 탈장 수술이 간간이 시행됐다. 스승과 제자의 손은 마치 톱니바퀴처럼 척척 맞물려 돌아갔다.
여기에 파트 전공의 전원이 환자에게 집중한 덕에 입원 환자 수가 늘지를 않았다. 몇 명이 입원을 하던 수술 후 불과 삼사 일이면 모두 퇴원을 했기 때문이었다.
“야! 선생님, 초반이지만 정말 팡팡 잘 돌아가네요. 수술만 하면 그냥 퇴원을 하니까 이렇게 편할 수가 없네요.”
서도진의 말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주일이 빠르게 지났다.
드디어 1년차들을 처참하게 만들었던 100일 당직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주말이 지나면 오프를 가게 될 것이다.
김지훈이 의국원을 모두 모았다. 마치 한계를 시험하는 것처럼 세 달이 넘게 밀어붙였다. 1년차들의 몰골이 말도 아니었다. 이혁원과 나종진은 지금도 졸음에 겨워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앉기만 하면 잠이 쏟아지는데,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까닭이었다.
“그동안 고생들 했어. 그만큼 배운 것이 많을 거야. 앞으로도 열심히 하고, 다음 주부터 한 명씩 돌아가며 오프 가.”
이혁원이 번쩍 눈을 떴다. 만세 소리만 안 나왔을 뿐, 반짝이는 눈빛에 1년차들의 기분이 어떤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예전 생각에 김지훈도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의사의 실수는 곧 환자에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단단히 단속을 할 필요가 있었다.
“백 일 당직이 끝났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돼. 도진아, 확실하게 하자. 이때가 제일 조심해야 할 때라는 거 알지?”
“예,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혁원아, 종진아, 백 일 당직만 끝난 거야. 너희는 아직 1년차다.”
“자식들! 입 찢어지겠다. 1년차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뭐가 그렇게 좋아? 하긴 오프 가는 게 어디냐. 그래도 기념할 건 해야지? 지훈아, 총치프로서 커피 사…….”
찌릿!
치프 중 둘은 유부남이고, 한 명은 준유부남이다. 그래도 수중에 돈이 남는 건 총각이다.
“아! 내가 사야겠구나. 하하하! 커피 정도는 내가 사야지. 모두 몇 명이냐? 하나, 둘, 셋……. 헉! 열여섯 명이나 됐나? 뭐가 이렇게 많아?”
파란 지폐 한 장이 깨졌다.
‘아껴야 잘사는데. 나도 장가가야 하는데.’
손일석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전공의에게는 때론 큰돈일 수도 있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라파로 아뻬를 받았다.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또 한 주가 지났다.
라파로 탈장을 받았다.
‘그래. 바로 이 기분이야.’
감격에 겨워 힘차게 어퍼컷을 날렸다.
이준영 교수는 내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 속에 흐뭇함과 함께, 정신 바짝 차리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동시에 보내고 있었다.
‘녀석! 하루가 다르네. 이 과장이 아쉬워할 만도 해. 하지만 넌 이제 시작하는 거야. 수술을 했다는 사실보다 환자가 무사히 퇴원한다는 것을 기뻐했으면 좋겠다.’
손에 완전히 익어도 자만하는 순간 문제가 생기는 것이 수술이었다. 툭하면 입을 귀에 걸고 다녔지만 방심할 김지훈이 아니었다.
결과는 환자들이 말한다. 모두들 무사히 퇴원을 했고, 김지훈의 가슴은 벅차기만 했다.
한 발 한 발 달려 나가는 재미가 보통 쏠쏠한 것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최적의 상태인지, 당직 때 받는 응급 수술도 예전보다 확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수술은 담낭을 라파로로 절제해 보는 것이었다. 이 추세라면 다음 주가 될 것이다.
‘좋았어. 이대로만 가자.’
전공의 수첩을 펼쳤다.
대장암, 위암, 라파로 수술과 수많은 응급 수술.
뿌듯하다.
이미 전문의 시험 조건은 다 갖췄지만 더 채우고 싶었다. 가장 기본적인 수술인 아뻬도 많은 경험을 통해 손에 익혔다. 다른 수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지금 흘리는 땀방울은 미래의 소중한 토양이 될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하면 할수록 책임감도 막중해졌다.
허투루 보낼 시간이 없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라파로를 이용한 담낭 절제술은 절대 끝이 될 수 없었지만 당면한 목표였다. 하루라도 빨리 받으면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었다.
단, 전제 조건이 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수술실에도 못 들어오게 할 분이지. 아무리 수술이 잘됐어도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소용없는 일이다. 모든 일의 출발과 끝은 결국 환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또 한 번 각오를 다진 날.
따르르릉!
응급실이다.
이혁원이 노티를 하며 터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응급실로 내려가자 마침 신현수까지 있었다. 꼼꼼하게 환자를 진찰하고 검사 결과까지 종합한 결과, 충수 돌기 주변부 농양이 의심됐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환자였다.
단순 아뻬보다는 훨씬 수술하기 까다롭다. 지금까지는 고민도 하지 않고 개복을 했다. 농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가 제법 크게 만져져 배도 크게 열어야 할 케이스였다.
그런데 한 가지가 눈에 걸렸다.
19살 여자다.
“고등학교 3학년인가?”
“네. 3학년이에요.”
남녀노소의 차이가 있진 않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하루가 아쉬운 때이기도 했다. 이제는 환자가 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할 때였다.
라파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한계일까?
그간 고민해 왔던 문제였다.
‘터졌다고 라파로를 할 수 없다면 더 이상 발전은 없을 거야. 그동안 경험도 쌓였는데 이제는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만족하려고 라파로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믿고 상의할 수 있는 동료가 눈앞에 있다.
“현수야, 라파로로 가능하지 않을까?”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단순 아뻬와는 다르다. 라파로 자체가 가진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노련한 선배 의사들이 시도하지 않았을 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상대적으로 대범하고 신중한 두 명의 치프가 머리를 맞댔다. 한동안 나직한 말들이 오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