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55화 (555/1,329)

제4화 우리가 맺어 왔고, 맺어야 할 인연들 (2)

진열된 모든 것이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가슴이 떨린다.

낯선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하며,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아야 할 소중한 보물.

정성을 쏟으면 언제나 그 빛을 잃지 않을 보물.

결혼반지다.

사랑의 증표이기 때문일까?

일일이 모든 살림살이를 골라 주던 장모도 반지만큼은 김지훈과 고경아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란 모양이다.

어머니가 함께할 수 없다는 아픔과 동시에, 그 자리를 누군가 채워 주고 있다는 행복함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고경아도 행복한 미소를 머금었다.

함께 반지를 보았다.

저마다 뽐을 내며 날 끼면 평생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만큼은 신중하게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마음에 딱 드는 반지가 보였다. 고경아의 마음에 들기를 바랐다.

천생연분일까?

고경아도 똑같은 반지를 보고 있었다. 가격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분수에서 크게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런 것쯤은 무시해도 좋았다.

“경아 씨, 마음에 들어요?”

“네. 마음에 들긴 하는데, 내일 한 번 더 보고 결정해요.”

불현듯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이다. 몇 번이고 다시 볼 의향이 있었다. 그래서 쇼핑을 할 때 그토록 다리품을 파는 모양이다.

장모는 끝까지 들어오지 않았다.

금은방을 나오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경아 씨, 통장 다시 돌려줄래요?”

고경아가 깜짝 놀랐다.

“왜요?”

“경아 씨 반지는 내가 사야 하잖아요.”

“그건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참! 내게 준 통장이 월급 통장이었죠? 지훈 씨도 쓸 돈이 있어야 하니까 한 달에 이십만 원 줄게요. 그 정도면 충분하죠?”

너무 빨리 통장을 넘겼다. 김지훈도 내심 수중에 돈이 없다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용돈을 준다는 소리가 이상하게 반가웠다. 이미 결혼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더 쓰기를 바랐지만,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데 돈 문제로 옥신각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큰돈도 필요 없는 데다 당장은 쓸 시간도 없었다.

가장 큰 걸림돌이 남았다.

‘통장에 있는 돈으로는 방 두 개짜리 전세도 얻기 힘들 텐데, 집 문제를 내가 먼저 꺼내야 하나? 지금 경아 씨 사는 집에서 살면 경희도 있어서 좁겠지?’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남자 혼자 집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웬만큼은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도 반드시 상의할 일이었다.

막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최문옥이 다가왔다. 일단 입 꾹 다물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 아직 고경희가 보이지 않았다. 물 한 모금을 마신 최문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김 서방, 오늘 힘들었지?”

“아닙니다.”

“다행이네. 오늘 살 것들은 거의 다 봤으니까, 자넨 경아 손가락에 끼워 줄 반지만 결정해. 집 문제도 경아 아빠하고 상의해서 마련할 거니까 걱정할 거 없어.”

“예? 어머님, 그건…….”

김지훈이 깜짝 놀라자 최문옥의 표정이 묘해졌다. 고경아도 왠지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고성문은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김 서방, 아파트나 이런 데는 아니고 방 두 개짜리 전세야. 그리고 미안하지만, 경희가 있을 곳이 만만치 않네. 혼자 자취하게 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처제는 시집갈 때까지 제가 데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지. 정말 고맙고 미안해. 우리 경아가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도 않지만, 김 서방이 이해하고 잘 살아 줘. 그러면 좋겠어.”

최문옥의 말에 머리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달랑 의사라는 직업 하나를 내밀며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데려온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은 김지훈 자신이었다.

한동안 결혼 준비에 대해 상의를 했다. 말이 상의지, 김지훈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살림살이와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결혼식 날짜와 식장을 잡고, 누굴 초대해야 할지까지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후! 준비할 게 이렇게 많았나?’

끝이 아니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

최문옥의 말에 고경아가 김지훈을 빤히 보았다.

특별한 곳을 택하고 싶지만 전문의 시험 준비도 있고, 남들 가는 곳을 가는 것이 제일 무난한 법이다. 추억은 장소가 아니라,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지에 달렸다.

“아직 상의하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제주도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아 씨, 어떻게 생각해요?”

눈치가 보였다. 슬슬 해외로 나가는 추세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경아의 얼굴이 밝았다.

“나도 괜찮아요. 한 번도 못 가 봤거든요.”

“그럼 됐네. 김 서방, 내가 경아하고 여행사 통해 알아볼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처음으로 단 한 번에 결정이 났다. 이런 일까지 장모와 고경아가 해야 한다는 사실에 김지훈이 얼굴만 붉혔다. 정말 장가 하나는 잘 간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곧 고경희가 도착했다. 손일석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넙죽 인사를 했다. 미리 고경아와 고경희에게 말을 들었을 것이다. 자식의 결정을 십분 존중하는 최문옥이 반갑게 맞이하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말 하나는 끝내주게 하는 손일석이다. 더구나 진솔한 마음까지 담았다. 최문옥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김지훈과 고경아는 응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최문옥은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손일석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4명의 자식과 2명의 사위를 둔 어머니의 눈은 누구보다도 정확할 것이다.

“오늘 처음 봤지만 자네가 참 마음에 드네. 시간될 때 연락하고 원주에 한번 와. 경아 아빠도 좋아하실 거야.”

“감사합니다, 어머님. 빠른 시간 내에 찾아뵙겠습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군대 문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 놈만 빼고 고성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들 안다. 최문옥은 항상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김지훈을 보며 눈짓을 했다.

“김 서방, 그때 같이 오면 괜찮지 않을까?”

“당직 문제가 있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맥주를 곁들이자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었다.

삐삐! 삐삐! 삐삐!

난데없이 들려온 소리에 손일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인생이 걸렸다고 해도 당직인 이상 들어가야 한다. 겸사겸사 자리를 파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손일석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고경아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최문옥의 조용한 목소리와 고경아의 다소 들뜬 목소리만이 들렸다.

고경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지 않았다.

어쨌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 날이었다.

병원으로 들어간 이후, 손일석이 밤새 입을 멈추지 않아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일요일 또한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주말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저 결혼합니다. 그 전에 찾아뵐게요.’

오늘은 서울 밤하늘에도 제법 별이 보였다.

***

5월의 마지막 주다.

치프들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한 텀을 정리하고 다음 텀을 준비해야 할 때였다. 상당한 부담이 느껴질 정도의 수술들을 받은 데다, 수련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월요일 오전, 신현수가 라파로를 이용한 담낭 절제술을 받았다. 세심하고 신중한 손길로 감탄이 나올 정도로 무난하게 수술을 해냈다. 이준영 교수의 입가가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말렸지만 대단히 만족스럽다는 의미였다. 이것만으로도 더 이상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었다.

“잘했다. 수고했어.”

“감사합니다.”

화요일 오전, 손일석이 크론으로 인한 대장 절제술에서 퍼스트를 섰다. 질병의 특성상 기술적인 면이 매우 중요했다. 손일석이 간결하고 정확한 자신의 손을 유감없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어디부터 어디까지, 얼마나 자를지 정확한 판단과 결정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송재덕 교수가 동네 아저씨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너털웃음이다.

“허허허! 일석아, 치프야, 크론은 수술을 하고 난 후에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네 덕에 발 뻗고 자겠다. 잘했다. 잘했어. 이렇게만 하자. 그러면 군대 갔다 와서 네 얼굴 또 볼 수 있다. 좋다. 좋아.”

“감사합니다, 선생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인 늦은 오후에, 이경석의 혈관 수술이 시작됐다. 언제든 비수를 날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신기동 교수의 눈이 번쩍거렸지만 이경석은 동요하지 않았다.

빠르면서도 과감한 손을 적절하게 통제하며 혈관 수술을 훌륭하게 해냈다. 신기동 교수가 입맛을 다시면서도 눈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전보다 훨씬 낫네. 이렇게만 하자.”

“감사합니다.”

모두 다 최고의 칭찬을 받았다. 치프들의 얼굴에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생기가 돌았다.

남은 치프는 김지훈뿐이었다.

드디어 내일 오전 위암 수술을 하게 된다.

벌써부터 온몸을 휘감는 긴장이 느껴졌다. 이미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다시 한 번 철저히 수술 과정을 확인하고 숙지해야 했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한 가지가 더 있다.

환자였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불안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의사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일이었다. 지금까지 수술에 대한 설명을 주로 했다면 이제부터는 환자가 어떤 마음일지를 고려해야 했다.

불안을 가시게 할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단연코 그런 방법은 없다. 김지훈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환자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 주고, 함께 수술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모든 환자분들이 다 불안해하고 무서워합니다. 솔직히 의사들도 도와드리기 힘든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퇴원하시는 날까지 항상 환자분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겁니다. 언제든 힘드시면 우리를 찾으시면 됩니다.”

환자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고 편안해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다였다. 시간과 경험이 약일지도 몰랐다. 환자들을 더욱더 이해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서로를 의사와 환자가 아니라 진정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요일 아침이다.

김진호 교수가 마취를 걸고, 고경아가 수술을 보조한다. 퍼스트는 이혁민 교수고, 세컨은 이혁원이다. 모두 다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이었다.

자신감의 불씨가 타닥! 피어올랐다. 어깨에 걸린 긴장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드디어 위장관 파트의 최고 난이도 수술 중 하나인 위절제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고, 고경아가 건네는 메스를 잡았다. 날카로운 은색 메스가 무영등 불빛에 반짝였다.

명치부터 배꼽 아래까지의 피부를 단번에 절개했다.

전기 소작기로 피하지방을 가르고, 양쪽 복부 근육의 연결부인 백색 선을 잘랐다. 노란 복막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후, 장기 손상을 염두에 두며 수술용 가위로 잘랐다.

이혁원이 리트랙터를 걸어 복벽을 당겼다. 배 속이 환하게 드러났다. 전이부터 확인해야 한다.

장간막은 깨끗했다. 반질반질하고 매끈한 간 역시 정상적인 모습이었다. 위 주변의 장간막을 꼼꼼하게 살폈다. 임파선 전이는 관찰되지 않았다.

“예정대로 자르겠습니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병변은 위 하부에 있다.

부분 절제술이지만 위암이기에 위와 임파선이 포함된 장간막을 한 덩어리로 모두 들어내야 한다.

암 수술의 원칙, 바로 광범위 절제술이다.

위와 대장을 연결하는 대망을 박리했다.

따르륵! 따가각!

동맥은 철저하게 묶어야 한다.

대장에 붙은 대망이 떨어져 나가며 평행 결장이 위와 분리됐다. 이어 비장과 연결된 장간막을 잘라 나갔다. 위동맥은 잘라도 되지만, 비장 동맥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해부학적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켈리로 장간막을 잡았다. 연약하면서도 탄력이 있는 조직이 잡혔다. 위로 들어가는 혈관이 있다는 의미였다.

따르륵! 따가각!

켈리로 강하게 잡고 잘랐다. 한가운데에 동그란 구조물이 보였다. 위동맥 줄기 중 하나다.

“타이!”

‘비장 동맥이 이 부분에서 지나가니까 너무 깊게 박리하면 안 된다. 경계부를 정확하게 찾아야 해.’

과감하기만 했던 손을 버리고 신중해야 할 때였다.

조심스럽게 장간막을 잘라 가며, 비장 동맥의 존재에 온 신경을 쏟았다. 두 번째 동맥 분지를 묶자 위가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조금 더 잘라야 한다. 임파선 전이를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해야 할 부분이 남았다.

마침내 제거해야 할 부분까지 도달했다. 비장은 여전히 선홍빛이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어 긴장을 풀었다.

다음 부위다.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인 유문을 잘라야 한다. 주변 조직과 단단하게 결합된 유문을 신중하게 박리했다. 십이지장은 절대 손상을 주면 안 되는 장기다. 조심스러운 손을 이어 간 끝에, 십이지장의 상부 일부분을 충분하게 확보했다.

“장겸자.”

따르륵! 따르륵!

유문을 잘랐다. 위는 제거해야 할 부분이다. 십이지장만 봉합하면 된다. 소화액이 역류할 수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 부분은 머뭇거리는 것이 도리어 손해다.

“니들 홀더.”

김지훈의 손이 다시 과감해졌다. 점막을 확실하게 연결하고, 다시 수처를 해 이중으로 봉합을 했다.

위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다. 다시는 음식물이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간과 연결된 장간막을 잘라 나갔다.

김지훈이 한쪽을 잡으면 이혁민 교수가 자연스럽게 반대쪽을 잡았다. 타이하고 자르기를 반복했다. 역시 위 하부로 들어가는 동맥 분지 두 개를 잡았다.

재발은 흔히 위에서 발생하지만, 남은 임파선을 따라 원격 전이가 되기도 한다. 임파선이 포함된 장간막을 최대한 제거해 주어야 하는 이유였다.

제거해야 할 위 경계 부분을 넘어, 더 상부에 위치한 장간막까지 제거를 시도했다. 이혁민 교수가 힐끗 김지훈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의 식도 부분까지 접근했다. 이 부분에서 주행하는 동맥은 절대 자르면 안 된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동맥을 찾았다. 손끝에서 벌떡벌떡 동맥이 만져졌다.

순간 겁이 났다. 동맥에 손상을 주면 위를 다 잘라야 할 수도 있었다.

‘동맥 주변 임파선 제거는 포기할까?’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위암 환자의 예후는 수술에 달렸다. 이혁민 교수는 분명 이 부분까지 제거했다.

눈가에 힘을 주고 극도의 신중함과 집중력을 유지했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이라고 어려운 과정을 피하면 평생 그렇게 된다. 내가 널 믿듯, 니도 니 자신을 믿으면 된다. 그래서 수술을 준 거야.’

살살 걷어 내듯이 장간막을 박리했다. 불과 2~3센티미터였지만 식은땀이 맺혔다. 등짝이 축축해지다 못해 땀이 줄줄 흐르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환자를 위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원하던 부위를 제거했다. 동맥은 지금도 힘차게 뛰고 있었다.

훅훅 몰려오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이제 병변에서 7센티미터 정도 상부의 위를 자르면 된다.

“장겸자.”

따르륵! 따르륵!

가장 긴 장겸자 두 개로 위를 잡았다. 그 사이를 날카로운 메스로 과감하게 잘랐다.

위를 포함한 장간막이 한 덩어리가 돼 주변 조직과 완전히 분리됐다.

커다란 소독 대야에 자른 위를 옮겼다. 그 속에 암 덩어리와 암이 퍼졌을지도 모르는 임파선이 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었다. 아직 어려운 과정이 남았지만, 드디어 위암을 모두 제거한 것이다. 위가 있던 부위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했지만, 섣불리 단정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확실하게 한 걸까?’

이혁민 교수를 보았다. 전공의의 판단과 교수의 판단은 다를 수가 있다. 조용히 수술 부위를 응시하는 모습에 입안이 말라 왔다.

마침내 이혁민 교수의 입이 열렸다.

과연 어떤 평가를 내릴까?

“계속 진행하자.”

그 순간 격한 흥분이 몰려왔다.

수술 중에는 금기 중의 금기였지만, 이혁민 교수는 아무 말도 없이 기다려 주었다. 방금 전과는 다른 의미의 숨을 내쉰 김지훈이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제 음식물이 통과할 길을 만들어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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