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발전해야 하는 이유 (1)
홍채연의 두렵고 서러운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김지훈이 멍한 눈길로 창밖만 바라보았다. 손일석이 어깨를 툭 쳤다.
“지훈아, 네가 만든 일도 아니고 그게 원칙인데 어쩔 수 없잖아. 기운 내, 인마.”
“그러게 말이다. 내가 이러면 환자는 더 힘들어할 텐데 기운 내야지.”
다시 홍채연을 찾았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라앉기를 바랐다. 눈물범벅에 넋이 나간 것처럼 생기를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우리 아이들 아직도 한참 더 키워야 하는데, 그런 몸으로 어떻게 하죠?”
이 와중에도 자식 걱정이 먼저였다.
“위를 다 잘라 내면 어떻게 살죠?”
“정말 그 방법밖에 없나요?”
윤재철을 비롯해 위를 모두 절제한 환자들의 예를 들어가며 설명했지만 어떤 위안도 주지 못했다. 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다.
또 눈물을 보인다. 그치지 않는 울음에 상철 엄마도 눈가를 붉혔다.
김지훈이 입술을 꽉 물었다.
위암 수술 중에는 가장 크고 위험한 수술이 위전절제술이다. 조기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합병증이라도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그만큼 의사들도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수술이 바로 위전절제술이었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이번 역시 완벽하게 수술을 해내야 했다. 이혁민 교수의 실력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기에 퍼스트인 김지훈의 부담은 더욱 컸다. 위전절제술에 관한 한 경험도 일천하다.
‘영훈이 어머니, 비록 다른 방법은 없지만 어떤 문제도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힘내세요.’
무거운 마음으로 병실을 나왔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때문인지 오늘따라 병원 공기가 차갑게만 느껴졌다.
갑상선 절제 수술을 한 환자를 찾았다. 고른 호흡을 내뱉으며 잠에 빠져 있었다. 홍조가 도는 얼굴에 조금은 위안이 됐다.
일과를 마치고도 의국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혹시 놓친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인턴이 찾아온 논문들을 다시 읽었다. 역시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그때 의국 문이 조용히 열렸다.
“선생님, 논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누락된 것이 있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몹시 피곤할 텐데도 끝까지 논문을 찾아 준 인턴의 성의가 고마웠다. 이런 마음가짐을 평생 간직한다면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의사가 될 것이다.
“수고했다. 고마워.”
1년 전 논문에, 말 그대로 달랑 하나다.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기운이 쪽 빠졌다. 그런데 힘없이 논문을 펴 들던 김지훈의 눈이 번쩍였다.
논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새로운 수술 방법이다.
Wedge resection with lymph node dissection.
각 절제 및 임파선 제거.
병변을 중심으로 위 조직을 3~4센티미터 정도만 제거하는 수술 방법이다.
획기적이다 못해 두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논문을 찾은 인턴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다시 읽고, 또 읽었다.
점막에 국한된 조기 위암이다.
몸통 상부에 위치한 암이다.
홍채연의 상태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가슴이 벅찰 정도로 다가오는 흥분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자꾸만 가빠지는 숨을 훅훅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의사들은 무조건 다른 의사가 한 수술을 따라 하지 않는다. 특히나 암 수술은 더욱 엄격하게 적용했다. 충분한 경험을 토대로 한 보고만이 안전하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론적 근거도 결과 이상으로 매우 중요했다.
‘점막에 국한된 암은 전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병변을 중심으로 부분 절제만 해도 충분하다, 이거지? 단, 조직 검사 결과가 확실하다고 믿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근거는 충분했지만, 그 점을 믿고 임상에 적용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확고한 확신을 가지지 않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결과도 좋았다. 보통 암 환자는 5년 생존률로 예후를 평가하는데 모두 생존했고, 재발도 없었다.
하지만 이내 큰 문제에 봉착했다. 불과 세 건의 보고였기 때문이었다.
‘케이스가 너무 적네. 이걸 믿고 암 수술을 할 수 있을까? 이혁민 선생님이 동의를 하실까?’
고민스러웠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의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위전절제술을 택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안전하고, 이미 검증된 방법이었다.
하지만 환자에게는 너무도 힘든 수술이고, 삶의 질도 급격하게 떨어진다.
반면 논문대로라면?
의사는 불안해하겠지만 환자에게는 위궤양 수술만큼이나 부담이 적은 수술이었다. 만일 재발을 한다면 결국에는 위를 잘라야 하겠지만, 그때 역시 경우에 따라서는 위를 보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암이 갖는 특성과 무서움.
의사와 환자의 입장.
갈피를 잡기 힘들었지만 스스로 확신을 갖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문제였다. 암이기에 다른 질환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론을 내렸다. 케이스 보고와 다름이 없지만 논문을 믿기로 했다. 그들 역시 치열한 고민을 거쳤을 것이다. 확신을 가졌기에 논문으로 발표했을 테고, 어쩌면 지금은 더 많은 케이스를 확보했을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복강경 수술 또한 그렇다. 누군가 선구적으로 시작을 해, 이젠 보편적인 수술 방법이 되기 직전이었다. 언젠가는 이 방법, 혹은 보다 진보적이고 획기적인 방법이 대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안을 떨치고 과감하게 시도해 볼 일이었다. 가능하다면 확인해 보는 것이 최선이다. 의사가 아닌 환자를 위해서 더욱 그래야 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직접 확인하자. 가만! 그러려면 현수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이 자식이 어디 갔지?’
때마침 신현수가 들어왔다.
홍채연에 대해 설명하고 논문을 보여 주었다. 위장관을 하고 싶어 하는 신현수였다. 김지훈 이상으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이 수술이 안전하다면 정말 획기적이네. 미국은 환자들이 의사들의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더니, 이런 수술까지 시도할 수 있고 부럽다. 그래서 이혁민 선생님께 이 방법을 말씀드리려고?”
“당장은 아니고, 일단 확인부터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미국이 지금 몇 시지?”
“동부는 열두 시간 차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건 왜?”
“그럼 미국은 지금 낮이네. 잘됐다. 수술한 의사들한테 직접 확인해 보자. 현수야, 너 회화 되지? 난 안 되니까 니가 전화 좀 해 봐.”
신현수가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국이 옆 동네도 아닌데 난감한 일이었다. 하지만 김지훈의 눈에 가득 찬 열정을 보는 순간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전화번호는 알아?”
“어? 그러네. 어디서 알아봐야 하지? 현수야, 어떻게 하지? 인턴들에게 알아 오라고 하면 될까? 잡일은 못하는 일이 없는 게 인턴이잖아.”
인턴까지 들먹였다. 신현수가 잠시 김지훈을 보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해당 병원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야! 너 능력 좋다.”
김지훈이 엄지를 치켜들며 좋다고 웃었다. 신현수가 입맛을 다셨다.
국제전화다. 병원 내 전화로는 불가능했다. 운이 따르는지 신호가 울리고, 이리저리 교환을 거쳐 결국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전화비 좀 깨지겠네.’
원어민 발음인지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보다 더 유창했다. 발음이 심하게 꼬이는 데다 말까지 빨라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답답해 죽겠네. 영어 회화 공부까지 해야 하나?’
신현수가 영화에서 보는 미국 사람처럼 희한한 몸짓을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도 구분이 되질 않았다. 조바심이 났지만 참아야 했다.
한참 만에야 통화가 끝났다. 득달같이 물었다.
“뭐래?”
“미국이 원래 우리나 일본보다 위암이 적잖아. 그래서 그 이후로도 다섯 케이스 정도밖에 하지 못했는데 결과가 다 좋다네. 이혁민 선생님에게 말씀드리면 시도하시지 않을까?”
간절하게 원하던 답이었다.
김지훈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혁민 교수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려는 순간, 신현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훈아, 밥 사라. 비싼 걸로.”
“갑자기 무슨 밥?”
“국제전화야. 전화비는 우리 월급으로 내야 하는데 서연이가 가만히 있겠어? 부자는 우리 아버지고, 난 너랑 똑같은 월급쟁이다.”
무언들 못해 줄까?
“오케이! 내가 밥 산다.”
호기롭게 외치는 김지훈을 보던 신현수가 입술을 모았다. 이것이 바로 김지훈이 앞서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환자에 대한 애정과 끊임없는 열정이 결국 김지훈을 뛰어나게 만들고 있었다.
‘나라면 논문을 찾아봤을까? 당연히 그랬겠지만, 내 지식을 위해서였겠지. 보다 확실한 결과를 확인한다고 국제전화까지 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을 거야. 답은 결국 환자에게 있는데, 왜 자꾸 그걸 잊을까?’
동기의 뛰어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기보다는 배우고 잊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최고의 써전이 되는 길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았다. 항상 보고 있는 환자만 생각하면 저절로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마치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밤새 뒤척였다. 아침 회진을 올라온 이혁민 교수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일단 회진부터 돌았다. 홍채연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지만 김지훈이 어제와는 사뭇 다른 표정과 눈빛을 보냈다. 상철 엄마만이 의아한 눈치였다.
오늘은 이혁민 교수의 수술이 없는 날이었다. 외래 진료가 시작되기까지는 여유가 있어 설명할 시간이 충분했다. 뭔가 척척 맞아떨어졌다.
“선생님, 의국에서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근데 니 얼굴이 좋다.”
“그럴 일이 있습니다.”
의국에 마주 앉아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하고 논문을 꺼냈다. 새로운 수술 방법을 찾아낸 것만이 아니라 국제전화까지 했다는 소리에 이혁민 교수는 물론 파트 전체가 깜짝 놀랐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어디 보자.”
이혁민 교수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했다. 김지훈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논문을 확인한 이혁민 교수가 신현수를 찾았다. 김지훈의 강렬한 눈빛에 모두들 후다닥 움직였다.
“신현수, 어제 통화했다고? 뭐라고 그래?”
“예, 선생님. 들으셨겠지만 케이스가 모두 여덟 건이었고, 모두 결과가 좋았습니다. 지속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서는 충분히 권유할 수 있는 수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알았다. 니들 오늘 시간 있제? 저녁에 나하고 상의 좀 하자. 니들도 모두 참석해라.”
오프다. 하지만 오프보다 더 행복하고 기쁜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다. 신현수도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과에 전념했다. 짬이 난 서도진과 박순용이 마주 앉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할 말이 없네, 할 말이.”
옆에 앉아 있던 이혁원이 눈가에 힘을 주며 뭔가를 단단히 다짐하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1년차다. 더구나 100일 당직 기간에는 쉴 때도 눈치껏 선배들 눈을 피해야 한다. 박순용의 눈이 홱 찢어졌다.
“혁원아, 너 지금 앉아 있는 거야? 백 일 당직이 편한가 보다. 한 번 더 연장해야겠다고 김지훈 선생님에게 말씀드릴까? 아직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 그래야겠네.”
휙 바람이 불었다. 이혁원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서도진과 박순용이 씨익 웃었다. 빠릿빠릿하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후배를 보는 일은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그랬듯, 그만큼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오후 회진이 끝났다.
이혁민 교수와 파트 전원이 마주 앉았다. 치프들은 당연히 있어야 했고,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남은 이혁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송재덕 교수와 이준영 교수에, 신기동 교수까지 함께했다. 조언을 구할 모양이었다.
“김지훈, 다시 한 번 설명해라.”
또박또박 정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했다.
치열하고 심도 깊은 토론이 이어졌다. 교수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이 과장, 시도할 가치가 충분해 보여.”
이제는 이혁민 교수를 과장으로 부르는 일이 조금씩 입에 붙고 있었다.
“내 생각도 그래. 야! 이거 빤히 알고 있는 일인데도 겁나서 시도할 생각도 못했는데, 그놈들도 대단하네. 경석아, 우리도 조기 대장암 수술을 이런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되겠지? 니가 좀 해 볼래? 어때?”
“나도 괜찮을 것 같아. 결과가 이 정도라면 환자한테는 정말 좋은 일이잖아. 이 과장, 어쩌면 국내 최초일지도 모르는데 한번 시도해 봐. 손일석, 너도 노력 좀 해! 인마!”
애먼 불똥을 맞은 손일석이 입맛만 다셨다.
어쨌든 모두 동의를 했다.
“알겠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김지훈, 홍채연 환자 불러라. 환자가 동의하면 니가 찾아낸 수술 해 보자.”
이혁민 교수가 결정을 내렸다.
김지훈이 벅찬 가슴을 안고 홍채연을 찾았다.
의국에서 상의할 것이 있다는 말에 홍채연이 바짝 긴장을 했다. 상철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뒤를 따랐다.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의국에서 우르르 나오는 의사들의 모습에 움찔거릴 정도였다.
오해였지만 수술 날짜를 정하고,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할 시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암이란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는 이 역시 그만큼 힘들고 두려운 일이었다.
이혁민 교수의 설명을 들은 홍채연이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니까 위를 다 잘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다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도 처음 시도하는 수술이고, 결과가 좋다는 것 역시 미국의 보고입니다. 이런 경우 환자분과 보호자분의 결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환자분, 제 말대로 하시겠습니까?”
홍채연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의만 한다면 위전절제술 대신 일부분만 절제술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이혁민 교수의 말도 온전히 알아듣기 힘들었다.
의학적인 문제이기에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할지는 더욱더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인지 도리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조금 더 자세한 설명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홍채연이 김지훈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하죠? 선생님 결정이라면 믿을게요. 위를 모두 안 잘라도 된다지만, 뭐가 뭔지 몰라 도리어 두렵네요. 도와주세요.’
착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거나 주저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홍채연에게는 분명 자신이 믿고 있는 의사의 확신이 필요했다.
“환자분, 과장님의 결정을 믿고 따르시면 됩니다.”
김지훈의 말에 홍채연이 입술을 깨물며 이혁민 교수를 보았다. 가쁜 숨소리만이 들렸다. 홍채연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선생님 말씀대로 할게요. 아이 아빠도 제 결정이면 아무 말 없이 동의할 거예요.”
“좋습니다. 그럼 수술 일정을 잡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부터는 몸 관리를 잘하셔야 합니다.”
빠르게 수술 날짜를 결정했다.
남은 일은 환자에게 집중하고, 수술 방법을 정확하게 숙지하는 것이었다.
막상 마음을 무겁게 하던 문제가 사라졌지만 부담감은 더욱 커졌다. 이혁민 교수와 함께 수술에 대해 상의할수록 예상과는 달리 수술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병변 주변을 절제하는 과정은 간단했지만 임파선 제거가 관건이었다.
위를 모두 살리는 것과 다름이 없어, 혈류를 공급하는 동맥 손상은 반드시 피해야 했다. 상당히 숙련된 기술을 요했다. 상의할 때마다 항상 함께한 신현수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각한 표정을 짓곤 했다.
‘이거 말로는 간단한데 정말 만만치 않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수술이다.
병변이 워낙 작고, 주변만 절제하기 때문에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식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내시경을 또 시행했다. 클립 3개로 병변 주위 조직을 잡았다. 개복을 한 후 클립이 만져지는 곳이 곧 병변이다.
슬슬 긴장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김지훈,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이혁민 교수의 표정과 목소리는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수술 경험이 준 자신감일 것이다. 만일 실패한다면 그것은 오직 기술적인 문제에서 비롯될 것이다.
홍채연을 찾았다. 기대와 불안이 섞여 복잡한 표정이었다. 수술을 앞둔 환자의 두려움까지 섞여 있었다. 그래도 김지훈에게 믿음을 보이며 애써 웃고 있었다.
“내일이 수술이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환자의 믿음은 곧 의사의 책임감이었다. 수술 방법을 찾아내 제안한 사람도 다름 아닌 김지훈 자신이었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가운 주머니 속에 든 수술 기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날 밤, 여러 사람이 갖가지 이유로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