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51화 (551/1,329)

제2화 어떤 인연도 가볍지는 않다 (2)

얼굴만 기억날 줄 알았다.

“영훈이 어머니?”

자신도 모르게 예전에 불렀던 호칭이 나왔다. 항상 밝은 얼굴에, 이웃들을 너무 챙겨 오지랖 넓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영훈이 엄마의 이름이 홍채연이었던 것이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곁에 서 있는 여인도 기억났다.

“상철이 어머니?”

함몰 유두로 인한 유방 농양으로 응급실에서 절개를 했던 환자였다. 환자와 보호자로 본 것만이 아니라 의료봉사 때도 보았다. 3년이라는 세월 때문이라도 반가운 얼굴이어야 했다. 그런데 위암이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영훈이 엄마, 아니 홍채연이 웃었다. 왠지 처연해 보였다.

“저랑 상철이 엄마를 기억하시네요.”

“그럼요. 당연히 기억나죠.”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의사의 입장을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옛일이 생각났다. 그 탓인지 홍채연이 안쓰럽다 못해 미안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아직은 사람 경험이 적은 탓일지도 몰랐다.

홍채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요. 선생님, 제 병이 뭔지는 아시죠? 음성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갑자기 선생님과 이준영 과장님 생각이 났어요.”

홍채연의 두 눈에서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보였다. 암 환자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었다. 조기 위암의 치료 성적이나 예후를 들으면 조금은 진정이 될 것이다.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 겁을 내시네. 조기 위암이면 굳이 서울까지 올라올 이유도 없는데, 음성 병원에서 설명을 제대로 못 들으셨나?’

어쨌든 과도한 두려움은 득이 되지 않았다. 일단 안심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시경 사진을 저도 봤는데, 조기 위암이 확실하니까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수술 잘 받으시면 큰 문제 없이 건강해지실 겁니다.”

김지훈의 말에도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은 여전했다. 심약한 사람도 이 정도는 아니다. 한마디 말에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예전의 밝고 꿋꿋했던 홍채연을 떠올리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 년 사이에 성격이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선생님, 혹시 제가 가져온 소견서 보셨나요?”

“예, 봤습니다. 내시경 사진하고 조직 검사 결과만 있어서 위치나 진행 정도가 정확하지 않네요. 번거롭더라도 검사를 다 다시 해야 합니다. 그렇게 알고 오신 거죠?”

홍채연이 입을 열려고 하자 상철 엄마가 가로막았다.

“영훈이 엄마, 검사부터 하고 얘기해. 내과 과장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잖아.”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숨기는 기색이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지금 하세요. 치료를 할 때는 사소한 일도 큰 도움이 되거나 반대일 수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시고 잘 치료해 주세요. 영훈이 엄마가 선생님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아시죠?”

상철 엄마의 목소리도 착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면 꼬치꼬치 캐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어떻게 아프셨는지 말씀해 주실까요?”

차근차근 자세하게 병력을 청취했다. 향후 일정을 설명하고, 다시 한 번 홍채연을 안심시켰다. 그래도 얼굴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궁금하거나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저나 여기 이혁원 선생을 찾으시면 됩니다. 그럼 오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아! 그런데 친보호자분은 안 오셨나요?”

“아이들 때문에 집에 있어요. 수술 날짜 결정되면 올라올 거예요.”

홍채연도 어머니였다. 위암에 걸린 자신보다 자식들의 끼니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아이들의 엄마로 불릴지도 모른다.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혁원아,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

“글쎄요. 전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하긴 넌 환자를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차트 다시 보자. 내가 놓친 게 있나?”

달랑 내시경 사진과 조직 검사 결과뿐이었다. 소견서가 있었지만 병명을 적은 것이 다였다.

조금은 입맛이 썼다. 의사로서 환자를 전원시킬 때는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해야 하는 것이 소견서였다.

“혁원아, 어떤 경우라고 해도 다른 병원에 환자를 보낼 때는 자세하게 소견서를 작성해야 해. 정보가 너무 없으면 치료에 도움이 안 되겠지?”

“예. 명심하겠습니다.”

김지훈이 조직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는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점막에 국한된 암이었다. 조기 위암 중에서도 가장 예후가 좋은 경우였다.

암은 임파선이나 혈류를 따라 퍼진다. 점막에는 그런 구조물 자체가 없기 때문에 검사 결과만 확실하다면 전이 가능성은 없다. 예외적이라고 할 정도로 예후가 좋은 암이다.

반면 눈으로는 구별도 되지 않는 미세한 차이지만, 점막 하 조직에 암이 퍼지면 일단 전이가 됐다고 판단해야 한다. 같은 조기 위암이라고 해도 점막에 국한된 경우에 비해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내시경으로 조직 검사를 하면 일부만 떼기 때문에 두 경우를 완벽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기 위암 역시 광범위 절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진행된 암과 똑같이 위를 자르긴 해도, 수술만 잘되면 건강한 사람들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왜 저렇게 무서워하지? 설마 설명을 못 들었나?’

곰곰이 생각에 잠긴 김지훈을 보던 이혁원이 입술을 깨물었다. 음성에서 근무한 지 벌써 3년이나 지났다. 당시 과장이었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공의는 경우가 달랐다.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환자를 보셨기에 1년차에 불과했던 의사를 기억하다 못해 일부러 찾아올 수가 있을까? 선생님도 환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시네. 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지금도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지만, 김지훈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환자에게 집중하고, 선배가 가진 모든 것을 배우는 것만이 답이었다.

차트를 덮던 김지훈이 이혁원을 보았다.

“혁원아, 내시경할 때 나한테 연락해.”

“예? 직접 보시려고요?”

“응.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환자가 이상할 정도로 지나친 반응을 보일 때는 이유가 있지 않겠어?”

내시경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내과의 소견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외과 전공의가, 그것도 4년차가 내시경 소견을 직접 확인하고자 했다.

또 하나의 답이었다.

다행히 시간이 딱 맞았다. 내시경실에 도착하자 막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지훈을 본 홍채연이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상철 엄마가 밖에 있었지만 이제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시작합니다.”

내시경 기계 특유의 소음이 울렸다. 성대를 확인한 후 식도 입구를 찾았다.

“침 한 번 꿀꺽 삼키세요. 꿀꺽!”

가장 넘기기 힘든 부분인 식도를 통과한 굵은 내시경 줄이 순식간에 위를 지나 십이지장에 도달했다. 공기를 불어넣으며 십이지장부터 거꾸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십이지장은 깨끗했다. 위 하부도 깨끗했다.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뭐야? 더 위에 있는 거야?’

슬슬 내시경 줄을 빼던 내과 교수의 손이 멈췄다. 지름이 2~3밀리미터에 불과한 작은 병변이 보였다. 주변 점막이 마치 흉이라도 진 것처럼 뻣뻣했다.

암이다. 그렇게 조그만 병변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다니, 암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새삼스러웠다.

조직 검사가 시작됐다. 조용히 지켜보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위치가 바디(Body)인가요?”

“응. 바디에서도 어퍼(Upper) 쪽 같다.”

김지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위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해부학적으로는 그렇지만 간단히 하부, 몸통, 상부로 보면 된다. 문제는 몸통 하부 밑에 발생한 암이면 부분 절제술을 하지만, 몸통 상부에 발생하면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기 위암으로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니, 환자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상황이었다.

순간 홍채연의 두려움이 이해됐다. 음성 병원에서 어느 정도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암의 위치와 그에 따른 수술 방법을 빼놓았을 리는 없었다. 다만 수술 방법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에 소견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김지훈이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상철 엄마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선생님, 다 끝났나요?”

“거의 다 끝났습니다. 상철이 어머니, 혹시 음성 병원에서 다른 말을 들은 건 없나요?”

“왜 그러세요?”

“영훈이 어머니가 너무 두려워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암의 위치가 안 좋네요.”

상철 엄마가 땅이 꺼질 것처럼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도 다르지 않네요. 처음에는 조기 위암이라고 해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위치가 안 좋다면서 큰 병원에 가 다시 검사를 받으라는 거예요.”

“그래서요?”

“애초에 가긴 갈 생각이었는데, 내과 과장님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렸어요. 한참을 머뭇거리시더니, 위를 다 잘라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이후의 일은 말 안 해도 짐작이 갔다. 검사 결과가 틀렸기를 바랐거나, 아니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의사가 절실했을 것이다.

의외의 결과에 김지훈도 할 말을 잃었다. 홍채연이 감수해야 할 결과가 너무 끔찍했다.

‘조기 위암인데 정말 위를 다 잘라야 하나? 하지만 조기라도 암인데 다른 방법이 없잖아? 후우!’

홍채연 환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우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의사 입장에서 생각해도 안타깝기만 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찾고 싶었다.

그때 문득 학회 생각이 났다. 쟁쟁한 의사들이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의료가 발전한 미국이나 유럽, 혹은 일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새롭게 시도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인턴을 호출했다.

“인턴 선생, 논문 좀 찾자. 키워드(Keyword)는 조기 위암. 어퍼 바디(Upper Body). 수술. 알았지? 최대한 빨리 찾아.”

검사가 이어졌다. 복부 초음파와 CT는 깨끗했다.

회진을 돌며 결과를 확인한 이혁민 교수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홍채연을 만난 이준영 교수가 착잡한 얼굴로 다가왔다.

“아직 조직 검사 결과는 안 나왔나?”

“예. 내일 나올 것 같습니다.”

“이거 문제다. 조기 위암인데 위를 다 잘라야 하나? 선생님, 다른 방법이 없겠죠?”

이혁민 교수도 무척이나 답답한 모양이었다.

이준영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음성에서 근무하며 자주 본 데다 의료봉사까지 같이 가, 어쩌면 김지훈보다 인연은 더 깊을지도 몰랐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환자는 홍채연만이 아니다.

“기분이 안 좋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지훈, 조직 검사 결과 나오는 거 보고 수술 잡자. 내일 갑상선 환자는 수술 준비 잘했지?”

“예. 문제없습니다.”

“알았다. 내일 니 손 한번 보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뛸 듯이 좋아해야 할 김지훈의 표정이 묘했다. 홍채연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인턴이 논문을 계속 찾아오긴 했지만 특별한 내용이 없어 더욱 답답했다.

이준영 교수가 등을 툭툭 두드렸다.

“의사는 감정 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해. 아는 사람이라고 방심하는 것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 역시 좋지 않아. 누가 됐든 환자는 환자다. 어려운 환자는 있어도 특별한 환자는 없다는 걸 잊지 마.”

누구보다도 뼈저린 경험을 한 이준영 교수였다.

인연이 있는 환자가 주는 심적 부담은 의외로 적지 않다. 비록 상황은 많이 다르다지만, 김지훈의 성격상 무척 신경 쓰는 것이 빤했다. 이번 기회에 그런 부담을 이겨 내는 방법을 아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결국 전절제술을 해야 하나? 기분이 너무 안 좋네. 그래. 스승님 말씀은 곧 모든 환자가 특별하다는 걸 거야. 그동안 했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고, 후회하지만 말자.’

“명심하겠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수술도 하기 전인데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다.

이혁원의 얼굴도 어두웠다.

할머니를 자신의 손으로 수술하고 떠나보낸 아버지.

그 마음이 어땠을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김지훈의 얼굴을 보니 반의반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자식조차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끔찍한 세월을 보냈을 것이다.

‘아버지!’

이혁원이 이제야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혁민 교수가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며 말을 아꼈다. 평소 환자의 궁금함이나 치료 방침에 대해 그렇게 세세하게 설명했던 김지훈도 입을 열지 않았다.

홍채연의 얼굴이 점점 절망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사연 없는 환자, 아프지 않은 환자는 없다. 의사로서 결정을 내리면 가슴이 아프더라도 속으로 삭이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환자가 힘들어할수록 의사는 침착해야 했다.

갑상선 환자를 수술하는 날이다.

중요하지 않은 환자는 없다.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과감함보다는 세심함이 필요한 수술이었다.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김지훈은 차분하게 수술 과정을 되새기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혁민 교수는 특별한 말 없이 수술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마취과,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어느 수술보다도 차분해야 했지만 다가오는 긴장은 어쩔 수가 없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어깨에 실린 과도한 힘을 털어 냈다.

시작이다.

김지훈이 과감하게 피부를 절개했다.

흉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머뭇거리지 말고 한 번에 절개하는 것이 유리했다. 유일하게 과감해야 할 부분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눈가를 좁혔다.

‘다음 과정부터는 달라야 한다는 걸 알제?’

꼼꼼하게 지혈을 한 후, 근육 층을 확인했다. 김지훈의 손길이 무척이나 세심했다.

수술 후 합병증 중 가장 무서운 것은 수술 부위에 발생하는 혈종이다. 갑상선 밑으로 지나가는 기도를 압박하면 호흡곤란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출혈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세심한 손길도 중요하지만, 해부학적 구조를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혈관이 거의 분포하지 않는 연결 조직 두 곳을 정확하게 찾는 것이 중요했다.

첫 번째 부위다. 목 양쪽에 위치한 근육의 경계부, 즉 목의 정중앙이다.

절개를 하는 동안 거의 피가 나지 않았다. 기도의 위치를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갑상선 일부를 노출시켰다.

갑상선과 주변 조직 사이에는 투명한 막이 존재한다. 이 막을 따라 갑상선을 제거해야 출혈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신중한 손길로 갑상선을 덮고 있는 조직을 하나하나 박리했다.

쉽지 않았다. 이혁민 교수가 어떻게 수술을 했는지 떠올리며 끈질기게 막을 찾았다. 마침내 무영등 불빛에 반짝이는 조직이 보였다. 켈리로 조심스럽게 막을 따라 갑상선을 분리했다. 점점이 피가 날 뿐이었다.

두 번째 부위가 확실했다.

‘됐어. 이제 가장 조심해야 할 신경과 동맥을 찾아야 해.’

갑상선의 후면으로 신경이 하나 지나간다. 후두와 연결돼 있어 목소리에 영향을 준다. 만일 과도한 조작으로 손상되면 쉰 목소리가 나게 된다. 출혈은 조절할 수 있지만, 신경 손상은 회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평생 그런 목소리로 산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더욱 신중하고 세심한 손이 필요했다. 전과는 전혀 다른 손에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 성격과 부위에 따라 적절하게 자신을 통제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서서히 갑상선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극도로 조심해야 할 신경과 동맥이 보였다. 동맥을 묶기 위해서는 신경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힘과 부드러운 손으로 신경을 피해 가며 동맥을 분리했다.

등이 서서히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고 나서야 동맥을 묶을 수 있었다. 이것으로 한쪽 갑상선을 들어냈다. 반대쪽을 들어내야 한다. 같은 과정이 반복됐고, 김지훈의 등은 점점 축축하게 젖어 갔다.

이제 양쪽 갑상선을 연결하고 있는 부위만 떼어 내면 수술이 끝난다. 하지만 이 부분은 기도와 단단히 붙어 있다. 자칫 손이라도 삐끗하면 기도에 손상을 주는 것은 물론 출혈까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긴장의 연속이다.

“모스키토(Mosquito).”

모기라는 명칭답게 가장 작은 수술 기구로 기도와 붙은 부분을 박리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막을 수 없는 출혈이 있다. 지혈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서서히 연골 특유의 하야면서도 노란 기도가 노출됐다. 갑상선이 확실하게 떨어져 나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불과 2센티미터 남짓을 박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소모했다. 마침내 갑상선이 완전히 절제됐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마무리를 하는 내내 이혁민 교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실 창문 밖으로 언뜻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김지훈, 잘했다. 간만에 마음에 든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병동이다. 뿌듯한 마음을 가득 안고 차트를 보던 김지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직 검사 결과가 나왔다. 무려 여섯 곳을 검사했다. 병변에서 뗀 세 곳은 점막에 국한된 암이었고, 나머지 세 곳은 깨끗하다는 결과였다. 정말 반가운 결과였지만 오히려 마음은 무거웠다.

홍채연 환자를 찾았다.

조기 위암인데도 불구하고 위를 모두 잘라야 한다.

이혁민 교수의 설명에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입술을 깨물며 숨죽여 울던 홍채연의 입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환자의 울음이 이렇게 서럽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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