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어떤 인연도 가볍지는 않다 (1)
결혼과 미래, 그리고 학회가 가져온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앞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실실 웃으며 그 행복을 만끽했다.
생각해 보니 미리 말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늦게 연락하면 재현이 어머님, 아버님이 서운해하시겠지?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하고 정말 죄송하네. 훈철이 형은 바쁠 테니까 날짜가 정해지면 연락을 하자.’
수원에 연락을 하자 이미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고재현의 어머니가 대견하다며, 수원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울먹이는 것 같았다.
아들 친구 중 한 명일 뿐인데, 항상 자식처럼 챙겨 주는 고재현의 부모님이었다. 통화를 끝낸 김지훈의 눈가가 한동안 벌겋게 물들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다시 변함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치프들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흥분과 기쁨, 그리고 놀라움으로 입이 쩍쩍 벌어졌다.
교수들이 이제는 작정을 하고 치프들을 키우기로 한지도 몰랐다. 고성문 원장에게 언질을 받은 김지훈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이경석이었다. 주로 만성 신부전 환자를 수술하기 때문에 가장 깐깐한 신기동 교수가 혈관 수술을 준 것이다. 물론 어디 한 군데 성한 곳 없을 정도로 유혈이 낭자했지만, 감동을 못 이겨 손을 떨 지경이었다.
“뭐야? 이건 배신이야, 배신. 어떻게 날 놔두고 형한테 먼저 혈관 수술을 줄 수가 있지? 어후! 신기동 선생님이 이러시면 안 되는데. 정말 안 되는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던 손일석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방긋 웃었다. 의아해하는 이경석의 눈길에 딴청을 피우며 자연스럽게 전화기를 잡았다.
뭔가 있다. 김지훈과 신현수도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지훈아, 오늘 같은 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기쁨을 두 배로 만드는 게 좋겠지? 야! 지금도 가슴이 떨리네.”
“뭔데 그래?”
손일석이 고개를 쭉 빼며 이경석을 보았다.
“사실 별거 아니긴 해. 대장암 수술 하나 받았어. 오전에 받았는데, 경석이 형도 그렇고 너희들도 바쁜 것 같아서 얘기를 못했다. 대장암 수술 참 재밌네.”
이경석의 눈이 쭉 찢어졌다. 고대하던 수술을 서로 맞바꾼 꼴이었지만,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대장 수술이다.
“이건 배신이야, 배신.”
손일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려다 말고 생각이 잘 안 나는지 입이 꼬였다. 그래도 눈은 웃고 있었다.
손일석과 이경석이 서로 눈을 맞추며 주먹을 불끈 쥐고는 힘차게 흔들었다.
“형, 나 갑자기 타는 게 좋아졌어. 형은 어때?”
“너도 그래? 난 요새 과일 깎는 칼만 봐도 가슴이 설레.”
“맞네. 눈에 보이나, 안 보이나 칼은 칼이네.”
의기양양이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입맛만 다셨다.
“어휴! 저걸 그냥! 현수야, 이혁민 선생님은 아예 생각도 없으신 것 같다. 너라도 라파로를 빨리 받아. 그래야 우리 운이 풀릴 것 같지 않니?”
“어림도 없는 소리. 그동안 니들 운이 얼마나 좋았는데, 정규 수술 좀 받았다고 그런 소리를 해? 아직 우리 운이 만개하려면 멀었다. 그래도 니들 당직 때 응급 수술이 더 많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셔.”
재빨리 끼어든 손일석의 목소리에 신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김지훈보다는 훨씬 큰 희망이 보였다. 최근 아뻬와 탈장을 라파로로 받는 환자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받을 수 있어.’
김지훈과 신현수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각오를 다졌다.
간절히 바라고, 그만큼 노력하면 결국 이루어진다고 했다. 물론 신현수 얘기였다.
뜻밖에도 운은 엉뚱한 곳에서 찾아왔다. 정훈철이었다. 그것도 김지훈이 건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결혼 날짜를 잡으면 정식으로 말하려고 했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자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정훈철에게 전화를 했다.
(지훈아, 정말 축하한다. 자식이, 결국 결혼을 하네. 다 형이 코치한 덕인 줄 알아. 너 술 먹으면서 내가 한 말 기억하지?)
“그럼요, 형님. 감사합니다.”
(얼굴 본 지 좀 됐으니까, 네 오프 시간에 맞춰서 밥 먹자. 와이프하고 승희가 너 보고 싶다고 성화야. 아 참! 그리고 이준영 선생님이 복강경 수술도 하시지?)
“예. 수술도가 아니라 지금은 쟁쟁하십니다. 학회에서 발표까지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세요?”
(그래? 아주 착착 맞아떨어지네. 너하고 나는 보통 인연이 아니다. 우리가 이번에 의학 관련 보도를 하면서 복강경 수술에 대해 다룰 예정이야. 사람들 관심이 의외로 높은 것 같아. 말 나온 김에 잘됐다. 이준영 선생님과 인터뷰도 좀 하고, 겸사겸사 우리끼리 술 한잔하자.)
시간 약속을 잡았다.
이준영 교수가 조금은 웃어도 된다는, 아니 웃으라는 정훈철의 주문에도 불구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터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힘은 정말 무서웠다.
단박에 효과를 보이며 환자들의 문의가 잇따랐다. 그 덕을 신현수가 톡톡하게 봤다. 수술이 연이어졌고, 결국 개인 병원에서 의뢰한 아뻬 환자를 라파로로 수술한 것이다.
‘침착하고 세심한 손이 마음에 드신다고 했지? 탈장 수술만이 아니라 담낭 절제술도 열심히 준비하면 된다.’
어인 일인지 이준영 교수가 칭찬까지 했다. 완전히 붕 뜬 신현수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3 대 1이다. 김지훈이 눈가를 비비며 한숨만 쉬었다.
“역시 위암 수술은 받기 힘들겠지?”
치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암 절제는 위궤양 같은 양성질환으로 절제하는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부분 절제술이라고 해도 난이도로 따진다면 스테이플을 안 써도 되는 직장암 수술과 비견될 정도였다. 전절제술은 스테이플을 써야 하는 직장암과 다를 바가 없었다.
김지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전의 경우를 보아도 그런 전례가 없었다. 위암이 아닌 다른 수술에서라도 경험해 보기를 바라야 했다.
“지훈아, 그래도 위는 잘라 봤잖아.”
“어떻게 수술했는지 기억도 안 나.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러다 위장관 쪽은 바보 되겠다.”
퍼스트를 서며 간접적인 경험은 무수히 했으니 수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노련해지려면 직접 수술을 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간담도 수술에서도 위나 소장을 연결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다.
그래도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 덕인지, 응급 수술이 뜨면 거의 예외 없이 수술을 받았다.
변함없는 열정에 홍재순이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지훈아, 내가 오상익 선생님 대신 당직 서는 날은 우리 만나지 말자. 야! 내가 펠로우가 돼서 너랑 수술을 두고 경쟁할 줄은 몰랐다.”
“선생님은 정규 수술만 하시고, 저 좀 키워 주세요. 솔직히 응급 수술 대부분이 선생님 세부 전공하고는 관련이 없잖아요. 항문 쪽만 하시면 안 될까요?”
많이 컸다. 홍재순은 웃기만 했다. 전공의 중 유일하게 마음을 튼 사람이 김지훈이었고, 자신을 얼마나 대우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휙휙 시간이 흘렀다.
치프들은 여전히 눈물이 날 정도로 타며 수술을 받았다. 그 대신 전공의 수첩에 차곡차곡 수술을 채워 갔다. 곳곳에서 정규 수술이 눈에 띄었다.
모두 중요하지만 응급 수술과 정규 수술은 여러모로 다르다. 난이도를 떠나 질적인 면에서는 정규 수술과 비교할 수 없었다. 은근히 초조해지며 다급해진 김지훈이 마음을 추스르려 애를 썼다.
‘급해지면 퍼스트도 제대로 서지 못해. 환자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초조해하지 말자.’
눈물을 머금어야 하는 김지훈에게 고경아와의 데이트는 커다란 위안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고경아가 음력 생일과 태어난 시간을 알려 달라고 했다.
“음력 생일은 아는데, 시간까지는 확실하지가 않아요. 라디오에서 정오 뉴스 할 때 태어났다는 소리를 듣긴 했어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의외로 맹한 구석이 많다. 한 소리 들을 일이었다.
그런데 고경아가 표정을 확 바꾸며 눈을 흘기다 말고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 씨 어머님이 계셨으면 정말 좋았겠죠? 그래요. 이런 일은 나하고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지훈 씨는 신경 쓰지 말아요.’
“엄마가 결혼 날짜 받는다고 하시네요. 이왕이면 좋은 날에 하면 더 좋잖아요. 궁합하고 사주도 봐야 하고요.”
“아! 그렇구나. 근데 안 좋다고 나오면 어떻게 하죠?”
“그럴 리가 있어요? 지훈 씨랑 나랑은 분명히 천생연분이라고 나올 거예요. 사실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보란 듯이 잘 살면 되잖아요. 그리고 한눈팔면 알죠?”
눈빛이 서늘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맹세를 하던 김지훈이 심호흡을 했다.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결혼을 실감하자 기분이 묘해졌다.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이랄까?
장인과 장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과 인생을 같이해야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오직 김지훈 자신만을 믿고 함께하려 한다.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사람이기에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날 믿고 사랑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오늘따라 유난히 예뻐 보이는 고경아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에 슬며시 몸을 기울이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훈 씨, 다음 주말 오프 꼭 챙겨야 돼요. 그다음 오프 때도 마찬가지고요. 이번에는 절대 안 돼요.”
“왜요?”
“엄마랑 가구 보러 가기로 했어요. 아침 일찍 서둘러도 저녁이나 돼야 끝날 테니까, 전날 절대 술 먹지 말고요.”
신혼살림 장만이다. 환한 웃음을 짓던 김지훈이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이것 역시 쇼핑이다. 아무리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고 해도 이 와중에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 하루 종일이라는 말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제발 마음에 드는 가구가 빨리 보이기만을 빌었다. 아니, 고경아와 장모의 단호한 결단이 필요했다. 이미 본 가구를 보고 또 보고, 한 바퀴 돌아서 또 보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
“우리가 함께 쓸 가구를 고른다는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너무 떨려요. 지훈 씨도 그렇죠?”
“그럼요. 당연하죠.”
‘어떤 신발이 제일 편하더라? 아예 새 신발을 살까? 다리 운동도 해야 하나?’
고경아는 가슴이 떨렸지만, 김지훈은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이었고, 평생에 한 번뿐이다. 기쁜 마음으로 하루 종일 밝게 웃으며 돌아다녀야 할 것이다.
그날 밤, 김지훈이 잠깐 기다리라며 급히 숙소를 다녀왔다. 헤어지기 직전 고경아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통장과 도장이었다.
“어차피 경아 씨가 관리해야 하니까 미리 줄게요.”
대답도 하기 전에 김지훈이 사라졌다. 고경아가 통장을 바라보며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 산다는 의미만이 아니었다.
***
어느새 4월이 다 지나고 5월의 문턱에 들어섰다.
오늘도 무사히 모든 수술을 끝마쳤다.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이혁원을 보며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난주 이혁원은 이미 또 한 차례 수술을 받은 상황이었지만, 1년차들의 집도식을 한꺼번에 치렀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내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스승에게 받은 빛바랜 메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메스에 담긴 스승님의 마음이 무얼까? 그냥 내가 마음에 든다고 주신 게 아니라 보다 큰 의미를 담으셨을 텐데, 내 마음대로 줘도 될까? 아이고! 모르겠다. 나도 음성 근무가 끝나면서 받았으니까 조금 더 고민해 보자.’
그때 수술 방 복도에서 송재덕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교수, 지훈이 수술 안 줄 거야? 요새 치프들 얼굴 봤지? 좋아서 난리도 아니다. 근데 딱 한 놈만 얼굴색이 안 좋다. 안 좋아. 이유가 뭐겠어? 저때는 정규 수술하고 응급 수술의 의미가 다르다는 걸 알잖아. 그치? 알지?”
“저도 그랬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그간 적당한 케이스가 없었습니다만, 다음 주 초에는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어떤 수술 줄 거야? 뭐야?”
“아직 위암이나 유방암은 힘들고, 갑상선 쪽을 먼저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졌다. 김지훈의 가슴은 점점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갑상선? 다음 주 초에 수술 예정이란 말이지. 그럼 주말에 입원하겠네. 이번 주는 주말 당직인데 잘됐다. 철저하게 환자 파악하고 준비하자.’
갑자기 온몸에서 활기가 돌았다. 마침 갑상선암 수술이 있었다. 평소에도 눈을 부릅떴지만 이번에는 더욱 집중을 했다. 수술 과정 하나하나를 뇌리에 박았다.
모든 수술을 마치고 의국으로 올라가는 김지훈의 발걸음이 힘찼다. 사실 갑상선 절제술을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해낼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도 충분하게 숙지하고 있었다.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수술 과정을 그렸다.
‘출혈 확실하게 잡고, 신경만 조심하면 돼.’
고개를 끄덕이며 병동에 들어서자 서도진이 급히 달려왔다.
“선생님, 이혁민 선생님이 바로 전화하시래요.”
수술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곧 회진을 도는데 의아한 일이었다. 바로 전화를 했다.
(김지훈, 니 혹시 홍채연이라는 사람 아나?)
홍채연?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그래? 니를 안다고 하던데 이상하네.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알았다. 음성 병원에서 조기 위암 진단 받고 수술 받으러 온 환자다. 니는 모른다지만 환자는 널 아는 모양이다. 내일 입원해서 검사 다시 싹 해야 하니까 신경 좀 써라.”
전화를 끊은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김지훈 이노마, 음성에서 도대체 어떻게 일을 한 거지? 게다가 1년차였잖아. 내 살다 전공의 찾아서 온 환자는 처음 보네. 혹시 착각한 거 아니야. 이준영 선생님은 이 환자를 아실까?’
그 시간, 김지훈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 이름 외우는 재주가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홍채연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간호사부터 직원들까지 음성 병원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닿은 사람은 많았다. 아마도 그중의 한 명일 것이다.
‘분명히 스승님과 날 다 아는 사람일 것 같은데, 왜 나까지 안다고 했지? 그런다고 특별한 대우를 받는 건 아닌데.’
흔히 보는 일이었다.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의료진을 안다는 것 자체가 큰 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환자들보다 자신에게 더 신경을 쓰고, 최선을 다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또한 환자였다. 그 탓에 조금만 인연이 있어도 내세우는 경우가 종종 보이곤 했다.
김지훈도 그런 점을 알고 있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전공의인 데다 이혁민 교수가 전화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내일이면 알 일이었다.
다음 날, 홍채연이라는 환자가 입원을 했다.
연락을 받은 김지훈이 시간이 나자마자 스테이션으로 달려와 차트를 확인했다. 이혁민 교수의 전화와는 무관하게 항상 그렇게 해 온 일일 뿐이었다.
43세 여자 환자.
조기 위암.
내시경과 조직 검사 결과만이 첨부돼 있었다. 복부 CT도 찍기 전에 서울로 올라온 모양이었다. 분명 검사를 다시 한다고 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이혁원이 지금도 떡하니 옆에 서 있었다.
“혁원아, 내시경, 초음파, CT 교수님들과 방사선과에 부탁해서 최대한 빨리 챙겨.”
특별한 대접이 아니다.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들은 다른 환자들보다 우선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암 환자인 데다 입원한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단 환자부터 보자.”
‘도대체 누굴까? 날 안다고 할 정도면 안면은 있는 사람일 텐데, 직원들 중 한 명이겠지?’
병실로 들어선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벌써 만으로 3년이나 지났는데 너무 눈에 익은 여인 2명이 보였다. 환자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홍채연일 것이다. 초췌한 얼굴로 김지훈을 보고 있었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어둡기 짝이 없었다.
“김지훈 선생님.”
김지훈이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남들보다 특별한 환자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모든 환자를 그렇게 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왜 가슴이 답답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신현수의 할아버지나 윤서연의 아버지가 입원했을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친근하게 느꼈던 사람이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