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44화 (544/1,329)

제9화 우리의 능력을 증명해 보자 Ⅱ (1)

소장은 위치에 따라 각각 십이지장, 공장, 회장으로 분류한다. 그중 공장은 길이가 가장 길고, 해부학적 위치가 적당해 식도와 연결하기에 적절하다.

이혁민 교수가 공장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15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부분을 잡았다. 이 지점에서 자르고 끌어 올려 식도와 연결할 것이다.

눈여겨보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점이었다.

공장을 잘랐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기가 소장이라지만, 복막과 연결돼 있는 장간막 때문에 바로 식도에 연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장간막을 무작정 자를 수는 없다. 그 속에 공장으로 들어가는 동맥이 있기 때문이다.

이혁민 교수가 신중한 표정으로 장간막을 절제할 선을 찾았다. 동맥을 확실하게 보존해야 식도에 연결한 후에도 충분한 혈류를 공급할 수 있다. 그래야 연결 부분이 붙는다.

“켈리.”

장간막의 한 부분을 잡고 잘라 가기 시작했다.

김지훈의 손이 과감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눈은 침착하기만 했다. 위전절제술은 흔한 수술이 아니었다. 어디를, 어떻게 잘라 나가는지 지금 배우지 못하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수도 있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였다.

장간막을 잡고, 자르고, 타이했다. 곧 20센티미터에 이르는 공장이 장간막과 함께 분리됐다. 공장이 소장 특유의 분홍빛을 유지하고 있었다. 혈류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상당히 수월해 보였지만 절대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너무 쉽게 하시네. 이래서 실력만이 아니라 충분한 경험도 필요하다는 거겠지?’

이혁민 교수가 식도 쪽으로 공장을 끌어 올리며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혈류는 원활했고, 길이에도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처리해야 식도와 연결할 공장을 충분하게 확보할 수 있구나. 위전절제술은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확실하게 기억해 두자. 그럼 이젠 연결하는 일만 남은 건가?’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최고 난이도의 과정이 남았다. 가슴속 가득했던 자신감이 슬그머니 꼬리를 말았다. 전에 없는 긴장이 몰려왔다.

스테이플을 이용한 직장암 수술을 할 때, 시야를 거의 확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타이는 해 봤다. 그때는 한 번이었지만 지금은 몇 번을 해야 할지 모른다.

4년차가 돼서도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무수하게 남았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평생 잊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연결하자. 니들 홀더.”

이혁민 교수가 허리를 굽히며 식도와 공장의 위치를 잡았다. 서도진과 이혁원이 리트랙터를 강하게 당겼지만 수술 시야는 여전히 나빴다. 무영등 초점까지 다시 맞춰야 했다.

첫 번째 수처다. 가장 긴 니들 홀더를 사용해 조심스럽게 공장과 식도 후면을 한 바늘 떴다. 여전히 부드럽고 섬세했지만, 이혁민 교수에게도 쉽지 않은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타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을 조여 오는 압박감에 훅! 숨을 내뱉었다.

타이할 부분을 최대한 확인한 후 신중하게 실을 잡았다. 조심스럽게 매듭을 짓고 밀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이 달랐다.

정상적인 탄력을 유지하는 공장과 연약해진 식도를 단단하게 연결시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어려웠다. 마치 질긴 가죽과 쉽게 찢어지는 종이를 연결하는 것 같았다.

공장에 힘을 맞추면 식도가 찢어지고, 식도에 힘을 맞추면 공장 부분이 헐거워질 상황이었다. 가장 적절한 세기를 찾아야 했다.

오직 타이에만 집중했다.

여전히 이질적이다. 공장이 조여지는 감각과 식도의 촉감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매듭을 밀착시켰다.

좁은 수술 시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손끝으로 전해지는 느낌만을 믿어야 했다.

첫 번째 타이가 끝났다.

이혁민 교수가 눈가를 좁히며 타이를 확인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다시 풀 수도 없었다. 잘못됐다면 식도를 자르고 새로운 봉합 면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뒷덜미에 달라붙어 있던 긴장이 온몸으로 퍼졌다.

이혁민 교수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니들 홀더.”

두 번째 수처다. 타이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두 번째 타이를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수월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도저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어렵다. 힘들다.

실이 끊어질지도, 혹은 제대로 타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지워지질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타이가 어려운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오로지 집중뿐이다. 자신의 손을 믿고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수처와 타이가 반복됐다. 불편한 자세와 지속되는 긴장 때문에 허리가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온몸이 축축해졌다.

드디어 1차 봉합이 끝났다. 우려와 걱정과는 달리 식도와 공장이 말끔하게 연결돼 있었다.

이혁민 교수는 지금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당연히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가슴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했다. 타이의 어려움은 여전했고, 그 탓에 실수에 대한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씀이 없으시다는 것은 잘했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불안하고 자신감까지 떨어지지?’

이번 수술은 다른 어느 수술보다도 많은 준비를 했는데,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강을 할 차례다. 1차 봉합 위로 2차 봉합을 해, 이중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 봉합 부위보다 더 위쪽에 위치한 식도에 공장을 연결해야 한다.

수술 시야는 더욱 나빠지고, 손이 들어갈 공간 역시 전보다 더 좁아진다. 결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이놈의 긴장이 왜 이렇게 안 풀어지지? 난 할 수 있어. 긴장 풀고 정신을 바짝 차리자. 지금까지 한 것처럼 똑같이 하면 된다.’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며 어깨를 흔들었다.

“니들 홀더.”

이혁민 교수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집도의의 침착함과 일관성은 큰 위안이었다.

“타이.”

예상대로 수술 시야가 더 좁아졌다. 타이할 부분을 세심하게 확인했다. 매듭이 위치할 부분을 살피고, 공장과 식도에서 전해지는 느낌에 집중했다.

반복이다. 똑같이 어렵고 힘들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타이에 집중하는 김지훈을 보던 이혁민 교수가 서도진을 보았다.

“서도진, 수술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지금 요구되는 세컨과 써드의 역할은 단 하나다. 공간과 시야를 최대한 확보해 주어야 한다.

서도진과 이혁원이 끙! 소리를 내며 리트랙터를 끌었다. 고령의 마른 몸이라고 해도 늑골과 복벽이 갖는 힘은 만만치 않다. 더구나 시간도 꽤 지난 상태였다. 팔에 힘이 빠지고도 남았다.

“조금만 더 참아라.”

손을 달달 떨던 이혁원이 이를 악물었다. 리트랙터를 끄는 단순한 일에도 요령이 있다. 서도진이 눈짓을 해 끄는 방향을 고쳐 주었다.

그 덕에 시야가 그나마 나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어렵다. 조직만 강하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식도다. 찢어지는 순간 십중팔구 흉부를 열어야 한다.

‘어후! 스승님과 두 분이 하실 때는 가슴까지 열고도 수월하게 하시는 것 같았는데, 정말 어렵네.’

수처와 타이가 이어졌다. 극도의 긴장 속에 타이를 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감이 왔다. 불현듯 식도를 향해 공장을 끌어 올리는 방식으로 타이를 하면 손상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식도는 고정돼 있고, 공장은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타당한 판단이었다. 신중하게 시도해 볼 일이었다. 최소한 나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타이.”

막바지다. 몇 바늘 남지 않았다.

식도와 연결된 공장이 좁은 공간을 차지한 탓에 시야는 더욱 나빴다. 그런데 한결 수월했다. 공장에서 전해지는 힘과 식도의 촉감이 명확하게 느껴졌다.

같은 방식으로 타이를 했다. 역시 수월했고, 매듭은 단단하게 공장과 식도를 묶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제대로 가고 있다는 생각에 김지훈의 긴장이 살짝 누그러지며 손까지 달라졌다. 본연의 모습을 확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젠 경험과 감각만이 아니란 말이지? 내 보다보다 이놈처럼 빠른 놈은 처음 보네.’

“방금 전보다 지금이 더 쉽나?”

어떻게 알았을까?

“예. 한결 편합니다.”

“그래? 이유가 뭐야?”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과 타이 방식을 설명했다.

“잘 봤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면서도 쉬운 방법이다.”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럼 1차 봉합 때 타이는 제대로 한 걸까?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온갖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좋아하기보다는 도리어 걱정하는 모습을 본 이혁민 교수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즐거운 일이었다.

“왜, 무슨 문제 있나?”

“선생님, 그럼 지금까지 한 타이는 제대로 한 겁니까? 혹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걱정이 됐다. 어느 순간 타이의 난이도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혁민 교수가 니들 홀더를 잡다 말고 소리 내 웃었다.

“걱정 마라. 똑같이 했다. 머릿속으로 알고 하는 것과 자신의 경험과 감에만 의존하는 것의 차이다. 그게 이론의 중요성이야. 머릿속이 텅 비면 똑같은 일도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혁민 교수가 조곤조곤 목소리를 이으며 마지막 수처를 했다. 김지훈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마지막 타이를 했다.

한결 쉽다. 마지막 타이라는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도의는 침착했고, 퍼스트는 긴장과 집중을 잃지 않았다. 그 덕에 식도와 공장이 완벽하게 이어졌다. 깔끔한 결과에 만족스러운 미소와 뿌듯함이 교차했다.

사실상의 마무리에 들어갔다. 십이지장에서 이어진 공장과 식도와 연결된 공장을 이어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간단하게 말해 ‘Y’ 자 모양의 소화기 통로를 만든 것이다.

김지훈이 긴 숨을 내뱉었다.

‘수술이 잘돼서 정말 다행이다.’

비록 위가 없어 앞으로는 유동식을 하루 여섯 차례 이상 섭취해야겠지만, 스키로스 타입의 위암을 모두 제거했다.

고령이기에 남은 생을 다 누릴 수도 있었다. 삶의 질 역시 환자의 마음과 자신의 남은 생을 대하는 자세에 달렸다. 자식을 위하는 마음의 10분의 1만이라도 자신을 위해 쓴다면 만족할 것이다.

마침내 수술이 모두 끝났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어느 틈엔가 수술실에 들어온 이준영 교수의 눈에 흡족함이 가득했다.

물론 그 전에 등을 돌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혁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길도 돌리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가 아버지라는 사실이 왠지 난처한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다.

“이 교수, 잘 끝났지?”

“김지훈 저놈 덕에 잘 끝났습니다. 써전으로서의 감각도 최고인 데다 수술이 끝나기도 전에 핵심을 잡아내네요.”

“그래그래. 내 그럴 거라고 했지? 무슨 놈의 걱정을 그렇게 해? 지훈이를 그렇게 보고도 나보다 모르면 안 되지. 암! 안 되지. 이 교수, 지금도 늦지 않았어. 나한테 넘겨. 나한테. 내가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 줄게. 나만 믿으면 복이 온다. 복이 와.”

제자에 대한 욕심은 얼마든지 부려도 좋은 일이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지만 상대는 벽이다. 표정조차 변하지 않는 이준영 교수의 얼굴에 송재덕 교수가 입맛을 쩝쩝 다셨다.

“하긴 수술 내내 기웃거리는 걸 보니까 내 마음도 좀 약해지더라. 준영아, 그렇게 걱정이 됐니? 지훈이는 믿어도 좋아. 우리 치프들은 다 믿어도 돼. 뭘 그렇게 불안해하니?”

우유를 쪽쪽 빨던 이혁민 교수가 웃었다.

“정말 그러셨습니까?”

“선생님, 내가 언제 그랬어요? 그냥 지나가다 슬쩍 본 것뿐입니다.”

이준영 교수의 멋쩍은 변명에 다들 웃었다.

6시간이 넘는 수술이었다. 환자가 순조롭게 깨어난 것만으로도 쌓인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간단하게 우유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고 다음 수술을 들어갔다.

임영순 환자의 수술은 오늘 밤 시간을 두고 꼼꼼하게 정리할 생각이었다. 특히 이혁민 교수의 말을 깊게 되새겨야 했다. 실전 못지않게 이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장 기본적인 술기인 타이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다음 수술에 집중하자.’

오후 6시다.

마지막 수술이 끝나기 직전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부지런히 마무리를 하고 있는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비워야 한다.”

“예? 이번 주가 아니라 다음 주 주말이요?”

“그래. 다음 주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일까?

주말 오프다. 간만에 단둘이 대관령을 넘기로 약속까지 했다. 정수리에서 시작된 차가운 기운이 목덜미를 지나 등짝까지 서늘하게 만들었다. 고경아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았다.

식은땀까지 난다. 김지훈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선생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제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입 밖으로 내면 아마도 맞아 죽을 것이다.

정말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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