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43화 (543/1,329)

제8화 우리의 능력을 증명해 보자 Ⅰ (2)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작고 마른 몸과 굵은 손마디가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헤쳐 오며 자신의 아픔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을 어머니였지만 지금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눈가에 파인 깊은 주름이 더욱 깊은 골을 만들었다. 노인 특유의 느린 박동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 때문인지 노란 위액이 역류하며 코 줄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김지훈이 바르르 떨리는 임영순의 손을 꽉 잡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한 잠 주무시고 나면 수술 잘 끝나 있을 겁니다.”

김지훈도 긴장 이상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상당히 진행된 스키로스 타입이기에 수술이 가능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가능하다고 해도 위전절제술은 퍼스트를 서 본 경험이 없었다. 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고비와 어려움의 연속일 것이다.

일반 외과를 전담하며 무수한 수술을 함께한 고경아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진호 교수의 손길 역시 오늘따라 유난히도 신중했다. 고령과 약해진 몸은 오랜 마취와 수술을 버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취가 끝났다. 축 늘어진 임영순의 육신이 애처로웠다.

더 이상의 감정 개입은 금물이다. 수술 중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냉철하고, 이성적이어야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긴 숨을 내쉬며 어깨를 흔든 김지훈이 서도진과 함께 수술 준비를 시작했다. 이혁원이 써드를 설 것이다. 수술의 난이도와 위험도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복부를 소독하고, 깨끗한 천으로 전신을 덮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던 이혁민 교수가 집도의 자리에 섰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수한 경험을 가진 노련한 외과의라도 수술 전 적당한 긴장과 이완은 필수였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메스.”

임영순 환자의 상복부를 길게 절개했다.

작은 키에 비쩍 마른 고령의 환자다. 피하지방이라고 할 것도 없었고, 조직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너무도 쉽게 배가 열렸다. 곳곳에서 새어 나오는 빨간 피에 도리어 마음이 놓일 지경이었다.

서도진과 이혁원이 리트랙터를 당겼다. 엷은 복벽 덕분에 배 속이 환하게 드러났다.

암 수술은 전이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 복부 CT에서는 전이가 관찰되지 않았지만 100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당히 진행된 스키로스 타입이다.

먼저 위와 평행 결장을 연결하는 대망부터 시작해 장간막을 살폈다. 마치 좁쌀을 뿌린 것처럼 배 속 전체에 암 세포가 퍼졌다면 손을 쓰지 못한다. 말 그대로 열고 닫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다행이다. 깨끗했다.

간을 비롯한 다른 장기에도 원격 전이는 없었다. 더욱 중요한 부분이 남았다. 바로 암이 발생한 위 자체다.

만일 위 전체에 퍼져 식도와의 경계까지 단단하게 변했다면 말기 암이다. 역시 수술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스키로스 타입의 경우 어디까지 암이 퍼졌는지 육안으로는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이혁민 교수가 신중한 손길로 위를 확인했다. 복부 내에 위치한 식도를 확인할 때는 눈가까지 찡그리며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자 애를 썼다.

이내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던 이혁민 교수가 김지훈을 보았다.

“김지훈, 위하고 식도 확인해 보고, 니 판단은 어떤지 말해 봐라.”

스키로스 타입이 어떻게 만져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소리만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소견을 종합해 수술이 가능한지, 또한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수술해야 하는지 판단하라는 말이었다. 4년차에게 필요한 교육이자 수련이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넣었다.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인 유문부터 확인했다. 말랑말랑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던 장이 유문을 넘어서자 급격하게 딱딱해졌다. 촉감으로는 메스로 자르기도 힘들 것처럼 단단했다.

그 딱딱함이 위의 하부에서 시작해 몸통 부분까지 이어졌다. 위의 3분의 2에 이를 정도로 광범위했다.

초조했다. 이 이상 침범했다면 암세포가 전체를 다 갉아먹었다는 의미였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든 수술을 할 수 있다는 것과 불가능한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환자의 예후와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암을 제거해야 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위의 상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여전히 딱딱하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돌연 위벽이 부드러워지며 강한 탄력이 느껴졌다. 정상적인 위에서 보이는 소견이었다.

자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위벽 일부를 타고 식도에 암세포가 퍼졌을 수도 있었다.

위의 상부가 급격하게 좁아지며 식도와 이어지는 부분을 찾았다. 김지훈이 눈가에 깊은 주름을 만들며, 식도에서 전해지는 촉감을 정확하게 판단하고자 애를 썼다.

복강 내에서는 복막에 싸여 있는 데다 식도의 길이가 2~3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조차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지훈의 표정이 밝아졌다. 식도 특유의 감촉이 전해진 것이다.

스키로스 타입이기에 도리어 암이 퍼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100퍼센트 확신할 수도 없고, 당장은 확인할 방법도 없었지만 수술을 진행해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떻나?”

“수술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지? 시작하자.”

임영순 환자가 첫 번째 고비를 넘겼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혁민 교수는 이유나 근거를 묻지 않았다. 응급실부터 지금까지 환자를 책임져 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김지훈에 대한 이혁민 교수의 신뢰가 생각 이상으로 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강한 책임감을 느낀 김지훈이 짧은 숨을 훅 내뱉었다.

서도진과 이혁원에게 눈길을 주고는 수술 과정을 빠르게 되새겼다.

본격적인 위절제가 시작됐다. 이 부분은 통상의 위암 수술과 다를 바가 없는 과정이다. 거칠 것이 없었다. 배운 대로, 해 온 대로 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눈에 안 보이는 전이까지 제거하기 위해서는 주변부를 광범위하게 절제해야 한다. 위와 평행 결장을 연결하는 대망을 모두 박리했다. 십이지장에 면한 부분까지 박리해 유문 부위를 노출시켰다.

장겸자로 십이지장과 위를 잡고 잘랐다.

“니들 홀더.”

니들 홀더를 받아 든 이혁민 교수가 꼼꼼하게 십이지장을 봉합했다. 다른 부위와 연결하지는 않지만 수술 후 새기라도 하면 큰 문제가 생긴다. 무차별하게 주변 조직을 녹일 수 있는 담즙과 췌장액이 모두 흘러나오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었다.

“타이.”

위궤양 천공 환자가 올 때마다 다뤘던 부위다. 김지훈이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움직였다. 이중으로 봉합하고 타이를 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깔끔하게 십이지장을 처리한 후, 위에서 간과 비장으로 연결된 조직을 박리하고 잘랐다. 조금이라도 힘을 과하게 쓰면 쉽게 찢어지는 부분이다. 통상 볼 수 있는 출혈 이외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가장 주의해야 할 위동맥은 이중, 삼중으로 타이를 해 확실하게 처리했다.

따르륵! 따가각!

톱니가 맞물리고 풀릴 때마다 위와 육체와의 연결이 사라졌다. 마침내 위식도 경계부에 도달했다. 이제 위는 식도를 제외한 모든 조직과 분리됐다.

수술 시야가 급격하게 좁아졌다. 김지훈이 서도진과 이혁원에게 눈짓을 했다. 리트랙터에 전해진 강한 힘이 복벽을 좌우로 벌렸다. 무영등 초점을 맞추자 복강 내 위치한 식도가 환하게 보였다.

2~3센티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위를 절제한 후 식도와 소장을 잇기에는 너무 짧았다. 복막에 둘러싸인 식도 주변을 박리해 4~5센티미터 정도는 확보해야 했다. 그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힐끗 김지훈을 본 이혁민 교수가 식도 주변을 박리하기 시작했다. 경계가 명확한 부위가 아니다. 경험과 눈, 그리고 촉감에 의지해 식도가 손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허리를 잔뜩 숙인 채 손을 놀리는 이혁민 교수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복막이 박리될 때마다 잘린 연결 조직을 따라 피가 흘렀다. 출혈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가뜩이나 좁은 시야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이는 수술의 성패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따르륵!

“타이.”

두 손을 넣기에는 너무 좁은 공간이다. 그러나 타이가 아니면 출혈을 통제할 수가 없다.

김지훈이 직장암 수술의 경험을 떠올리며 최대한 손을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실에 매듭을 지었다.

본래 약한 조직이다. 조금이라도 힘을 과하게 주면 실과 함께 조직이 떨어져 나올 것이다. 만일 식도 점막이 손상된다면 흉부까지 열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반대로 약하면 출혈을 잡지 못한다. 가진 능력을 모두 동원해야 할 때였다.

긴장과 고도의 집중이다.

손끝을 따라 연약하고 끊어지기 쉬운 조직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손가락을 밀었다. 매듭이 단단하게 조여지는 순간을 정확하게 찾아냈다.

연이어 타이가 이어졌다. 매번 긴장의 연속이었다.

목덜미를 따라 땀이 흘렀다. 그러나 김지훈의 손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과감함과 신중함이 이어지는 손은 자연스럽기만 했다.

이혁민 교수의 눈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마침내 복강 내 식도를 둘러싼 복막을 모두 박리했다. ‘ㄱ’ 자처럼 생긴 장겸자로 식도를 잡고 위와 함께 살짝 끌어당겼다. 소장과 연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길이를 확보했다.

여기까지 진행한 이상 반드시 식도와 장을 연결해야 한다. 돌이킬 방법은 없다. 이 부위를 자르고 무작정 이을 수도 없었다. 식도에 암이 침범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긴장된 표정으로 위식도 경계부를 잘랐다. 위 전체와 연결됐던 조직들이 한 덩어리로 제거됐다.

미리 들어와 대기하고 있던 박순용이 식도와 연결됐던 부분을 도넛 모양으로 자르고는 병리실로 향했다. 이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꼼꼼하고 세심한 이혁민 교수였기에 더 이상 손을 댈 곳도 없었다. 남은 과정은 소장과 식도를, 혹은 흉부를 더 열고 대장과 식도를 연결하는 것뿐이었다.

김지훈은 물론 수술 팀 전체가 답답한 숨을 내쉬었다. 수술이 커지면 커질수록 위험도는 증가한다. 이미 수술은 고령의 임영순 환자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벌어졌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과가 나올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박순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암세포 유무에 따라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병리실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것이다. 혹시 전이가 의심돼 다시 검사를 진행하는지도 몰랐다.

문득 든 생각에 더욱 초조해졌다.

‘후우! 수술이 더 커지면 환자분이 버틸 수 있을까? 만일 가슴을 열어야 하면 서연이 아버님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이혁민 교수도 답답한지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턴을 보내서라도 왜 연락이 없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나직한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모든 귀와 눈이 전화기로 쏠렸다. 박순용이었다.

시간이 너무 걸렸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통화를 하는 간호사의 숨죽인 목소리에 초조하기만 했다.

‘나쁜 생각은 하지 말자. 제발!’

1초가 1분처럼 느리게 흘렀다.

김지훈이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았다. 불행한 결과가 나올까 봐 간호사의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드디어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밝고 힘차다.

“선생님, 프리랍니다.”

두 번째 고비를 넘겼다.

김지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다.

암 수술을 할 때마다 매번 벌어지는 일이었다. 적응할 수 있는 일이 아닌지 심장이 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만큼 프리라는 소리에 안도하고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혁민 교수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고경아도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식도와 소장을 연결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였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하기도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었다. 수술 팀의 긴장이 치솟았다.

‘난 할 수 있다. 배운 대로, 해 온 대로만 하면 돼. 자신감을 갖자.’

긴장보다는 자신감이 필요했다.

고경아와 눈을 마주친 김지훈이 가볍게 고개를 돌려 뻐근한 어깨를 풀었다.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임영순 환자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는 환자 상태에 따라 좌우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수술 팀의 능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특히 퍼스트인 김지훈의 능력이 중요했다. 사소한 실수 하나가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 있었다.

이혁민 교수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훈, 진행하자.”

여느 때처럼 침착했지만 힘이 담겨 있었다. 이대로 진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김지훈을 믿고 있다는 말이었다.

식도와 소장을 연결할 준비가 시작됐다.

김지훈의 눈이 번쩍였다.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는 경험하지 못한 과정이었다. 눈으로만 보았을 뿐이었다.

좁은 수술 시야만큼이나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그 모든 것을 깨 버리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기본과 원칙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왔다.

집도의는 자신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수술 팀은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술은 기존 수술의 연장일 뿐이었다.

자신감이 치솟았다. 절대 자만이 아니었다. 김지훈 스스로 자신을 믿고, 수술 팀을 믿는다면 하지 못할 수술은 없다.

이혁민 교수가 식도와 연결할 소장을 배 밖으로 끄집어냈다. 퍼스트를 서는 김지훈의 손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마스크 속에 숨은 이혁민 교수의 얼굴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시작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