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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541화 (541/1,329)

제7화 홀로 설 줄 알아야 함께 갈 수 있다 Ⅱ (2)

보호자들이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청천벽력이다.

내시경을 세 번도 넘게 했다. 분명 조직 검사까지 했고, 문제없다고 들었다.

“선생님, 위암이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그러면 전에 어머님이 다녔던 병원들에서는 왜 발견을 못한 겁니까? 오진을 한 건가요?”

“오진이 아닙니다. 위암 중에 아주 드물게 스키로스 타입이라는 형태가 있습니다. 발견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스키로스 타입(Scirrhous Type)!

위암을 비롯해 모든 암은 특정 부분에 종물이나 궤양 형태로 발생한다. 반면 스키로스 타입은 마치 가는 모래를 흩뿌린 것처럼 위벽을 따라 넓게 발생한다.

또한 조직학적 특징으로 인해 다른 암보다 상당히 딱딱한 조직을 형성한다.

경성(硬性) 위암이라 불리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보면 위의 어느 한 부위가 모두 암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점막이 아니라 주로 점막 하부 조직에서 암이 발생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위염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상당히 진행되기 전까지는 내시경을 해도 이상을 발견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조직 검사를 한다고 해도 통상 두세 곳을 떼는 데다, 암 발생 지점이 깊어 암 세포가 검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극히 운이 좋아야 발견할 수 있는 암이다.

이혁민 교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보호자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믿기 힘드시겠지만 현재 의학의 한계일 수도 있습니다. 불가항력적인 문제입니다. 이번에 한 내시경에서도 미리 의심하지 않았거나, 만일 서너 곳에서만 조직을 뗐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조직 절반에서는 암 세포가 보이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동안 묵묵히 보호자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던 이혁민 교수가 먼저 치료에 대한 문제를 꺼냈다.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위암인 이상 반드시 수술을 하셔야 합니다. 문제는 수술 중에도 육안으로는 암이 어디에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또한 위벽을 타고 번지기 때문에 어디까지 절제해야 할지도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위를 모두 절제해야 합니다.”

“하나도 안 남긴단 말입니까?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어머님이 그런 수술을 감당하실 수가 있습니까?”

위전절제술(Total Gastrectomy).

암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냉정함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환자는 몰라도 보호자들은 분명하게 수술 방법과 예후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스키로스 타입은 위암 말기와 비슷하다. 암 세포의 분포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위를 모두 절제한다.

식도에 침범하지 않았다면 소장과 연결한다. 만일 침범했다면 대장의 일부를 끌어와야 한다.

예후는 좋지 않지만, 이 상태로 가면 기능적인 문제는 물론 물리적으로도 위가 막혀 물조차 넘길 수가 없다. 결국 음식물을 공급하기 위한 보존 수술이 불가피하다.

보호자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위를 모두 절제하는 것이 위험하지만 보존 수술은 치료도 아니고, 그 상황까지 간다면 암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생활 자체가 안 될 겁니다. 나이도 많으시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수술 자체가 위험합니다만, 수술을 받는 것이 더 적절한 선택입니다.”

“수술을 받는다면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습니까?”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불행히도 희망적인 말은 없었다.

“언제까지 결정해야 합니까?”

“하루 이틀을 다투는 상황은 아니지만, 환자분 상태가 불량하기 때문에 가급적 빠르게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보호자와의 면담이 끝났다.

다들 답답한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김지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키로스 타입의 위암은 위 전체에 암이 퍼지기 전에는 진단이 거의 불가능한 암이었다. 그런데 응급실에서 촉진과 복부 CT만으로 의심을 했고, 결과적으로 확진까지 해냈다.

단순히 운이 좋거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환자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혁민 교수도 같은 생각인지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을 했다.

“김지훈, 환자 정말 잘 봤다. 내도 니 설명을 듣고 CT를 보면서 의심은 했지만, 응급실에서 봤으면 놓쳤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자. 수고했다. 보호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더 있으면 니가 잘 설명해라.”

대단한 칭찬이었다.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만 지었다. 분명 기분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결과를 받아 든 환자와 보호자의 얼굴이 떠올라 마냥 기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과를 전해 들은 치프들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스키로스 타입을 의심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워낙 드물고 진단까지 까다롭기 짝이 없어, 응급실에서 본 소견만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질환이기 때문이었다.

손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훈아, 너 혹시 수퍼맨처럼 배 속이 보이는 거 아냐?”

“수퍼맨한테 투시 능력이 있었나?”

“있든 없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인마. 이 자식이 점점 능글맞아지네. 어휴! 어쨌든 너도 참 대단하다. 운도 좋고, 실력도 좋고, 찍기까지 잘하면 도대체 부족한 게 뭐야?”

의사로서나 사람으로서 부족한 것투성이다. 하지만 전공의 4년차로서는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일순 말문이 막힌 치프들이 눈만 껌벅거렸다.

“없나? 왜들 말이 없어. 정말 없는 거야? 저 자식이 나보다 유머 감각은 상당히 떨어지잖아. 제길! 하오문주 체면이 영 말이 아니네.”

손일석이 투덜거렸다. 이러다 투덜이 스머프가 될 판이었다.

그때 임영순 환자의 보호자들 중 한 명이 김지훈을 찾았다. 수술 여부를 결정해야 할 큰아들이었다.

표정이 복잡했다. 안타까움과 막막함 속에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이미 이혁민 교수에게 들었던 문제들을 다시 물었다. 경황 중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을 것이다.

자세하게 다시 설명했다.

“결국 수술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이군요.”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보호자가 물끄러미 김지훈을 보았다. 젊은 의사다. 보아하니 교수도 아니다. 그런데 많은 의사들이 발견하지 못한 어머니의 병을 찾아냈다.

더구나 난장판이었던 응급실이었다. 어떤 이유로 의심하고 찾아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큼 실력이 있고, 환자에게 극도로 신경을 쓴다는 말이었다.

그런 의사를 키워 낸 교수와 병원이라면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명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결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잘될 겁니다.”

보호자의 어깨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일과를 끝낸 김지훈이 숙소에 올라가 조용히 책을 펼쳤다. 고경아와 데이트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기에 당직 때 더욱 집중해서 할 일을 해야 했다.

논문 초안을 잡고, 내일 있을 수술을 대비했다. 위암 수술은 없고, 유방과 갑상선 수술이 있다.

수술 과정을 확인하며 손을 놀리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임영순 환자가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위를 모두 절제해야 한다. 위장관 수술 중에는 가장 큰 수술이다. 만일 식도까지 암이 퍼졌으면 대장을 끌어 올려 흉부 내 식도와 연결해야 할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수술에서도 지적을 받는데 걱정이 앞섰다. 자신도 모르게 위절제술 부분을 펼치던 김지훈이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문득 윤서연의 아버지 윤재철이 생각난 것이다.

‘스승님과 이혁민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그때 어떻게 하셨지?’

시간이 많이 지났다. 전체적인 과정은 뚜렷하게 떠올랐지만 세세한 부분은 희미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더듬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가에 잔뜩 힘을 주었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과감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스승의 손.

세심하고 부드러운 이혁민 교수의 손.

어떻게 보면 상반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흉부 내 식도를 자르고 대장까지 끌어와야 하는 대수술을 멋지게 해냈다.

수술 내내 마치 하나의 손인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았다. 퍼스트가 무조건 집도의의 손을 따라가야만 손발이 맞는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수술이 떠올랐다.

내과 양승철 교수의 아버지였던 환자.

대장 동맥의 혈전으로 장이 썩기 일보 직전이었다. 스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신기동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꼼꼼하다 못해 기계적인 정확성을 요구하는 손.

이혁민 교수보다 스승과는 더 안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그때 역시 호흡이 척척 맞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더욱 희미했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래. 응급 수술이라서 제대로 섰다고 하신 게 아니야. 혈관 수술을 하면서도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방식으로 퍼스트를 섰기 때문이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만일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다 집도의와 호흡이 안 맞는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이혁원이 답이었다.

신기동 교수는 자신의 독특한 손을 유지하면서도 이혁원을 충분히 배려했다. 결과 역시 좋았다. 자신의 방식을 유지한다고 해서 교수들이 호흡을 맞춰 주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김지훈 역시 그렇게 배워 왔다.

그런데 왜? 아직 전문의도 아닌데 그런 요구를 한 이유가 뭘까?

그때 때마침 오프인데도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손일석과 이경석이 신현수와 함께 들어왔다.

“에이! 경석이 형, 옛날엔 우리 뭐하고 놀았죠? 그때는 분명 무지하게 바빴는데, 데이트 약속이 깨지니까 할 일이 하나도 없네.”

“좋을 때다. 난 마누라 친정 간다는 말에 날 것 같다. 빨리 옷 갈아입고 나가서 술이나 한잔하자. 오늘은 강남으로 갈까?”

“오예! 좋죠. 간만에 눈을 정화시켜 볼까요.”

김지훈이 손일석을 슬쩍 째려보며 손짓을 했다.

“왜? 무슨 일 있어? 강남에서 술 한잔하는 게 나쁜 짓은 아니잖아. 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야. 나이트가 어떤 곳인지 이제는 기억도 안 나.”

“알았어, 인마. 다들 잠깐만 앉아 봐. 할 얘기가 있어.”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단 1분이라도 빨리 나가고 싶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김지훈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급격하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 어때?”

“상당히 그럴듯하네. 사실 나도 집도하시는 선생님들 손에 맞추려고 노력을 했거든. 그런데 네 말대로 전문의가 된 것도 아닌데 그럴 이유가 있을까?”

이경석의 말에 손일석이 입을 열려다 말고 꾹 다물었다. 연거푸 고개를 흔드는 모습이 자신의 생각에 영 자신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수록 더 궁금한 게 사람이다. 신현수까지 안달을 하고 있었다.

재촉에 못 이긴 손일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에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우리 과 상황을 냉정하게 살펴보자고. 오상익 선생님에게는 홍재순 선생님이 계시지만 다른 파트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 이준영 선생님, 이혁민 선생님, 신기동 선생님까지 파트를 혼자 책임지고 계시잖아. 송재덕 선생님도 구영선 선생님이 계시긴 하지만 다음을 이끌어 갈 교수가 없긴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렇지. 이젠 다들 나이도 있으신데, 혼자 계속 일하기에는 힘에 부치실 거야.”

“맞는 말씀. 그렇다면 조만간에 펠로우든 교수든 충원을 할 수밖에 없잖아. 누구를 뽑을까? 왜 지금까지 충원을 안 했을까? 혹시 우리가 대상 중에 한 명은 아닐까?”

손일석이 힐끗 신현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너한테는 기분 나쁜 말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현수 너는 100퍼센트 남을 거 아냐. 이왕이면 함께 수련한 사람들을 뽑는 게 너뿐만이 아니라 이사장님 입장에서도 좋은 일일 수 있다는 생각 안 들어?”

신현수가 어색한지 안경을 고쳐 쓰면서도 딱히 반박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특별한 말씀은 없으시지만, 언뜻 그런 생각을 하시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있었어. 사실 나도 원하는 일이야. 너희들이나 경석이 형이나 자격은 충분하잖아.”

모두들 깜짝 놀랐다. 신현수의 입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말이 나올지는 몰랐다. 듣기 좋은 말이면서 당황스러운 말이기도 했다. 어쨌든 상당히 일리 있는 추론이었다.

김지훈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우리한테 우리만의 방식으로 수술을 하기를 바란다, 이 말이네. 내년에 근무를 할 때 최대한 빠르게 적응시키려고 말이야.”

“오케이! 물론 나는 군대에 가야 하지만, 요새 신기동 선생님 눈치를 보면 3년 정도는 기다려 주실 것 같기도 해. 하하! 김칫국인가?”

“그럴 리가 있어. 난 나보다 니가 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 진심이다.”

“어! 역시 마이 베스트 프렌드 김지훈이야. 너만큼 내 능력을 아는 놈도 없어. 야! 생각만 해도 좋네. 그러면 이제 확인하는 일만 남았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다. 일단 몸으로 부딪쳐야만 확인할 수 있는 일이기에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동시에 달려들었다가 한꺼번에 나가떨어지면 그것만큼 낭패인 일도 없을 것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손일석의 눈가에 잔주름이 잡혔다.

“지훈아, 만일 우리 생각이 틀렸다면 현수는 불에 타 죽겠지? 경석이 형은 온몸에 칼을 맞고 대량 출혈로 인한 쇼크로 죽을 거야. 난 야야야! 소리가 터지면 전문의 시험도 못 보고 옷 벗어야 해.”

“그래서?”

“이왕이면 큰 피해 없이 말로만 타자. 내일 유방암하고 갑상선 수술이 있지? 그 정도면 확인하고도 남을 것 같다. 사실 이혁민 선생님처럼 힌트라도 날려 주시는 분이 없잖아.”

“좋은 생각이네. 어차피 지훈이가 먼저 말을 꺼냈고, 거기다 총치프잖아. 이보다 적당한 사람은 없다.”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이경석의 박수가 터졌다. 손일석이 재빨리 호응을 하며 말했다.

“현수야, 뭐하니? 너도 동의하면 박수 쳐. 아니면 어차피 타 죽는 거 장렬하게 재가 돼서 산화하든지.”

이럴 수가!

신현수도 박수를 쳤다.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잠깐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홀로 남은 김지훈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먼저 말을 한 것도, 총치프라는 사실도 모두 죄다.

달게 받을 일이었다.

김지훈이 이를 부드득 갈며 수술 책을 펼쳤다. 아니, 지금은 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확신을 갖고 수술에 임할 각오부터 다져야 할 때였다.

김지훈의 눈빛이 비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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