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홀로 설 줄 알아야 함께 갈 수 있다 Ⅰ (2)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주어진 시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신장이 죽었을지, 살았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의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의사로서의 원칙이다.
혈관 수술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꼼꼼함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신기동 교수였다. 그것이 혈관의 건강성과 기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생명이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평소와는 원칙이 완전히 다르다.’
신기동 교수의 손이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였다. 파열된 부위를 중심으로 신장 동맥을 따라 조직을 박리했다. 주변부 손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붉은 피가 여기저기에서 새어 나왔다.
출혈 부위를 지혈하며 시야를 확보하는 김지훈의 손 역시 과감했다. 김지훈 본래의 스타일이자 특징인 탓인지 도리어 자연스럽게 보였다.
신장 동맥이 길게 노출됐다.
“혈관 겸자.”
새로운 혈관 겸자로 양끝을 잡았다. 응급으로 잡은 혈관 겸자를 풀자, 그 사이에 고였던 피가 흘러나왔다. 재빨리 동맥과 주변을 깨끗이 씻어 냈다.
봉합만이 남았다. 신기동 교수가 루뻬(수술용 확대 안경)를 썼다. 김지훈은 퍼스트로서 수술 부위를 전체적으로 살피고, 주변부 출혈에도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맨눈으로 보조를 해야 했다. 이혁원이 긴장된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리트랙터를 당겼다.
“나이론 6번.”
평소보다 더 굵은 실을 사용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장기로 가는 동맥이다. 그만큼 단시간에 많은 피가 흐른다. 혈류가 이어지면 상당히 강한 압력을 받을 것이다.
원칙에 따른 선택이었다.
수처가 시작됐다. 김지훈이 지난 경험을 떠올렸다.
왼손에 주사기를 들고 헤파린을 섞은 식염수를 방울방울 떨어트려 혈전이 생기는 것을 최대한 방지했다. 오른손으로는 석션을 잡고 수처에 방해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식염수를 제거했다.
연속 수처다. 손상된 혈관을 봉합하는 방법 중 가장 빠른 방법이다. 반면 실수라도 하면 복구하기가 더 힘들다. 그런 위험을 감수해야 할 만큼 조금의 여유도 없다는 의미였다.
루뻬를 통해 보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신기동 교수의 손놀림은 놀라웠다. 평소와는 달리 상당히 빨랐지만, 혈관 벽을 뜨는 간격과 실에 가해지는 힘은 마치 기계처럼 정확했다.
니들 홀더가 움직일 때마다 손상 부위가 빠르게 봉합됐다. 김지훈 역시 정확하게 보조를 했다. 불과 5분도 안 돼 봉합이 끝났다. 깔끔했다.
신기동 교수가 긴장된 눈빛으로 혈관 겸자를 풀었다. 심장에서 출발한 피가 강력한 힘으로 동맥벽에 압력을 가하자 동맥이 확 부풀어 올랐다. 평소보다 굵은 실을 사용했기 때문에 바늘 자국도 클 수밖에 없었다. 바늘 자국을 따라 빨간 피가 새어 나왔다.
지혈 방법은 단 하나다. 김지훈이 재빨리 거즈로 동맥을 압박했다.
띠! 띠! 띠! 띠!
규칙적인 박동 소리를 따라 동맥이 불끈불끈 뛰었다. 손가락이 움직일 정도로 강한 힘이 느껴졌다. 살아 있다는 환자의 힘찬 호소였다.
순간 벅찬 가슴에 김지훈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장이 정상적인 기능을 보일지는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손끝을 따라 전해지는 강력한 힘은 희망이기도 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사고를 당하기 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째깍! 째깍!
5분이 지났다. 거즈를 뗐다.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마취과, 소변 잘 나옵니까?”
“바이탈 안정적이고, 소변도 아주 잘 나옵니다.”
위급한 고비를 넘겼다. 그렇다고 여유를 부리면 또 다른 고비가 다가올 수도 있었다.
신기동 교수와 김지훈의 손이 바빠졌다. 손상된 후복막을 처리하고, 동반 손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배를 닫았다.
병실로 올라가기에는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주말 동안은 중환자실에서 철저하게 관찰해야 했다.
환자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바이탈을 체크한 후 바로 혈액 검사를 실시했다.
잠시 후, 면회를 들어온 보호자들이 초조한 얼굴로 신기동 교수의 설명을 들었다. 안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는 말에 보호자들이 얼굴을 펴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좌측 콩팥 기능이 어떨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환자분 상태가 좋아진 후에 검사를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만, 기대는 하고 있습니다.”
면회가 끝날 때까지 보호자들은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환자를 보며 눈가를 붉힐 뿐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신기동 교수가 중환자실을 나섰다.
“김지훈, 수고했다. 환자 잘 봐.”
“수고하셨습니다.”
신기동 교수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더 던졌다.
“이번처럼만 하면 말 나올 일은 없을 거야.”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술 내내 오직 환자에게만 집중했다. 퍼스트를 어떤 방식으로 서야 하는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내심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정반대의 말을 들은 것이다.
‘오직 환자에게만 집중하라는 말씀인가? 아니야. 최소한 다른 환자에게도 집중하긴 마찬가지였어. 도대체 어떻게 퍼스트를 섰지? 어후! 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지금은 뒤로 미룰 문제였다. 아직도 중환자실은 부산했다. 안호석과 박순용이 이혁원과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지훈이 이혁원이 낸 오더를 확인했다. 저혈량성 쇼크에 준해 정확하게 냈다.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혁원아, 내일 오전에 수혈할 수 있게 피 두 팩 하고, 혈소판 농축액 세 팩 정도 준비해.”
이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검사 결과도 확인 안 하시고 수혈을 하신다고요? 지금은 드레인도 깨끗합니다.”
성급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의 차이였다. 신장 동맥과 함께 후복막에도 상당한 손상을 받았다. 당장은 피가 안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부터 정말 무서운 부위는 동맥이 아니라 후복막이었다.
우징(Oozing)!
어느 특정 부위가 아니라 손상받은 후복막 전체에서 피가 새어 나올 것이다.
하루아침에 멈추지도 않는다. 소량이라고 해도 끊임없는 출혈이 지속되면 대량이 된다. 사전에 대처하지 않으면 혈액응고 기능에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김지훈이 빤히 이혁원을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네. 그럼 확인해 보자. 나도 정확하게 알아야겠다. 내일 점심때까지 후복막 손상에 따른 출혈을 어떻게 치료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리포트 작성해 와.”
“리포트요?”
감히 총치프의 오더에 반문을 해?
김지훈의 눈가가 매서워졌다. 이혁원이 흠칫 놀라며 자라목을 했다.
“아닙니다. 작성하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그리고 이런 수술은 정말 보기 힘들다는 거 알지? 나도 경험이 없으니까 수술 책 참고해서 수술 기록지도 정확하게 작성해야 한다. 리포트하고 같이 보자. 수고해. 환자 잘 보고.”
이혁원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김지훈이 어깨를 툭툭 치며 여유롭게 의국으로 향했다. 누가 킵을 해야 할지 이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안호석과 박순용이 알아서 잘할 것이다.
뻐근한 어깨를 풀며 중환자실을 나간 김지훈의 앞을 보호자들이 가로막았다. 하나라도 더 설명을 듣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불안하고 초조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기동 교수의 설명을 떠올리며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전공의로서 책임질 수 있는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말이 엇갈리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교수가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보호자들이 듣길 원하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날 밤, 아뻬가 하나 더 떴다.
신현수만이 아니라 김지훈도 적극적으로 라파로에 대해 설명을 했다. 말하는 사람을 보고 결정할 리가 없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신기동 교수에게 노티를 했다. 언제나 그렇듯 수술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달려 나왔다.
보호자에게 설명을 하고, 필요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가 무섭게 스케줄을 올렸다. 수술 시간이 정해지기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바짝 마른 데다 굿모닝 아뻬 같은데 하필이면 이럴 때 오냐. 우리 1년차들 집도하기에 너무 좋은 케이스로 보이네. 에휴! 퍼스트를 세우기에도 시기가 빠를 수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환자들은 불안하고 불만스럽겠지만, 대학 병원은 치료와 동시에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전공의들의 수술 기회가 확연하게 제한된다면 다음 세대를 책임질 의사가 사라지게 된다. 자신의 자식을 치료할 수가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더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노련하고 경험 많은 교수들의 철저한 관리와 지도 속에 집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드시 전문의에게 수술을 받길 원한다면 개인 병원이 도리어 확실한 선택이다.
어쨌든 아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수술 팀을 확인한 신기동 교수가 마치 김지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뜻밖의 말을 했다.
“김지훈, 이혁원이 픽스턴까지 얼마나 근무했지?”
“5주 정도 됐습니다.”
“그럼 이번 수술에서 퍼스트 세워도 괜찮겠어?”
확실한 결정을 내린 상태가 아니었다. 김지훈의 판단을 묻는 것이 분명했다.
이는 곧 총치프로서의 책임이기도 했다.
이혁원이 퍼스트를 제대로 서지 못한다면 김지훈도 한 소리 들을 것이다. 1년차 교육도 확실하게 시키지 못한 치프를 그냥 보고 넘어갈 리가 없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하지만 집도가 아닌 퍼스트다. 이제는 서야 할 때가 왔고, 이혁원은 당연히 준비돼 있었다. 믿을 수 있었다.
“예, 선생님. 준비시키겠습니다.”
집도 과정을 확실하게 안다면 퍼스트를 서는 방법은 저절로 따라온다. 익숙하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겠지만 누구나 거칠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그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김지훈이 이혁원과 함께 수술 방으로 올라갔다. 단둘이 마주하자마자 이혁원이 눈가를 좁혔다. 환자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수술 과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완전히 몸에 익었다. 이젠 확인해야 할 때였다.
“이혁원, 내가 집도를 하고 네가 퍼스트를 선다고 생각하면서 내 손을 따라와 봐. 과정 설명도 동시에 해.”
김지훈이 마치 수술을 하는 것처럼 손을 놀렸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던 이혁원이 무언가 감을 잡은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불과 몇 마디 하기도 전에 큰 소리가 났다.
“아뻬가 아직도 눈에 안 익었어? 피하지방층 열 때 네가 그 각도로 들어오면 집도의 손을 방해하잖아.”
“어쭈? 복막을 여는데 그냥 메스로 쭉 그으면 돼? 그러다 밑에 장이라도 붙어 있으면 같이 잘린다는 거 몰라? 포셉으로 복막부터 들어. 손이 따라와야지, 입으로만 제대로 말하면 뭐해? 정신 바짝 차려.”
김지훈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다시라는 말은 입에 담지 않았다. 이혁원이 쩔쩔매며 간신히 가상의 아뻬 수술을 마쳤다.
“다시. 수술 과정도 알고, 퍼스트를 어떻게 서는지 많이 봤잖아. 환자 올라올 때 다 됐으니까 이번에는 잘해 보자.”
같은 과정이 반복됐다. 이혁원이 수술 과정을 말하며 김지훈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새카맣게 타며 거의 모든 과정을 반복했을 무렵 환자가 올라왔다.
“이혁원, 이번 수술 네가 퍼스트를 설 거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신기동 선생님 손과 수술 부위에만 집중해. 알았어?”
“예. 명심하겠습니다.”
수없이 본 아뻬다. 다들 여유가 넘치는데 이혁원만이 눈가를 찡그린 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중압감에 연거푸 심호흡을 했다. 수술 모자까지 축축하게 젖은 것 같았다.
김지훈이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도 1년차 때 똑같은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왜 이렇게 나지? 혁원아, 신기동 선생님이 칼 무지하게 날릴 거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 잊지 마라.’
수술이 시작됐다. 예상한 대로였다.
“이혁원, 너 픽스턴까지 돌았잖아. 그동안 뭐했어? 우물쭈물하지 말고 제때 들어와. 너 1년차야, 인마.”
역시 신기동 교수다. 배를 열기가 무섭게 칼이 휙휙 날았다. 세컨을 서는 김지훈이 몸을 떨 지경이었다.
‘자식이 왜 이렇게 떨지? 연습한 대로만 해.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김지훈의 눈길에 이혁원이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무난하게 복막을 열었다. 대장을 당기는 순간 아뻬가 마치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빵끗이 고개를 내밀었다.
굿모닝 아뻬였다.
가장 수술하기 편한 경우였고, 퍼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이혁원에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눈빛을 굳힌 채 아뻬 동맥을 타이했다. 수없이 연습한 티가 팍팍 났다.
물론 미숙하기만 했지만 1년차다. 이 정도면 제법 봐줄 만했다. 하지만 신기동 교수의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김지훈도 얼굴을 펴지 못했다.
“쯧쯧! 무조건 타이하면 끝이야? 타이할 때도 힘을 주는 방향이 있어. 그래야 주변 조직이 손상받지 않아.”
차가운 서리가 실린 칼이 난무했다. 이혁원이 땀을 뻘뻘 흘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술이 제대로 진행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심하게 타고 있었다.
그런데 수술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이혁원의 표정도 예상외로 나쁘지 않았다. 묵묵히 칼날을 맞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이런 부조화가 가능할까?
‘내가 첫 퍼스트를 설 때도 이랬나?’
이유가 궁금해졌다. 눈을 크게 뜨고 수술에 집중했다.
신기동 교수의 손길에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혁원의 손은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특별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미묘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신기동 교수는 김지훈의 생각보다 배를 크게 열었다. 불과 1센티미터 정도였지만 경험이 없는 퍼스트에게는 큰 차이였다. 동작 하나를 취할 때도 이혁원이 제대로 쫓아올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었다.
집도의의 자세였다.
문득 언제나 최고의 팀과 수술을 할 수는 없다던 이혁민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신기동 교수는 수술 팀의 능력에 맞춰 환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최선의 길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미숙하게만 보이는 이혁원이 손도 달라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이준영 교수의 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도의의 배려 덕인지 끝까지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수술이 끝났다. 생각 이상으로 훌륭하게 퍼스트를 섰다. 하지만 이혁원의 전신에는 이미 비수가 골고루 박힌 상태였다.
마지막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 신기동 교수가 장갑을 벗었다. 그때 이혁원의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처음이라 이 정도로 지나가는 거야. 다음에도 또 이런 식이면 알아서 해.”
조금도 방심할 수 없게 끝까지 비수가 날아다녔다.
이혁원과 함께 환자를 회복실로 옮긴 김지훈이 부리나케 신기동 교수를 찾았다.
“무슨 일이야? 환자 또 있어?”
“아닙니다, 선생님. 혁원이가 퍼스트를 어떻게 섰는지 궁금해서요.”
“니 생각은 어떤데?”
“처음인데도 제대로 선 것 같습니다.”
“잘 봤어. 저 정도면 기대할 만해. 열심히 가르쳐. 근데 저놈 의외로 뻔뻔하지 않아? 그렇게 타고도 목소리에 힘이 남았네. 어떤 놈하고 비슷하지?”
신기동 교수의 때 아닌 농담에도 김지훈의 고민은 도리어 깊어졌다.
집도의는 경험도 없는 퍼스트를 상대로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퍼스트 역시 최선을 다했고, 칭찬까지 받았다.
4년차라는 사실 때문인지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일임에도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집도의와 퍼스트의 자세와 의미가 전과는 달라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오늘 수술 속에도 치프들에 대한 교수들의 요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