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35화 (535/1,329)

제4화 드디어 전공의의 꽃 4년차다 (2)

일도삼락(一道三樂)이다.

자칫 짜증 나고 하기 싫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으니 그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직종은 달라도 같은 일을 하는 이의 새로운 시각과 의견을 들을 수 있으니 그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니 그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자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주말을 반납한 보람이 있었다.

사실 반납도 아니다. 토끼 두 마리를 동시에 잡은 주말이었다.

덕분에 논문과 케이스 보고라는 두 개의 난관을 팔부 능선쯤 넘었다. 주중에 보강하면 무난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신현수와 손일석은 교수들의 높고 두꺼운 벽을 뚫은 논문을 들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일단 전문의 시험에 대비한 논문은 완성한 셈이다. 새로운 논문을 받는다고 해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치프들의 바람일 뿐이었다.

“전문의 시험에는 새로 써야 할 논문을 제출할 거니까 확실하게 작성해라. 제대로 쓰지 않으면 제출 안 한다. 논문 때문에 떨어질 수는 없잖아. 안 그렇나? 왜 대답들이 없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역시 쉬운 길은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논문이다. 지금까지 이혁민 교수에게 탄 것만 잊지 않아도 전보다는 훨씬 쉽게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의국에 올라와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는 의자에 몸을 던졌다. 어쨌든 마음 한구석은 시원했다.

손일석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씨익 웃었다.

“넌 뭐가 좋다고 웃어?”

“오프인 놈도 입을 헤벌레 벌리고 웃는데, 난 웃으면 안 되냐? 경석이 형이 올라오자마자 지을 표정이 생각나서 그래, 인마. 논문은 생각도 안 하고 강기웅 과장이 손 놓았다고 신바람을 내고 있을 거 아냐? 폭탄이 바로 머리 위에서 터질 줄도 모르고 말이야.”

맞는 말이다. 알고 당하는 것보다 불시에 당하는 것이 훨씬 아픈 법이다.

문득 줄줄 눈물을 흘리는 이경석의 모습을 떠올린 김지훈이 따라 웃었다. 신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들이냐?”

“순수한 영혼이라 그래, 인마.”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3년차 마지막 주가 시작됐다.

언뜻 모든 일과가 전과 다름이 없어 보였지만 많은 부분이 달랐다.

지난 1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1년을 맞이해야 하는 때였다. 김지훈에게는 총치프를 대비한 일종의 예행연습 기간이기도 했다.

수술 스케줄을 원칙대로 정했다.

“일석아, 현수야, 문제없겠지?”

년차별로 주말 집담회 때 발표할 케이스를 지정했다.

“파워포인트로 작성하고 슬라이드 만들기 전에 치프들한테 점검받아. 목요일까지다. 늦으면 알지? 현수야, 우리 발표는 너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의국원들의 전반적인 일정과 교육은 물론 픽스턴들에게도 제법 시간을 할애했다.

“이혁원, 나종진, 다음 주부터는 1년차야. 지금하고는 많이 다를 거다. 정신 바짝 차리고 최대한 일을 몸에 익혀 놔. 수처하고 타이가 기본이라는 것 잊지 말고.”

새로운 변화가 슬슬 몸에 붙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 있었다. 약간의 긴장 속에 주말 집담회 사회를 보며 케이스 발표를 진행했다.

역시 신현수였다. 간단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발표였다.

“그래그래. 역시 치프가 다르구나. 달라. 저렇게 발표해야지. 갑상선 수술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들어와. 잘했다. 잘했어. 지훈아, 총치프야, 대장 하자. 대장. 나쁜 치프들. 니들도 하자. 좋다. 좋아.”

이제는 대장 하자는 소리가 습관처럼 따라붙었다. 대상도 다시 치프 전체로 확대됐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교수들이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들 이래? 왜들. 이 과장, 내가 뭐 이상한 말 했나? 원장님도 제 말이 이상하세요? 아닌데. 난 심각한데.”

정색을 하는 송재덕 교수의 모습에 의국원들까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시뻘게질 지경이었다.

김지훈이 재빨리 상황을 정리하고 정식으로 집담회를 끝냈다.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왔다.

“김지훈, 수고했다. 앞으로 이렇게 쭉 진행하자. 그리고 몇 가지 알려 줄 게 있다. 먼저 홍재순 선생이 다음 주부터 정식으로 항문 파트에서 근무하게 됐다. 홍재순 선생, 인사해라.”

홍재순이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했다. 저마다 환영의 마음을 가득 담은 박수를 보냈다.

홍재순과 눈이 마주친 김지훈이 박수를 치다 말고 입술을 모았다. 일주일 전에 안 일인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오색이라 불렸던 홍재순이었다. 누구보다도 열정을 갖고 있었지만 금경태라는 암초에 걸려 나락에 빠질 뻔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인연 덕인지 함께 극복해 냈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느린 손은 이제 기억 저편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훈아, 고맙다.”

홍재순의 눈가가 붉어진 것 같았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김지훈이 꾸벅 허리를 숙이며 환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이혁민 교수의 마지막 말로 자리를 정리했다.

“올해 전반기 파트 스케줄 나왔으니까 확인하고, 다음 주 근무에 지장 없게 준비 잘해라. 다들 지난 1년 수고했다.”

년차가 하나씩 올라간다. 다음 파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우르르 몰려가 파트를 확인했다.

김지훈 : 위장관 - 간담도

신현수 : 간담도 - 위장관

이경석 : 항문, 혈관 - 대장

손일석 : 대장 - 항문, 혈관

신현수와 제대로 붙었다. 라파로도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기 직전이다. 교수들의 의도인지 몰라도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순식간에 뒤처질 것이다. 신현수 역시 눈빛을 굳힌 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손일석이 제일 신났다.

“송재덕 선생님하고 행복한 3개월을 지내고 나면 혈관이네. 아우! 좋다. 좋아. 니들도 좋지? 그치? 지훈아, 친구야, 내 말이 맞지?”

흉내까지 내고 지랄이다.

혀를 차며 쩝쩝 입맛을 다신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스케줄을 보고 있는 서도진의 얼굴이 묘했다. 좋아하는 것 같으면서도 눈가를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저 자식은 표정이 왜 저래?’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지훈 - 서도진 - 박순용 - 이혁원.

6개월 동안 같은 파트를 함께 돈다. 누구보다도 일은 많이 배울 것이다. 하지만 힘든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내심 일복 터진 것도 모자라 빡빡함도 만만치 않은 김지훈보다는 손일석 밑에서 일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예비역인 박순용보다는 현역이 아랫년차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파트가 마음에 안 들어? 바꿔 줄까?”

최근에는 눈치까지 빨라진 김지훈이었다. 재빨리 입가를 찢은 서도진이 도리질을 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역시 선생님과 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인가 봅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느는 건 아부다.

그때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에게 손짓을 했다. 넥타이를 다시 단단히 조였다.

“총치프가 중심과 균형을 잘 잡아야 의국이 제대로 돌아간다. 네게도 큰 경험이 될 거야. 홍재순 선생 힘들지 않게 잘 도와주고, 남은 6개월 최선을 다해.”

“예, 선생님.”

“오늘 저녁 7시에 스승님과 교수들하고 식사 자리가 있어. 치프들은 다 참석해야 돼.”

김지훈이 재빨리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큰 스승님께서 참석하시는 겁니까?”

“그래. 오늘 당직은 3년차들에게 맡겨.”

3년차들에게 당직을 맡기라는 말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믿을 수 있다. 만일을 대비해 4년차들은 사다리를 타 한 명이 총대를 메면 될 것이다.

허경발 중앙 의료원 원장님과 식사를 한다는 소리에 치프들의 눈이 반짝였다. 일반 외과 원로이자 대가를 넘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저녁 무렵, 이경석이 도착했다. 반가움이 넘친 의국이 웃음으로 시끌벅적했다.

문득 지난 일주일 동안 몸은 무척 고됐지만 그만큼 즐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야 없을 수가 없지만 금경태가 과장이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것이 의국이다.

이것이 바로 교수와 제자들 간의 모습이다.

왠지 가슴이 뿌듯해진 김지훈이 긴 숨을 내뱉었다. 동시에 이경석이 쓰러졌다.

“형, 논문 다 썼어? 하나 더 써야 하니까 빨리 써. 칼과 불과 그 나직한 공포의 목소리를 어떻게 감당할까. 어후!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더니, 지금이 딱 그 상황이네.”

손일석이 씨익 웃으며 이경석의 등을 토닥였다.

저녁 식사 자리다. 일반 외과 교수가 모두 모였다. 송동화 과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치프들은 끄트머리에 앉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잠시 후, 허경발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들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자세를 바로 하고는 허경발 교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위엄과 자부심이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럽게 풍겨 나왔다.

이것이 카리스마라는 것일까?

‘야! 정말 대단하시다. 오랜 세월 다른 곳에는 눈을 돌리시지 않고 오직 한 길만 달려오셨기 때문이겠지? 10년 후, 20년 후의 내 모습은 어떨까?’

등심과 삼겹살이 노릇노릇하게 익었다. 알싸한 소주가 목구멍을 타고 넘었다. 허경발 교수도 모처럼의 자리에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 원장님, 앞으로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송 교수도 외과 센터 준비에 신경 좀 써. 의사도 자네 나이 정도 되면 행정적인 문제를 조금은 알아야 돼.”

“아이구! 선생님, 전 그쪽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천안 병원에서 병원장 할 때도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죄송하지만, 환자만 열심히 보겠습니다.”

“허허! 사람 하고는. 이 교수, 할 만하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래. 그래야지.”

허경발 교수가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따스하면서도 잔잔한 눈빛만 던진 후, 금경태가 쫓겨난 이후 부쩍 말이 없어진 구영선 교수를 찾았다.

“구 교수는 연배가 어떻게 됩니까?”

난데없는 말이다.

“과장님 2년 밑입니다.”

“그래요. 그럼 곧 과장을 하셔야겠네요.”

당사자는 물론 오상익 교수까지 깜짝 놀랐다. 이혁민 교수가 이제 막 과장이 된 시점에서 할 말이 아니었다. 굳이 다음 과장을 거론한다면 신기동 교수가 적임자였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은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신 교수, 자넨 정말 생각이 없어?”

“예, 선생님. 혈관 수술하기도 벅차고, 저쪽에 있는 저놈이 군대까지 가야 돼서 제대로 가르치려면 골치가 좀 아플 것 같습니다. 제가 과장까지 하면 혈관은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그래. 신 교수 말도 일리가 있네.”

손일석의 입이 쫙 찢어졌다. 허경발 교수가 넉넉한 웃음을 터트렸다.

“구 교수, 열심히 해 주세요. 과장이 다는 아니지만, 앞으로는 모든 일이 순리대로 진행될 겁니다. 한 잔 받아요.”

구영선 교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임동완 교수가 자진해 사임한 이후 고민이 많았다. 평교수로 끝마치는 것이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해도 과장에 대한 생각은 접어야 했다. 스스로에겐 씁쓸한 일이었다. 그런데 허경발 교수가 생각도 하지 못한 말을 한 것이다.

구영선 교수가 송재덕 교수를 보았다.

천안 병원에서 금경태의 후광을 바라고 서울 병원으로 왔다. 분명한 실수였다.

더구나 자신에게 기대를 하고 있었던 송재덕 교수였기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을 텐데도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것 같았다. 지금 일반 외과를 주도하고 있는 교수들 역시 응원을 하고 있었다.

‘이런 분들 앞에서 출세만 생각했다니, 정말 잘못 생각했어.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교수들이 차례차례 허경발 교수에게 술을 따랐다. 술잔 밑에 깔릴 정도였지만 정말 기분 좋은 술이었다.

한 순배가 돌았을 때 이혁민 교수가 치프들에게 손짓을 했다. 불콰해진 얼굴은 처음 보았다.

“니들도 이리 와서 선생님께 인사드려라. 선생님, 김지훈은 아시죠? 그 옆에 앉은 놈이 제가 가장 아끼는 신현수란 놈입니다. 잘 가르쳐 주십시오.”

“오! 그래. 신 선생, 이리 와요. 우리 치프 선생들도 나랑 한잔합시다.”

“선생님, 제일 나이 먹은 저놈이 이경석입니다. 대장 할 놈입니다. 대장. 경석아, 뭐하니? 빨리 인사드려, 인사.”

교수들 모두 자신이 아끼는 치프를 거론했다. 그것도 허경발 교수 앞이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를 상황이었지만, 다들 가슴이 벅차 숨을 가다듬어야 할 정도였다.

이준영 교수만 말이 없다. 김지훈에겐 내심 서운한 일이었지만,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거의 말 한마디 없었고, 허경발 교수가 말을 할 때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것이 다였다.

‘말이 중요한가? 마음이 중요하지.’

나름 스스로 위안을 삼은 김지훈이 총치프로서 치프들에게 눈짓을 했다. 한없이 어려운 자리다. 치프 4명이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연로하신 분에게 치프들이 각각 술을 다 따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자리까지 비좁다. 허경발 교수 옆에는 한 사람 정도의 공간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이준영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지훈, 니가 대표로 술 한 잔 드려. 선생님, 한 잔 받으시고 좋은 말씀 해 주십시오.”

“허허! 그래야지. 김지훈 선생, 한 잔 따라 봐.”

기분 좋게 잔을 비운 허경발 교수가 인사를 받으며 일일이 술을 따라 주었다.

치프들을 보는 눈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 속에 묘한 감회가 숨어 있었다.

매년 수많은 의사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다들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인재라고 할 만한 의사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런 인재들이 몰리는 때가 있다.

허경발 교수가 교수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송재덕, 이준영, 이혁민, 신기동.

년차만 다를 뿐, 동시에 수련을 받았다.

‘자네들과 함께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 다들 훌륭하게 자리를 잡아 줘서 고마워. 허허! 그때도 인재들이 몰렸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도 똑같네.’

김지훈, 신현수, 손일석, 이경석.

제자들이 선택한 제자들이었다. 스승인 자신에게 소개를 할 정도로 대단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병원의 입장은 다를 수 있지만, 이대로만 열심히 해 나간다면 교수로 추천을 받을 것이다.

눈빛과 자세만 보아도 결코 자만하지 않을 치프들이었다. 김지훈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또한 자신에게도 제자였다.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였다.

“그래요. 나도 기대가 큽니다. 다들 잘하겠지만, 한 가지만 유념하세요. 우리가 의사라는 것을 잊지 말아요. 그 점을 잊는 순간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을 믿고 함께 나아가세요. 우리 치프 선생들을 믿겠습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허경발 교수의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묘한 흥분과 기대 속에서 자리가 끝났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치프들의 입이 굳게 닫혀 있었다. 생각해 보면 신이 나 환호성을 지르고도 남을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믿음은 더없이 무거운 책임이었다. 당근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채찍일지도 몰랐다.

3년차 숙소에서 4년차 숙소로 짐을 옮겼다. 이제야 4년차가 됐다는 실감이 다가왔다.

“휴우! 1년차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차네. 그래서 그런지 허경발 선생님하고 교수님들 말씀이 상당히 부담되네. 너희들은 안 그래?”

이경석의 말이 모든 것을 대변했다.

그렇게 3년차와 4년차 경계의 주말이 지나갔다.

월요일 아침 7시.

치프 4명이 스테이션에 모습을 드러냈다.

4년차 근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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