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34화 (534/1,329)

제4화 드디어 전공의의 꽃 4년차다 (1)

불길한 감은 항상 현실이 된다.

“이준영 선생님과 나하고 주말에 할 일이 있다. 이번 라파로 때문이니까 시간 내라.”

헉!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절로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주말 내내 시간을 내야 합니까?”

“그래. 간담도 분과 학회에 이번에 한 라파로 수술들 케이스 발표할 예정인데 시간이 촉박하다. 니가 연자가 될 수도 있으니까 빠질 수도 없다. 일요일 아침까지 케이스별로 확실하게 정리하고 같이 검토하자.”

분과 학회에서 직접 발표를 할 수도 있다? 기뻐해야 하는 일일까?

그런데 그냥 눈물이 났다.

평일에 준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말이 혀끝까지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데,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업자득이다. 라파로를 통해 얻은 보람과 뿌듯함, 그리고 행복의 대가는 주말 오프 반납이었다. 그것도 근 한 달 만에 가는 주말 오프를 말이다.

완전히 망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지. 신현수, 손일석, 논문들은 썼나?”

눈치하면 손일석이다. 눈앞에서 김지훈의 주말 오프가 날아가는 것을 빤히 보았다. 당직들에게 어떤 오더가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약점을 있는 그대로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예. 쓰고 있습니다.”

손일석이 깜짝 놀라면서도 의외로 힘차게 대답했다. 마치 논문은 걱정할 일이 전혀 없다는 투였다.

하지만 상대는 이혁민 교수다. 불똥은 김지훈에게만 튀지 않았다.

“그래? 열심히 쓴 모양이네. 그럼 주말에 니들도 같이 보자. 지금 쓰고 있는 논문 빨리 끝내고 하나씩 더 써야 한다. 치프 때 두 개 이상은 써야지.”

이혁민 교수의 의욕이 넘쳐흘렀다.

날벼락이다. 치프 때는 통상 전문의 시험을 위해 필요한 논문 하나만 쓴다. 그런데 두 개도 아니고 그 이상이라니, 쫄딱 망했다. 전공의 수술 수첩도 아직 휑한데 말이다.

의국으로 올라가는 치프들의 어깨에 짐이 잔뜩 얹혀 있었다. 생각만 해도 쓰러질 것 같았다.

3년차 마지막 열흘을 남기고 분위기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김지훈은 아예 몸을 가누지 못했다. 일도 일이지만 고경아의 서슬 퍼런 눈빛을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말 오프라고 확실하게 말은 안 했지만, 이번 주 내내 단단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이러다 단칼에 잘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경아 씨, 4년차 때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후우! 휴우! 어후!

한숨 소리만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응급실이 아수라장이 되는 주말 당직 때 논문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두려운 일은 이혁민 교수의 높고 두꺼운 벽이었다. 셋 중 단 한 명도 통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이혁민 선생님이 만만한 분이 아니지. 논문들 줘 봐. 내가 한 번 검토해 볼게.”

이론의 대가 홍재순의 말에 한 줄기 빛을 본 손일석은 물론 신현수마저 번개처럼 논문을 꺼냈다. 그러나 김지훈은 머리를 감싼 채 괴로워할 뿐이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은 논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고경아의 살기에 찬 목소리에 진땀을 뺐다. 한숨과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케이스 발표 준비를 했다.

하나도 아니고 세 건이다. 새벽이 돼서야 간신히 얼개를 잡았다.

3년차 마지막 주말이다.

오프를 가는 일이 년차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치프들은 숙소에 처박혀 얼굴도 내밀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입가에 걸린 미소라도 보이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수술 당직인 신현수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손일석 역시 난장판이 된 응급실로 내려가며 거의 울상을 짓고 있었다.

실로 대단한 압박이었다.

‘어후! 경아 씨 때문에 가뜩이나 집중이 안 되는데, 저놈의 전화는 왜 이렇게 자주 울리는 거야?’

한참 케이스 리포트를 작성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볼펜을 탁 내려놓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밤을 새워 봐야 빨간 볼펜만 난무할 것이 빤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생각해 보니 고경아가 어떻게 사는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고경희와 함께 산다는 사실 때문에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지 않을 때도 됐다.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경희가 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이젠 그래도 되는 사이잖아?’

시간이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고경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아 씨, 혹시 경희 집에 있어요?”

(집에 있는데 왜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침착해야 한다. 이 와중에도 고경희가 집에 있다는 말이 왠지 실망스러웠다.

“경희가 집에 있었네요. 주말인데 집에 안 가나? 그건 그렇고, 혹시 컴퓨터하고 프린터는 있나요?”

(요새 컴퓨터 없는 집이 어디 있어요?)

목소리가 뾰족해지다 못해 살벌해졌다. 최대한 태연하게 대처했다.

“잘됐네요. 그럼 경아 씨 집에서 케이스 리포트 작성하면 안 될까요? 경아 씨가 보고 싶어서 죽겠네.”

(우리 집에서요?)

고경아가 다소 놀란 것 같았다. 고경희가 있어서인지, 아니면 처음 듣는 소리라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주말인데 경아 씨 얼굴 봐야죠. 스승님하고 이혁민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케이스고 뭐고 그냥 뛰쳐나갔을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 얼굴도 못 보면서 일만 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한 마음이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고경희가 깜짝 놀라는 소리와 뭔가를 상의하는 소리만 간간이 새어 나왔다.

생각해 보니 결혼까지 허락받은 사인데 무슨 말을 그렇게 오래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혼자 있는 집에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드디어 답이 나왔다.

(지훈 씨, 한 시간 후에 오세요.)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고경아가 허겁지겁 전화를 끊었다.

김지훈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고경희가 집에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아쉬웠지만, 어쨌든 리포트 작성을 핑계로 더 행복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동안 경아 씨 집에 갈 생각을 왜 못했지?’

축 처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룰루랄라! 절로 휘파람이 나왔다.

***

장미 한 다발과 케이크 하나.

꽃을 받아 든 고경아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

분위기 반전이다.

작은 방 두 개와 주방을 겸한 거실.

개인 병원 원장이면 더 좋은 집을 구해 줄 수도 있을 테지만, 깐깐한 장인어른을 생각하니 딱 어울렸다.

방금 전 청소를 한 것처럼 깨끗한 집 안을 보며, 김지훈이 싱글벙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경아 씨야. 깨끗하고 깔끔하네.’

“집 안이 좀 어수선하죠? 주말이라 쉰다고 제대로 치우지도 못했어요. 커피 한잔하실래요?”

“좋죠. 경희야, 잘 지냈지? 데이트 잘하고 있고?”

고경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고소하고 쌉싸름한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을 나누었다.

평소와는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다. 훨씬 더 마음이 편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이럴 때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 힐끗 시계를 본 김지훈이 깜짝 놀라자, 얼굴이 빨개진 고경아가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고경아를 꼭 안았을 때 맡았던 그 향기였다.

기분이 묘했다. 구석에 놓인 컴퓨터에는 눈도 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누워 잠을 청했을 침대.

아침마다 고경아의 얼굴을 담았을 거울.

작은 화장대며 옷장까지 왠지 정겹기만 했다.

“뭘 그렇게 봐요? 빨리 할 일이나 하세요.”

고경아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말없이 미소만 지으며 자료들을 꺼내던 김지훈이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든 첫발을 내디딜 때가 가장 어렵다. 일단 일이 진행되면 과감해지며, 낯짝이 저절로 두꺼워지는 법이다.

“경아 씨, 나 밤새워야 할지도 모르는데, 만일 시간이 너무 늦으면 여기서 자도 될까요?”

“여기서요?”

고경아가 깜짝 놀라며 또 고경희와 상의를 했다.

미래의 남편이자 형부다. 칼바람이 부는 새벽에 병원에서 자라고 등을 떠밀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그럼 내 방에서 자요. 난 경희랑 잘게요.”

고경아가 빨갛게 물든 뺨을 만졌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왕 이렇게 된 거, 혹시 내가 자고 있으면 8시에 깨워 줄래요?”

점점 원하는 것이 많아졌다.

고경아가 눈을 흘겼다. 김지훈이 딴청을 피우다 말고 기습적으로 키스를 했다. 고경아가 아주 살짝 버둥거리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왠지 더 짜릿하고 달콤하다. 결코 놔주고 싶지 않았지만 고경희에게 걸리면 참 무안할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더 부탁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중이 된다. 그것도 스스로 놀랄 정도로 엄청나게 집중됐다.

탁! 탁! 탁!

여전히 독수리 타법이지만, 그 세월만 3년이었다. 어느새 3개의 수술이 담긴 케이스 리포트 초안을 모두 작성했다. 뿌듯한 마음으로 시계를 본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새벽 4시였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며 눈가가 뻑뻑해졌다.

‘여기서 더 고민해 봐야 그게 그거다.’

9시까지 외래로 가야 하기 때문에 서너 시간 정도 잘 수 있을 것이다. 곧 4년차 치프가 되는데 아직도 수면 부족에 시달려야 하다니, 그레이트 써전은커녕 전문의가 되는 길조차 이렇게 험난할 줄은 몰랐다.

조심조심 화장실로 가 깨끗이 씻고, 고경아의 체취가 가득한 침대에 누웠다.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따뜻한 침대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지훈 씨, 8시예요. 일어나세요.”

조심스러운 손길과 부드러운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냥 눈만 감았다 떴는데 아침이다. 마냥 자고 싶었지만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몸이 절로 반응했다.

감동의 물결이다. 고경아가 직접 만든 김치찌개와 밥이다. 조금은 간이 안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먹어 본 밥 중 가장 맛있었다. 장모의 손맛이 담긴 맛깔스러운 김치와 반찬까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모닝커피까지 완벽했다. 행복 그 자체였다.

차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병원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며 최대한 버텼다. 걸어가는 시간이 뛰어가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15분 남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경아 씨, 나 갈게요.”

할 말이 많았지만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늦었어요. 빨리 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해 준 밥을 먹고 배웅을 받으니, 제법 매서운 아침 추위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너무 아쉬웠지만,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가슴속에 담은 행복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프 때마다 경아 씨 집에서 잘까? 경희가 반대할까? 그럼 일석이를 이용해서 밀어붙여야 하나?’

본능은 곧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데도 머릿속은 온통 한 생각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자고, 함께 밥을 먹고 싶었다.

‘현수는 얼마나 좋을까? 자식, 이래서 그렇게 너그러워졌구나.’

신현수를 이렇게 부러워할 줄은 몰랐다.

이준영 교수와 이혁민 교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무뚝뚝하고 냉철한 기운에 뜨거웠던 가슴이 급격하게 식었다.

“김지훈, 논문은 어디 있나?”

“논문도 보실 겁니까?”

“당연하지. 니는 논문 안 쓸 기가?”

이준영 교수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제대로 걸렸다.

논문은 그렇다고 쳐도, 케이스 보고는 주말 집담회 때 자주 했었다. 하지만 이번 보고서는 의미가 다르기에 초조함을 감출 수 없었다. 교수들의 표정이 조금만 변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초안이라는 것을 감안해 주셔야 하는데.’

검토를 거의 끝마쳤을 무렵 신기동 교수가 나타났다. 응급 수술이 있었던 모양이다. 수술 모자에 눌린 머리가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그 뒤로 신현수와 손일석이 보였다.

“신 교수, 아침부터 수술하느라 고생했네. 신현수, 손일석, 논문 줘라. 시간 없다.”

신기동 교수까지 검토를 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자, 산 넘어 산이다.

조용히 보고서와 논문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 교수들의 눈가에 잡힌 주름과 꾹 다문 입술에 위기를 느낀 김지훈이 슬며시 커피를 탔다. 따스하고 고소한 향이 교수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라 믿었다.

판단 착오다. 커피 한 잔에 넘어갈 교수들이 아니었다. 나직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귓가를 후벼 팠다.

“하! 곧 4년차 되는데 논문을 이렇게밖에 못 쓰나? 내가 문제 있는 부분을 체크해 줄 테니까 이번 주까지 확실하게 교정해서 끝내자. 그렇게 할 수 있겠지?”

대답도 하기 전에 빨간 볼펜이 날아다녔다. 논문 3개가 누더기로 변했다.

이혁민 교수 말대로 3년차도 끝나 가는 마당인데 지적을 이렇게 많이 받다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끝이 아니었다.

“이준영 선생님, 뭐 해 주실 말 없으십니까? 신 교수는?”

“우리 과가 무슨 몸으로 때우는 과야? 사방에서 깡통 소리가 난다, 이 자식들아. 이거 창피해서 다른 교수들한테 보일 수 있겠어?”

날카로운 비수가 급소란 급소에는 모두 꽂혔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나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다가온 가공할 불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똑바로 하자.”

단 한마디였다. 하지만 이준영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남다른 힘이 담겨 있었다.

김지훈에게는 특히 그랬다. 더구나 모두 있는 자리에서 케이스 보고서까지 지적을 받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안 되겠다. 주중에는 시간이 더 없으니까 오늘 끝내자. 저녁 7시까지 싹 수정해서 다시 갖고 와라.”

주말인데 쉴 생각도 안 하다니 엄청난 의욕이다.

치프 3명이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외래를 나가자 혀를 차던 교수들이 씨익 웃었다.

“이 과장, 조금만 더 다듬으면 세 놈 다 물건 되지 않겠어? 일석이가 군대 가서 조금 걱정이 되지만, 이 정도면 좋다고 놀기만 하지 않을 것 같아.”

“내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준영 선생님, 어떠십니까? 지훈이야 뭐, 걱정할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없기는. 현수하고 일석이만큼만 했으면 좋겠어. 이따 7시에 나도 올게.”

“어차피 당직이니까 나도 그때 봐야겠네. 이준영 선생님하고 우리 이 과장이 정말 신경 쓰고 있는데, 저 자식들이 그걸 알까 몰라.”

모를 수가 있나? 의국으로 올라간 치프들의 얼굴이 심각하기만 했다.

“으아아! 낮에 좀 자야 오늘 밤을 넘길 수 있는데 큰일 났네. 어이구! 이럴 때가 아니지. 빨리 수정하고 두세 시간이라도 자야겠다. 지훈아, 근데 넌 뭐니? 그놈의 일복은 언제까지 달고 다닐 거야?”

신현수도 답답한 눈으로 논문을 보다 말고 시선을 돌렸다. 주말 오프인 놈이 가장 불쌍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런데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저 자식이 이제 미쳐 가는구나.”

김지훈이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일단 점심은 외식을 하고, 경아 씨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 딱이네. 경희는 약속도 없나?’

공중전화 앞에 선 김지훈의 어깨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여보세요?)

고경아의 목소리가 상큼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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