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3년차도 이제 마지막이다 (1)
정갑수다.
꾀죄죄한 머리,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창백한 얼굴, 덥수룩한 수염, 너저분한 옷차림.
순간 못 알아볼 뻔했다.
공정식이 난감한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정갑수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응급실 인턴과 간호사들은 멀찍이 떨어져 수군거렸다. 모두들 눈초리가 좋지 못했다.
김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1년차 때 일로 의사 면허가 어찌 됐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의사였던 사람이다. 응급실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공정식, 너 정말 이럴래? 내가 오죽하면 여기까지 왔겠어? 나 췌장염 환자야. 빨리 처리하란 말이야.”
또 소리를 질렀다.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손발까지 덜덜 떨었다. 공정식이 안 된다고 하자 와락 손을 들어 올렸다. 자칫 주먹까지 휘두를 기세다.
‘아직도 지 성질을 못 버렸네. 췌장염은 또 뭐야?’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정갑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이야?”
“어? 이게 누구야? 넌 상관 마, 이 새끼야. 난 지금 내과 환자로 온 거야.”
2년이나 지났는데 지금도 보자마자 욕이다.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꾹 눌렀다.
“그럼 조용조용 말로 해. 다른 환자들 있는 거 안 보여?”
“야이 새끼야! 니가 뭔데 나한테 훈계야? 싸가지 없는 새끼! 너 이 씨…….”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데 입 안은 바짝 마르는지 말이 제대로 이어지질 않았다.
순간 감이 왔다. 췌장염 환자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가 있었다.
데메롤(마약성 진통제)이다.
정한득이 구속돼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을 텐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그걸 핑계로 여전히 데메롤에 손을 대고 있다면 철이 없다 못해 한마디로 미친놈이다.
“정식아, 데메롤이지?”
1년차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실하게 모르는 공정식이 살짝 놀라며 서류 몇 장을 내밀었다. 개인 준종합 병원에서 발부한 소견서였다.
김지훈이 꼼꼼하게 소견서를 검토했다.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해 치료한 병력과 증상 발현 시 적극적인 통증 조절을 요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나친 음주가 원인이며, 입원 기간 중 통증 호소가 너무 심해 데메롤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첨부돼 있었다.
전후 사정이 짐작됐다. 병원에서 쫓겨난 이후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술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그것이 급성 췌장염을 일으켰고, 담당 의사는 데메롤 중독 병력을 모른 채 투여했을 것이다.
의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였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여기까지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통상 급성 췌장염 환자의 경우 통증이 너무 극심해 마약성 진통제 이외에는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벌써 1년도 더 지난 일이었고, 만성 췌장염이란 소견은 없었다.
그간 온 동네 병원을 다 돌아다녔을 것이 뻔했다. 처음에는 소견서를 내밀고 데메롤을 맞았겠지만, 횟수가 거듭될수록 상황을 알아챈 의사들이 거부했을 것이다.
결국 모교 병원 이외에는 기댈 곳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일을 생각하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었지만, 데메롤은 그조차 망각하게 하는 위험한 약이었다.
울며불며 사정을 해도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이다. 소견서를 다 확인한 후에도 아무런 말이 없자 정갑수의 눈이 뒤집혔다.
“니가 소견서를 왜 봐? 공정식, 빨리 하나 놔 줘. 아파 죽겠단 말이야, 이 새끼야.”
오직 데메롤만 찾고 있었다. 원래 성격이 개판이었지만 여기가 어디인지, 상대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인지 판단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김지훈도 만만한 성격이 아니다. 동정의 여지도 없었다.
“정갑수, 말조심해.”
“정갑수? 이 새끼가 선배한테…….”
“대우받고 싶으면 말끝마다 욕 달지 말고 행동부터 똑바로 해. 그리고 환자를 누가 보아야 할지는 의사가 결정하는 거지, 환자가 결정하는 게 아냐. 그걸 잊어먹은 건 아니지? 정식아, 췌장염 소견이 있어?”
공정식이 힐끗 정갑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데메롤 중독 증상으로 보여.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원칙대로 해야지.”
김지훈이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정갑수, 우리가 보기에는 췌장염 증상이 아니라 데메롤 중독이야. 데메롤을 줄 수는 없어.”
“뭐? 니가 뭔데? 공정식, 너 이 새끼 이리 와 봐. 니가 결정해야지, 지훈이 이 새끼가 왜 끼어들어? 너 이런 식으로 나오면 가만히 안 둔다. 죽을 줄 알아.”
마약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정갑수가 길길이 날뛰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졌다. 일시적인 흥분이 아니었다. 정갑수의 육체는 격렬하게 데메롤을 원했고, 그 정도가 심해질수록 눈과 귀가 멀고 정신은 흐려질 것이다.
다른 환자들까지 두려움에 빠져 소리를 질렀다. 자칫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의료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중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영원히 반복될 일이었다.
“인턴 선생, 빨리 와 잡아. 간호사, 경찰에 연락해요.”
우르르 달려들어 강제로 침대에 눕히고 팔다리를 묶었다. 온몸을 뒤틀며 욕설을 하던 정갑수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애원을 했다.
“지훈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이번 한 번만 놔줘. 정식아, 욕한 거 미안해. 나 이러다 죽을 것 같아.”
데메롤을 맞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마약 중독 환자에게 값싼 동정은 금물이었다.
공정식이 중독으로 인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수액을 놓고 안정제를 투여했다.
악연도 인연인지, 아니면 한때 선배였고 동료였다는 사실 때문인지 김지훈도 응급실을 떠나지 못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이 도착했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마약 중독자에 준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부탁했다.
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에 김지훈이 조용히 정갑수의 팔뚝을 보였다. 양쪽 팔꿈치가 모두 주삿바늘 자국이었다.
“일단 이송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이 돼야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예. 안정이 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자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경찰들도 난감한지 여기저기 연락을 했다.
마약 중독자를 적절하게 치료할 기관 하나 없다는 사실에 입이 썼다.
잠시 물끄러미 정갑수를 바라보던 김지훈이 응급실 차트에 상황을 기록했다. 확실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여러 사람 곤란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후우! 정갑수 너는 인생을 왜 그렇게 사냐.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지. 남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가졌을 때 제대로 살았으면 최소한 이 지경은 안 됐을 거 아냐. 인생이 불쌍하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인턴이 슬며시 다가왔다.
“선생님, 혹시 소식 들으셨어요?”
“무슨 소식?”
“정갑수 선배 아버님 일이요. 전에 뉴스에 났던 보건복지부 정 국장이라는 사람이 저 선배 아버님 맞죠?”
상당히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다. 김지훈이 호기심을 보였다.
“뉴스에는 안 났는데 벌써 재판이 끝났대요. 형량이 상당히 세다는데요. 금경태 과장님도 무지하게 맞았다는데, 무슨 잘못을 그렇게 크게 하신 거예요?”
“그건 알 거 없어. 어쨌든 좋은 일이 아니잖아. 근데 형량이 얼마나 된대?”
“집안끼리 아시는 분한테 얼핏 들은 말이라 확실하게는 몰라요. 대법원까지 가야 확정이 된다고 하시면서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그러셨어요. 진평호라는 사람한테 감정이 무지하게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인턴의 집안이 어떤지는 몰라도 세상 참 좁다.
지금도 정갑수는 침대에 묶인 팔다리를 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김지훈이 긴 숨을 내쉬며 응급실을 나왔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뭐가 부족했을까? 정갑수 너는 왜 한 번도 네 자신에게 기회를 안 주는 거야?’
터벅터벅 숙소로 올라갔다.
신현수와 손일석이 눈을 부릅뜨고 책을 읽고 있었다. 논문과 자료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확실하게 불을 지른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쩝쩝 입맛을 다시며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을 꺼냈다. 시큰둥한 표정도 잠시, 정갑수라는 이름이 거론되는 순간 두 쌍의 눈동자가 번쩍번쩍 빛났다.
불행한 일이다. 아무도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재판에 관한 말을 하자 만세까지 외쳤다. 신현수는 불끈 주먹을 쥐며 부르르 떨었다.
손일석이 간단하게 정리했다.
“사필귀정. 나쁜 놈은 감옥으로.”
한때는 떵떵거리며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몰락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과 죄의 대가이기에 항변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얽히고설켰던 일이 이렇게 끝을 보이고 있었다. 그 흔한 동정조차 받지 못하고 말이다.
***
수요일이다.
아침 회진이 끝난 후 스테이션이 웅성웅성 소란스러웠다. 손일석의 발 빠른 입 덕분이었다. 의국원들은 물론 교수들도 관심을 보였다. 누군가는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누군가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이준영 교수는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한동안 무거운 안색으로 창밖 어딘가를 보았다. 아마도 허경발 교수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금경태도 한때는 애지중지 소중하게 여겼던 제자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후우! 스승님과 큰 스승님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겠지. 금경태 당신 참 나쁜 사람이야. 어떻게 이런 분들의 마음을 모를 수가 있어?’
“준영아, 신경 쓸 거 없어. 다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우리가 그만큼 열심히 하고 스승님 모시자. 그러면 된다. 암! 그렇고말고.”
이준영 교수의 어깨에도 못 미치는 송재덕 교수가 툭툭 등을 두드렸다. 큰형이 제일 아끼는 동생을 대하는 듯했다.
이혁민 교수와 신기동 교수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이제는 다 끝난 일이라는 눈빛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잠시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드디어 라파로로 담낭을 절제하고, 담도에 T-tube를 삽입하는 수술을 한다.
김지훈이 가장 고대하던 수술이었다.
라파로 아뻬나 탈장 수술에서 수처를 한 것보다 더욱 큰 기대와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수술 부위 주변이 온통 위험한 구조물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었다.
도전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전진할 때, 각자 원하고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지금 내딛는 한 발이 어디까지 닿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성공할 수 있을까?
노련한 수술 팀이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에, 김진호 교수와 고경아다. 박순용과 이혁원도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다가왔다.
수술이 시작됐다. 모든 신경이 화면과 손끝에 집중됐다.
“보비 온(On).”
지이잉! 지이잉!
하얀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담낭이 간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왔다.
담낭 동맥과 담낭관을 박리하고 클립으로 잡았다. 순조롭게 담낭이 절제됐다. 담낭을 콘돔에 담은 후, 새로운 절개 창을 만들어 빼냈다. 그 자리로 T-tube를 넣을 것이다.
이제 가장 위험하고 어려운 과정이 남았다.
담도를 절개하고 T-tube를 삽입한 후, 단단하게 고정시켜야 한다. 담도 위로는 좌우 간담도와 간으로 주행하는 혈관이 있고, 좌측에는 췌장이, 우측에는 십이지장이 있다.
그 모든 구조물이 손바닥 반도 안 되는 공간에 위치한다. 중요한 장기들인 만큼 혈관들도 무수히 분포한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라파로로는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긴장이 치솟았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의 눈길이 마주쳤다. 성공에 대한 강한 의지와 확신이 서려 있었다.
‘시작하자.’
담낭관을 따라 담도, 즉 총수담관 위치를 가늠했다. 총수담관을 말끔하게 노출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T-tube를 삽입한 후 절개 부위를 매우 철저하게 봉합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허술하면 절개 부위를 통해 담즙이 샐 수도 있었다. 치명적인 합병증이다.
총수담관 윗부분을 덮고 있는 노란 지방층을 박리했다. 혈관과 중요 구조물 때문에 보비로 조직을 태워 박리할 수는 없었다. 켈리로 조금씩 벌려 가며 피가 비칠 때마다 보비로 살짝 지졌다.
째깍! 째깍!
숨소리마저 죽여야 할 정도로 집중해야 했다. 시계 초침 소리, 인공호흡기 소리, 라파로 기계의 나직한 기계음만이 수술실을 채웠다.
총수담관이 서서히 노출됐다. 주변 장기나 혈관 손상을 피하기 위해 단 한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같은 동작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절개할 부분을 확실하게 박리해 냈다.
이준영 교수의 모자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김지훈 역시 목과 어깨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아주 잠깐 수술을 멈췄던 이준영 교수가 다시 기구를 잡았다. 담낭을 꺼낸 자리로 T-tube를 넣고, 총수담관에 1.5센티미터 정도 절개했다.
“석션.”
검은색이 감도는 갈색 담즙이 새어 나왔다. 슬러지처럼 끈적끈적한 담즙까지 모두 제거했다. 약간은 하얀빛이 도는 총수담관 속으로 T-tube를 넣었다.
이제 절개 부위를 단단히 봉합해 확실하게 고정시켜야 한다. 탈장 수술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총수담관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중요하고도 위험한 장기다.
한 바늘, 두 바늘, 세 바늘, 네 바늘.
단지 보고 있을 뿐인데 숨이 답답할 정도였다. 어느 틈엔가 등짝이 축축하게 젖고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수처가 끝났다. 김지훈과 눈을 마주친 이준영 교수가 눈가에 힘을 주며 살짝 T-tube를 당겼다.
단단하게 고정돼 있었다. 개복했을 때와 느낌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확인만 남았다.
담즙을 배출하는 통로인 T-tube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실패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것이다.
배 밖으로 빠져나온 T-tube에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투명한 관을 따라 갈색 담즙이 맺혔다.
째깍! 째깍!
담즙이 튜브를 따라 흘렀다.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이던 김지훈이 활짝 웃었다. 이준영 교수는 마스크가 불룩해질 정도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성공이다. 수술실에 가득한 긴장 속에 한 줄기 환희와 흥분이 감돌았다. 피땀 어린 노력과 강한 확신에 찼던 도전이 마침내 달콤한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런데 왜 가슴이 먹먹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