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30화 (530/1,329)

제2화 신세계 Ⅱ (1)

김지훈의 표정이 묘했다.

“이혁원, 너 운이 굉장히 좋다는 건 알고 있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배들과 함께 픽스턴 돌고 1년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야. 그 행운을 절대 놓치지 마.”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 도대체 뭐가 행운이라는 걸까?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던 이혁원이 눈가를 찡그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김지훈이 인턴 말과 1년차를 어떻게 시작했는지 아버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금에 와서는 전공의들 중 가장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김지훈이었다.

“선생님, 실망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 말고 네 자신과 환자를 실망시키지 마.”

이혁원이 이를 악물었다.

픽스턴을 시작한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지적을 받았다. 김지훈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에 더욱 아팠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준다고 해도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깨달았다.

남은 일은 하나뿐이었다.

‘예, 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스로 후회하지 않도록,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끄러미 이혁원을 보던 김지훈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각오를 아무리 단단히 해도 기본기가 부족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너 수처하고 타이 제대로 못하면 죽을 줄 알아. 난 1년차 시작할 때 맞아 죽을 뻔했어. 알아서 해라.”

목소리가 으스스했다. 이혁원의 등짝에 식은땀이 맺혔다.

1년차 시작할 때라면 분명 아버지에게 탔다는 의미일 것이다. 김지훈이 아버지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도리어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정신이 번쩍 든 이혁원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후다닥 사라졌다. 살려면 일단 손부터 따라가야 할 일이었다.

“종진아, 혹시 타이 연습용 실 가진 거 있어?”

김지훈이 씨익 웃으며 의국으로 들어갔다.

‘혁원아, 아직 멀었다. 삼겹살을 빼먹어? 1년차 때는 확실하게 재로 만들어 주마.’

힘과 체력에 정신력까지 겸비한 놈의 주먹이 얼마나 아플지는 온몸으로 경험해 봐야 알 것이다.

지금은 맛보기일 뿐이었다.

손일석이 또다시 심각해져 있었다. 그럴 것이다. 김지훈이 슬며시 옆에 앉으며 커피 하나를 스윽 내밀었다.

“마셔.”

“자식이! 이게 커피 한 잔으로 될 일이야? 에휴! 절친이라는 놈 때문에 이렇게 고민스러워질 줄은 몰랐네. 니 덕분에 정신이 번쩍 깬다. 어쨌든 축하해, 인마. 그렇다고 너 절대 방심하지 마라. 내가 마음먹었으니까 순식간이다.”

“알아, 인마. 너 무서워서 열심히 하는 거야.”

“현수는 아니고?”

“아이고! 한 놈도 벅찬데 두 놈은 얼마나 무섭겠냐? 난 예전에 너희들 때문에 정신이 번쩍 깬 놈이야.”

손일석이 피식 웃으며 커피를 단번에 들이켰다.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잠시 후, 2년차들이 들어와 호들갑스럽게 축하를 했다. 부러움과 감탄이 마구 뒤섞였고, 결국 커피를 더 사야 했다.

병동 간호사들까지 난리를 쳐서 지갑을 탈탈 털고 말았다. 그래도 정말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일과 논문, 혹은 각자 준비해야 할 것들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손일석은 더욱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응급 환자를 보고, 수술에 참여했다. 김지훈 역시 월요일에 있을 수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일요일 밤의 어둠이 점점 짙어만 갔다.

숙소 문이 덜컥 열렸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벌떡 일어나며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신현수가 돌아온 것이다.

까맣게 탄 얼굴과 행복한 미소가 한겨울의 차가움과 묘하게 대비됐다. 신현수가 준비한 작은 선물과 얘기 보따리에 그간의 피로를 잊었다.

열쇠고리, 볼펜, 생뚱맞은 팔찌까지.

“나 때문에 정말 고생 많았지? 고맙고, 미안하다. 남은 2주 동안 내가 그만큼 더 열심히 할게.”

도저히 치프로 봐줄 수 없는 김지훈과 손일석의 몰골에 신현수가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인지 입이 쉬질 않았다. 정말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현수가 이렇게 말이 많았나? 종일 웃는 것 보니 서연이가 정말 좋긴 좋은 모양이네.’

왁자지껄한 시간이 지났다.

김지훈이 일어나려는 신현수를 잡아 앉혔다. 환자 파악과 다음 주에 있을 수술 때문에 시간이 없을 테지만, 그전에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현수야, 다른 게 아니라 총치프를 뽑아야 돼. 이혁민 선생님이 이번 주에 말씀하셨는데, 네가 없어서 아무것도 못했어. 일석아, 경석이 형하고는 연락했지?”

손일석이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아! 맞다. 요새 왜 이렇게 정신이 없는지 몰라. 경석이 형하고 통화하다 말았는데 그냥 잊어 먹었네. 일단 우리 세 명이 먼저 상의하고 다시 연락하자. 뭐 어떻게 해야 되지?”

“서울, 천안에서 각각 총치프 뽑고, 전체 총치프는 서울 총치프가 해야 한다고 하셨으니까 그거에 맞춰야지. 우리가 무작정 천안에 총치프 정했다고 말하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여. 천안은 알아서 뽑더라도, 서울은 예전처럼 전체가 동의하는 사람으로 뽑는 게 좋지 않을까?”

“그게 좋겠네. 현수야, 니 생각은 어때?”

같은 총치프라도 4년차와 3년차는 다르다.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고쳐야 할 점도 항상 뒤돌아보며 신경을 썼다. 솔직히 상당한 욕심이 나기도 했다.

신현수가 눈가를 좁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훈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럴 땐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놈이다.

“오케이! 현수 너는 시간이 없으니까 일단 환자 파악부터 해. 우리가 천안하고 구미에 연락할게. 괜찮지?”

모두 모여 결정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었지만, 이젠 지역별로 근무를 한다. 전화상으로 상의하고 결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창범이 형, 잘 지내셨죠? 저 지훈이에요. 총치프에 대한 말 들으셨어요? 전체 총치프를 서울에서 하는 게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교수님들 결정이니까 일단 따라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화요일까지는 천안 쪽 의견을 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러저런 말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붙이는 김지훈의 모습에 신현수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설혹 천안 치프들의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해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배워야 할 품성이자 태도였다.

“경석이 형, 나야. 일석이. 잘 지냈죠? 총치프 문제로 전화했지, 뭐. 전에 했던 말하고 달라질 건 없어. 그러니까 화요일까지 형 의견 정확하게 말해 줘. 그리고 지훈이 이 자식 라파로 받았어.”

(뭐? 라파로? 정말이야?)

이경석의 목소리가 너무도 또렷하게 새어 나왔다. 전체 총치프를 뽑아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 나오면 절대 안 되는 말이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신현수를 보았다.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어쩌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김지훈이 그만하라고 온갖 눈치를 주었지만, 손일석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렇다니까. 아뻬를 라파로로 했어. 지금 옆에 있는데 아주 입이 찢어져서 다물질 못하고 있네요. 몇 대 때리고 싶을 정도라니까. 하여튼 형 빨리 올라와야 되겠어. 나 혼자 감당이 안 돼. 정말 인정하기 힘들지만 역부족이야.”

별말이 다 나왔다. 하지만 정작 입을 못 다무는 사람은 신현수였다. 눈은 김지훈에게, 귀는 손일석에게 쏠려 있었다.

“잘했냐고? 성질이 날 정도로 잘했어요, 형. 이러다 아차하면 지훈이 저 자식 담낭 절제술도 라파로로 받을지 몰라. 우리 정신 바짝 차려야 돼. 생각보다 더 무서운 놈이야. 알았죠? 아이구! 시간 너무 잡아먹었네. 우리 이럴 시간에 공부합시다. 형, 끊어요.”

신현수가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전공의가 라파로를 하다니, 두 귀로 똑똑히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 병원 전체로 따져도 세 번째 경험자다. 아니, 모든 대학 병원을 뒤져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지훈아, 일석이 말이 다 사실이야?”

“응. 그게 그렇게 됐어.”

‘지훈이가 그렇게 뛰어났나? 이준영 선생님이 그 정도로 인정하고 있었단 말이야?’

손일석이 아예 쐐기를 박았다.

“뭐가 그렇게 돼? 현수야, 너 없는 동안 라파로 쪽은 확 변했다. 내일은 탈장까지 라파로로 해. 이 자식이 그동안 말도 없이 혼자 몰래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말을 왜 안 해? 다 했잖아, 인마.”

“지나가는 것처럼 던지면 우리가 알아? 진지하게 니 머릿속에 있는 걸 다 꺼냈어야지. 하여간 넌 나쁜 놈이야. 치사한 자식! 어이구! 그동안 친구라고 얼마나 널 아꼈는데 배신을 때리냐.”

농담인 줄 빤히 아는데,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를 일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신현수가 입술을 모은 채 말이 없어 갑갑할 지경이었다. 서로를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랑 택한 분야가 다를 뿐이야. 하지만 지금처럼 하다가는 분명히 뒤처질 거야. 어떻게 해야 하지?’

기본이다. 기본이 탄탄한 사람만이 더욱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가자.’

짧은 순간 수많은 생각이 신현수의 뇌리를 스쳤다. 예전이었으면 답답함을 넘어 질시와 무력함까지 느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윤서연의 존재가 더욱 큰 자신감과 책임감을 불러오고 있었다. 당당하게 대처해야 할 때였다.

“축하한다.”

그런데 딱 그 말 한마디 이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김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웃었다. 예전의 차가움은 없었지만 착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반면 눈빛은 이글거리다 못해 불타오르고 있었다.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손일석까지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싸해졌다.

김지훈의 눈에는 그랬다.

‘아! 죽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어째 온 동네에 불을 지른 것 같았다.

***

월요일이다.

신현수가 아침 회진 내내 신혼여행 잘 다녀왔냐는 교수들의 말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웃음과 즐거움도 잠시, 월요일 첫 정규 수술이 시작되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용동남 환자의 수술이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시작됐다. 라파로를 이용한 탈장 수술은 처음이다. 아뻬와 담석증을 생각하면 라파로가 어디까지 적용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교수들은 물론 병원 차원에서도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수술이었다.

교수들과 치프들이 모두 모였다. 수술실이 의료진들로 가득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고경아와 함께 수술을 준비하는 모습에 눈과 귀가 집중됐다.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트로카를 꽂는 위치만 다를 뿐 준비는 동일했다. 카메라를 통해 배 속을 확인한 후 수술 기구를 넣었다.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되기 직전의 강한 긴장이 수술실을 휘감았다.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첫 시도인 데다 교수들의 뜨거운 관심에 중압감까지 느껴졌다. 어젯밤부터 수없이 수술 과정을 되새겼지만 가슴이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위이이잉!

수술 테이블이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가 소장과 대장을 밀어내 더글러스 포치를 노출시켰다. 고환 동맥과 정맥이 복강 밖으로 빠져나가는 부위를 찾았다.

동맥과 정맥을 확실하게 확인해야 한다.

켈리로 복막을 잡고, 다른 손에는 전기 소작기를 잡았다. 조직을 태우면서 박리하기 때문에 지혈 기능까지 겸할 수 있다. 담낭을 간에서 분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유용한 방법이었다.

“보비(전기 소작기) 온(On).”

카메라를 잡고 수술 시야를 확보하던 김지훈이 발밑에 놓인 풋 스위치(Foot Switch)를 눌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나직한 소리와 함께 복막이 박리되기 시작했다.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시야 확보를 위해 석션을 작동시켜 연기를 빼냈다. 연기와 함께 가스까지 빠져나간 탓에 복강 내 압력이 감소했다. 처컥! 처컥! 소리와 함께 적절한 가스 주입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졌다.

역시 이준영 교수였다. 김지훈은 손발을 척척 맞췄다.

복막이 서서히 박리되며 고환 동맥과 정맥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마치 라파로를 이용한 탈장 수술 경험이 풍부한 것처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떤 수술이든 기본적인 원칙은 동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통로 주변을 패치로 감싸 보강하면 된다.

“김지훈, 통로 사이즈가 얼마나 되겠어?”

네모난 패치 가운데를 뚫어, 그 사이로 동맥과 정맥을 통과시켜야 한다. 적당한 여유가 필요했지만, 의외로 빡빡하게 측정할 필요는 없었다. 전통적 탈장 수술과는 원리가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었다.

공이 가득 들어 있는 가죽 주머니를 생각해 보자. 시간이 갈수록 바닥에 닿는 아래쪽이 닳아 얇아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죽이 찢어지며 공의 일부가 빠져나오는 것이 바로 탈장이다.

전통적 방법은 바깥쪽에서 얇아진 가죽 자체를 겹쳐 꿰매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 약해진 가죽이기에 당연히 한계가 있고, 또다시 구멍이 날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반면 라파로는 안쪽에서 멀쩡한 가죽에 새로운 가죽을 덧대는 방식을 취한다. 훨씬 단단할 수밖에 없다. 이중으로 보강됐기 때문에 찢어질 일도 없을 것이다.

다만, 예전에는 몸에 해롭지 않은 패치를 구할 수 없었다. 또한 개복을 해야 했기 때문에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 당연히 시도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라파로가 나온 이후 접근 방식 자체가 변한 것이다.

어쨌든 적절한 사이즈를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수술 기구의 굵기와 통로 크기를 비교한 김지훈이 신중하게 대답을 했다.

“1센티미터를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패치를 재단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 자르고 들어가 가운데에 지름 1센티미터 정도의 구멍을 냈다.

조심스럽게 트로카 구멍을 통해 패치를 배 속에 넣었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고환 동맥과 정맥을 가운데에 난 구멍 안에 위치시켰다. 네 귀퉁이가 위치할 부분을 정했다. 이제부터 삥 둘러 가며 복막에 패치를 봉합해야 한다. 구조상 빠지기 쉬운 클립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적인 어려움이다. 30센티미터에 달하는 막대 끝에 달린 작은 니들 홀더를 조작해야 한다. 그것도 편평한 면이 아니라 굴곡이 진 부분을 봉합해야 한다. 더구나 트로카 구멍에 기구가 고정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각도로 조작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화면으로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교수가 드디어 수처를 시작했다.

“니들 홀더(Needle Holder).”

조그만 기구 끝으로 나일론 4번을 잡았다.

패치에 한 땀을 뜬 후 복막과 봉합했다. 먼저 네 귀퉁이를 고정시켜야 했지만 수처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조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수처에 능하다고 해도 라파로 기구로는 처음 하기에 더욱 어려움이 가중됐다. 이리저리 기구를 돌리며 궁리한 끝에야 네 귀퉁이를 모두 고정시킬 수 있었다. 사이에 한 바늘씩 더 떠 모두 여덟 군데를 봉합했다.

이준영 교수도 쉽지 않았는지 짧은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잠시 뻣뻣하게 굳은 어깨를 푸는 순간 수술 방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모든 수술실에서 월요일 첫 정규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참관하던 교수들이 슬슬 나갈 준비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재덕 교수가 손짓을 하며 나직하게 말했다.

“잘 봤다. 잘 봤어. 수처하는 게 꽤 힘들어 보이네. 우리도 열심히 하자. 언제 라파로로 수술할지 모르잖아? 그치? 내 말이 맞지? 나가자. 가자. 할 일 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그때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발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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