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29화 (529/1,329)

제1화 신세계 Ⅰ (2)

삐이이익!

귀를 자극하는 금속성 기계음이 들렸다. 이산화탄소가 가득 찬 복강이 일정 압력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이 상태에서 트로카를 찌르면 날카로운 끝이 장기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날카로운 집게로 배꼽 한쪽을 잡았다. 이준영 교수가 자연스럽게 반대쪽을 잡았다. 동시에 힘차게 들어 올렸다.

절개 창 속으로 트로카를 밀어 넣었다. 신중하면서도 과감하게 힘을 주었다. 손끝을 따라 피하지방과 근육, 그리고 복막이 차례차례 느껴졌다.

철컥!

복막이 뚫리는 순간 날카로운 끝을 감싸 주는 안전장치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이중으로 된 트로카를 분리해 바깥 부분만 남겼다. 지름 10밀리미터의 관이다.

이준영 교수가 카메라를 넣었다. 트로카로 인한 장기 손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깨끗했다.

우하복부 두 곳을 5밀리미터 정도 절개했다. 그곳으로 5밀리미터 트로카를 찔러 넣었다.

이제부터는 오직 화면을 보며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서서히 조금씩 더 강한 힘을 가했다.

트로카의 압력에 마치 솟아오르는 것처럼 밀리던 복막이 툭 열렸다. 은색 금속이 보였다. 트로카의 날카로운 끝이 카메라 불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났다.

토로카를 분리하고 5밀리미터 관만 남겼다.

같은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했다. 조그만 켈리가 달린 기구를 잡았다. 긴장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연습한 대로만 하자.’

길게 숨을 내쉰 후 관을 따라 기구를 넣었다. 이준영 교수가 카메라를 움직여 시야를 확보했다.

켈리는 물론 배 속의 모든 구조물이 커 보인다. 육안으로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자세하게 보였다.

아뻬가 확실한지 확인부터 해야 한다.

“마취과, 환자 다리 쪽 높여 주세요.”

위이이잉!

테이블이 기울어지며 장기들이 슬쩍 밀려났다.

켈리로 에스 결장과 소장, 그리고 상행 결장을 아뻬 주변에서 밀어냈다. 염증이 퍼진 소견 이외에 다른 병변은 보이지 않았다.

이준영 교수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진행해도 된다는 의미다.

맹장을 찾아 조심스럽게 후하면을 노출시켰다. 쥐꼬리처럼 길고 가느다란 구조물이 딸려 왔다.

아뻬(충수돌기)다. 끝이 빨갛게 익었다. 주변에 염증성 삼출액이 고여 시야를 방해했다.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켈리를 빼고 석션기를 넣었다.

찌이익! 찌이익!

실제로는 지름 3~4밀리미터에 불과한 석션기가 화면에서는 몇 배로 굵게 보였다.

석션기 끝으로 조직이 달라붙으며 손상을 받아 피가 흘렀다. 순간 움찔거리고 말았다. 실제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출혈이었지만 몸이 절로 반응했다.

복강경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신중하게 출혈량을 확인하고 무시하기로 했다. 이제 아뻬를 제거해야 한다.

다시 켈리를 잡았다. 카메라가 스윽 다가오며 아뻬 주변을 크게 확대했다.

수술 과정은 개복과 똑같다.

왼손으로 아뻬를 잡고, 오른손으로 장간막을 펼쳤다.

카메라 불빛에 가느다란 동맥과 정맥까지 검은 선으로 확연하게 보였다. 육안으로는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구조물이다. 라파로의 장점 중 하나다.

혈관이 없는 부분에 켈리를 밀착시켰다. 레버를 당겼다 푸는 동작을 반복했다.

조그만 켈리 끝이 정확하게 반응했다.

지방조직이 서서히 벌어졌다. 카메라가 더욱 가깝게 다가와 수술 시야를 확실하게 확보했다.

염증이 퍼진 조직 속에서 흘러나오는 진물까지 보였다. 마침내 지방조직이 완전히 박리되며 장간막에 구멍이 났다.

켈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구멍을 길게 늘였다. 동맥과 정맥을 잡을 차례다.

“클립.”

끼이익!

레버를 당겼다. 은색 클립이 조여지며 장간막을 꽉 물었다. 배 속에 남아 있는 부분은 두 개의 클립으로 잡고, 제거될 부분에는 하나의 클립만 사용했다.

“가위.”

장간막을 잘랐다. 클립 사이에 묶인 조직에서 빨간 피가 흐른다. 역시 무시해도 무방할 정도의 출혈이다.

아뻬만 남았다. 어려울 것이 없는 과정이다. 클립을 이용해 맹장과 연결된 부분을 삼중으로 묶었다.

“가위.”

아뻬를 잘랐다. 콘돔에 담아 배 밖으로 꺼냈다.

이준영 교수가 카메라를 조작해 수술 부위와 주변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었다. 생리식염수로 수술 부위를 씻어 내고, 석션으로 제거했다.

라파로를 이용한 아뻬 수술의 주요 과정을 모두 끝냈다. 이제야 이준영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제자를 향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보였다.

등짝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어 있었다. 긴 숨과 함께 수술 내내 느꼈던 긴장을 날려 보냈다.

성취감이나 흥분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무사히 끝냈단 안도감과 담담한 느낌만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첫 라파로를 말끔하게 끝냈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마무리하자.”

이준영 교수의 묵직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끝내기 전에 확인할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선생님, 더글러스 포치(Douglas Porch)를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

더글러스 포치(Douglas Porch)는 복강이 가장 아래쪽까지 확장된 공간을 말한다. 여자 환자이기에 절대 볼 수 없지만, 남자의 경우 고환 동맥과 정맥이 빠져나가는 부분이다. 바로 용동남 환자의 수술 부위다.

이준영 교수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스승의 웃음에 가슴이 벅찼다.

“손일석, 박순용, 이혁원. 잘 봐. 대략 이 부분에서 고환 동맥이 빠져나갈 거야. 주변을 박리하고 패치를 대 주면 되겠지?”

다음 수술을 위한 귀중한 경험이었다. 수술할 부위를 처음 보는 것과 두 번째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어시스트를 서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밀리미터 관 두 개를 제거했다. 10밀리미터 관을 통해 복강에 찬 가스를 제거했다.

빵빵했던 배가 홀쭉해졌다.

절개 창을 처리해야 한다. 통상은 굵은 나이론으로 피하지방까지 깊숙하게 한 바늘 뜨는 것으로 피부를 봉합한다. 하지만 박미영은 켈로이드 환자다.

“고 간호사, 바이크릴(흡수성 봉합사) 주세요.”

흡수성 봉합사로 피하지방을 단단하게 연결해 피부에 가해지는 장력을 최소화했다.

피부는 최대한 가는 나이론으로 한 바늘만 떴다. 이 역시 분명 흉의 크기를 줄여 줄 것이다.

이후의 일은 모두 박순용의 몫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직접 하고 싶었다. 마취가 끝난 후 함께 환자를 회복실로 옮기고, 오더도 직접 냈다. 박순용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은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환자분, 눈 떠 보세요.”

박미영이 힘겹게 눈을 뜨며 눈을 맞췄다. 마취 기운이 남아 있을 텐데도 간절하게 묻고 있었다. 고개를 숙여 부드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수술 잘 끝났습니다. 흉도 걱정하지 마세요.”

박미영이 웃었다.

이제야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라파로를 해냈다는 흥분과 성취감이 격렬하게 심장을 자극했다. 절로 주먹이 쥐여지며, 온몸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입을 열면 수술 방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지를 것 같았다.

박순용과 이혁원이 있는 자리다. 방정맞게 보일지도 몰랐다.

급히 휴게실로 달려갔다.

‘침착하자. 좋아할 때만이 아니야. 제대로 한 거 맞지? 실수한 건 없나?’

숨을 고르며 수술 과정을 되새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머릿속을 스쳤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까지 기억이 났다.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결과를 얻었다.

가슴이 진정되기는커녕 도리어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자꾸 솟구쳐 올랐다.

숨이 답답할 지경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 정말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다.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찬물에 세수를 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입을 악다물고 있었지만 눈은 활짝 웃고 있었다. 쑥스럽지만 스스로에게 정말 잘했다고, 그동안 최선을 다해 왔다고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래, 잘했어. 잘한 건 잘한 거야.’

카르페 디엠!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입 안으로 악악! 소리를 지르며 힘차게 어퍼컷을 날렸다.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말할 수 없는 감동과 성취감에 온몸을 맡겼다.

너무도 강렬했다.

그때 문득 이런 느낌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잊을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게 언제였지?’

음성에서 첫 집도를 했을 때였다. 똑같은 느낌에, 똑같은 기분이었다.

이 모든 것이 스승의 덕분이었다. 이준영이라는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결코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떠오르는 순간, 수술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스쳐 지나갔다.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일이 아니다. 믿을 수 있는 동기와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모두들 고맙다. 경아 씨, 항상 날 응원해 주고 믿어 줘서 정말 고마워요.’

조금은 가슴이 진정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심장은 두근두근 빠르게 뛰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이제 다시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때였다.

탈의실에서 나가던 김지훈이 무슨 생각인지 가운만 걸친 채 급히 매점을 다녀왔다.

교수 휴게실 문에 귀를 대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이준영 교수와 김진호 교수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지훈이 슬며시 캔 커피 두 개를 탁자 위에 놓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김진호 교수가 환하게 웃었다.

“오늘은 너무 특별해서 도리어 내가 한 잔 사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지훈아, 너 처음 라파로 하는 거 맞아? 몇 번 한 놈 같아서 내가 다 당황스럽다. 어쨌든 잘 마실게. 고맙다. 선생님, 좋으시겠습니다.”

이준영 교수는 아무 말도 없이 한동안 캔 커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시 후, 경쾌한 소리와 함께 한 모금을 넘겼다. 입가에 걸린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왜 저놈이 주는 커피는 유달리 맛있을까? 기대 이상으로 너무 침착하게 잘해 내서 그런가? 후우! 혁원이도 너처럼 열심히 해서 좋은 스승을 만났으면 좋겠구나.’

“선생님, 라파로까지 주셨으면 이럴 때 한마디 하셔야죠. 음성서부터 어디 보통 인연입니까? 그땐 잘만 얘기하시더니, 점점 말씀이 없어지시네요.”

이준영 교수가 정색을 했다.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색 그 자체로 파격적인 일이었다.

“김 교수, 내가 언제 그랬어? 김지훈, 수고했다. 탈장 환자 준비 잘해. 나가 봐.”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이구! 선생님도 참!”

김진호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수고했다.’라는 단 한마디 말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승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다른 어떤 사람의 말보다 무겁게 가슴에 와 닿았다.

휴게실에서 나와 고경아와 수술 방 간호사들에게 커피를 돌렸다. 다들 좋아했지만 고경아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의미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경아 씨, 고마워요. 사랑해요.’

‘지훈 씨, 파이팅! 저도 사랑해요.’

슬그머니 주먹을 꽉 쥐어 보이고는 회복실로 향했다.

마취에서 완전히 회복됐는지 박미영이 보이지 않았다. 후다닥 병실로 향했다.

박순용과 이혁원이 막 나오고 있었다. 기다리라는 손짓을 하고는 환자를 살폈다. 인기척에 눈을 떴다. 젊은 나이 때문인지, 혹은 긴장 때문인지 눈빛이 또렷한 것이 마취 후의 졸음도 벌써 사라진 것 같았다.

김지훈을 본 보호자가 안달을 했다.

“선생님, 수술은 잘된 거죠?”

“예. 잘됐습니다. 상처도 최대한 작게 내려고 노력했으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거즈를 슬쩍 들어 상처를 보여 주었다.

누가 보아도 작은 상처다. 모두 합해야 2센티미터가 조금 넘을 뿐이었다.

켈로이드가 발생할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한 것은 분명했다. 아니, 이 정도라면 생기지 않을 것이란 믿음에 환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보호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그리고 실밥은 보통 일주일 후에 풀지만, 환자분의 경우에는 사오 일 정도 더 미룰 겁니다. 켈로이드 방지를 위해서 상처에 스테로이드를 주입해야 하는데, 그게 시간을 좀 지연시키거든요.”

“그럼 그때까지 입원을 해야 하나요?”

“아닙니다. 이준영 선생님과 상의를 해야 하지만, 이삼 일 후에 퇴원하시고 외래에서 치료받으시면 될 겁니다.”

보호자가 쥐여 주는 주스 하나를 들고 병실을 나온 김지훈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이혁원은 물론 박순용까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혁원, 한 얘기 또 하고 싶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수술 기록을 작성하는 이유는 단지 의무 기록이기 때문만이 아니야. 언젠가는 네가 해야 할 수술이라는 거 명심해. 그래서 수술 전에 습관처럼 과정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 거야. 너처럼 대충 하면 남들 다 받고 난 다음에 제일 마지막에 받을 수도 있어.”

“죄송합니다,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박순용 선생님, 픽스턴 교육은 도진이 담당이지만 1년차가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혁원이 확실하게 책임지세요. 설마 내가 직접 교육을 시켜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겠죠?”

“죄송합니다.”

얼굴이 벌게진 박순용과 이혁원을 뒤로하던 김지훈이 홱 고개를 돌리며 눈을 찢었다.

“이혁원, 잠깐 나 좀 보자. 박순용 선생님은 일 보세요.”

홀로 남은 이혁원의 입술이 바짝 말랐다.

도대체 따로 불러야 할 정도로 잘못한 일이 뭘까?

아무리 머리를 돌려 봐도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는 법이다.

더구나 선배다. 그것도 김지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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