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신세계 Ⅰ (1)
아뻬라고 해서 위험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불안은 환자는 물론 집도하는 의사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설마 용동남 같은 환자가 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요새 환자들이 다들 왜 이러지?’
가볍게 한숨을 내쉰 김지훈이 환자와 엄마를 안심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환자분이나 어머니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불안하시겠지만, 일반 외과에서 가장 많이 하는 수술입니다. 금방 끝날 겁니다.”
그래도 불안은 가시질 않았다.
“선생님, 꼭 수술을 해야 하나요?”
“그럼요. 맹장염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수술 안 하면 사람이 죽는 병이에요.”
환자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그럼 상처가 얼마나 나죠?”
제법 살집이 있다. 더구나 여자는 남자에 비해 복부 지방층이 깊다. 눈어림이지만 아무리 작게 연다고 해도 5센티미터는 열어야 할 것 같았다. 봉합하고 나면 족히 7센티미터 정도 흉이 남을 것이다.
“글쎄요. 일단 열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만, 흉 때문에 그러신다면 최대한 작게 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엄마가 환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환자의 옷을 걷어 올려 팔뚝과 무릎을 내보였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말았다.
심한 흉터가 보였다. 검붉게 변한 피부 군데군데가 마치 혹처럼 솟아올라 있었다. 무릎에 생긴 흉은 너무 크고 심해 움직일 때마다 통증까지 유발할 것 같았다.
“설마 켈로이드(Keloid)인가요?”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알아보시네요. 온갖 치료를 다 했는데 없어지질 않네요. 여름에도 반바지나 반팔 티를 입질 못해요. 무릎에 난 흉터 때문에 조금만 오래 걸어도 아파서 절뚝거릴 정도예요. 수술하고 나면 그 자리에도 이런 흉이 남겠지요? 맹장을 뗀 자리는 괜찮을까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대다수의 사람은 흉이 생기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흐려진다.
연령이나 부위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눈에 딱 보이는 곳만 아니라면 외관상 신경 쓸 일도 거의 없다.
반면 비후성 반흔(Hypertrophic Scar)이나 켈로이드는 전혀 다르다. 상처가 난 부위에만 국한돼 심한 흉이 지는 경우가 비후성 반흔이다. 외관상 문제는 물론 치료 역시 만만치 않다.
켈로이드는 아예 차원이 다르다. 상처 부위를 넘어 주변 피부에까지 흉이 확장되고, 기괴한 모양으로 심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바로 켈로이드다. 관절 부위에 발생할 경우 움직임까지 제한될 수 있었다.
치료가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우울증까지 유발할 수 있었다. 목숨은 위협하지 않지만 난치성 질환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배에 또 하나의 켈로이드가 생긴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할 것이다. 그간 상처가 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을 텐데 수술은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니, 눈물이 날 정도로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양해를 구하고 교과서를 뒤졌다.
잠시 침울했지만 이내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손일석과 함께 환자를 본 후 상의를 했다. 피부과 전공의는 물론 공정식에게까지 연락을 해 조언을 구했다.
“어이구! 하필이면 켈로이드냐.”
원칙은 간단했다.
“지훈아, 결국 수술 절개 창을 최소화하고, 피부를 닫을 때 장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피하지방층을 단단히 봉합하는 게 최선이란 소리네.”
“그렇지. 일석아, 근데 아무리 적게 열어도 최소한 5센티미터 정도는 열어야 할 것 같지 않아?”
“응. 내 생각에도 뱃살이 좀 있어서 더 작게 열기는 힘들 것 같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굳이 찾는다면…….”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불과 한두 시간 전에 아뻬도 복강경으로 가능하다고 했다. 또한 상처가 작으면 작을수록 켈로이드가 발생할 확률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세 곳에 상처가 나지만 합쳐야 3센티미터도 안 된다.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커야 1센티미터 미만이다.
결론이 났다.
“역시 라파로가 최선이겠지? 어? 오늘 당직 교수님이 이준영 선생님이 아니잖아?”
김지훈이 부리나케 전화기를 들었다. 다행히 이준영 교수가 퇴근하기 직전이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손일석과 함께 내린 결론을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마디가 툭 들려왔다.
(알았다. 응급실에서 보자.)
세심하게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팔뚝과 무릎의 켈로이드까지 살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다.
수술의 불가피성.
켈로이드 발생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
“선생님, 그러면 괜찮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켈로이드는 수술 직후가 아니라 이삼 개월 정도는 지나야 발생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저로서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 이상의 방법은 없습니다.”
보호자가 입술을 깨물었다.
각각 채 1센티미터가 안 되는 수술 창 3개.
그동안 딸과 함께 유명하다는 피부과 의사는 다 찾아다녔다. 남들은 곧잘 치료가 됐지만 딸은 그렇지 못했다.
치료를 한 의사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우습게도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뿐이었다. 상처가 나도 작으면 작을수록 유리하다는 말은 들었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수술만이 아니라 퇴원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켈로이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가 묵직했다. 처음 딸을 진찰한 의사는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뛰어다니며 방법을 찾았다.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희망이 보였다.
때론 믿음 그 자체로 원하는 일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환자와 보호자가 서로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24세 여자 환자 박미영의 수술이 결정됐다. 라파로를 이용한 충수돌기 절제술이다.
***
김지훈이 다소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손일석이 당직이기에 수술을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아뻬를 라파로로 한다.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를 대비해 최소한 다른 라파로 수술의 경험이라도 풍부해야 했다. 이를 모를 손일석이 아니었다.
“지훈아, 내가 세컨 설게. 그게 좋겠지?”
“고맙다, 일석아. 미안해.”
“미안하기 뭐가 미안해? 난 라파로를 들어간 적이 거의 없잖아. 에이! 하필이면 아뻬냐. 4년차 첫 텀으로 간담도 돌았으면 좋겠네.”
1차 관문은 통과했다.
마취과 전공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뻬를 라파로로 한다고? 응급인데?”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결국 수긍을 했지만, 마취 경험이 부족한 라파로이기에 교수가 나와야 했다. 다행히 전화기를 통해 들린 김진호 교수의 목소리가 좋았다.
(이준영 선생님하고 김지훈이지?)
뭔가 내용이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무사히 2차 관문을 통과했다.
“네? 라파로로 하신다고요?”
주말 당직 간호사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라파로를 어시스트해 본 경험이 있는 간호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경아와 성미경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누가 먼저 받을까?
고경아 당첨!
‘어휴! 친구 만난다고 했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경아 씨도 일복이 만만치 않네. 전화는 왜 먼저 받아?’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리며 머리만 벅벅 긁었다.
어쨌든 마지막 관문까지 해결됐다.
통상 한 시간 이내에 수술이 가능했지만, 두 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수술 준비가 끝났다. 김진호 교수와 고경아가 도착하는 시간에 라파로 기구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었다.
“경아 씨, 미안해요.”
“몰라요. 미경이는 왜 전화를 안 받는 거야?”
삐쳤다. 하긴 최근 병원 밖에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상황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유가 김지훈과 처지가 똑같은 전공의의 결혼 때문이니 화가 날 법도 했다.
“다음 주에 현수가 오니까 우리 오프 때마다 만나요. 내가 약속해요.”
“흥! 그때 또 무슨 일이 생길 줄 알아요?”
김지훈이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니다. 1년차 때부터 몸에 익은 습관은 무서웠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아뻬를 라파로로 하는 과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손가락까지 꼬물꼬물 움직이는 모습에 고경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 시간, 이준영 교수가 눈가를 찡그린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동안 김지훈이 라파로에 관해 얼마나 공부하고 노력해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술 방에서 라파로 기구를 빌려 연습까지 한다는 사실도 들은 지 오래였다.
물론 다른 수술에 대해서도 절대 등한시하지 않았기에 기특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내심 이번 텀이 끝나기 전에 라파로를 줄 기회를 보고 있었다.
‘아뻬 라파로를 주어도 될까? 경험은 없지만 담낭 절제보다 위험도도 적고, 개복 수술 경험도 충분한데 가능하지 않을까?’
연습과 실제는 다르다. 하지만 아뻬 주변에는 목숨을 위협할 만한 구조물이 없다. 조그만 실수나 서투름 정도는 개복 수술을 처음 했을 때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문득 음성에서 첫 수술을 했던 김지훈의 손이 떠올랐다. 자신도 내심 놀랄 정도로 훌륭하게 해냈다.
생각해 보면 라파로나 개복이나 다를 바도 없었다. 단지 화면을 보고 수술한다는 것과 사용하는 기구의 길이만 길 뿐이었다. 켈로이드도 누가 하든 수술 창이 커지진 않기에 문제는 없었다. 단, 성공해야 한다는 보장이 있어야 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이준영 교수가 몸을 일으켰다. 환자가 수술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수술실로 향하던 이준영 교수가 긴 숨을 내쉬었다.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수술실이 복잡했다. 김진호 교수가 전공의와 함께 마취를 걸고 있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이미 수술 가운까지 입고 고경아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필요한 기구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그 옆에 박순용과 이혁원이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라파로로 수술을 하는 현장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모양이었다.
점검을 끝낸 김지훈이 갑자기 인상을 썼다.
“이혁원, 수술 전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했어? 직접 수술을 한다고 생각하고 과정을 그리라고 했지?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수술 들어오지 말고, 그 시간에 차라리 공부나 해.”
이번만큼은 이혁원과 다르지 않았던 박순용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선생님, 그게 라파로라서…….”
“라파로 이전에 아뻬잖아요, 아뻬.”
김진호 교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야! 김지훈 치프 무섭네. 치프 선생님, 마취 거의 다 끝났습니다. 이따 혼내시고 수술 준비부터 하세요.”
때마침 이준영 교수도 들어왔다. 다른 때와는 달리 힐끗 이혁원에게 눈길을 주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김지훈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을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감흥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교수 앞에서 후배 전공의를 혼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김지훈이 손일석에게 눈짓을 하고는 부지런히 복부를 소독했다.
수술 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모니터가 달린 라파로용 기계와 연결되는 카메라 줄을 소독된 비닐로 감쌌다. 화면을 점검하고, 공기 주입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이제 시작만 하면 된다.
이준영 교수가 손을 씻고 들어왔다. 수술용 가운을 입으며 모든 것이 제대로 준비됐는지 조용히 확인했다.
완벽했다. 김지훈은 그만큼 준비됐다는 의미였다.
마지막으로 장갑을 낀 이준영 교수가 김지훈을 보며 환자의 오른쪽 자리를 가리켰다. 집도의 자리다.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침을 꿀꺽 삼켰다.
“김지훈, 뭐해? 자리로 가.”
확실해졌다. 모두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파로가 시작된 이후 전공의 중에서는 누구도 해 본 적이 없다. 이젠 금경태가 없으니 교수들 중에서도 이준영 교수가 유일했다. 일종의 충격이었다.
김지훈도 선뜻 다리를 떼지 못했다. 그렇게 바랐던 일이지만, 기대도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맹렬하게 수술 과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건 연습이 아니라 엄연한 실전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였다.
“자신 없어? 못할 것 같아?”
이준영 교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결코 놓칠 수 없는 귀중한 기회였다.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아니,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노력을 해 왔기에 할 수 있었고, 반드시 해야 했다. 떨리던 마음이 서서히 진정됐다.
“아닙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지훈이 힘차게 대답한 후 집도의 자리에 섰다. 무작정 시작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고 간호사, 10밀리미터 트로카 하나, 5밀리미터 트로카 두 개, 공기 주입기, 켈리 두 개, 가위 하나, 석션기와 소작기, 예비용 두 개를 포함해 클립 여덟 개. 모두 준비됐죠?”
“네, 선생님.”
고경아의 목소리가 조금은 들떠 있었다. 김지훈을 보는 눈빛이 유난히도 반짝였다.
이준영 교수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준비를 했는지 자신에게 확인하는 제자가 믿음직스럽기만 했다. 물론 마스크에 가려져 누구도 볼 수 없긴 했다.
아직 확인받아야 할 것이 남았다.
김지훈이 트로카(Troca:복벽을 뚫는 기구)가 들어갈 자리 세 곳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아무 말도 없었다. 문제가 없다는 의미였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시작만 하면 된다.
길게 숨을 내쉬며 긴장을 푼 김지훈이 조용히 말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파이팅!”
“감사합니다, 선생님. 시작하겠습니다.”
이준영 교수의 눈에 신뢰만이 서려 있었다.
“메스.”
김지훈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배꼽 밑을 1센티미터가 채 못 되게 절개했다. 켈로이드 예방을 위해 철저하게 지혈을 했다. 그리고 끝이 뭉뚝한 공기 주입기를 신중하면서도 강하게 찔러 넣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복막이 뚫렸다.
“에어 온(Air On).”
처컥! 처컥!
규칙적인 기계 소리를 따라 이산화탄소가 주입됐다. 서서히 배가 부풀어 올랐다.
김지훈이 10밀리미터 트로카를 잡았다. 드디어 김지훈의 첫 라파로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