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27화 (527/1,329)

제10화 기회 역시 환자가 주는 법이다 (2)

토요일이다.

이제 이틀만 견디면 신현수가 돌아온다.

뚫어지게 달력을 노려보던 손일석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난데없이 파이팅을 외쳤다.

스테이션을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의국원들이 고개를 돌리다 말고 슬며시 딴청을 피웠다.

떡 진 머리를 한 채 벽에 기대 졸고 있던 이혁원과 나종진은 영문도 모르고 차렷 자세를 취했다. 졸음이 잔뜩 묻어 있는 시뻘건 눈만 껌벅거렸다.

손일석의 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건드려야 좋을 일이 없었다.

회진 후, 곧바로 주말 집담회가 이어졌다. 이혁민 교수가 과장이 된 이후 땀을 흘려야 할 정도로 엄격하게 진행되는 탓에, 단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교수들의 질문 공세를 온몸으로 막아 냈다. 불과 칼과 얼음이 난무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집담회가 끝나고 난 후에도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였다.

“으으으!”

의국으로 올라온 손일석이 의자에 몸을 던지며 신음만 흘렸다. 김지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하지만 미룰 수 없는 일이 있다.

“도진아, 픽스턴 교육 어디까지 했어?”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서도진의 허리가 반듯해졌다.

“웬만한 건 다 끝냈습니다.”

“그래? 그럼 어제 수술한 환자들 수술 기록지하고 환자 차팅 좀 보자.”

이 말, 저 말 해야 좋을 일이 없었다.

이혁원과 나종진의 눈에서 졸음이 사라졌다. 서도진까지 긴장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점검을 하지 못한, 오로지 픽스턴만의 기록이기 때문이었다.

첫 장부터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김지훈이 손을 내밀자 서도진이 빨간 펜을 건넸다. 빨간 펜이 조용하면서도 화려하게 춤을 췄다.

김지훈이 힐끗 서도진을 보며 말없이 일어났다. 픽스턴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다. 서도진의 눈이 허옇게 변하고, 이혁원과 나종진은 삐질삐질 땀만 흘렸다.

‘혁원아, 종진아, 한참 더 타야겠다.’

의국을 나온 김지훈이 기지개를 펴다 말고 눈가를 찡그렸다. 용동남은 여전히 수술과 통증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지 못했다. 이해는 하지만 입원까지 한 이상 합병증이 발생하기 전에 수술을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병실 문을 열던 김지훈이 멈칫거렸다. 병실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싸우고 있었다.

“내가 퇴원한다는데 왜 이래? 아들이란 놈이 지 아부지가 아프든 말든 상관을 안 하는 게 말이 돼?”

“아버지, 그러다 장이 썩을 수도 있다잖아요. 애들도 아니고 병원에만 오시면 왜 이러세요? 어휴! 나도 몰라요. 아버지 마음대로 하세요. 나중에 제 탓 하지 마시고요.”

결국 다른 환자들 앞에서 큰 소리가 오고 갈 정도로 사달이 났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쉬었다. 두고 볼 일만은 아니었다.

“할아버님, 왜 이렇게 무서워하세요? 문제가 없을 때 수술을 받으셔야 덜 아프시죠.”

“의사 양반, 아프지 않으려고 받는 게 수술 아니요. 근데 저 사람 좀 봐. 아직도 아파서 쩔쩔매잖아. 난 피 뽑는 것도 아파서 못하는 사람이란 말이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단다.

탈장 환자가 고개를 저으며 허허 웃었다. 이젠 침대를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다니, 가히 통증 공포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렇게 수술과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수술을 할 수가 없다. 어차피 수술 방으로 가지도 못할 것이다.

‘통증 공포증(Pain Phobia)이란 병이 있었나? 가물가물하네. 아무튼 수술하기 힘들겠다.’

입맛을 다시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통증? 통증이 문제라면?

“할아버님, 그럼 안 아프기만 하면 수술 받으시겠어요?”

“당연하지. 나도 건강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야. 근데 그런 방법이 있어?”

“찢어진 상처를 꿰매기만 해도 아픈데, 하나도 안 아플 수는 없죠. 하지만 훨씬 덜 아프게 수술할 방법은 있습니다. 대신 돈이 좀 더 듭니다.”

김지훈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용동남이 솔깃했다. 그래도 수술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의사 선생, 돈은 문제가 아니야. 내가 아주 조금은 참을 수 있으니까 안 아프게만 해 줘. 그럼 수술 받을게.”

“알겠습니다. 일단 교수님과 상의를 해 보겠습니다.”

엉뚱한 환자가 기회를 줄지도 몰랐다. 간담도 환자가 아니라고 해도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킨 김지훈이 논문 하나를 들고 부리나케 외래로 향했다.

복도가 한산했다. 예약 환자들의 진료가 거의 다 끝날 시간이었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예. 들어오세요.”

이준영 교수의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료실로 들어서던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송재덕 교수와 이혁민 교수, 그리고 신기동 교수가 모두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나중에 다시 오겠습니다.”

“무슨 일이야?”

“드릴 말씀이 있는데, 시간 되실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야. 지금 말해. 괜찮아.”

“그래그래. 얘기해. 별거 아니다. 별거 아니야. 근데 이 교수는 허구한 날 맛있는 커피 놔두고 왜 캔 커피, 아니면 믹스 커피만 마셔? 그게 그렇게 맛있어? 나도 먹고 싶다. 나도.”

음성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그때부터 이상하게 달달한 믹스 커피나 시원한 캔 커피 이외에는 도통 손이 가질 않았다.

이준영 교수가 헛기침을 하며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빨리 말하라는 눈치였다.

김지훈이 논문을 상기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용동남 환자 때문에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통증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서 수술을 받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퇴원하겠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으면 합니다.”

“다른 방법이라니?”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이준영 교수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일이라면 곤란해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그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왔고, 언젠가는 해야 할 말이었다.

“라파로로 수술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순간 교수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놀라거나 궁금하기보다는 어이없다는 것 같았다.

‘어? 왜들 이러시지? 내가 말을 잘못 꺼냈나?’

이준영 교수가 갑자기 자세를 고쳤다.

“어떻게 하는지는 알고 말하는 거야?”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내친걸음이었다. 준비해 간 논문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놓았다.

“예. 그동안 논문과 케이스 보고를 찾아봤습니다. 탈장 통로를 막을 패치(Patch)만 준비되면 현재 수술 방에 비치된 기구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른 교수들과 눈을 마주친 이혁민 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터트렸다.

“니 필요한 기구까지 이미 알아봤나?”

“예. 혹시 몰라서 틈틈이 어떤 기구가 있는지 모두 확인했습니다.”

“이준영 선생님, 김지훈 이노마 이거 웃긴 놈이네요. 이러다 우리 뒷방으로 물러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허허! 그래야 하나? 참 빠르다. 빨라. 준영아, 우리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이 교수 말대로 될 수도 있어. 환자 다 뺏기고 손가락만 빨아야 할지도 몰라. 음! 그럴 수 있어. 기분은 좋다만 큰일 났다. 큰일 났어.”

뭔가 대화가 이상했다. 영문을 몰라 더욱 당황스러웠다.

잠자코 있던 신기동 교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김지훈, 일석이는 알고 있어?”

갑자기 손일석은 왜 거론하는 걸까?

“아닙니다. 확실한 게 없어서 아직 말을 못했습니다.”

신기동 교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지훈, 최소한 동기한테는 말해야 하는 거 아냐? 너희 둘이 제일 친하다고 들었는데, 잘못 들은 거야? 이 자식이 혼자 다 하려고 하네.”

이유도 모른 채 궁지에 몰렸다.

이준영 교수가 입가를 살짝 움직이며, 교수들과 함께 읽었던 것을 내밀었다. 김지훈이 흠칫 놀랐다. 라파로를 이용한 탈장 수술에 관한 보고서였다.

“이건 읽었어?”

“예. 읽었습니다.”

“알았다. 조금 있다 올라갈 테니까 용동남 환자부터 보자. 그리고 우리 파트 다 모아서 발표할 준비해.”

“라파로 수술법에 대해서 말입니까?”

“그래.”

“언제 할까요?”

“회진 돌고 나서 바로 하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처럼 발표할 내용이 아니었다. 정리할 시간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준영 교수가 내민 것을 보는 순간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탈장 수술에 사용하는 패치였다. 유일하게 실제로 확인하지 못한 물품이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벅차 왔다.

이준영 교수 역시 라파로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고민해 온 것이 틀림없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방금 전까지 교수들과 라파로에 대해 논의하고 상의한 것이 분명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스승과 제자 모두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명예보다는 환자를 위해 보다 좋은 방법을 찾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후우! 역시 스승님이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뿌듯한 가슴을 안고 의국으로 올라갔다.

“준영아, 지훈이 저놈 감당할 수 있겠니? 어렵겠지? 어려울 거다. 대장 시키자, 대장. 내가 한번 제대로 키워 볼게. 좋다. 좋아. 그나저나 경석이는 언제 올라오나.”

“아이고! 참 대단한 놈입니다. 요새 시간도 없었을 테고, 논문 쓰라고 그렇게 쪼였는데 라파로로 탈장 수술을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네요. 현수 그노마도 정신 바짝 차리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으시겠습니다, 선생님. 일석이 이 자식은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요새 연애한다고 정신을 쏙 빼놓고 다닐 때 내가 알아봤다니까요.”

비수를 날리는 신기동 교수도 손일석과는 속 깊은 얘기까지 다 나누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교수들 모두 김지훈의 말에 일종의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했다.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제자는 스승도 긴장시키는 법이었다.

의국 문을 열던 김지훈이 귀를 팠다. 왠지 심하게 가렵다.

용동남 환자와 면담을 했다. 이미 짐을 다 싸고, 옷까지 갈아입은 상태였다.

자세한 말은 안 했지만, 씁쓸한 마음에 도리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서도진과 박순용에 이혁원까지 함께한 탓인지 당장 퇴원하겠다고 조르지는 않았다.

아니다. 이준영 교수의 힘이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하면 우려하시는 통증은 없을 겁니다. 우릴 믿으시고 수술 받으세요.”

이준영 교수의 단호한 말에 용동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복강경이란 말도 생소한데, 통증이 거의 없다니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답답할 정도로 많은 질문을 쏟아 냈다. 통증이란 소리가 매번 빠지지 않았다.

보호자인 아들에게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이준영 교수는 단 한 번도 확신을 잃지 않았다.

마침내 용동남이 수술을 받기로 했다. 믿음이자 신뢰다. 슬며시 침대 구석에 내팽개쳤던 환자복을 잡으며 짐을 다시 푸는 모습에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쉬었다.

‘스승님처럼 환자에게 신뢰를 주려면 얼마나 많은 경험이 필요할까?’

배워야 할 것은 한도 끝도 없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표를 준비했다. 수술 방으로 달려가 필요한 기구들까지 가져왔다.

그러나 이내 어깨가 무거워졌다. 의국원들은 물론 교수들까지 얼굴을 보인 것이다. 국내에서는 케이스 보고조차 없는 수술이었기에 압박감이 실로 대단했다.

제자의 긴장을 느낀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강한 신뢰를 느낀 김지훈이 가슴을 폈다.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였다.

“라파로를 이용한 탈장 수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술의 핵심을 설명했다.

“전통적인 방법은 심한 통증으로 인해 거동 제한까지 일시 발생합니다. 반면 복강경을 이용하면 담낭 절제술에서 보듯 통증을 상당 부분 완화시킬 뿐만 아니라 입원 기간까지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필요한 기구들과 함께 이준영 교수가 준 패치를 보였다. 그러고는 수술 과정에 따라 어떤 기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까지 설명했다.

“핵심은 고환 동맥이 빠져나가는 복강 내 통로 주변을 패치로 감싼 후, 봉합해 보강하는 겁니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다소 따른다는 보고가 있지만, 이미 라파로를 이용한 담낭 절제술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국원들 모두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기존의 수술을 배우기도 벅찬 시기가 전공의 때였다. 해야 할 일도 태산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수술 방법을 들고 온 것이다.

교수들도 고개만 끄덕였다. 이 정도로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김지훈은 자신들의 생각 이상으로 뛰어날지도 몰랐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본 이준영 교수가 질문 하나를 던졌다.

“라파로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수술이 더 있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기회를 주었다.

“예. 현재로서는 일단 아뻬와 탈장이 가능하고, 담낭과 담도에 돌이 있는 경우 T-tube도 라파로로 삽입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보다 발전된 기구가 나오게 되면 적용할 수 있는 질환은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예를 들 수 있겠어?”

“구체적인 예를 들기는 어렵지만, 스테이플을 이용한 직장암 수술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의사의 경험과 숙련도에 적절한 기구가 더해진다면 간담도는 물론 위장관 및 대장 질환까지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멀리 나갔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복강경 자체가 생소했었다. 스테이플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흔하게 보는 내시경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세상이다. 앞으로는 의학과 과학이 점점 더 밀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수고했다. 너희들에게 한마디만 하자. 다들 오늘 발표를 들으며 느낀 것이 있을 거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마라. 우리보다 더욱 발전해야 할 사람들이 바로 너희들이야. 단, 기본을 무시하면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으면 안 돼. 난 너희들이 언젠가는 우리 병원을 넘어 의료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환자를 대할 때를 빼고는 이렇게 길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준영 교수의 말속에 담긴 뜻이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럼 이만 끝내자.”

의국을 나가던 이준영 교수가 힐끗 이혁원에게 눈길을 주었다. 단단히 다문 입술에 강한 각오가 실려 있었다.

그런데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잘할 것이라 철석처럼 믿었지만 아들이기에 불안한 모양이었다.

‘혁원아, 지훈이한테 많이 배워야 한다. 네가 가고 싶은 길이 따로 있겠지만 수련을 마칠 때까지는 다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버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혁원과 시선을 마주친 이준영 교수가 난데없이 김지훈의 등을 툭 쳤다.

“수고했다. 잘했어.”

김지훈의 입이 쭉 찢어졌다.

그렇게 발표가 끝났다. 발표가 미친 파장이 적지 않았다. 저마다 생각에 잠겨 의국이 조용하기만 했다.

손일석마저 고민에 잠겨 입을 열지 못했다. 은근히 어색한 상황이었다.

입맛을 다시던 김지훈이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잘됐다는 듯 재빨리 수화기를 잡았다.

(응급실 인턴입니다. 혹시 1년차 선생님 계십니까?)

“왜? 나한테 말해.”

(예? 예. 24세 여자 환자로 아뻬가 의심됩니다.)

이번 주는 백당직이었다. 수술 환자는 손일석이 봐야 했지만, 왠지 무거운 분위기에 일단 먼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응급실로 내려가 환자를 살폈다. 아뻬가 확실했다.

설명을 들은 보호자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심지어 환자는 눈물까지 펑펑 흘렸다. 물론 당황스럽기는 하겠지만 반응이 지나칠 정도로 과했다.

김지훈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설마 이 환자도 두려워서 그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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