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가는 사람과 오는 사람 (1)
시간이 생명이다.
복부를 절개할 때 나는 피는 무시해도 좋다. 혈복강일 경우 말초의 혈류가 나빠져 출혈이랄 것도 없다. 다발성 출혈이 의심되는 환자다.
피부와 피하조직을 단번에 절개했다. 점점이 피만 맺힌다. 출혈량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였다.
중앙에서 좌우 복부 근육을 단단히 연결하는 백색 선을 찾아, 멧젬(끝이 뭉뚝한 수술용 가위)으로 잘랐다.
얇고 노란 복막 밑으로 검붉은 피가 비쳤다. 빠르게 복막을 열고 배 속에 고인 피를 제거했다.
“석션, 탭.”
석션 통으로 검붉은 피가 줄줄 떨어졌다. 피를 한가득 머금은 탭들이 바닥에 쌓여 갔다.
“비장 확인합니다.”
박순용이 리트랙터를 강하게 당겼다.
피 속에 잠긴 비장이 드러났다. 손상된 부위가 확연하게 보였다.
띠! 띠! 띠! 띠! 띠! 띠!
지금도 위급함을 알리는 소리는 계속되고 있었다. 1초라도 빨리 피를 쏟고 있는 비장을 제거해야 한다.
김지훈이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썼다.
‘생각보다 출혈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더 심각한 부위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탭.”
마른 탭(수술용 천) 5장을 비장 주위에 쑤셔 넣어 압박을 했다. 잠시 동안은 심한 출혈을 막아 줄 것이다. 더 심각한 출혈 부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간 확인합니다.”
이혁원이 리트랙터를 강하게 당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앞에서 피가 철철 나고 심장박동은 여전히 빠른데, 조치라고는 압박이 다였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인지 송동화 과장도 말이 없었다. 다만 전보다 더욱 손이 빨라지긴 했다.
김지훈이 재빨리 손을 넣어 간을 확인했다. 미끌미끌하면서도 말끔한 감촉이 전해졌다. 담낭과 담도 주변을 깨끗이 씻고 손상이 있는지 확인했다. 비장을 제외한 다른 고형 장기의 손상은 없었다.
“소장과 대장 확인합니다.”
박순용과 이혁원이 동시에 리트랙터를 당겼다. 위와 십이지장을 확인한 후 소장을 차례로 꺼냈다. 타박을 입어 검붉게 변한 부위가 군데군데 관찰됐지만 큰 손상은 없었다.
대장을 확인했다. 평행 결장을 끄집어내던 김지훈이 눈가를 찡그렸다. 송동화 과장이 살짝 헛기침을 했다. 검붉게 변한 장간막 일부가 심하게 찢어져 있었고, 그 속에 피가 고여 퉁퉁 부어 있었다.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다!’
손상된 장간막을 넓게 열었다. 송동화 과장이 석션과 거즈를 이용해 시야를 확보했다. 빠르게 장간막 내 지방조직을 확인하는 순간 시뻘건 피가 쭉쭉 솟구쳤다.
동맥 손상이다.
이혁원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김지훈이 손상 부위에 눈을 고정한 채 손을 내밀었다.
“포셉(Forcep), 켈리.”
양손에 각각 포셉과 켈리를 잡은 김지훈이 빠르게 장간막 사이를 벌렸다. 송동화 과장이 흘러나오는 피를 재빨리 제거해 수술 시야를 최대한 확보했다.
끊어진 혈관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피는 계속 솟구치고 있었다.
째깍! 째깍!
긴장이 극에 달한 이혁원의 귀에 초침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과 송동화 과장은 침착하기만 했다. 박순용은 리트랙터에 힘을 주며 수술 부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수술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김지훈의 양손이 빠르면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조직을 헤치고 밀어내는 순간, 완전히 끊어져 심장박동을 따라 피를 내뿜는 동맥이 드러났다.
“켈리(Kelly).”
따르륵!
“타이(Tie).”
솟구치던 피가 순식간에 멈췄다. 실에 묶인 동맥이 벌떡벌떡 뛰고 있었다.
띠! 띠! 띠! 띠! 띠!
심장박동 소리가 전보다 느려진 것 같았다.
“남은 부위 확인합니다.”
대장의 남은 부분과 방광까지 확인했다. 더 이상의 손상은 없었다.
“비장 제거합니다.”
비장 주위를 압박하던 탭을 제거하자마자 주변에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이혁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경험이 많지 않은 탓이기도 했지만 혈복강은 생각만으로도 긴장과 두려움을 몰고 왔다.
박순용이 이혁원의 손을 툭 쳤다.
‘뭐해? 비장 제거하는데 그렇게 세게 끌면 어떻게 해?’
복부 내 좌측에 위치한 비장을 제거할 때는 좌측 복벽을 당겨야 한다. 우측을 당기면 도리어 수술 시야가 좁아진다. 따라서 써드를 서는 사람, 즉 환자의 우측 복벽을 당기는 이혁원이 리트랙터에 과도한 힘을 주면 안 된다.
화들짝 놀란 이혁원이 손에서 힘을 뺐다. 비장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켈리, 켈리.”
따르륵! 따르륵!
김지훈과 송동화 과장의 손에서 켈리가 사라질 때마다 비장을 연결하는 조직이 강하게 묶였다.
잡고, 자르길 10여 차례 반복했다.
“비장 동맥 확인하겠습니다.”
절단된 조직에 무영등 초점을 맞췄다. 동그란 절단면이 확인됐다. 보조 동맥이 있는지도 확실하게 살폈다. 이대로 제거해도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다.
“타이.”
송동화 과장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불과 눈 몇 번 깜빡였는데 김지훈의 손에 적출된 비장이 들려 있었다. 이혁원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빠르게 울리던 심장박동 소리가 서서히 정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취과, 바이탈 괜찮나요?”
“예. 좋아졌습니다. 수술 계속 진행하셔도 됩니다.”
“평행 결장 확인하겠습니다.”
동맥이 잘린 상태다. 혈류 공급이 완전히 막혔는지 하얗게 탈색됐던 부위가 꺼멓게 죽어 있었다.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잘라야 할 것 같습니다.”
송동화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상된 장간막을 부채꼴 모양으로 잘라 나갔다. 대장과 장간막이 연결된 부분을 깨끗하게 다듬은 김지훈이 역시 고개도 들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장 겸자.”
따가각! 따가각!
장 겸자로 죽은 부위의 양쪽을 잡았다. 메스를 이용해 매끈하게 잘랐다.
꺼멓게 죽은 대장이 간호사에게 전해졌다.
김지훈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대장이 말끔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회복에 가장 중요한 부위인 점막이 빠지지 않았는지 수시로 확인했다. 오직 수술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이혁원이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을 내쉬었다.
‘수술 내내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으시네.’
“타이.”
마지막 수처가 끝나고 매듭을 지었다.
꾸불꾸불 연동운동이 정상 부위를 지나 방금 전에 봉합한 부위를 자연스럽게 타고 넘었다. 깔끔하게 연결된 대장이 아름답게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이 역시 이혁원의 시각이긴 했다.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닫겠습니다. 물.”
마무리가 시작됐다.
띠! 띠! 띠! 띠!
환자의 안정적인 심장박동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마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마침내 중요 과정이 모두 끝났다. 송동화 과장이 입술을 모았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응급 수술이었다. 김지훈의 손은 분명 긴박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유가 있었고,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도 않았다. 그만큼 자신을 갖고 수술에 임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볼 때마다 놀라게 하네. 손도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고 말이야. 마음고생이 심했을 텐데, 그 와중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이제는 솔직히 놀랍지도 않았다. 송동화 과장이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환자는 병실로 올라가도 되겠지?”
“예.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피부만 닫으면 끝이다. 그제야 김지훈이 이혁원에게 눈길을 주었다.
‘자식, 생각 이상으로 인턴을 열심히 돌았네.’
몇 차례 눈에 밟히는 일이 있었지만 써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리트랙터만 끌고 있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수처를 시켜 보고 싶었지만 바이탈이 흔들린 환자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수술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김지훈은 수처를 하고, 박순용은 타이를 했다. 더 이상 할 일이 없었지만 이혁원도 눈을 떼지 않았다.
명치부터 배꼽 어림까지 난 절개 창을 모두 꿰매고 드레싱을 했다.
동시에 환자가 격하게 몸을 비틀며 쿨럭거렸다. 인투베이션 튜브를 뽑은 것이다.
“빨리 회복실로 옮깁시다.”
박순용과 함께 환자를 옮기던 이혁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비장을 제거하고, 대장을 자르고 연결했는데도 말이다.
“김지훈, 휴게실에 있을 테니까 나 좀 보자.”
함께 회복실로 왔던 김지훈이 송동화 과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술 가운을 벗었다. 수술복이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혁원이 자신의 수술복을 보았다. 군데군데 땀에 젖어 있긴 했지만 확연하게 달랐다.
집도의와 써드의 차이가 아니었다. 김지훈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한 것이다.
‘치프가 돼서도 저렇게 열심히 하시는데,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최선을 다하는 선배는 후배들에게 강한 긴장을 준다.
눈가에 잔뜩 힘을 주고 박순용이 내는 오더를 보던 이혁원이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김지훈 선생님 수술 정말 잘하시는 거죠?”
“그럼. 이번 치프 선생님들은 다 대단한데, 내가 보기에는 그중에서도 이거야.”
엄지를 척 치켜 올리는 모습에 이혁원이 눈 사이를 좁혔다. 반드시 선배를 능가하는 후배가 되겠다는 각오에 두 눈이 번쩍번쩍 빛났다.
“전 언제나 저렇게 수술을 할 수 있을까요?”
빅순용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이혁원 선생님, 일단 1년차나 되고 말씀하세요. 엉뚱한 데 신경 쓰지 말고, 이 환자 수술 후 오더하고 수술 기록지 따로 작성하시고요. 김지훈 선생님이 불시에 보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존댓말이 가슴을 푹푹 찌르는지 이혁원의 얼굴이 벌게졌다. 꿈은 높게 가져야 한다지만 입 밖으로 내기에는 너무 빨랐다.
카피 두 잔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마셔.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송동화 과장이 말과는 달리 유난히도 환하게 웃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얼굴이 좋아 보여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너, 나랑 당직이 겹치니까 바로 이런 환자를 몰고 오네. 일복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후우! 어쨌든 이제 수술 방도 이번 달로 끝이네. 다음 달부터는 응급 의학과가 정식으로 개설되거든. 기분이 묘하다.”
송동화 과장이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말했다.
‘아! 그렇구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축하해야 할 일이 분명한데 가슴 한구석이 아려 왔다.
일반 외과를 전공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응급 의학과를 택했다. 수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택했던 길이 아니기에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금경태 때문이지만 그로 인해 깊은 인연을 맺은 송동화 과장이었다. 구미에서의 함께했던 시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김지훈이 입을 열지 못했다.
“지훈아, 앞으로는 수술실에서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지? 그래도 수술하는 널 보니까 기분이 좋다. 기대대로 정말 많이 발전했어. 이젠 내가 배워야 할 것 같아. 하하!”
허탈하면서도 시원섭섭한 웃음이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세요.”
“자식! 널 처음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치프네. 세월 빠르다. 별일도 많았고 말이야.”
송동화 과장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문득 보호자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퍼스트를 서면서도 정말 마지막 수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열과 성을 다했다. 그 덕분에 수술도 잘되고, 빨리 끝났을 것이다.
유종의 미!
그것이 무엇인지 각자 생각이 다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훈이 이제야 할 말을 생각해 냈다. 지난날보다는 다가올 밝은 날을 말할 때였다. 서운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지만 웃어야 했다.
“선생님, 그럼 다음 달부터는 정식으로 과장님이 되시는 거네요. 축하드립니다.”
“지금도 과장이야, 인마. 치프라고 날 무시하는 거야? 너 인턴 때 나 아니었으면 우리 과 못했어.”
“그럼요. 당연한 말씀이죠. 그리고 사실 응급실 과장님하고 응급 의학과 과장님하고는 격이 다르잖아요. 이젠 이혁민 선생님하고 나란히 서시는 거 아닌가요? 아 참! 전공의는 몇 명이나 뽑으셨어요?”
송동화 과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두 명. 번갈아 응급실 근무를 하려면 상당히 힘들겠지만, 중한 환자를 가장 먼저 보고 대처한다는 게 매력으로 작용한 모양이야. 앞으로 우리 과 전공의들 많이 도와줘야 한다.”
“걱정 마세요, 선생님. 수술만 안 한다 뿐이지, 사실상 같은 과 1년차나 다름없지 않나요?”
“하긴, 기회가 되면 수술도 참관시킬 생각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네. 내과는 몰라도 우리 과 환자는 최소한 배 속은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지금도 송동화 과장에게 우리 과는 일반 외과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한 번 맺어진 인연은 쉬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연일지도 몰랐다.
‘예. 선생님은 제게 평생 일반 외과 선배님이자, 절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십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송동화 과장과 같은 날 당직을 서는 것도 이번이 마직막일 수 있었다. 얼굴은 볼 수 있을 테지만, 함께 수술을 한다는 것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같은 과를 한다는 사실.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라는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다.
문득 수술이 하나 더 떴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