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새로운 출발 (2)
이혁원이 함께 들어온 인턴과 함께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혁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나종진입니다.”
픽스턴들의 힘찬 목소리를 듣는 순간 피곤이 싹 사라졌다. 일반 외과 전공의가 될 후배들을 보는 일은 언제나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우하하하하!’
마음과는 달리 표정이 싹 사라졌다.
해마다 있는 일이다. 더구나 3년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 더 멀다. 별일 아니라는 듯, 혹은 별 관심 없다는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의연하고 태연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게 치프다.
“이혁원,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예. 내일 오후부터 픽스턴을 돌게 됐습니다.”
김지훈이 처음 듣는 것처럼 정색을 했다.
“픽스턴? 작년보다 일주일 정도 빠르네. 일석아, 맞지?”
“그러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여튼 열심히들 해. 그런데 너희들 두 명이 다야?”
“예. 정식 픽스턴은 저희 두 명입니다.”
4년차 때, 즉 픽스턴이 1년차가 될 때는 년차당 4명씩 근무한다. 때문에 내심 올해는 3명 정도 왔으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머지 2명은 난킴(예비역)들인 모양이었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혁원이를 우리 파트에 고정시키려고 했는데 곤란하게 됐네. 스승님 때문에 조금 껄끄럽기는 하겠지만 확실하게 가르치려면 그게 제일 좋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
김지훈이 잠시 픽스턴들을 응시하다 말고 나직하게 혀를 찼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일석아, 교육 담당은 도진이가 좋겠지?”
“응. 그만한 놈이 없지. 현수도 찬성할 거야.”
“오케이! 그럼 너희 둘 모두 오늘부터 1년차 선생들한테 인수인계 확실하게 받아. 픽스턴은 1년차와 거의 차이가 없어. 어떻게 보면 일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까 정신 바짝 차려. 나가 봐.”
치프들이 손만 까딱였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서도진과 박순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년차의 차이가 확 보였다. 서도진은 좋아하는 티를 내면서도 눈가에 힘을 주고 있는 반면, 박순용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잠시 후, 교육을 맡으라는 전화에 서도진의 얼굴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표정이 훅 사라졌다.
“혁원아, 종진아, 나 좀 볼까?”
나직한 목소리에 찬바람이 휙 불었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히죽히죽 웃고 있던 손일석이 한껏 의자에 등을 기대며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으이구! 예쁜 자식들. 이제 나 하오문주 냉면 서생 손일석이 드디어 4년차가 되는 건가? 으음! 김 치프, 우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구. 강호를 위해서 말이야.”
“에휴! 그놈의 무협은. 지금 널 누가 4년차로 보겠니. 쯧쯧! 어쨌든 픽스턴이 둘이라 문제네. 도진이가 교육은 잘 시키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 명씩 맡아서 추가로 가르치면 훨씬 좋을 텐데 말이야.”
은근히 떠봤다. 손일석도 내심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어. 근데 파트는 3개고, 픽스턴은 2명인데 뭐 어떻게 하겠어. 예전처럼 일과 중에 융통성 있게 가르쳐야지. 나종진도 은근히 마음에 드네. 빠릿빠릿할 것 같지 않아?”
아쉬운 일이었다. 공평하게 대해야 하지만 유달리 이혁원에게 애착이 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스승의 아들이기 이전에 아꼈던 후배이자 아픈 사연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일 것이다.
잠시 후, 신현수가 들어왔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넌 뭐 하다 이제 와? 픽스턴들 인사 왔었는데 봤어?”
“못 봤어. 몇 명이야?”
“올해도 어김없이 두 명이네.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할아버님도 무사히 퇴원하셨고, 걱정할 일이 없잖아?”
“그러게. 현수 니 얼굴이 안 좋으면 보통 일은 아니라는 말인데, 이거 슬슬 불안해지네. 너 혹시 가운 속에 폭탄 하나 숨기고 있는 거 아냐?”
아닌 게 아니라 신현수의 표정이 묘했다. 픽스턴이 인사를 왔다는 말에 좋아하기는커녕 무슨 일인지 김지훈과 손일석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눈가를 찡그리며 입맛을 다시던 신현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에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지훈아, 일석아, 미안한데 피치 못할 사정이 좀 생겼어.”
그러고는 뭔가를 쓰윽 내밀었다. 새하얀 봉투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손일석이 재빨리 집어 들었다. 쓱 내용을 확인하다 말고 깜짝 놀라며 신현수를 보았다. 목을 빼며 함께 읽던 김지훈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신랑 신현수.
신부 윤서연.
청첩장이다. 그것도 불과 열흘도 안 남았다.
둘이 연애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동안 결혼에 관한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이번 주 역시 평소와 다름없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손일석이 눈만 껌뻑였다.
“정말 결혼하는 거야?”
“그렇게 됐어. 미안하다.”
잠깐 당황했던 김지훈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당연히 축하할 일이었다.
“와! 현수야, 축하한다. 좋겠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네.”
“미안해. 사실은 나도 가급적이면 뒤로 미루고 싶었는데, 우리 할아버님도 그렇고 서연이 아버님도 초조하신 모양이야. 별일 없을 때 빨리하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어. 미안해.”
이해가 됐다. 누구보다도 신현수와 윤서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간암과 위암 말기로 투병 중이다. 금경태 일로 충격을 받아 더욱 서두를지도 몰랐다.
“좋은 일을 두고 미안하다는 말을 왜 자꾸 해? 두 분 다 몸이 안 좋으신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걱정하지 말고 준비나 잘해. 어이구! 정확하게 언제야?”
“다음 주 토요일에 식 올리고, 일주일간 휴가야.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 시작해야 할 것 같아. 가뜩이나 사람도 없는데 미안하다.”
“주말 빼면 고작 일주일이네. 그 정도는 우리한테 껌이지.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자식이!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는데 선수를 치네.”
잠자코 듣기만 하던 손일석이 씨익 웃었다.
“현수야, 축하해. 혼수는 장만했냐?”
“서연이가 다 준비하고 있어.”
“그 혼수 말고, 인마. 하긴 신혼여행 가서 만들어도 되지, 뭐. 날짜 잘 맞추고, 컨디션 조절 잘해라. 그래야 한 방에 성공한다. 특별히 원하는 성별이 있으면 내가 주의할 점을 말해 줄 수도 있는데, 어때?”
김지훈이 크게 웃자 신현수도 피식 웃었다. 어째 얼굴이 빨개진 것 같았다.
“그래. 필요하면 물어볼게. 어쨌든 이해해 줘서 고맙다. 찾아 봬야 할 분들이 계셔서 그만 나가 볼게. 지훈아, 일석아, 고맙다.”
시간이 없긴 할 것이다. 신현수가 서둘러 나가자 손일석이 잠시 부러운 표정을 짓다 말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축하해야지. 진심으로 말이야. 지훈아, 근데 하필이면 왜 2월일까? 날씨도 춥잖아. 신혼여행이야 따뜻한 나라로 가면 되니까 상관없겠지만, 남은 놈은 뭔 죄냐? 우리 3명이잖아. 요즘 가뜩이나 힘든데 벌써부터 어깨가 무거워진다. 열흘? 무시하지 마라. 장난 아닐 것 같다.”
김지훈이 잔인한 현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치프가 3명에서 2명으로 준다.
전공의 힘 중 하나는 머릿수다. 2명과 3명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기간이 얼마가 됐든 요즘 상황에서는 죽었다고 복창을 해야 할 판이었다.
손일석 말대로 3월이면 이경석이 돌아와 치프가 4명이 되니까 훨씬 더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전공의들 간의 불문율을 어겼지만 신현수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굳이 힘들다며 좋은 일에 초를 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일석아, 괜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좋게 생각하자. 우리가 현수보다 수술 더 들어가잖아. 일주일이면 저 앞에 가 있을지도 몰라.”
손일석도 혀를 찼다.
“하여튼 너도 참 긍정적이다. 그래. 오케이다, 이 자식아. 우리가 하루 이틀 그렇게 산 것도 아니고, 현수 장가간다는데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지. 잘못하면 서연이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고 말이야. 어쨌든 부럽다. 나도 막상 모든 준비가 다 갖춰지니까 마음이 더 급해지네.”
김지훈의 눈길이 매서워졌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런 말을 해?”
“지훈아, 기간이 중요해? 만난 지 한 달도 안 돼서 결혼하고 잘 사는 사람 많다. 우리 부모님이 산증인이셔. 연애 오래했다고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다.”
“어쭈? 좋아. 니 말이 맞다 치자. 우리 처제랑 어떤 사이인지도 내가 인정한다. 그러면 순서를 무시해도 상관없다, 이거야?”
처제란 말에 유난히 힘이 들어갔다.
손일석이 곰곰이 계산을 했다.
김지훈 + 고경아 > 손일석 + 고경희.
불변의 진리다. 더구나 이미 인사까지 하고 허락을 받은 커플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손일석이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난 군대 가잖아. 혼자 가면 뭐하고 살까? 외로워서 죽을지도 몰라. 지훈아, 내가 다 인정하니까 너부터 빨리 가. 제발 빨리 초스피드로 가라. 네 일은 걱정하지 마.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완벽하게 다 해 놓을게.”
일까지 대신하겠다는 각오?
그 순간 번뜩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하여튼 말은 잘해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끄세요. 일석아, 그건 그렇고 이참에 픽스턴들 아예 파트 고정시키자. 난 이혁원, 넌 나종진. 현수는 장가가니까 무조건 오케이 할 것 같은데, 어때?”
“오! 그거 좋은 생각이네.”
손일석의 손가락에서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신현수의 장가와 픽스턴을 맞바꿨다. 남아 있는 동기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구이자 동기에게는, 또한 신현수 파트 전공의들에게도 매정한 일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나 이건 계산도 안 되는 거래다.
신현수 >>>>>> 이혁원 + 나종진.
확실히 밑지는 장사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아무리 뛰어나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김지훈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점점 미소가 진해졌다.
얼마 후, 치프들의 결정을 전해 들은 신현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전공의 신분으로 결혼을 하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만하길 다행이다.
***
주말이다.
이혁원과 나종진이 픽스턴을 시작했다.
“혁원아, 넌 우리 파트 고정이다. 열심히 하자.”
김지훈의 담담한 말투 뒤로 서도진의 불타는 눈빛과 박순용의 살벌한 미소가 보였다. 이혁원이 바짝 긴장하면서도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배우자. 지훈이 형이 겉으로는 엄해 보이기는 해도 정말 많은 걸 가르쳐 주시겠지.’
정식 일과가 끝나고 한동안 조용했다.
서도진이 오프를 가 박순용이 이혁원을 붙잡고 앉아 열심히 가르쳤다. 같은 인턴이라고 해도 픽스턴은 많은 점에서 달랐다. 이혁원이 이마에 땀까지 흘려 가며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생님, 35세 남자 환자입니다. 공사장에서 떨어지면서 발생한 복부 둔상으로 내원했습니다. 헤모뻬리가 의심됩니다. 의식은 명료하고 현재 혈압은 100/70이고, 맥박은 100회 정도 됩니다.)
시작부터 중한 환자가 왔다.
총알처럼 튀어 내려간 김지훈이 매서운 표정을 지었다. 1년차 말은 웬만큼 익숙해졌다는 생각에 방심하기 쉬운 시기였다. 이혁원은 인턴으로서는 뛰어나지만 전공의로서는 아직 기본조차 배우지 못한 상태다. 아차 하는 순간 사고 나기 딱 좋은 때였다.
치프로서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 했다. 박순용의 오더 중 빠진 것이 있는지 주의를 기울였다. 이혁원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하는지 확인했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았다.
띠띠띠띠띠!
여전히 바이탈이 흔들렸다.
“수액 풀로 틀고 수혈 시작합시다. 혁원아, 비지에이 빨리 내보내. 인턴 선생 뭐하니? 빨리 소변 줄 꼽아. 간호사, CT 찍을 준비 안 됐습니까?”
박순용이 침착하게 대처했다. 김지훈도 손을 거들며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곧 복부 CT를 찍었다. 이혁원이 차폐복을 입고 직접 환자를 살피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선배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알아서 해야 돼. 자식! 기본적인 자세는 갖췄네. 그나저나 어디에 문제가 있기에 바이탈이 이렇게 흔들려.’
모니터를 통해 CT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배 속이 온통 피로 가득했다. 비장 손상 이외에도 추가 손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젊은 나이이기에 그나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박순용 선생님, 피 더 시키고 보호자가 동의하는 대로 수술해야 하니까 스케줄 바로 내세요. 혁원아, 환자 바이탈 잘 봐라. 아! 박순용 선생님, 오늘 당직 선생님이 누구죠?”
“송동화 선생님입니다.”
김지훈이 곧바로 노티를 했다. 당직실에 있던 송동화 과장이 급히 나와 환자를 살폈다. 그동안 이상하게도 당직이 겹치지 않아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지만 반가워할 틈이 없었다.
검사 결과와 복부 CT를 확인하고는 바로 보호자를 찾았다. 얼굴이 하얗게 변한 보호자들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항상 듣는 말이지만 그때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소리였다. 시간을 지체할 틈이 없었다. 김지훈까지 달라붙어 바이탈을 잡으며 수술 방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선생님, 환자 올리래요.”
간호사의 말이 들리자마자 바로 환자를 옮겼다. 이미 송동화 과장은 수술 방에 올라가 있었다.
김지훈이 앞서 뛰어가며 소리쳤다.
“박순용 선생님, 환자하고 같이 올라와요.”
이혁원이 멈칫거리다 말고 박순용과 함께 환자 곁에 붙었다. 창백한 얼굴을 보며 있는 힘을 다해 피를 짰다.
픽스턴을 시작하자마자 혈복강 수술이 떴다. 심장이 격렬하게 뛸 정도로 긴장이 몰려왔다.
드르륵! 드르륵!
어느새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김지훈이 간호사와 함께 환자를 수술실로 옮겼다. 수술 방 전체가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띠띠띠띠띠!
여전히 바이탈은 흔들리고 있었다.
빠르게 마취가 시작됐고, 동시에 김지훈과 박순용이 수술 준비를 했다. 송동화 과장이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번 달로 수술도 끝이네. 지훈이하고도 수술할 기회가 다신 없겠지? 선생님들 말씀대로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자. 어차피 수술 후에는 네가 환자를 보아야 하니까 수술도 네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 서려는 순간 송동화 과장이 김지훈에게 고갯짓을 했다. 이미 퍼스트 자리에 서고 있었다.
“김지훈, 수술하자.”
갑작스러운 말에 살짝 놀랐던 김지훈이 이내 망설이지 않고 집도의 자리에 섰다.
치프다. 곧 4년차가 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수술을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할 때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은근한 긴장이 솟구쳤다. 그러나 김지훈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송동화 과장과 눈을 마주친 김지훈이 메스를 들었다.
옆에 선 이혁원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픽스턴 첫 수술을 김지훈과 함께한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가 집도를 하는 것이다. 이혁원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수술이 시작됐다. 김지훈의 손이 과감하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