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18화 (518/1,329)

제6화 폭풍 속으로 (1)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금경태에게 뇌물 수수 혐의 등이 추가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제 구속 기소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수사의 중심에 섰던 조 검사가 배제됐다. 수사 정보를 얻을 방법까지 없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정호가 금경태를 직접 취조하게 될 것이다. 만일 중압감을 못 이기고 입이라도 연다면 진평호에겐 상당히 불리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서정호는 왜 진평호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을까?

좋게 생각하면 더 이상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서정호는 결코 포기할 위인이 아니었다. 도리어 더욱 치명적인 한 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 더 타당한 추측이었다.

확실하게 불리해지고 있었다.

진평호와 변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들 얼굴을 굳힌 채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진평호는 탁자만 톡톡 두드릴 뿐,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회장님, 우리에게는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만일 숨기는 것이 있으시면 변호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진평호가 눈가를 찌푸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난 다 말했어. 내가 당신들에게 왜 그 많은 돈을 주는지 그것만 생각해. 약속대로 성공 보수까지 두둑하게 챙겨 줄 테니까 무조건 막아. 특히 금경태가 헛소리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해. 하도 답답해서 한 소리를 녹음까지 해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 죽일 놈.”

“뇌물 수수 문제는 집행유예로 막을 수 있습니다만, 지금 관건은 결국 녹취록입니다. 정말 말씀하신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이미 말했잖아. 난 금경태에게 신호선 그 늙은이가 위험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안된 마음에 문병을 갔을 뿐이야. 재단 인수도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내가 한 게 뭐가 있어?”

변호사들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진평호의 말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심증으로는 명백한 살인자라고 해도, 법이 인정하는 증거가 없다면 무죄가 선고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변호사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애초에 수임을 하지 않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일단 재단 인수에 관여했던 모든 사람의 입을 단속해야 합니다. 백제 병원 문제도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나오면 절대 안 됩니다. 사소한 일이 녹취록을 증거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 주십시오.”

“그건 걱정하지 마. 금배지들까지 음으로 양으로 우릴 돕고 있으니까 확실하게 처리해. 그래서 돈을 주는 거 아냐?”

그것으로 논의는 끝이었다.

진평호는 지금도 돈의 힘만을 믿고 있었다. 그동안 뿌린 돈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여겼다.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상식과 통념을 벗어난 이상의 돈을 선의로 건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받아 처먹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하는 놈들은 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제길! 아파트 단지 하나 만들려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금경태, 감히 날 상대로 수작을 벌여?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

지그시 어금니를 문 진평호가 으스스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비서, 금경태에게 확실하게 전해. 입을 꽉 다물어야 집행유예로 끝내 줄 수 있고, 이제라도 내 말만 잘 따르면 살 만큼은 챙겨 준다고 말이야. 다른 마음 품지 못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확실하게 전해. 그리고 조상천은?”

진평호가 조상천을 안다?

“저쪽의 협조가 없으면 숨기기 힘듭니다, 회장님. 차라리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능하겠어?”

“이미 수배가 떨어져 공항을 이용하는 것은 어렵습니다만, 밀항 쪽이라면 제가 은밀하게 손을 써 보겠습니다. 조상천의 입을 막으려면 비용이 상당히 들 것 같습니다.”

사실 조상천은 구속될 정도로 잘못한 일이 없었다. 진평호의 지시를 받고 백제 병원 거래에 끼어들었을 뿐인데, 상황이 그를 주요한 연결 고리로 만든 것뿐이었다.

정한득과 금경태를 휘어잡겠다는 욕심의 결과였다. 사업을 벌일 때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자들을 남김없이 옭아맸던 일이 결국 진평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진평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서정호, 애송이였던 놈이 언제 이렇게 컸지?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놈을 찍어 내는 수밖에 없어. 제길! 다른 변수는 없나? 어떤 일이든 내게 불리한 일은 애초에 막아야 해.’

만에 하나를 대비해 언론까지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누군가는 냄새를 맡았을 테지만 진평호 자신의 힘을 안다면 감히 인생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언론인이라고 해서 돈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서정호의 집요함에 난생처음 잠을 이루기 힘든 불안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것이 두려움으로 변하는 순간 몰락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진평호도 변호사들도, 그리고 조 검사도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관련된 모든 인간들 역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칼날에 몸을 떨고 있었다. 지금은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쥐 죽은 듯 바짝 엎드려 있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

주말이 지났다.

금경태에 관한 일이 소리 소문 없이 퍼져 나갔다.

아침 회진을 준비하던 김지훈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신현수를 보다 말고 피식 웃었다. 한 사람이 사라졌을 뿐인데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질 줄은 몰랐다.

아침저녁으로 봐야 했던 찌푸린 얼굴.

기분 나쁘게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그것만 보고 듣지 않아도 족한데, 더 이상 일반 외과 과장도 교수도 아니다.

의국원들은 물론 신현수도 서서히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의외일 정도로 편안하게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아무도 금경태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신현수가 얼핏 들은 소리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했다. 유죄 판정을 받아야 파면되는 것을 구속만으로 가능하다고 잘못 들은 것이다.

상관없었다. 이제 금경태 얼굴을 볼 일은 없었다.

‘이렇게 쭉 갔으면 좋겠다.’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참 묘했다. 금요일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금경태의 일에 신경이 쓰였다. 혹시 방송이 안 될까 봐 불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서도진과 박순용도 은근히 그런 모양이었다.

금요일 아침 슬그머니 붙어 속삭였다.

“선생님, 오늘 밤 9시 확실하죠?”

“응. 그렇게 연락받았어.”

“왜 이렇게 긴장되면서 기대가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알고 싶네요. 과장까지 한 사람이 구속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김지훈이 별 관심 없다는 듯 대답하면서도 콧등을 찡그렸다. 솔직히 온 세상이 금경태가 어떤 인간인지 알기를 바랐다. 반면 신호선과 관련된 일은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과장이기 이전에 의사였고, 의사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때 손일석이 고개를 들이밀며 씨익 웃었다.

“지훈아, 너랑 현수하고 홍재순 선생님은 좋아해도 돼. 웃어, 인마. 근데 오늘 뉴스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특집 보도까지 따로 방송한다며? 금경태는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 복잡하게 얽혔을까?”

“낸들 알아? 욕심이 문제겠지.”

“그렇지? 어쨌든 그놈의 욕심이 뭔지 보면 알겠지. 근데 지훈아, 이렇게 되면 과장님을 새로 뽑아야 하잖아. 어느 선생님이 과장님이 되실까? 신기동 선생님이 되실 가능성이 있나? 어렵겠지?”

“순서로 따지면 오상익 선생님이나 송재덕 선생님 아냐? 그다음이 이준영 선생님이고.”

“나도 알지. 그래도 기대라는 게 있잖아.”

“그런 일에 신경 쓸 시간 있으면 환자한테나 신경 써, 인마. 야! 이준영 선생님 오신다.”

아침 회진이 시작됐다. 서둘러 달려가는 인턴과 뒤를 따르는 박순용의 걸음이 왠지 힘차 보였다. 서도진도 진지한 표정으로 이준영 교수의 오더에 귀를 기울였다.

신호선을 볼 때는 다들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젠 죽 한 그릇 정도는 쉽게 비웠고, 거동도 상당히 편해졌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회복이었다.

다만 그때마다 금경태의 얼굴이 떠오른다는 것이 찝찝할 뿐이었다.

‘금경태가 구속됐다는 사실을 아실까? 정말 잘못되기를 바랐을까? 솔직히 현수에게 말을 들었을 때는 앞뒤 안 가리고 흥분부터 했지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신호선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그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녹취록의 존재를 모르는 이상, 김지훈도 무엇이 진실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회진이 끝난 후 여느 때처럼 수술 방으로 향했다. 고경아는 물론 성미경 간호사도 점점 얼굴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사소한 일로도 눈살을 찌푸리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수술이 진행되는 내내 마음이 가볍기만 했다. 오직 수술과 이준영 교수의 동작 하나하나, 말 한마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고경아와도 손발이 착착 맞았다.

‘요새 수술 정말 재밌네. 야! 여기서는 이렇게 처리하는 걸 예전에는 왜 못 봤을까?’

즐거운 시간이었다.

모든 수술이 끝난 후 병동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준영 교수의 얼굴이 아직까지 좋지는 못했다. 금경태와 함께 수련한 교수들 모두 그랬다.

충격과 분노를 이겨 내기에는 아직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어쩌면 김지훈처럼 반신반의하며, 최악이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금경태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보아 왔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후다닥 올라가 정신없이 하루 일과를 끝냈다.

어느새 9시 직전이다.

켜질 날이 없었던 의국 내 TV가 정말 오래간만에 빛을 뿌렸다. 손일석이 먼지 낀 화면을 깨끗하게 닦으며 2년차들을 노려보았다.

“이 자식들이 아주 정신을 못 차려요. 치프가 TV를 닦고 있는데 멀쩡히 보고만 있네.”

“앗! 선생님! 제가 닦겠습니다.”

“서도진 선생님, 다 닦았습니다. 자리에나 앉으시죠. 나머지 2년차 선생님들도 편안하게 시청하시죠.”

진담과 농담이 어지럽게 섞였다.

띠! 띠! 띠! 띠이이이!

정각 9시다.

앵커의 인사말과 함께 뉴스가 시작됐다.

한가한 시간에도 골치 아픈 뉴스는 피하는 때가 전공의 시절이다. 중요한 뉴스들이 이어졌지만 다들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관심은 오직 금경태뿐이었다.

으레 첫머리를 장식하는 정치 뉴스가 끝났다. 화면이 바뀌는 순간 의국원 모두 눈을 크게 뜨며 목을 쭉 뺐다. 자막부터 심상치 않았다.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 기관은 교육 시설과 함께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할 시설입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시설을 돈의 논리로 가로채고자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자이크 처리된 병원 건물을 배경으로 기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정계를 비롯해 고위 공무원과 병원 관계자까지 가담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는 내용이었다.

[어떻습니까? 만일 이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본 방송은 이 문제를 잠시 후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다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구속이 됐다면 당연히 그만한 죄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서울 병원을 아예 없애는 일일 줄은 몰랐다.

하나의 과를 책임졌던 의사가 그런 일에 관련됐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환자들과 의료진들의 생존과 삶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일까?

“지훈아, 도대체 저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몰라. 일단 특집 보도부터 보자.”

갑자기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모두들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루할 정도로 시간이 가지 않았다. 그놈의 광고는 왜 이리도 많이 하는지 답답하기만 했다. 안절부절못할 때쯤에야 특집 보도가 시작됐다.

어? 어? 어?

그저 ‘어어?’ 소리만 나왔다.

재단 이사라는 J회장,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이라는 J국장, 모 대학 병원 과장이었던 K씨를 비롯해 정재계 인물들까지 병원 전체를 노리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이라지만 누구도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지훈아, K씨는 금경태가 확실하고, J국장은 누구야? 혹시 정갑수 아버지 아니야?”

“그런 것 같아. 둘이 친구잖아.”

“어후! 끼리끼리 논다더니, 정말 가관도 아니네.”

슬슬 억누르고 있던 화가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환자하고 병원 식구들은 어떻게 되든 아무 상관도 없다는 말이잖아. 과장이었던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K씨와 J국장은 그 와중에 백제 병원을 두고 이득을 취하기 위해 불법을 서슴지 않았다고 했다. 급기야 50억, 100억이라는 돈이 마치 껌값처럼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말 가지가지 하네.”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던 의국원들이 흠칫 놀랐다.

병원 인수를 위해 한 사람 목숨까지 위협했다는 멘트가 들린 것이다.

이어, 녹취록 일부가 공개됐다. 치프들의 얼굴이 돌변했다.

잘못 알고 있었다. 금경태는 신호선이 잘못되기를 바란 정도가 아니었다. 돈을 두고 적극적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하고 있었다. 제발 아니기를, 신현수가 잘못 알아들었기를 바랐던 일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금경태는 의사였기에 환자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눈앞에서 죽어 가는 환자를 방기했다는 사실 그 자체로 금경태는 살인자였다.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선생님, 설마 저런 말을 한 사람이 금경태 과장은 아니겠죠? 그렇죠?”

서도진의 말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김지훈의 숨이 가빠졌다. 이제야 모든 상황이 환하게 보였다. 단편적인 사실들과 차마 믿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로 이어지자 참을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가 치솟았다. 불편함이라 여겼던 감정은 착각이었다. 금경태가 어떤 죄를 범했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기에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이젠 아니었다. 금경태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었다.

“개새끼! 인간도 아니야.”

욕이 튀어나왔다. 입도 열지 못하고 자리만 지키고 있는 신현수의 어깨를 잡았다.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신현수의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손일석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이 씨펄! 뭐야? 그냥 잘못되기를 바란 정도가 아니잖아. 저렇게 말했으면 살인과 뭐가 달라? 돈 때문에 다른 사람도 아닌…….”

신현수가 손일석의 손을 꽉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를 악물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신호선의 귀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가뜩이나 건강도 안 좋은데 충격까지 받게 할 수는 없었다.

불현듯 신호선이 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 신현수가 다급하게 일어나 병실로 향했다.

경악과 충격, 배신감과 분노.

금경태는 결국 그것만을 남겼다. 지난날의 공이 없지는 않겠지만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젠 자신의 죄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일만이 남았다.

김지훈이 갑자기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런 증거들이 있는데 구속 연장을 두고 고민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 당장 전화를 해 물어보고 싶었다.

그때 문득 서정호가 남기고, 정훈철이 숨겼던 서류가 생각났다. 녹취록이 분명했다. 이제야 농담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던 그들의 눈빛이 얼마나 결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서정호와 정훈철은 무조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대가를 치를 것이다. 금경태가 어떤 벌을 받을지 두 눈을 크게 뜨고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

그 시간, 서정호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뭐? 조상천을 확보했다고? 당장 데리고 들어와.”

쥐새끼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던 조상천이 드디어 강 형사에게 덜미를 잡혔다.

정훈철이 기획한 특집 보도가 막 끝났을 때였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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