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17화 (517/1,329)

제5화 용서받을 수 없는 자 (2)

일과가 끝난 후, 김지훈이 신현수와 손일석을 불렀다.

한창 전문의 시험 준비에 바쁠 테지만 적어도 유석재와 홍재순만은 알아야 할 것 같아 연락을 했다. 신현수에게는 신호선의 일을 말해도 좋다는 언질을 받은 터였다.

“오래간만에 얼굴 보네. 다들 잘 지냈지? 갑자기 무슨 일이야? 혹시 금경태 과장 일이야?”

유석재가 힐끗 홍재순을 보며 말했다. 형사도 볼 일이 없는 판국에 검사에게 조사를 받았으니, 분명 오고 간 얘기가 있을 것이다.

“예, 선생님. 전에 우리끼리 주고받은 것 말고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만은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지훈아, 뜸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 봐.”

손일석이 귀를 쫑긋 세우며 재촉을 했다. 김지훈이 차근차근 들은 말들을 꺼냈다.

다들 얼굴을 찡그리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각해졌다. 급기야 신호선의 일을 말하자 눈만 껌벅거리며 입을 열지 못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문 채 부들부들 떠는 신현수를 보는 순간 진실임을 알았다. 경악과 분노가 교차했다.

침묵만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서야 손일석이 분통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후! 그런 인간을 한때나마 과장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미친놈이지. 자식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평생 감방에서 썩어라. 이 개……. 어휴!”

주먹을 쥔 채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손일석이 갑자기 눈가를 찌푸렸다.

“근데 왜 외래 진료하고 교수실이 그대로 있는 거야? 당장 금경태란 이름 싹 지우고 잘라 버려야지. 현수야, 어떻게 된 거야? 아버님은 더 화가 나셨을 거 아냐?”

신현수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이상해서 아버님께 여쭤봤더니, 지금은 가장 큰 징계가 해임이래. 그러면 퇴직금과 연금까지 다 받게 되기 때문에 반드시 파면시켜야 한다고 참고 계셔. 거기다 교직원이란 신분 때문에 이름이든 뭐든 함부로 없애지도 못한단다.”

“구속까지 됐는데 뭐가 문제야?”

“뭐가 문제인지 몰라도 일시적이래. 확실하게 구속 결정이 나야 파면 조치하고,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셔.”

“뭐?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구속이면 구속이지, 일시적인 건 또 뭐야?”

법에는 다들 문외한이다. 더구나 교직원의 신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당장 파면을 해도 모자랄 금경태를 보호한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씁쓸한 표정을 짓던 김지훈이 갑자기 흠칫거렸다. 순간 서정호의 말이 뇌를 스친 것이다.

‘그게 그 말이었구나.’

“일석아, 현수야, 이번 주말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형님이 이번 주말에 간신히 붙잡고 있는 사람의 거취가 확실하게 결정된다고 하셨거든. 그게 누구겠어? 다른 사람을 말할 리도 없고, 일시적이라는 말까지 생각해 보면 금경태가 확실하네.”

홍재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구속됐다고 해도 중간에 풀려나는 경우가 있잖아. 증거가 부족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신현수가 깜짝 놀랐다.

“그럼 금경태가 풀려날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누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다들 서로의 얼굴만 보며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손일석이 손가락을 튕겼다.

“현수야, 결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누구보다도 금경태가 어떻게 될지 가장 신경을 쓰시는 분이 이사장님이겠지? 그리고 설마 검찰에 아는 사람 한 명 없겠어? 구속 결정 나자마자 바로 싹 치우실 거야. 우린 그것만 확인하면 되네. 그리고 우리 정호 형님이 하시는 일인데 어떤 결정이 날지는 빤해. 걱정하지 마. 주말에 이름 지우고 방 뺀다. 확실해.”

그럴듯한 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럴 것이란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갑자기 손일석을 째려보았다.

‘우리 정호 형님? 이 자식이 너무 나가네.’

이 판국에 별말이 다 거치적거린다. 어쨌든 입 밖으로 낼 말은 아니다.

한동안 금경태에 관한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런데 머릿속이 정리될수록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다.

금경태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반드시 법의 엄한 심판을 받아 죗값을 톡톡히 치르길 바랄 뿐이었다. 하기에 금경태가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욱 심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시간이 가도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가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교수들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아마도 함께 수련을 했다는 것과 지금까지 동료로 살아왔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전공의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배신감과 스승에게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이준영 교수의 어깨가 유달리 무겁게만 보였다.

어느새 주말이다.

일과를 끝낸 김지훈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신현수도 툭하면 외래와 교수실을 확인했다.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분위기가 가시질 않았다.

손일석이 신현수가 없는 틈을 타 고개를 흔들며 김지훈의 어깨를 탁탁 쳤다.

“지훈아, 얼굴 좀 펴. 사필귀정(事必歸正). 이 말도 몰라? 금경태는 끝났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면 돼. 일 생길 때마다 이럴래? 카르페 디엠! 잊을 만하면 니가 꺼내는 말 아니야? 난 주말 동안만은 싹 잊고 데이트하러 간다.”

맞는 말이다. 신현수만큼은 아니더라도 모두들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예전과 똑같이 일에 집중하듯, 자신의 삶을 즐기고 영위해야 할 것이다. 불행에 매몰되면 더욱 불행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손일석이 휘파람까지 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데이트한다고? 경아 씨한테 대충 들었다. 둘이 잘 맞는 모양인데 앞으로 조심해라. 내가 예전에 한 말 안 잊었지? 근데 함부로 어깨를 때리는 놈이 있네.”

손일석이 슬쩍 째려보며 씨익 웃었다.

“어이구! 그러세요. 예. 잘 알아 모시겠습니다.”

한 대 더 맞았다. 아직 뜸도 안 들었는데 숟가락을 들고 설친 꼴이었다.

어쨌든 손일석 덕에 마음 한편이 홀가분해졌다. 서정호를 믿고 자신의 생활에 충실하면 이 또한 지나갈 일이었다.

카르페 디엠!

오래간만에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문득 고경아가 보고 싶었다. 한동안 전화를 붙잡고 별별 얘기를 다 했다.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켜 주며 힘을 주는 고경아가 한없이 고마웠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

그 시간, 금경태의 구속 수사 연장과 진평호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준비되고 있었다.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긴장이 팽팽하게 치솟았다.

서정호가 최종 결재를 앞두고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좋지 못했다.

금경태는 여전히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복잡하게 꼬이고 얽힌 백제 병원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고리인 조상천은 강 형사의 추적을 잘도 피해 다녔다. 수사를 확대하지 말라는 외압도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반드시 내부에서만, 그것도 검사들만이 알고 있어야 할 수사 기밀이 새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금경태 문제로 진평호의 변호인들과 접촉할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곤 한 것이다.

‘조상천을 잡기 직전에 번번이 한발 늦는 이유가 뭘까?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배제해야 해.’

서정호가 단독으로 차장검사를 만났다. 수사 진행 상황과 그간 확보한 모든 증거를 내밀었다. 진상미의 존재까지 확실하게 설명했다.

차장검사가 복잡한 심사를 내비쳤다.

“저쪽 실력이 만만치 않은데, 이 정도로 진평호를 구속할 수 있을까? 예전에 무혐의 처리된 사건과 겹치는 사건도 있고, 외압이 장난 아니란 걸 잘 알잖아? 금경태 구속 문제도 어떻게 치고 나올지 몰라.”

“진상미를 증인으로 세우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지만, 저도 진평호 건은 솔직히 반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가 아니라 다음 주말에 진평호의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싶습니다. 녹취록을 반드시 증거로 채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루는 이유가 뭐야?”

“조상천을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진평호와 금경태가 백제 병원 문제로 얽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 점만 해결되면 진평호가 언급한 백억이 어떤 성격의 돈인지는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일주일 내에 잡을 수 있겠어?”

“반드시 잡겠습니다.”

차장검사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확실하게 해야 돼. 만일 구속 수사조차 하지 못하면 역으로 우리가 당할 수 있어. 특히 서 검사 자넨 옷 벗어야 할 수도 있다. 알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말씀드릴 일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조 검사님을 수사에서 배제시켜 주십시오.”

차장검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인사를 단행하거나, 혹은 지휘 체계를 흔들다가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 차장검사에게도 대단한 부담이었다.

서정호가 또 하나의 문건을 건넸다.

“조 검사님의 비리 의혹입니다. 진평호와의 유착 관계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감찰은 반드시 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서 검사, 자네 보기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이었네. 오케이! 나도 여기까지 온 이상 자리에 연연하면 우스운 꼴만 보이겠지? 가자. 우리 한 번 멋지게, 후회 없이 일해 보자.”

영장 청구를 앞두고 난리가 났다.

갑작스러운 수사 배제 명령에 조 검사가 강력히 항의했다. 하지만 차장검사와 독대를 한 후, 사색이 된 채 입을 열지 못했다.

변호인들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밀리에 수사 정보를 제공하던 조 검사가 배제된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어쨌든 총력을 기울여 진평호가 구속되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그래서 더욱 금경태의 구속 연장을 막아야 했다.

영장 심사가 시작됐다.

판사의 얼굴이 묘했다. 변호사들 역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평호의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환영해야 하는 일인데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 것이다.

게다가 금경태에게는 새로운 혐의들이 추가됐다. 도대체 고구마 줄기도 아니고 어디서 자꾸 새로운 죄목이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졌다. 양측의 의견을 듣고 조서를 모두 검토한 판사가 눈가를 찌푸리며 서정호를 보았다.

“혐의가 몇 가지 더 추가됐군요. 사안이 조금 복잡해졌지만 변호인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 제 결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팽팽한 긴장이 치솟았다. 서정호가 확신을 하면서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금경태도 해결하지 못하면 진평호는 물 건너가는 것이다.

과연 판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

응급 환자를 보고 올라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마음이 초조하고 심란할 때는 일이 약이었다.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환자와 수술에만 집중하고 나면 마음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신현수도 그런지 굳이 따라와 환자를 보았다.

함께 의국으로 올라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을 이용했다. 슬쩍 고개를 내밀며 2층 외래를 확인한 김지훈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훈아, 그대로야?”

“응. 그런 것 같네.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에휴! 하긴 한 사람 인생이 끝나는 일인데 신중하게 결정하겠지. 그래도 우리 감정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법이 그런 건가?”

뚜벅뚜벅 구두 소리만 울렸다. 막 3층 계단을 오를 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띵!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였다.

2층이었다.

외래 진료가 끝난 지 오래였다. 이 시간에 출입할 사람은 없었다.

순간 왠지 모를 느낌에 서둘러 2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총무과 직원과 시설과 직원들이 외래로 향하고 있었다.

진료 일정표에 적힌 금경태의 이름이 검은 테이프로 가려졌다. 총무과 직원이 가운을 비롯해 금경태와 관련된 모든 물품을 박스에 담았다. 외래 문에 거는 명패까지 치워졌다.

신현수가 주먹을 쥐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지훈아, 교수실도 치우겠지?”

눈앞에서 빤히 보면서도 불안했다. 혹시 다른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실로 향했다. 김지훈이 다급하기만 한 신현수의 팔을 잡으며 진정을 시켰다. 이상하게도 아무 일 아닌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교수실 앞이 난장판이었다. 시설과 직원들이 교수실을 완전히 비울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신현수가 지그시 어금니를 물고는 교수실로 들어갔다. 먼지만 풀풀 날릴 뿐 텅 비어 있었다. 이젠 금경태의 방이 아니었다.

신현수가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그 바람을 따라 금경태의 남은 흔적이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묵묵히 서 있던 신현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지훈아, 이젠 정말 끝난 거지? 금경태를 다시 볼 일은 없겠지?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겠지?”

묻는 말인지, 혼자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통쾌하기만 할 줄 알았다. 지금도 동정심이나 연민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목구멍이 콱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가슴에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매단 것 같았다.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금경태.

그런 자가 일반 외과 과장이자 선배였다.

누구보다도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의사였다.

그렇다. 같은 의사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불편함이자 배신감이었다. 금경태와 비슷한 면이 있지 않은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운만 걸쳤다고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야. 경험이 쌓이고,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여전히 의사가 아닐 수도 있어. 나 역시 수많은 잘못을 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의사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자.’

웃고 떠들며 기뻐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분위기가 무겁기만 했다.

그때 아주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손일석이었다.

“야! 분위기가 왜 이래? 내가 니들 마음 모르는 건 아닌데, 이건 아니다. 나쁜 놈이 벌 받으면 당연한 일이라고 박수까지 치잖아. 금경태는 애초에 의사도, 우리 과 과장도 아니었어. 우리가 착각하고 속은 거야.”

그러고는 차가운 커피를 내밀었다.

“속 시원하게 일이 풀렸잖아. 시원하게 마시자.”

커피를 따라 차가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한여름 땡볕에 갈증을 푼 것처럼 시원하기만 했다.

마음은 도리어 뜨거워지면서 편안해졌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그래, 현수야. 우리 지금부터 다시 예전처럼 열심히 일하고 즐기자. 금경태가 있을 때도 그렇게 살았는데 이젠 신경 쓸 일도 없잖아.”

신현수도 웃었다. 얼마 만인지 모른다.

김지훈이 손일석을 툭 치며 말했다.

“경희하고 잘해 봐. 내가 팍팍 밀어줄게.”

갑자기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손일석이 반색을 했다. 정말 즐거워하는 웃음이 귀에 걸렸다. 신현수만 의아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교수실에서 나왔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아무도 없는 복도를 따라 김지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답답함과 불편함은 없었다. 지금 현재와 내일을 향한 희망이 잔뜩 실려 있었다.

김지훈의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누군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준영 교수였다.

텅 빈 교수실을 바라보는 눈길이 복잡했다.

평생 자신을 견제하고 시기한 금경태였다. 같은 스승 밑에서 최고로 인정받고자 노력했던 금경태였다. 결국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금경태에 대한 분노와 스승을 향한 죄책감 속에 안타까움을 버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지도 몰랐다.

“카르페 디엠?”

이준영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병원에서만 소란이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금경태가 철창 속에서 울부짖었다. 절망과 분노만이 남아 있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진평호, 넌 날 반드시 여기서 꺼내 줘야 돼. 절대 나 혼자만 죽지 않아. 정한득, 이 개새끼! 내가 이 지경이 됐는데 얼굴도 안 비쳐? 너도 내가 입을 열면 자식 놈 일과 백제 병원 건으로 죽게 돼 있어.’

철창을 잡고 부들부들 떨던 금경태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방에서 차가운 기운이 엄습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절망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오직 진평호를 물고 늘어져 온 힘을 다해 자신을 구명케 하는 것뿐이었다. 눈물 맺힌 눈에 독기가 서렸다.

“으아아아!”

괴성이 터졌다.

“조용히 안 해! 여기가 니 집이야!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한 번만 더 소리 지르면 죽을 줄 알아. 알았어?”

함께 구속된 자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순간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이 전신을 휘감았다. 금경태가 구석에 숨어 몸을 웅크렸다.

그 시간, 진평호의 집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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