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추락 (2)
금경태 과장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어떤 말도,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신호선의 출혈이 멈췄다는 소리에 급히 중환자실로 가는 중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직접 확인해야 했다. 너무 급해 휴대폰도 챙기지 못했다.
신호선의 옆구리에 박힌 드레인을 확인하는 순간 숨이 턱턱 막혔다. 자신도 모르게 쌍스러운 욕까지 내뱉었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빤히 보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의 다 거머쥐었던 거액의 돈이 허공으로 사라질 판이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순간 협박이라는 단어까지 떠올랐다. 녹음한 내용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내 진평호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금 추진하는 일이 틀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든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할 인간이었다. 그것은 곧 파멸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검사가 찾아오다니!
진평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일로 압수 수색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마치 남의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태연하기만 해,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튈 줄은 꿈에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진평호, 설마 돈이 아까워 날 죽이려는 속셈은 아니겠지? 만일 녹음기를 찾아내면 나만 죽지 않아. 오히려 네가 더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거야.’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차라리 수색이 빨리 시작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들 지경이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진료나 연구에 관련된 자료들은 손대지 않을 거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 부분을 협조해 줄 교수님들이 오시는 대로 수색 시작하겠습니다.”
금경태 과장이 서정호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교수실 안에 숨겨 둔 녹음기에 생각이 미치자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온갖 생각에 두려움과 분노가 마구 뒤엉켰다. 전전긍긍, 안절부절못했다.
어떻게든 녹음기를 눈치채지 못하게 빼내야 했다. 가운 주머니에 꽂으면 만년필인 줄 알 것이다.
금경태 과장이 손을 달달 떨면서도 움찔움찔 몸을 움직였다.
“수색 중에는 아무것도 만지시면 안 됩니다. 함부로 움직이셔도 안 되고요.”
단순한 말 한마디에 금경태 과장이 흠칫 놀랐다.
서정호의 눈이 가늘어졌다. 제아무리 깡이 좋다고 해도 이런 일로 검사와 직접 대면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떨기 마련이었다. 죄가 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금경태 과장의 모습은 그 이상이었다.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앞에 둔 범죄자보다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것 봐라? 뭐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 그런데 왜 이렇게 떨어? 저런 배짱으로는 진평호와 일을 꾸밀 수가 없을 텐데. 설마 엉뚱한 곳을 뒤지는 건가?’
어쨌든 정면으로 시선을 주며 지켜볼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때론 제 풀에 입을 여는 경우도 있다.
잠시 후 뚜벅뚜벅 구두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며 교수실 문을 열었다.
금경태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필이면 이준영 교수와 이혁민 교수였다.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 수사에 협조까지 하다니, 자의가 아니라고 해도 당장 죽여 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아무 탈 없이 끝난다고 해도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로 평판은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분노가 두려움을 짓눌렀다.
‘개자식들! 내가 고꾸라지길 바라겠지? 그런 일은 절대 없어.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해.’
“그럼 수색 시작하겠습니다. 과장님은 대기하고 계십시오.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소명을 할 기회를 바로 드리겠습니다. 그럼 두 분 교수님께는 이 방에 있는 모든 문서들의 분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서정호의 말이 들리는 순간 분노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온몸이 두려움으로 떨려 왔다. 서정호의 손짓 하나에도 식은땀이 흘렀다.
당황스럽기는 이준영 교수나 이혁민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미워도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금경태 과장의 면전에서 이유를 물을 수도 없었다. 어쨌든 함께 수련한 동료였기 때문이다.
압수 수색이 시작됐다.
“교수님, 책장에 꽂힌 책들은 다 뭡니까?”
“예. 학술지와 외과 책들, 그리고 논문들로 보입니다.”
“그렇습니까? 강 형사, 시작하자.”
일일이 모든 책들을 확인했다. 서정호의 눈빛이 더욱 매서워졌다. 때때로 궁금한 것을 물어봤지만 모두 외과에 관련된 서적들뿐이었다.
입맛을 다신 서정호가 지치지도 않는지 책상은 물론 탁자와 소파 쿠션 밑까지 샅샅이 뒤졌다. 무려 두 시간에 걸쳐 수색을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금경태 과장의 대답에 서정호가 이준영 교수와 이혁민 교수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헛짚었나?’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찬 서정호가 휴대폰 전원을 다시 켰다.
“집에도 별거 없다고? 다시 한 번 철저히 확인해.”
기대와는 달리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준비해 온 박스에 한눈에도 쓸데없어 보이는 종이 쪼가리만 넣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상당히 정치적인 의사라고 파악했는데 병원 사회는 다를지도 몰랐다.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 형사를 보던 서정호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금경태 과장은 어찌 됐든 의사다. 더럽고 치사한 짓은 꽤 했지만 지금까지 범죄를 저지른 적은 없었다. 완벽할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 아니라면 진평호가 벌인 범죄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깨끗했다. 또다시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왜 수색 대상에서 빼라고 했지? 수색 당일에 부랴부랴 전화를 했다는 것은 분명 진평호와 연관이 있다는 말인데,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 거지?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이미 빼돌렸나? 아니지. 그럼 저렇게 불안해할 리가 없잖아.’
한동안 침묵만이 흘렀다.
시간이 가면 당황했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기 마련이다. 아직도 조마조마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금경태 과장이 아니었다. 기를 쓰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검사님, 수색이 끝났으면 이만 자리를 비켜 주셨으면 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단단히 오해를 하신 것 같습니다. 허허! 살다 보니 이런 일을 다 겪네요.”
어딘가 어색했지만 웃음까지 보였다.
서정호가 입맛을 다셨다. 무척 쓴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좋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갑니다만, 그동안 진평호와 접촉을 하신 것은 사실이죠? 눈여겨볼 수밖에 없겠네요. 참고로 강 형사 별명이 불독입니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질 않죠.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십시오.”
금경태 과장의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를 놓칠 서정호가 아니었다. 하지만 현행범도 아니고 당장 조사를 계속할 만한 증거도 없는 상태였다.
‘진평호와 관련이 있는 게 확실해. 조 검사, 당신 실수한 거야. 오늘 연락을 하지 말아야 했어. 언젠가는 걸리게 돼 있어.’
두 손으로 책상을 턱 짚으며 몸을 일으키던 서정호가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심증은 가지만 방향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었다. 철저하게 뒤를 캐면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오늘은 철수하자. 조 검사, 진평호, 웃지 마라. 네놈들은 반드시 내 손으로 잡아 처넣을 거야.’
서정호가 일어섰다. 한 발을 내디뎠다.
금경태 과장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축였다.
다시 한 발을 내디뎠다.
“두 분 교수님들, 귀중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다시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찜찜한 말이었지만 인사까지 했다.
천운이다. 먼지가 풀풀 나도록 구석구석 샅샅이 수색을 하면서도 정작 녹음기는 지나쳤다.
하긴 누가 보아도 직접 사용하기 전에는 흔하게 보는 만년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눈에 너무 잘 띄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제 한 발만 더 내디디면 녹음기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안도의 한숨이 혀끝까지 밀려 나왔다.
서정호가 나가는 순간 녹음기부터 처리해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가려는 손을 간신히 억제했다.
‘빨리 나가. 빨리 나가란 말이야.’
서정호가 책상을 지나쳤다. 극도의 긴장이 한풀 꺾이며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몇 초 후면 절체절명의 위기를 완전히 벗어난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금경태 과장의 눈가가 푸들푸들 떨렸다.
걸음을 멈춘 서정호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잠깐 통화를 하던 서정호가 무슨 생각에선지 교수들을 보았다.
‘동서, 의사는 환자만 잘 보면 된다지만, 세상이 하도 험난해서 검사와 동서지간이라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몰라. 금경태 같은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야.’
“김지훈 선생 전화네요. 제 동서가 될 사람입니다. 인사를 드리기에는 자리가 좀 이상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죄송하지만 잠시 통화 좀 하겠습니다.”
모두들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로 형님 아우 할 정도로 친한 방송국 PD.
손윗동서는 검사.
장인은 재야의 일반 외과 고수.
피붙이 하나 없는 김지훈이었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한 통의 전화가 서정호의 발걸음을 막았다.
금경태 과장이 이를 갈았다.
‘김지훈? 이 자식은 또 뭐야? 일이 생길 때마다 날 곤란하게 만들다니, 정말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놈이군.’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지만 서정호의 눈에 녹음기가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었고, 숨은 가쁘기만 했다.
넥타이를 풀고, 목을 죄는 와이셔츠 단추를 푼 지 오래였다. 그래도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창문을 열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다.
서정호가 한쪽 엉덩이를 슬쩍 책상에 걸쳤다. 금경태 과장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힐끗 눈길을 준 서정호가 통화를 이어 갔다. 보면 볼수록 수상쩍어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동서, 미안해. 무슨 일이야?”
(형님, 진상미 환자에게 연락이 왔어요.)
“뭐? 언제?”
서정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애초 큰 기대를 하기 힘들었던 금경태 과장보다는 훨씬 중요한 사람이었다. 당장이라도 신병을 확보해야 했다.
(지금 막 전화 통화를 했어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연락처는 알아냈어?”
(예. 대신 절대 진상미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게 하시면 안 됩니다. 굉장히 불안해하는 것 같았어요. 세상이 무서운데 하소연할 사람 하나 없어서 전화를 했다고 할 정도예요. 주변 상황이 더 나빠진 모양입니다.)
“알았어. 그건 걱정하지 말고 연락처나 빨리 말해.”
(예. 불러 드릴게요. 011-XXX-XXXX.)
“잠깐만, 다시 불러. 확실히 적어야겠다.”
서정호가 전화기를 목 옆으로 끼고는 볼펜을 꺼내 들었다. 하필이면 볼펜심이 다 됐는지 메모지가 쭉 찢어졌다.
서정호가 투덜거렸다.
“에이! 이거 왜 안 나와?”
강 형사가 재빨리 볼펜을 꺼내 들었다. 고개를 돌리며 볼펜을 받아 들려던 서정호가 갑자기 눈가를 찌푸렸다. 볼펜이 가득 꽂힌 통에서 이질적인 물건 하나가 보인 것이다.
수색을 하면서 몇 번이나 보았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건 뭐야?”
손을 뻗는 순간 금경태 과장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모두들 의아한 눈으로 금경태 과장을 보았다.
서정호가 볼펜 통 속에서 수상한 물건을 빼 들었다. 지금 보아도 영락없는 만년필이었지만, 필기도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떻게 지나칠 수 있었을까?
고의적으로 지나쳤다는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사람의 일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지만 지금은 절대 아니었다.
목덜미가 축축해진 서정호가 고개를 흔들었다.
“강 형사, 이것 좀 봐. 녹음기지? 이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었으면 꽤 비싸겠어. 보통 사람한테 이런 게 필요할까?”
“그러게 말입니다. 녹음기 맞네요.”
“금경태 과장님, 왜 이런 걸 갖고 계시죠?”
“지, 진료에……. 아니, 사적인 물품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래도 평범한 물건은 아니네요. 일단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압수 물품표를 드릴 테니까 돌려받는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사적인 문제는 새어 나가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하겠습니다.”
금경태 과장이 덜덜 떨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정호의 손에 들린 녹음기를 빼앗으려 했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확인 후 돌려드린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녹음기만 바라보던 금경태 과장의 눈이 돌아갔다. 돌연 기괴한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악! 안 돼!”
강 형사가 날렵하게 앞을 가로막았다. 미친 것처럼 달려들던 금경태 과장이 강한 완력에 나가떨어졌다. 바닥에서 버둥거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와중에도 녹음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공포에 질려 있었다. 이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안 돼! 안 돼!”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서정호가 강 형사에게 고갯짓을 했다.
금경태 과장이 확실하게 제압된 것을 본 서정호가 일단 김지훈과의 통화를 끝냈다.
녹음된 내용을 조용히 확인했다.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뭐야? 이거 설마 사람 목숨을 놓고 흥정을 하는 거야? 정황은 딱 그런 말인데, 도대체 누가 죽기를 바라는 거야? 아니지. 이거 아예 죽여 달라는 말 아냐?’
은근슬쩍 돌려 말하는 내용들이었지만 정황은 확실했다. 대놓고 죽이라는 말만 없을 뿐이었다.
사안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정호가 잠시 고민을 한 후 결정을 내렸다.
“강 형사, 금경태 과장 긴급체포해. 들어가는 대로 정식 체포 영장 발부받자.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강 형사는 베테랑이다. 서정호는 결코 무리하거나 초법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단박에 상황을 이해했다. 녹음기 속에 금경태 과장에게는 치명적인 내용이 담겼을 것이다. 그것도 자칫 거센 비난과 책임을 감수해야 할 긴급체포를 할 정도로 말이다.
금경태 과장의 눈이 번들거렸다. 마치 모든 것이 끝난 사람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처럼 악을 쓰고 있었다. 스스로 제어하지 않는 한 누구도 통제할 수 없었다.
서정호가 코웃음을 쳤다. 한두 번 이런 일을 겪은 것이 아니다.
‘의사라는 놈이 이런 짓을 해? 이제 와 겁이 나는 모양이군. 넌 진평호와 함께 끝났어.’
“강 형사, 수갑 채워. 저러다 창문 열고 뛰어내리겠다. 어떻게 나쁜 짓 한 놈들은 하나같이 저러냐. 억울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지가 제일 억울하다지. 개새끼들.”
철컥!
금경태 과장의 두 손에서 차가운 금속이 빛을 냈다. 서릿발 같은 차가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악에 받친 소리가 들렸다. 복도를 따라 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죄가 없어! 이건 불법이야!”
서정호가 말없이 녹음기를 흔들었다. 그 순간 금경태 과장이 얼어붙었다.
파멸이다. 더 이상의 희망은 없었다.
희번덕거리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급격하게 의지를 잃은 금경태 과장이 강 형사의 손에 질질 끌려 나갔다.
그 시간에도 휴대폰은 울리고 있었다. 진평호의 불안감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거대한 댐도 사소한 구멍 하나로 무너지는 법이다. 절벽에 오르기는 힘들어도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