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508화 (508/1,329)

제1화 변화의 전조 (1)

줄줄 피가 흘렀다. 모스키토를 대기가 무섭게 조직이 부서지며 피가 새어 나왔다. 우측 간동맥에서 보내 주는 교차 혈류 때문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간문맥과 담도를 처리하는 과정이 가장 쉽게 보일 지경이었다.

간을 절제하는 이준영 교수와 쉼 없이 타이를 하는 신기동 교수의 장갑에 묻은 피가 말라붙었다. 검붉은 색으로 변하며 뻑뻑해진 장갑이 손의 촉감을 변질시키며 수술을 방해했다. 생리식염수로 계속 닦아 내야 했다.

“김지훈, 이쪽에 거즈 패킹(Packing)해.”

“손일석, 조금 더 위쪽에서 석션해.”

김지훈과 손일석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수술복까지 피에 물들고 있었다.

수북하게 쌓인 피에 젖은 거즈.

석션 통을 가득 채워 가는 빨간색의 식염수.

출혈량이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신호선의 상태는 조금의 여유도 허용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결국 무리가 왔다.

띠! 띠! 띠! 띠! 띠! 띠!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환자의 바이탈을 유지하지 못하면 회복될 때까지 수술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간 절제가 절반 이상 이루어진 시점이다. 최악의 상황을 의미할 뿐이었다.

마취과의 손길이 바빠졌다.

전혈(Whole Blood)과 혈소판 농축액 및 신선 혈장까지 투여했다. 전해질이 포함된 수액이 빠르게 주입됐다. 지혈과 동시에 적정한 혈압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다.

반면, 단시간에 많은 양을 투여하면 심장과 콩팥에 무리가 온다. 이 경우 역시 바이탈에 문제가 생긴다. 적절한 소변량을 반드시 유지해 주어야 한다.

소변량을 체크하던 김진호 교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라식스(Lasix:이뇨제) 하나 투여합시다.”

끝이 아니었다.

심장박동수, 심전도, 호흡수, 산소포화도 등등.

모니터에 나타나는 수많은 신호들을 확인하며 필요한 검사를 해야 했다.

수술에 방해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수시로 동맥의 피를 뽑았다.

비지에이 결과를 받아 든 김진호 교수의 안색이 좋지 못했다. 지속적이면서도 과다한 출혈과 그에 따른 다량의 수혈이 간당간당하게 유지되던 육체의 균형을 깨트리고 있었다.

“비본(알칼리 제제) 두 개 줍시다.”

혈액의 산성화까지 심해진 모양이었다.

저혈량성 쇼크 때 주로 볼 수 있는 징후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들려오는 말만으로도 상황이 안 좋아진다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수술에 집중하고 있던 수술 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제야 주변을 모두 절제했을 뿐이었다. 아직도 간암을 포함한 조직은 건드리지도 못했다. 시야까지 나빠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준영 교수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 교수, 서둘러야겠어.”

김지훈이 살짝 놀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력만큼 손이 빠른 교수들이었다. 누가 하더라도 이보다 더 빠르게 수술을 진행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상황이 안 좋다고는 하지만 가장 위험한 부분을 앞두고 서둘러야 한다니 의아한 일이었다.

신기동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습니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출혈로 인한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일단 제거부터 하는 것이 유리할 것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렇게 하지. 김지훈, 손일석, 정신 바짝 차려. 무조건 시야 확보에만 신경 써.”

이준영 교수의 손이 과감해졌다.

모스키토가 조여질 때마다 간 조직이 퍽퍽 잘려 나갔다. 당연히 출혈이 심해졌다.

신기동 교수 역시 개의치 않았다.

철철 피가 흐르는 조직을 오직 감촉만으로 타이를 했다. 피를 닦기 위해 댄 거즈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빤히 신기동 교수의 말을 들었으면서도 김지훈이 순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 문제 생기는 거 아냐?’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신현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쨌든 보조의는 집도의의 손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원칙이다. 이내 빠르게 석션을 하고, 재빨리 거즈를 교환했다.

‘일석아, 일단 시야 확보부터 하자.’

손일석도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리트랙터를 강하게 끌어 수술 시야 확보에 최선을 다했다.

서걱! 서걱!

간 조직이 빠르게 절제됐다.

“타이! 타이!”

신기동 교수가 전에 없이 빠르게 타이를 했다.

간암이 포함된 간 조직이 우측 간과의 경계부에서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흐물흐물한 조직이 언제 손상을 받을지 몰랐다.

교수들의 손은 여전히 과감했다.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가쁜 숨을 내쉬었다.

암이 포함된 출혈 덩어리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에 눈가를 찌푸리고 말았다.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수술은 일종의 호흡이다. 집도의과 보조의 간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

또한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 교수가 집도를 한다.

분명 이유가 있다.

다른 생각 말고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

이준영 교수의 손에 맞춰 빠르게 보조를 하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느새 좌측 간이 완전히 절제되기 직전이었다.

손상을 우려했던 간암을 포함한 조직도 순식간에 제거됐다. 무모해 보일 정도로 과감한 손으로도 수술의 일차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던 손은 간 절제의 원칙을 따랐을 뿐이었다.

마침내 좌측 간이 완전히 제거됐다.

“마취과, 간 조직 나갑니다.”

고경아가 좌측 간을 받아 수술용 용기에 넣었다.

실력이 뛰어나다는 생각보다는 의문이 앞섰다.

어떤 이유로 수술 방식이 달라졌을까?

‘후우! 뭐지?’

의문도 잠시, 이준영 교수가 수술 부위를 살피며 말했다.

“간 수처용 바늘 준비하고, 지혈제 준비해요.”

거칠게 수술을 했다. 지금도 절단면을 따라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반복해서 피를 닦아 낸 이준영 교수가 끝이 뭉뚝한 바늘로 간을 떴다. 신기동 교수가 빠르게 타이를 했다.

출혈이 심해 보이는 부분은 모조리 봉합을 했다.

점차 출혈이 줄기 시작했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도 들지 않고 입을 열었다.

“김지훈, 놓친 거 없어 보여?”

피가 어디서 나는지 묻는 것이다.

눈가에 힘을 준 김지훈이 한곳을 가리켰다.

“여기 혈관이 빠진 것 같습니다.”

“급하게 하긴 했네. 고 간호사, 간 수처용 바늘 하나 더 준비해요.”

수처를 하자마자 타이를 하는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눈가를 잔뜩 찡그렸다. 이제야 무모해 보일 정도로 서둘렀던 이유가 떠올랐다.

기본적인 원칙조차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동안 머릿속에 단단히 새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출혈이 문제인데 도리어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에 상당히 당황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환자가 신현수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에 더욱 경직됐는지도 몰랐다.

‘후우! 이래서 가족들은 직접 치료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어느 쪽이 가장 유리한지의 문제였다.

가장 핵심적인 목적은 당연히 간암 절제다. 반면 수술 도중 바이탈이 흔들릴 정도로 환자 상태가 위험해졌다. 아무리 수술을 깨끗하게 해내도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우면 의미가 없다.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맞아. 환자분의 상태가 거의 쇼크가 발생하기 직전이었지만, 간암을 남겨 놓고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어. 출혈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해도 당장 막을 방법이 없다면 일단 간암을 빠르게 제거하고, 그 후에 출혈을 잡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신 거야.’

최선의 선택이었는지는 앞으로의 경과에 달렸다.

아니, 설혹 경과가 좋지 않다고 해도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 교수가 최선의 선택을 했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래서 집도의의 책임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것이다.

지금도 수술은 진행 중이다. 잠깐 다른 생각에 빠졌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이준영 교수가 출혈 부위를 모조리 찾아 꼼꼼하게 수처를 했다. 혈관 등이 원인이라면 멈춰야 한다. 하지만 간 조직 자체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피는 막을 수 없다.

이런 경우 가장 유용한 지혈제를 절단면에 바르기 시작했다. 응고인자가 포함된 젤리 양상의 지혈제가 무영등 불빛에 번들번들 빛났다. 그 위에 그물처럼 생긴 지혈용 천까지 덮었다.

하나만 남기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했다.

이준영 교수가 힐끗 김지훈을 보았다.

‘뭐해? 지혈의 원칙을 잊은 거야?’

압박이야말로 단순하지만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오늘따라 자꾸 원칙을 잊고 있었다. 깜짝 놀란 김지훈이 재빨리 거즈로 절단면을 압박했다.

‘왜 이러지?’

손일석도 콧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살짝 눈가를 찌푸리던 이준영 교수가 혀를 차며 김진호 교수를 보았다.

“김진호 선생, 환자 바이탈 괜찮습니까?”

“예. 다행히 방금 전부터 안정을 찾았고, 비지에이 결과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출혈은 어떻습니까?”

“두고 봐야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잡았습니다. 덕분에 마음 놓고 수술했어요.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10분이 넘도록 압박을 한 후 수술 부위를 살폈다.

검붉은 색으로 응고된 피딱지들이 지혈제와 엉켜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앞으로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더 이상 피는 나지 않을 것이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수술 부위는 손바닥 반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그렇게 작은 부위가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절로 고갯짓을 하고 말았다. 사람의 몸과 질병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스러웠다.

마무리가 시작됐다.

지혈제를 바른 절단면을 제외한 배 속을 꼼꼼하게 씻은 후 드레인을 넣고 배를 닫았다. 바늘이 통과한 자리마다 피가 비쳤다. 응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마지막까지 수술을 진행한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 교수가 장갑을 벗었다.

시계가 오후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려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들 수고했어요.”

고경아와 성미경 간호사의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중간에 손을 바꾸어도 되는 상황인데 끝까지 함께해 주어 정말 고마웠다.

더구나 토요일이다.

‘경아 씨,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지훈 씨도 고생하셨어요.’

‘성 간호사,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눈짓을 교환한 김지훈이 뻐근한 어깨를 뒤로 젖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호선이 신음만 흘릴 뿐 눈을 뜨지 못했다. 수술 크기와 고령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걱정이 앞섰다.

‘잘 깨어나시고, 회복도 빨라야 하는데 걱정이네.’

회복실로 옮길 상황이 아니었다.

김진호 교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지훈아, 중환자실로 빨리 옮기자. 알아서 잘 판단하겠지만 내일 아침까지는 인공호흡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출혈이 상당히 많았으니까 잘 봐.”

“예.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신호선을 중환자실로 옮겼다.

신동석 이사장과 가족들이 이준영 교수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던 가족들이 신호선을 보며 울먹였다. 고령의 몸으로 견디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설명을 듣느라 잠시 보이지 않았던 신현수가 바로 달려왔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기본적인 사항을 체크하는 동안에도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기하고 있던 서도진과 박순용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지훈아, 일석아,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지?”

“걱정하지 마.”

김지훈도, 손일석도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왠지 모를 부담감에 설명해도 되는 사실도 말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곁에 앉아 손을 꼭 잡고 있는 신현수의 뒷모습에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

잠시 후,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 교수가 들어왔다.

“환자분 어때?”

“아직 의식은 명료하지 않지만 바이탈은 안정적입니다. 드레인에서 살짝 피가 비치긴 하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닙니다. 확실하게 안정을 찾을 때까지 인공호흡을 유지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돌아서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신현수에게 눈길을 주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신기동 교수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손일석, 김지훈, 나 좀 보자.”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그 자리에서 비수를 날리는 신기동 교수다.

아니나 다를까. 구석으로 가자마자 눈빛이 변했다. 이준영 교수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김지훈, 손일석, 니들 의사야?”

무슨 소리일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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