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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써전-506화 (506/1,329)

제8화 결국 환자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다 (1)

토요일이다.

오전까지는 모든 일과가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가지만 일부 파트는 그렇지 않다. 특히 특수 검사나 시술을 하는 파트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주말에는 일정을 잡지 않는다.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주말에는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수술 방은 더욱 엄격해야 할 파트였다. 마취과와 임상과를 합하면 한 건의 수술당 최소 6명에 달하는 인원이 필요하다.

더욱이 마취과의 경우 똑같은 의료진이 계속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가중되는 피로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또한 아무리 환자가 초대 이사장인 신호선이라고 해도 모든 의료진이 대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환자가 급한 상태이기 때문에 최대한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었다.

금경태 과장의 회진이 끝난 직후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는 보기 드물게 관심을 보였는데, 오늘은 간단히 상태만 묻고는 중환자실에는 들르지도 않았다. 회진 자체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끝났다.

‘얼굴이 왜 저렇게 초조해 보이지? 무슨 일이 있나? 혈관 촬영에 대해 물어볼 틈도 안 주네. 쫓아가서 주의할 점이 있나 물어볼 걸 그랬나?’

아무튼 시간도 촉박한데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재빨리 이준영 교수에게 연락을 하고 수술 방으로 달려갔다. 신현수는 지금쯤 오상익 교수와 송재덕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기동 교수와 함께 혈관 촬영을 담당할 내과 심장 파트를 찾았을 것이다.

이준영 교수가 마취과 과장 및 간호 부장과 마주했다. 김진호 교수도 함께한 자리에서 신호선의 현재 상태와 혈관 촬영 및 수술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혈관 촬영을 통해 기형 유무를 확인하고, 바로 수술을 했으면 한다는 말입니까? 현재 출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헤파린까지 써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혈관 촬영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 최대한 안전을 기하려면 먼저 수술할 준비부터 완벽하게 해 놓아야 합니다.”

“이사장님과는 말이 끝난 상태인가요?”

“어젯밤 상의를 모두 끝낸 상탭니다.”

마취과 과장도 이준영 교수와 잘 상의해 달라는 연락을 받긴 했다. 어떤 결과가 초래되든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초대 이사장과의 인연이 있었다. 마취과 과장으로서 가장 유리한 방안을 찾는 것은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수술 방 준비와 마취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술 팀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준영 교수가 힐끗 김진호 교수와 간호 부장을 보았다.

“일반 외과 담당 팀들로 충분합니다. 지금은 손발이 제일 잘 맞는 의료진과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일반 외과 담당이 김진호 교수와 고경아 간호사던가요? 그렇게 팀을 구성하면 되겠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간호 부장도 동의를 했다. 실력만 따진다면 고경아보다 나은 간호사들이 있겠지만, 수술할 의사들과 호흡이 가장 잘 맞아야 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빨리 준비합시다.”

수술 방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부산해졌다.

간을 절제하는 수술이다. 그것도 응급 수술이다.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 있었다. 만일 테이블 데쓰(Table Death)라도 발생한다면 책임 유무를 떠나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일단 수술 방은 해결됐다.

김지훈이 수술 방을 나가다 말고 고경아에게 손짓을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술이다. 고경아의 체력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고 간호사, 성미경 간호사도 들어와야 합니다.”

“네. 이미 말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혈관 기형 유무를 확인해야 한다. 마침 신현수에게 곧 혈관 촬영이 시작된다는 연락이 왔다.

이준영 교수와 함께 수술 방을 나서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가장 먼저 이상 소견을 제시했기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후! 잘못된 판단이면 어떻게 하지? 아니야. 차라리 그게 더 나을지도 몰라.’

혈관 기형이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신호선에게는 훨씬 유리했다. 가장 근본적인 치료인 간 절제 수술의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혈관 촬영실에 들어섰다. 이미 차폐복을 입은 검사 팀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동석 이사장은 물론 윤재철까지 보였다.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내과 심장 파트 교수의 말에 검사실이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주로 심장 혈관 검사이긴 해도 상당한 혈관 촬영 경험을 쌓았는데도 불구하고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혈관 촬영술이 시작됐다.

환자의 우측 서혜부(복부와 허벅지의 경계부)를 절개했다. 굵은 대퇴 정맥과 동맥이 드러났다. 함께 주행하는 대퇴 신경까지 신중하게 확인한 후 동맥에 도관을 삽입했다.

“슛!”

도관을 통해 소량의 조영제를 주입했다.

현상된 필름에서는 조영제가 하얀색으로 나타나지만, 모니터에서는 반대로 검게 보여야 동맥을 확인할 수 있다.

모니터에 굵은 동맥이 검은색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심장에서 뿜어 대는 혈류를 따라 조영제가 순식간에 희석되며 말단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아직 복부 대동맥에 들어서지 못했다.

“슛! 슛!”

조영제를 투여하며 도관을 심장 쪽으로 전진시켰다.

간동맥이 갈라지는 부위를 확인했다.

도관 내에 위치한 가느다란 유도용 철사를 조작했다.

일명 Guide Wire다.

복부 대동맥 안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던 철사가 꺾였다. 간동맥 안으로 진입한 것이다. 조금만 더 전진하면 좌우측 간동맥이 갈라지는 부위에 도달한다.

Y 자 모양의 정상적인 구조가 보일지, 아니면 좌측으로 두 개의 동맥이 다 주행할지 확인하기 직전이다.

김지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슛!”

조영제가 동맥을 따라 힘차게 흘렀다. 두 개의 동맥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답답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과 이준영 교수의 안색이 몹시 어두워졌다.

혈관 기형이다.

우측 간동맥이 좌측 간동맥과 나란히 주행하고 있었다. 혈관 촬영을 하게 된 이유였지만 최악의 결과이기도 했다. 좌측 간을 절제하며, 그 속에 숨어 있는 우측 간동맥을 보존해야 하는 것이다.

검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부분이 남았다.

기형으로 인해 우측 간동맥에서도 암에 혈류를 공급하는 혈관이 있다면 수술은 극도로 어려워지거나, 혹은 불가능할 수 있었다.

내과 교수의 나직한 말이 이어졌다.

“우측 간동맥 분지 확인합니다. 슛!”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암과는 무관했다.

“주행 경로 말고는 별문제 없습니다. 좌측 간동맥과 매스(Mass:덩어리) 확인하겠습니다.”

의사들은 환자 앞에서 습관적으로 암이라는 말은 물론 캔서(Cancer:암)라는 말조차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환자가 자신의 병명을 알 수도 있고, 아직 확진이 안 된 이상 입에 담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좌측 간동맥으로 도관을 밀어 넣었다.

“슛!”

간 말단으로 가면 갈수록 나뭇가지처럼 가늘어지는 동맥 분지들이 보였다. 한 갈래의 끝에서 검은 공처럼 보이는 음영이 나타났다. 혈관으로 복잡하게 얽힌 암 덩어리다.

“슛!”

다시 한 번 암의 혈류 공급을 확인했다.

그때 답답하다 못해 가슴을 짓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지훈도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방금 전에 보였던 현상이 착시였기만을 바랐다.

“슛! 슛! 슛!”

수차례에 걸쳐 조영제를 투여했다.

확실했다. 암 덩어리 내에 존재하는 혈관에서 간 조직으로 조영제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극히 미미한 양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고, 멈출 리도 없었다. 헤파린까지 투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영 교수가 내과 교수에게 검사를 마치자는 신호를 보냈다. 조영제와 헤파린을 이 이상 투여하다가는 환자에게 새로운 문제를 유발할 수 있었다.

“필름 최대한 빨리 현상합시다.”

모니터로 보는 것과 필름으로 보는 것은 현저한 차이가 난다.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정보를 얻어야 했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곧 필름이 나왔다.

모두들 말을 잃었다. 혈관 기형은 확실했고, 출혈도 생각 이상으로 양이 많아 보였다. 헤파린 때문만이 아니었다. 잠시 줄어들었던 출혈량이 점점 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결과를 확인한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내과 교수와 함께 신동석 이사장에게 혈관 촬영 결과를 설명한 이준영 교수가 즉시 수술실로 옮기라는 오더를 내렸다. 이미 모든 준비를 하고 검사를 받은 신호선이 곧바로 수술 방으로 옮겨졌다.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지금 바로 수술을 하겠습니다. 혈관 촬영실에서 보신 것처럼 기형만이 아니라 출혈까지 지속되고 있어 수술 자체가 극도로 위험합니다.”

“이 교수님, 부탁드립니다.”

“신기동 교수와 함께 수술을 하겠습니다. 김지훈과 손일석까지 들어오니까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평소 환자나 보호자에게 강한 믿음을 주던 이준영 교수도 신중하기만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조차 하지 않았다.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었다.

분위기가 극도로 무거워졌다. 가족 중 누군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중에는 윤서연도 있었다.

딸자식의 어깨를 어루만지던 윤재철이 조심스럽게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 교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교수님, 잘될 것이라 믿지만 정말 부탁드립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병원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회복되셔야 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 수술하신 것처럼 초대 이사장님도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신기동 교수님, 부탁드립니다.”

이준영 교수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볍게 숙인 후 수술실로 향했다.

그 시간, 수술 준비를 하고 있던 김지훈도 신현수와 마주하고 있었다.

“지훈아, 일석아, 부탁한다.”

“현수야, 걱정하지 마. 그리고 끝날 때까지 수술실에는 들어오지 않는 게 좋겠어. 만일 니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면 수술 팀에게도 문제가 생기는 거 알지?”

“알아. 그런데 너무 걱정이 돼. 불안해 죽겠어.”

그럴 것이다. 자신을 가장 아껴 준 할아버지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수술을 한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다른 환자였다면 이미 몇 번이고 수술 중 사망을 거론했을 것이다.

손일석도 한숨만 쉴 뿐 입을 열지 못했다.

불안해하는 신현수를 보던 김지훈이 슬며시 고개를 들며 주변을 보았다.

집도의 : 이준영 교수 및 신기동 교수.

보조의 : 김지훈, 손일석.

마취과 : 김진호 교수와 담당 간호사.

수술 보조 간호사 : 고경아, 성미경.

그 외 언제든 손을 보탤 다수의 의료진.

최고의 수술 팀이다.

결코 실패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현수야, 들어온 사람들을 봐. 이 중 못 믿을 사람 있어? 실력도 뛰어나지만 누구보다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잖아. 동료들을 믿어. 그러면 동료들도 널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신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잘난 의사도 혼자서는 수술조차 하기 힘들다. 믿고 함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기에 그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 그 사실을 알려 준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훈이었다.

무엇이 결정적인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혈관 기형과 지속되는 출혈도 김지훈이 아니었다면 제때에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신호선은 이미 치명적인 위기를 한 번 넘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 그랬다.

신현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지금 이 순간 신현수는 의사가 아니라 할아버지의 아픔을 직면해야 하는 손자일 뿐이었다.

“지훈아, 믿을게. 믿을게.”

윤재철이 수술을 했을 때 어렴풋하게 느꼈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야 알았다. 할아버지의 수술을 앞두고서야 어떤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하고, 치료해야 하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벌게진 눈으로 김지훈과 손일석을 본 신현수가 입술을 꽉 물고는 수술실을 나갔다.

복도에서 마주친 이준영 교수와 신기동 교수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는 급히 자리를 비켰다. 기를 쓰고 눈물을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

뒤늦게 연락을 받은 금경태 과장이 부들부들 떨었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혈관 촬영 필름을 보는 눈이 내내 떨렸다.

‘어떻게 알았지?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고령과 간암.

일주일 내내 지속된 출혈.

좌측 간 속으로 주행하는 두 개의 간동맥.

지금도 암 덩어리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피.

몸속을 돌며 응고를 방해하는 헤파린.

이 모든 요인이 환자에게는 죽음의 징후이자 선고였다.

전성기의 허경발 교수라고 해도, 제아무리 어려운 수술을 해냈다는 이준영이라고 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수술이었다.

그런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불안했다.

‘만일 수술을 성공한다면?’

두려움이었다.

지난밤 진평호와 나눈 말 때문일지도 몰랐다.

한 사람의 목숨과 맞바꾼 거액의 돈.

금경태 과장이 가운 윗주머니에 꽂힌 소형 녹음기를 확인하며 교수실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도 들지 못했다.

문득 녹음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워졌다. 수술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저주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스스로 만든 수렁이 온몸을 옥죄고 있었다.

따르르릉!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금경태 과장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간신히 전화기를 든 금경태 과장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렸다.

(금 과장, 수술 시작했다며?)

왠지 기대에 찬 진평호의 목소리에 온몸이 무너졌다.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감정이 가슴속을 헤집었다. 이제 단 한 가지 경우를 빼고는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성공은 안 돼.’

단 하루 전으로도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

그 시간, 이준영 교수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됩니까?”

“시작하셔도 됩니다.”

“메스.”

은색으로 빛나는 메스가 그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웠다.

마침내 수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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