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낭떠러지 (1)
강 형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영감님, 이미 예측하셨던 일이지 않습니까? 고정하시고 천천히 좀 말씀해 보세요. 완전히 손 떼라는 겁니까?”
“그랬으면 그 자리에서 들이받았지.”
“그럼요?”
“합동 수사를 하라네. 말이 좋아 합동이지, 저쪽에서 진평호를 맡고 우리 쪽은 다 잘리고 나만 남았어. 그쪽 대가리가 누군지 알아? 조 검사야, 조 검사. 나 햇병아리 때 진평호 수사권 가져가서 무혐의 처리한 거 강 형사도 알지? 차라리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게 낫겠다. 제길! 우라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어?”
답답한 마음에 물 한 컵을 벌컥벌컥 마신 서정호가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도 분이 가시질 않는지 허공에 대고 주먹질까지 해 댔다.
“그럼 우린 뭘 합니까?”
“조무래기 몇 넘겨주고 거길 캐래.”
“그나마 다행 아닙니까? 조무래기라고 해도 확실하게 털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요? 아직 우리가 확보한 자료들을 넘기지 않았으니까 끝난 것도 아니잖아요.”
서정호가 허탈하게 웃으며 서류 한 장을 건넸다. 강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환장하네. 더 이상 나올 게 없는 사람들뿐이네요. 어라? 금경태는 또 뭡니까?”
“최근 진평호랑 접촉이 잦다고 끼워 놓은 모양이야. 제길! 우릴 아주 병신으로 만들겠다 이거지.”
서정호의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혔다.
‘조 검사,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겠다 이거지? 진평호,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곱게 못 넘어가. 반드시 잡아 처넣을 테니까 기다려.’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손발을 다 잘린 형국이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소만 할 수 있다면 그간 수집한 자료들 중 상당수는 증거로 채택시킬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는 일일이 보고를 하고 지휘까지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진평호와 결탁했을 가능성이 높은 조 검사에게 자료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결코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보다 확실한 패가 필요했다.
다름 아닌 진상미다.
문제는 진상미의 존재와 가치를 조 검사 측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최대한 보안을 유지했고, 때문에 진상미도 김지훈을 만나는 척하며 은밀히 접촉을 했다. 그런데 비밀이 샌 것이다.
‘조 검사, 당신이 내 뒤를 밟았다 이거지? 더러운 새끼. 당분간 다른 사람과 절대 접촉하지 말라고 하길 잘했어. 조 검사도 진상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으니까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인데. 제길! 근데 왜 나하고도 연락을 끊은 거야? 혹시 동서한테는 연락을 할까?’
서정호가 눈빛을 굳혔다.
현재 확보한 자료와 함께 진상미를 증인으로 채택할 수 있다면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진평호를 잡아 처넣고, 그를 비호한 극소수의 검사들의 옷을 벗길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게 정의다.
“강 형사, 힘내자. 아직 끝난 거 아냐. 진상미를 찾아. 반드시 찾아야 돼. 증인으로 세우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다시 만나 봐야겠어.”
“조무래기들은요?”
무시하라는 손짓을 하려던 서정호가 갑자기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금경태 과장이 떠오르는 순간 묘한 감이 온 것이다. 조 검사는 형식상 조사 대상에 올렸겠지만 생각해 보면 진평호와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진평호가 공무원인 정한득을 만나는 건 이해가 되는데, 금경태는 도대체 왜 만나는 거지?’
“금경태 말고는 신경 쓰지 마.”
“예? 금경태야말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생각해 봐. 요새 진평호가 뭔가를 노리고 있잖아. 접촉하는 사람들을 볼 때 분명 큰 건인데, 그런 상황에서 금경태를 자주 만날 이유가 있겠어?”
서정호도 진평호가 병원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의료 쪽은 진평호의 욕심을 채워 줄 정도로 돈이 되는 분야가 아니었다. 병원을 노릴 동기가 없었다.
“콩팥이 안 좋은데, 그것 때문이 아닐까요?”
“잘은 몰라도 금경태는 그쪽 전문이 아니야. 설명하기 힘든데, 뭔가 있다는 감이 와. 어차피 압수 수색을 들어가면 할 일도 없는데 밑져야 본전이지, 뭐.”
압수 수색이라는 말에 강 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수사본부를 꾸렸는데, 벌써 압수 수색을 한단 말이에요? 그럼 조 검사님 쪽도 그동안 비밀리에 조사를 했다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있어? 일단 철저히 수사를 했다는 생색을 낸 후, 자료들 손보고 대충 끝내려는 수작이지. 분위기로 봐서는 다음 주 초반이면 수색 영장 떨어질 것 같으니까 서둘러. 진평호가 지금 꾸미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진상미에게만 집중해. 조 검사가 입도 벙긋하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하자.”
서정호의 모든 신경이 진상미에게 집중됐다.
지금까지 확보한 증거에 증인까지 더해진다면 누구도 진평호를 감싸 주지 못할 것이다. 조 검사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치고 싶었다. 진상미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금경태는 혹시나 하는 감에 불과했다.
서둘러 일어나던 강 형사가 힐끗 서정호를 보았다.
“영감님, 그런데 왜 이렇게 진평호에게 신경을 쓰시는 겁니까? 다른 사건 수사하다가도 툭하면 진평호 자료를 뒤지시곤 했잖아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나쁜 새끼잖아.”
당연한 말이다.
동시에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물끄러미 전화기를 보던 서정호가 손을 뻗었다.
“동서, 나야. 혹시 진상미한테 연락 없었어?”
(퇴원한 이후 연락이 없었는데, 왜 그러세요?)
“만일 연락이 오면 반드시 나한테 전화하라고 전해 줘. 그리고 나 이외에는 누구와도 접촉하지 말라고 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게 있어. 참! 금경태 과장은 요새 어때? 뭐 이상한 점 없어?”
(만날 똑같아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아니야. 하여튼 내 말 명심하고 있어.”
통화를 끝낸 서정호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정훈철 PD도 알아야 할 상황이었다. 용기가 있다면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긴 통화가 이어졌다.
***
신호선이 입원한 지 5일째다.
일요일 새벽에 입원을 했으니 목요일이다.
환자의 바이탈은 안정적이었고, 솟구쳤던 간수치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통증도 많이 줄어 이제는 하루 두세 차례 정도 진통제를 투여했다.
이 상태로만 간다면 일이 주 내에 수술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과장님, 신호선 환자분 상태가 호전되는 양상이지만 주의해야 하거나, 필요한 치료는 더 없습니까?”
회진 때마다 금경태 과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돌아오는 눈빛은 기분 나쁠 정도였지만, 그나마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의사라고 할 수 있기에 꾹꾹 눌러 참았다.
“넌 뭐 들었어? 혈액 검사나 잘 보라고 했잖아.”
정말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정말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중요한 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가 더 지났다.
신호선은 지난밤도 잘 버텼다. 근본적인 치료를 남겨 두었기에 아직은 얼굴이 어두웠지만 신현수도 간간이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김지훈이 혈액 검사지를 보며 눈가를 찡그리고 있었다.
꾸준히 감소하는 혈소판 수치.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헤모글로빈.
‘필요한 만큼 수혈을 했는데 왜 줄어들지? 출혈이 완전히 멈췄다면 지금쯤 정상 수치를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금경태 과장의 말이 유난스럽게 신경이 쓰였다.
출혈이 지속되는지를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초음파와 CT다. 하지만 방사선 노출 때문에라도 CT를 매일처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초음파를 시행했지만 기계가 갖는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정확도는 CT가 확실히 앞서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유달리 고민스러워하는 김지훈을 본 신현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훈아, 왜 그래?”
“응? 혈소판하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회복이 안 되네. 다른 환자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지만 할아버님의 경우는 좀 특별하잖아. 출혈이 계속되고 있는 건 아닐까? 금경태 과장이 혈액 검사 결과를 잘 보라고 했거든.”
“그 말 때문에 출혈을 의심하는 거야? 우리 할아버지라 마지못해 던진 말일 수도 있어. 다른 교수님들은 아무 말씀도 없으시잖아. 동반돼야 하는 증상도 없고.”
신현수 역시 금경태 과장을 불신하고 있었다.
“만일 시간당 출혈량이 상당히 적다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만일 6일 내내 그런 상태였다면 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양은 될 것 같아. CT를 하루 앞당겨 찍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신현수가 입술을 오므렸다.
일요일 새벽과 월요일, 그리고 화요일까지 모두 세 차례를 찍었다. 거의 변동이 없었고, 증상도 완화되고 있었기에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지훈의 말이었다. 걱정이 돼 하는 말로만 들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준영 교수에게 노티를 하고 CT를 다시 찍었다. 아직까지는 검사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조차 신호선에게 무리였다. 신현수가 CT를 찍는 내내 극도로 주의를 기했다.
김지훈도 촬영실 모니터를 보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변동이 없기만을 바랐다. 지금은 간 내에 국한된 출혈이지만 만일 출혈 부위가 조금이라도 커졌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간을 싸고 있는 막이 압력을 못 이기고 찢어진다면 출혈 부위를 압박하는 유일한 구조물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곧 대량 출혈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한 컷 한 컷 모니터에 간 단면이 나타났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느낌이 안 좋네.’
일단 필름으로 나와야 정확하게 크기를 잴 수 있었다. 신호선을 중환자실로 옮긴 후, CT를 가져올 인턴만 기다렸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인턴이 가쁜 숨을 내쉬며 봉투를 내밀었다.
필름을 걸었다. 출혈 부위의 크기를 쟀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답답한 한숨을 터트리고 말았다.
간암을 둘러싼 출혈 부위가 커져 있었다. 지름이 전보다 0.5센티미터 이상 더 커졌으니, 하루에 1밀리미터 정도의 속도로 확장된 것이다. 그 탓에 증상은 미미했지만 출혈은 계속된 상태였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지켜보는 것이 유리할지,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알 길이 없었다.
노티를 받고 중환자실로 온 이준영 교수도 눈가를 잔뜩 찡그렸다.
“아직은 수술을 하는 것이 훨씬 위험하고 불리해. 일단 지혈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모두 써 보자. 신현수, 아버님에게 바로 연락해.”
신동석 이사장이 반드시 알아야 할 상태였다.
겉보기에는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서서히 낭떠러지 끝으로 밀려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준영 교수의 판단은 합당했다. 수술과 보존 치료 중 더 안전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있었다. 신호선의 상태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늦지 않게 깨달았다. 아무리 사소해도 이상 소견이 있다면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단 한시도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서도진과 박순용은 물론 중환자실 간호사들에게도 현재 상황을 철저히 주지시켰다.
“도진아, 킵(Keep)할 때 정신 바짝 차리고, 교대할 때도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 만일 불가피한 일이 생기면 내가 미리 얘기해 놓을 테니까 일석이한테라도 부탁해.”
단단히 주의를 준 김지훈이 지금까지 찍은 CT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문득 미처 보지 못한 병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상 같은 부위가 찍힐 수 없기 때문에 날짜마다 조금씩은 단면이 달랐다. 따라서 담도와 혈관 역시 제각각 다르게 관찰된다.
‘경로가 좀 이상하네. 이게 정상적인 건가?’
해부학적 구조가 왠지 모르게 이상하면서도 애매모호하게 보였다. 부분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탓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간암 및 핏덩어리가 주변 구조물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크기가 제법 크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 말고도 걱정할 거리는 많았다.
“괜찮겠지.”
김지훈이 입맛을 다시며 신호선의 곁을 지켰다. 홍조 띤 얼굴과 규칙적인 심장박동 소리에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할아버님, 힘내세요. 반드시 멈출 겁니다.’
노란색의 혈소판 농축액과 응고 인자가 함유된 신선 혈장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을 신호선의 육신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고 보니 현수가 할아버지를 닮았네.’
문득 신현수의 말이 떠올랐다.
‘지훈아, 고맙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이 와중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스쳤다.
***
일과를 끝내고 킵을 하던 김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금경태 과장이 중환자실로 들어온 것이다. 퇴근할 때가 한참 지난 시간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김지훈, 오늘 찍은 CT 걸어 봐.”
상당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딘가 초조해하는 기색까지 느껴졌다.
‘정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양이네. 다른 환자에게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
이유가 뭐가 됐든, 얼마나 도움이 되든 간에 금경태 과장의 지식과 실력이 필요한 때였다. 아닌 말로 혈액 검사를 유의해 보라는 말이 아니었으면 출혈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발견했을 것이다.
단 한 시간도 함부로 허비할 수 없는 신호선의 상태를 생각하면 고마워해야 할 지경이었다.
CT를 거는 김지훈을 보던 금경태 과장이 신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무슨 일인지 이마에는 식은땀마저 맺혀 있었다.
‘내가 잘해야 한다는 소리가 그거였어?’
평소 전화 한 통 안 하던 진평호였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비서를 통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 주에만 세 차례나 직접 전화를 했다.
오늘 마지막에 들은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금 과장, 신호선이 회복되면 우리 일에 차질이 아주 커져. 반면에 정말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별 뜻은 없어. 다만 기회란 놈은 쉽게 찾아오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혹시 금 과장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만일 좋게 일이 진행된다면 금 과장도 한몫 제대로 챙길 수 있을 거야. 나 그렇게 통이 작은 사람이 아니야.)
순간 찬바람이 등짝을 휘감았다.
신호선이 죽고 사는 문제는 누구도 모른다. 그런데 회복과 기회를 동시에 운운하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말한 것이다. 아무리 돈과 명예가 중요하다고 해도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을 범할 수는 없었다.
‘진평호, 내 인생을 송두리째 걸라는 말인데, 당신 인생도 끝날 수 있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녹음을 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 한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잘된 일일 수도 있었다. 조금만 더 구체적인 말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돈이 될 것이다. 진평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을 잡게 되니 말이다.
‘치료를 방해하라는 말이든, 회복시키지 말라는 말이든 단 한마디만 나오면 돼.’
이를 위해서는 먼저 신호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했다. 그래야 진평호를 만나 자연스럽게 말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호선이 어떻게 되든, 그건 알 바 아니었다.
“특별한 변동이 있어?”
“예. 출혈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래?”
금경태 과장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 각오를 단단히 하는 얼굴이었다.
금경태 과장이 입을 꾹 다문 채 뚫어질 정도로 자세하게 CT를 보았다. 상당히 오래 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 만에야 시선을 돌린 금경태 과장이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것 봐라? 상황이 희한하게 돌아가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방금 전과는 달리 갈등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보였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래?’
그 짧은 시간에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다니 의아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