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기회와 위기 (1)
김지훈이 살짝 어깨를 흔들어 긴장을 풀었다. 확실히 부담이 되는 자리였지만, 그렇기에 더욱 확신을 갖고 정확한 소견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CT와 초음파 소견을 종합한 결과, 좌측 간에 발생한 지름 1센티미터의 간암의 출혈로 인해 간 실질이 손상받은 상탭니다. 하얗게 보이는 이 부분이 암이고, 주변을 둘러싼 다소 검은 부분이 피가 차 있는 부분입니다. 다른 장기에 이상은 없고, 특히 전이 암일 경우를 대비해 대장 쪽을 유념해 봐야 하는데 다행히 깨끗한 상탭니다. 현재 환자분 상태는 통증성 쇼크에서 벗어나…….”
평소 다른 환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최대한 빠짐없이 설명을 했다. 이준영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 방침은?”
“우선 환자 상태를 안정시키고 출혈을 제어해야 하며, 간 실질 손상에 따른 간 기능 악화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 이후 이차 출혈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간 절제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간 절제라는 소리에 신동석 이사장이 나직한 신음을 내뱉었다. 머릿속으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까지는 그렇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간 내에 국한됐지만, 만일 간을 싸고 있는 막이 찢어질 정도의 출혈이 재차 발생하면 응급으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후가 극히 불량하게 됩니다.”
윤재철의 눈빛도 답답해졌다.
“치료와 수술에 따른 문제는 없겠어?”
“간 내 출혈 자체로 위험한 데다 환자분이 고령이기 때문에 치료 중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상당히 많습니다. 다행히 수술까지 시행하게 된다고 해도, 여전히 간동맥이 좌우 동맥으로 갈라지는 부위에 근접해 간암이 발생했다는 문제가 남습니다. 수술 중 혈관 손상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설명을 마친 김지훈이 입을 꽉 다물었다. 좋지 않은 말만 해야 했지만 이것이 환자의 정확한 상태였다. 사실 간암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며 출혈을 일으킨 간암 환자가 어떤 예후를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차마 사망률이 훨씬 높다는 말까지는 못하겠다. 현수는 알고 있을까? 그렇겠지.’
이준영 교수도 김지훈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잘 봤다.”
특별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이준영 교수가 간암과 좌측 간동맥으로 보이는 구조물을 짚었다.
“이사장님,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암과 동맥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은 데다 간동맥이 갈라진 부위와도 상당히 가깝습니다. 수술은 절대 피할 수 없고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지만, 출혈까지 발생한 상태이기 때문에 각오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신동석 이사장이 흠칫 놀랐다.
“잘 회복되어서 수술을 받게 되더라도 수술 중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불행히도 그렇습니다. CT가 정확하다고는 하지만,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수술 중 시야도 상당히 나쁠 수밖에 없고, 만일 간동맥의 원줄기를 건드리게 된다면 출혈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온전히 기술적인 문제라 의사의 실력에 따라 다를 수는 있습니다.”
환자의 회복을 자신하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더구나 의사의 실력에 좌우된다는 말까지 들었다. 겸손의 말을 할 때도, 들을 때도 아니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이혁민 교수를 보았다. 누구보다도 신뢰하고 있는 의사이기 때문이었다.
“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이준영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치료 중에도 사망하실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간암의 크기는 작지만 정말 제거하기 어려운 부위에 발생했습니다. 무사히 수술을 하게 되더라도 퇴원하실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의사들의 솔직한 의견이었지만 가족들에게는 절망적인 말이었다. 신동석 이사장이 답답한 한숨만 내쉬었다. 자신을 낳아 준 분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해져야 할 때였다.
이준영 교수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일반 외과에서 가장 어렵다는 췌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낸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도 금경태 과장은 물론 다른 병원의 의사들까지 고개를 저었던 수술을 말이다.
그뿐인가? 당장 눈앞에 있는 윤재철은 산증인이었다. 자신의 파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혁민 교수와 함께 식도에 침범한 말기 위암을 수술했다.
일일이 기억을 해내며 이준영 교수의 실력을 가늠할 이유는 없었다. 10년의 공백이 주는 우려를 말끔히 씻은 지 이미 오래였다.
‘이준영 교수와 이혁민 교수가 힘들다면 어떤 의사를 찾아가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겠지.’
답은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이기에 보다 확실한 답을 듣고 싶었다.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었다. 자식이 의사다. 비록 전공의라고는 하지만 일반 외과 의사다.
이준영 교수에게 양해를 구하고 윤재철과 함께 신현수를 찾았다. 통증이 많이 사라져 이제 막 잠이 든 신호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후우! 어쩌면 나보다 네 마음이 더 아플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신호선은 신현수를 아끼고 사랑했다.
더욱 답답해진 마음을 추스른 신동석 이사장이 조용히 신현수를 불렀다. 환자 앞에서 나눌 말이 아니었다.
처치실 밖으로 나온 신현수가 급히 눈물을 닦았다.
“현수야, 할아버님은 어떠시니?”
“지금은 괜찮으세요. 중환자실로 빨리 옮겨야 하는데 아무 말씀 없으셨나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초조함만 가득 실려 있었다.
“그래야지. 그런데 이준영 교수님께서 치료부터 수술까지 모두 상당히 어렵다는 말씀을 하시더구나. 물론 전적으로 믿어야 하지만,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구나.”
약간은 주저하는 기색이었다. 대학 병원의 이사장이라고 해서 다른 환자의 가족들과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자신의 병원에 더없는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다고 해도, 의사 개개인의 수준까지 최고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신현수도 신뢰를 넘어선 불안과 최선의 치료를 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명성이 다는 아니지만, 만일 더 인정받는 의사가 있다면 옮기고 싶을 것이다.
‘아버지, 저도 똑같은 마음입니다. 할아버지께서 최선의 치료를 받길 원합니다. 그래야 일어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호선이 지금 얼마나 위중한 상태인지 잘 알고 있는 신현수였다. 조그만 충격과 방심에도 여지없이 깨지고 말 얇디얇은 유리병과 다름이 없었다. 도리어 그 때문에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준영 선생님과 지훈이 이상으로 믿을 수 있는 의사는 없습니다.”
“김지훈?”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같은 전공의를 언급하다니, 신동석 이사장의 입장에서는 의아한 일이었다.
“뛰어난 실력이 있다고 해서 최고의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지훈이는 할아버지를 자신의 할아버지처럼 치료할 겁니다. 아버지,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의사가 바로 김지훈이었습니다. 이준영 선생님과 지훈이를 믿으세요.”
윤재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돈, 맞습니다. 저도 수술을 받고 그동안 쭉 치료를 받다 보니까, 의사들이 쏟는 정성에 따라 환자들 회복이 달라진다는 것이 보이더군요. 현수 말대로 믿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선의 치료를 받으실 겁니다.”
신동석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현수와 윤재철의 확고한 믿음에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우려와 불안이 사라졌다. 이젠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회복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정을 내린 신동석 이사장이 먼저 신호선을 찾았다. 그때 막 뒤늦게 연락을 받은 윤서연이 도착했다.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혈액에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할아버지! 아버님, 할아버지 괜찮으신 거죠? 현수야, 어떻게 된 거야?”
눈도 뜨지 못하는 신호선의 모습에 발만 굴렀다.
신현수가 윤서연의 어깨를 두드렸다.
“서연아, 할아버지 괜찮으시니까 걱정 마.”
“그런데 왜 눈도 못 뜨셔?”
“이제 막 잠이 드셔서 그래. 이따가 설명해 줄게.”
마치 손녀딸처럼 윤서연을 예뻐했던 신호선이었다. 윤서연도 친할아버지처럼 따랐다. 급기야 눈물을 펑펑 쏟았다. 모두들 참고 있던 슬픔이 북받치는지 눈가가 벌게졌다.
‘아버님, 이렇게 가시면 안 됩니다. 현수와 서연이가 결혼하는 걸 보셔야죠. 아니, 증손자도 꼭 안아 보셔야 합니다.’
가족들의 마음은 알지만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신호선의 치료는 단 한시도 뒤로 미룰 수 없었다. 이준영 교수와 김지훈이 신동석 이사장을 찾았다.
“응급실에서는 더 이상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 중환자실로 옮겨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신호선을 중환자실로 옮겼다.
앞장서 가던 김지훈이 힐끗 뒤돌아보며 나직한 숨을 내쉬었다. 속속 도착한 가족들 모두 초조한 기색으로 뒤를 따랐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슬픔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돈을 두고 서로 싸우고 반목하는 가족들을 간간이 보아 왔다. 돈이 많을수록 더 심해져 추태라는 말로도 부족한 경우까지 보았다.
‘다들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현수야, 서연아, 힘내. 나도 최선을 다할게.’
노련한 간호사들이 능숙하게 신호선에게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다. 바이탈은 안정적이었고, 의식은 거의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신현수가 오더를 내고 있는 김지훈과 박순용 곁으로 다가왔다.
“현수야, 빠진 거 없지?”
생각했던 오더에서 단 하나도 빠짐없었다.
신현수가 아무 말 없이 김지훈에게 눈길을 주고는 신호선의 옆에 앉았다. 이미 윤서연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예전 윤재철이 수술을 했을 때처럼 퇴원할 때까지 최대한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김지훈이 입술을 깨물었다.
‘후우! 앞으로 남은 날이 모두 고비일 텐데, 잘 견디실 수 있을까?’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일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가 벌어진다고 해도 의사의 한계라는 말로 위로받고 싶지는 않았다.
일요일 저녁.
윤재철이 신호선의 상태를 살피러 온 이준영 교수를 찾았다. 환자에 대한 걱정과는 또 다른 심각함이 배어 있었다.
김지훈이 함께 있었지만 힐끗 시선을 주고는 이내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전공의에게 할 얘기는 아니지만, 김지훈 선생이 직접적으로 치료를 담당하니까 들어야 하겠지.’
“이 교수님, 초대 이사장님께서 무사히 회복되실 가능성이 얼마나 됩니까?”
“간암으로 인한 간 내 출혈은 워낙 드물어 확률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 자체로 사망률이 꽤 높습니다. 수술 후 사망률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예측도 하기 힘들다는 말씀이군요. 알겠습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눈치가 이상했다.
이준영 교수도 그런 모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다른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윤재철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지만, 병원을 위해서라도 절대 돌아가셔서는 안 되는 상황입니다. 이사장님은 자식이기에 절대 말씀을 못 드릴 테고, 저 역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초대 이사장님의 회복에 병원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은 아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신동석 이사장이 실권은 물론 정식으로 이사장 자리를 물려받은 지 오래였다. 설혹 신호선에게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병원의 미래가 걸려 있다니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잠시 윤재철을 응시한 후 입을 열었다. 병원 역시 돈과 이권이 오고 가는 곳이다. 의사가 걱정하는 면과는 다른 불안과 걱정이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치료에 임하는 의사들 모두 최선을 다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아한 얼굴을 뒤로한 윤재철이 답답한 한숨만 내쉬었다. 백제 병원 문제로 금경태 과장의 뒷조사를 하던 중 뜻밖에도 진평호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돈과 권력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고 백제 병원 정도를 노릴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병원 전체를 노리고 있다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병원 확장으로 신동석 이사장은 상당한 부채를 안은 상태였다. 자신이라면 분명 이런 시기를 노렸을 것이다. 아직까지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었다.
만일 추측이 사실이라면 치밀하게 대응해야 할 때였다. 신동석 이사장도 마음이 진정되면 똑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얼음처럼 차가운 냉정을 유지할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아버지를 각별하게 모셔 온 신동석 이사장이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쓰러지시다니. 만일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상속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국세청이 세금 납부를 유예해 줄까? 만에 하나 담보로 잡힌 부동산을 처리해야 한다면 은행은 당연히 대출을 회수하려 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그런 돈을 조달할 방법이 없어. 진평호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지.’
신호선의 재산은 대부분 부동산이었다. 신동석이 재단 이사장을 물려받긴 했지만 미리 재산 상속을 받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규모가 작지 않기에 상속세가 막대했다.
결국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문제는 부동산 대부분이 담보로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자칫 일이 틀어지면 재단에 대한 지배권까지 잃을 수 있었다.
윤재철의 고민이 깊어졌다. 자신이 재단 지분을 갖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도리어 금전적으로는 진평호가 재단을 접수하는 편이 훨씬 유리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병원 재단은 비영리 재단이다. 자신의 역할과 기여에 따른 합당한 대가만이 허락된다.
재산 증식 수단이 될 수 없는 병원 재단을 노린다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진평호는 결코 만족할 만한 돈이 되지 않는 병원을 유지할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딸과 사위의 미래는 물론, 환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병원과 의사들을 지키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이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주어진 일일지도 몰랐다.
‘죽기 전에 반드시 깨끗하게 정리해야 돼.’
말기 암 환자의 두려움은 여전했다.
***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눈을 뜨자마자 중환자실로 내려간 김지훈이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신현수가 눈가를 비비며 다가왔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샜는지 눈이 뻘겠다.
“하루 이틀 싸움도 아닌데, 눈 좀 붙여.”
“난 괜찮아. 결과는 어떻게 나왔어?”
“지금은 좋을 리가 없잖아. 할아버님 통증은 없으시지?”
불과 두 시간 전에 다녀간 김지훈이었다. 서도진과 박순용도 번갈아 환자 곁을 지켰다. 상태를 모를 리 없었다.
신현수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나직한 한숨만 내쉬었다.
검사 결과는 예측대로 상당히 나빴다.
출혈로 인한 간 실질 손상으로 간 효수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치료의 관건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을지 모르는 출혈을 막고, 간 기능을 최대한 빠르게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야 원인 질환인 간암을 해결할 수 있다.
김지훈이 환자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오더를 냈다.
곧 이준영 교수의 회진이 이어졌고, 신동석 이사장을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검사 결과가 좋진 않지만 예상했던 일입니다. 필요한 치료를 하면서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 출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복부 CT를 다시 시행하겠습니다.”
딱히 변동이 없었기에 할 말도 많지 않았다.
회진을 끝낸 후, 금경태 과장을 기다리는 김지훈의 표정이 묘했다. 교수들과 회진을 돌고 있는 신현수를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금경태 과장은 혹시 우리가 모르는 치료 방법을 알고 있지는 않을까? 만일 경험이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잠시 후, 금경태 과장이 올라왔다.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로 회진을 돈 후 중환자실로 향했다. 일반 외과 과장이니 당연히 소식을 들었을 테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중환자실에 들어서자마자 환자 상태를 살핀 금경태 과장이 검사 결과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복부 CT를 보던 금경태 과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묵묵히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간암 환자를 두고 누구도 금경태 과장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어휴! 자존심이 상했겠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다고 해도 모른 척할지 몰라. 연락을 했어야 했나?’
왠지 후회가 됐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의사는 감정이나 자존심을 접는 것이 마땅했다. 아무리 싫다고 해도 평생 간담도를 해 온 의사다. 지금이라도 치료에 도움이 될 조언을 구해야 했다.
김지훈이 짧은 숨을 몇 번 내뱉은 후 금경태 과장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