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위기와 기회 (2)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며 정적이 흘렀다. 응급실 문이 벌컥 열리며 신현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훈아! 일석아!”
드르르륵!
앰뷸런스에 딸린 간이침대가 거친 소리를 내며 처치실로 향했다. 와이셔츠가 땀으로 범벅된 신현수가 바짝 붙어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할아버지, 눈 떠 보세요.”
다급한 목소리였다.
침착함을 잃은 신현수는 도움이 될 수가 없었다. 김지훈이 신현수를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대처했다.
“현수야, 우리에게 맡기고 진정해. 환자분부터 침대로 옮깁시다.”
하나! 둘! 셋!
셋 소리와 동시에 침대보를 번쩍 들어 환자를 처치실 침대로 옮겼다.
모두가 노련한 의료진들이다. 간호사들이 재빨리 심전도 단자를 가슴에 붙이고 모니터에 연결했다. 동시에 혈압과 박동 수를 측정했다.
“바이탈 어때요?”
“혈압 100에 60이고, 호흡수는 분당 30회가 넘어요. 박동 수는 130회예요.”
불안정한 바이탈, 나직한 신음과 흐릿한 의식, 창백한 안색과 이마를 따라 흐르는 식은땀, 자극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손과 발.
쇼크 상태에 빠진 전형적인 환자의 모습이었다.
김지훈이 곧바로 환자의 호흡 상태와 동공반사를 확인했다. 다행히 뇌손상을 의심할 직접적인 징후는 없었다. 일단 환자 상태를 안정시킨 후 원인을 찾아야 했다.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 간호사, 수액 달고 포터블(Portable) 불러요. 혹시 모르니까 미리 수혈 준비까지 하세요. 인턴 선생, 소변 줄 끼우고 소변량 체크해. 일석아, 중심 정맥 잡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김지훈이 직접 비지에를 했다. 간호사들 역시 정확하게 대처했다. 반복적으로 바이탈을 재며 수액을 연결하고, 혈액을 채취했다. 쇄골하정맥에 굵은 도관을 능숙하게 삽입한 손일석이 수액을 추가로 연결했다.
“수액 풀(Full)로 틀까?”
“풀로 틀자. 인턴 선생, 소변은?”
“시간당 30cc 이상은 나올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 간호사, 수액 속도 그대로 유지하고, 포터블 빨리 오라고 하세요.”
곧 포터블(이동식 방사선 촬영 장치)이 도착해 흉부 촬영을 했다.
혈액 검사를 비롯해 엑스레이까지 나오려면 약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때였다.
한쪽에 서서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신현수를 본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누구보다도 침착하고 냉정하게 환자를 대하는 현수가 이럴 때도 있네. 가족이 아프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
“현수야, 괜찮으실 테니까 진정해. 어떻게 된 일이야?”
신현수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한 시간 정도 전쯤에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셨어.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증상이 심하긴 했지만, 상복부 통증이라 위경련이 발생한 줄 알고 일단 상비약을 드렸어. 평소 속이 자주 쓰리다고 하셨거든.”
“위경련으로 보였단 말이지. 그래서?”
“그런데 통증이 점점 심해지시는지 웬만해서는 아프다는 말도 하시지 않던 분이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시는 거야. 왠지 느낌이 안 좋아서 급히 준비를 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현관문을 나오다 말고 그대로 쓰러지셨어.”
의사라고 해도 아무런 장비가 없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호흡과 박동 수 등만 체크한 후 앰뷸런스를 부르고, 첫 번째로 기억난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뜻밖에도 김지훈이었다.
일이 있어 외출한 아버지와 오늘 당직인 이혁민 교수에게는 이동을 하면서 연락을 했다. 신현수도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아마도 응급실에서 가장 정확하고 확실하게 대처할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소 지병은 없으셨어?”
“속이 안 좋으신 것 이외에는 건강하셨던 분이야. 작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없었어.”
“혹시 가족들 모르게 넘어지시거나 그런 건 아닐까?”
고개를 흔드는 신현수를 보며 김지훈이 세심하게 환자의 복부와 흉부를 살폈다. 내부 장기가 손상될 정도라면 분명히 멍 자국이 남아 있거나, 혹은 늑골이 불안정하게 만져질 것이다.
특별한 이상 소견을 찾지 못했다.
‘외상이 아니라면 도대체 원인이 뭐지?’
심전도 모니터를 확인했다.
띠띠띠띠띠!
빠르게 수액이 투여됐지만 아직도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복부 내 장기의 문제라면 배가 불러올 텐데, 그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신현수의 말과는 달리 저혈량성 쇼크가 아닐 수도 있었다.
“할아버지, 눈 떠 보세요. 저 현수예요.”
환자가 눈을 뜨긴 했지만 정확하게 눈을 맞추지는 못했다. 아직도 쇼크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손일석에게 잠시 환자를 맡긴 김지훈이 차트를 찾았다. 초대 이사장인 만큼 병원 기록이 있을 것이다.
85세 남자 환자, 신호선.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위염으로 진료를 받은 것 이외에는 특별한 병력이 없었다. 마지막 받은 검진 결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
‘평소 건강하셨고, 혈압이나 당뇨도 없으셨던 분이 갑자기 쓰러지셨다? 동공반사는 괜찮지만 혹시 뇌 병변인가?’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열어 놔야 했다.
속속 검사 결과가 나왔다.
혈액 검사상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흉부 촬영상 폐는 깨끗했고, 골절도 보이지 않았다.
비지에이(aBGA:동맥혈 가스 분석)에서 산성도가 다소 높아졌지만 불안정한 호흡에 기인한 결과였다.
전체적으로는 특별한 이상이 있다고 볼 수 없었다.
눈가를 잔뜩 찌푸리며 결과지를 확인하던 김지훈이 다시 한 번 환자의 복부를 진찰했다.
약간은 상태가 호전된 환자가 뚜렷한 반응을 보였다. 우상복부를 누를 때마다 신음 소리를 내며 손을 휘저었다.
통증을 느끼는 것이 분명했지만 쇼크까지 유발할 만한 질환을 유추할 수가 없었다.
“일석아, 뭔지 모르지만 배 속이 문제인 것 같지?”
“그런 것 같아. 빨리 CT부터 찍고, 초음파까지 하자. 간호사, 방사선과 연결 좀 해 줘요.”
“CT는 지금 바로 찍으면 돼요. 김지훈 선생님, 환자분 옮길까요?”
“바이탈 다시 체크하고 바로 옮깁시다. 브레인(Brain)까지 찍는다고 연락해요.”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의식이 흐릿한 경우, 뇌 병변은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
곧 브레인 및 복부 CT 촬영이 시작됐다. 환자의 전신을 기계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신현수가 차폐복을 입고 수시로 환자를 살폈다.
위이이잉!
커다란 기계에서 나직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모니터에 뇌 단면이 차례차례 떴다. 뇌출혈은 물론 부종조차 의심할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뇌 병변은 아니네. 바로 진행하죠.”
환자 옆에 선 신현수에게 뇌는 괜찮다는 신호를 한 김지훈이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폐 단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까만 폐와 하얀 늑골이 정상적으로 보였다. 늑막에도 아무런 이상이 보이지 않았다.
1센티미터 간격으로 한 컷 한 컷 찍어 내려갔다. 마침내 커다란 간과 위 상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섯 컷쯤 지나갔을까?
김지훈과 손일석이 눈가를 찌푸렸다. 어느새 촬영실로 들어와 있던 신현수는 아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예상대로 복부에 병변이 있었지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좌측 간에서 경계가 불명확한 덩어리가 보였다. 내부까지 지저분하게 보이고, 사이즈가 무려 4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아 십중팔구는 암이다. 불과 1년 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의아한 일이었다.
상복부를 지나 대장 하부까지 모두 찍었다. 간혹 대장암이 발생해 간에 전이가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다른 부위의 종물은 보이지 않았다.
김지훈이 슬며시 신현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일석아, 대장은 깨끗하지?”
“그렇게 보이네.”
“기사분, 조영제 투여하고 병변 부위는 5밀리미터 간격으로 다시 찍읍시다.”
이런 경우 조영제 투여는 필수다.
혈관을 따라 흐른 조영제는 방사선 촬영상 밝게 나타난다. 악성이거나 혈관종의 경우 덩어리 내에 혈관이 상당히 많아 조영제를 투여하면 하얗게 보인다. 이를 이용해 종물 내의 혈관 분포 및 정확한 경계를 알 수 있고, 악성과 양성까지 감별할 수 있다.
다시 바이탈을 체크한 후 조영제를 투여했다.
위이이잉!
나직한 기계음이 울렸다.
좌측 간의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간은 하얗게 보였지만 여전히 다소 어두운 음영이었다.
‘암이 아닌가? 혈관종도 아니고 양성이 이렇게 보일 수 있나? 그런데 경계는 왜 저렇게 불분명하지?’
눈에 바짝 힘을 주고 모니터에 집중했다.
불과 두세 컷이 지난 후에 하얗게 빛나는 음영이 관찰됐다. 조영제가 흐르는 혈관이 밀집돼 있다는 의미였다.
답답한 한숨이 터졌다.
분명히 간암이다.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나머지 부분은 피였다. 지름 1센티미터 크기의 암 속에 있던 혈관이 터지며 간 내 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환자가 보인 증상도 설명이 됐다. 외견상 저혈량성 쇼크와 비슷하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간 내 출혈로 극심한 통증이 발생하며 나타난 증상이었다. 상당히 드물게 볼 수 있는 Pain Shock(통증성 쇼크)가 분명했다.
김지훈과 손일석이 조용히 환자를 응급실로 옮겼다. 신현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후우! 일 년 전에 멀쩡했던 간에서 암이 발생한 것도 모자라 출혈까지 하다니, 정말 알 수가 없네.’
문득 어떤 부와 명예도 병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마다 검진을 했다면 예외적인 일이긴 했지만 그것도 운명일 것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이혁민 교수가 도착해 있었다.
“선생님, 오셨습니까?”
“김지훈, 어떻게 된 거야?”
김지훈이 간호사의 손짓에 머뭇거렸다. 초음파실에 방사선과 교수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혁민 교수가 힐끗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
“핵심만 먼저 말해 봐라.”
“예, 선생님. 좌측 간에 발생한 1센티미터 크기의 간암에서 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원 당시에 저혈량성 쇼크로 보인 증상은 심한 통증으로 인한 페인 쇼크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지금 초음파가 준비된 것 같습니다.”
CT와 초음파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두 개의 검사를 취합하면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혁민 교수까지 함께 초음파를 확인했다. 간암으로 인한 출혈이 더욱 확실해졌다.
응급실로 환자를 옮기는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초대 이사장을 떠나 신현수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운 탓이었다.
눈가가 벌게진 신현수의 얼굴이 안타깝기만 했다.
“CT 나왔나? 보자.”
복부 CT를 걸었다.
응급실 차트를 확인한 이혁민 교수가 CT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당직을 떠나 간담도 파트에서 치료해야 할 환자였다.
이혁민 교수가 생각을 막 정리했을 때, 신동석 이사장이 도착했다. 어찌 된 일인지 윤재철이 함께 있었다.
당황스러운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난 이사장님께 설명하고 있을 테니까, 김지훈 니는 이준영 선생님에게 빨리 노티해라. 손일석, 언제 바이탈이 흔들릴지 모르니까 곁에서 잘 지켜봐. 신현수, 할아버님은 일석이에게 맡기고 나랑 같이 가자.”
모두들 재빨리 움직였다.
이혁민 교수가 신동석 이사장에게 설명을 하는 동안,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에게 침착하게 노티를 했다.
(지금 바로 간다.)
언제나 한결같은 스승이었다. 특별한 일이 있어도 환자라면 언제든 뛰쳐나올 것 같았다.
“선생님, 그리고 환자분이 초대 이사장님이십니다. 이혁민 교수님과 이사장님이 와 계십니다.”
(그래? 알았다.)
약간은 놀란 것 같았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다.
‘환자는 누구나 다 똑같다는 말씀이겠지?’
노티를 한 김지훈이 손일석과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혈액 응고제와 동시에 신선 혈장 및 혈소판 농축액을 투여했다.
윤재철과 이혁민 교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신현수는 눈가가 벌게진 채 환자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신동석 이사장은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혈액을 보며 아들의 어깨를 꽉 잡고 있었다. 손이 떨리는 것 같았다.
김지훈이 콧등을 찡그렸다.
‘할아버지가 현수를 굉장히 아꼈던 모양이네.’
띠! 띠! 띠! 띠! 띠! 띠!
다행히 혈압과 박동 수가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극심한 통증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며 스스로 눈을 뜨고 가족들도 알아보았다.
신호선이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사장, 자네 여기 왜 와 있어? 난 괜찮아. 사돈까지 여기 웬일이십니까?”
“아버님, 괜찮으십니까?”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현수야, 나 괜찮다. 다 큰 놈이 눈물은.”
힘 하나 없는 목소리에 신현수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평소 침착하고 냉정했던 신현수라 그런지 가슴이 착잡하기만 했다.
문득 그리운 이들이 생각났다.
아픈 가족을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고통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후회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슬픔 때문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김지훈이 입을 꼭 다문 채 손일석을 보았다.
‘일석아, 이준영 선생님 오실 때가 거의 다 됐어. 나 스테이션에 있을게.’
‘그래. 여긴 내가 있을게.’
스테이션으로 나와 이준영 교수를 기다리던 김지훈이 마음을 다잡고 복부 CT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간암으로 인한 간 내 출혈은 극히 드물지만 치명적인 경우가 많았다. 만일 두 번째 출혈이 발생한다면 수술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 있었다.
‘안정이 되는 대로 빨리 수술하는 것이 원칙인데, 고령이라 괜찮으실지 모르겠네.’
CT를 보던 김지훈이 갑자기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간암의 위치가 너무 안 좋았다. 좌측 간동맥이 시작되는 부위에 너무 인접해 있었다. 불과 2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 수술하기 정말 어려운 케이스였다.
“위치가 너무 안 좋네.”
한참 동안 CT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수술 방법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당장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지가 더욱 급한 문제였다.
치료 방침을 고민하는 사이, 이준영 교수가 나왔다.
“환자분 바이탈은?”
“지금은 안정적입니다.”
함께 차트와 검사 결과부터 확인하고 환자를 보았다. 통증이 많이 가라앉은 덕에 쇼크에서 거의 벗어난 상태였다.
환자를 안심시킨 이준영 교수가 신동석 이사장을 보았다.
“이사장님, 일단 검사 소견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들 엑스레이 앞에 섰다.
신현수만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곁을 떠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준영 교수가 CT를 보며 말했다.
“김지훈, CT 소견 설명해. 이사장님, 우리 파트 치프입니다. 함께 들으시죠.”
이사장이 있는 자리였다. 더구나 환자는 병원 설립자다. 뜻밖의 말에 김지훈은 물론 신동석 이사장까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 입장에서 보아도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이혁민 교수도 자기 분야가 아니라며 간략하게 설명했을 뿐이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유리한지 분명했다. 이럴 때 잘 보이면 유무형의 이득이 엄청날 수도 있다. 이를 모를 이준영 교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이혁민 교수도 별말이 없었다.
‘김지훈, 넌 치프고, 환자는 위치를 떠나 다 똑같은 환자야. 원칙대로 하자. 그리고 네 판단이 정확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설명해.’
김지훈이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감당하기 힘든 신뢰인지, 아니면 이것 역시 교육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하지만 치프가 된 이후 지금까지 보호자들에게 환자 상황을 먼저 설명한 사람은 분명 자신이었다.
그렇다. 원칙이다.
환자가 누구건 간에 원칙은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