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거세지는 바람 (1)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꾸벅 인사를 한 김지훈이 회복실로 나갔다. 금경태 과장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감히 네놈 따위가 내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 오냐. 네놈이 어떤 짓을 한 건지 똑똑히 알려 주마.’
과장의 권위가 일개 전공의에게 짓밟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때마침 다른 교수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어떤 일을 벌였을지 몰랐다.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금경태 과장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 교수실로 향했다. 차츰차츰 흥분이 가라앉자 돌연 정신이 번쩍 났다.
‘그래. 이게 다 내가 초래한 일이야. 백제 병원 때문에 내가 과장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 나 금경태, 그렇게 쉽게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야. 허경발 선생님까지 왔다고 해도 결국은 내 손에 다 옷을 벗어야 할 거야.’
소형 녹음기를 손에 들고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진평호의 약점을 잡아야 해.”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정신을 확실하게 차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상황을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때를 놓치지 말아야 해.’
그래야만 신동석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줄을 잡고 있는 진평호를 상대할 수 있었다. 상대의 약점은 곧 자신의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때였다.
그 시간, 김지훈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똑바로 하라고?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당신에게 욕먹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내가 철저하게 준비를 해도 욕을 한다면 결국 당신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일밖에 안 될 겁니다. 도리어 다시 정신 바짝 차리게 해 줘서 고맙네요.’
“도진아, 회진 돌자.”
힘찬 목소리가 울렸다.
서도진과 박순용이 재빨리 병실로 향했다.
모든 환자들을 꼼꼼하게 살폈다. 전보다 확연하게 늘어난 치프 회진 시간에 서도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솔직히 회진 시간이 늘어나면 일이 년차들에겐 고달픈 일이었다.
김지훈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금경태 과장의 화살이 자신에게만 향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애먼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도진아, 과장님 분위기 안 좋다. 욕먹기 싫으면 과장 파트 환자라도 철저하게 봐. 나도 거기까지는 쉽게 커버하지 못한다.”
서도진이 박순용을 보았다.
‘수술 방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회진 끝나고 바로 말씀드릴게요.’
좋지 않은 일이 있다는 눈짓에 서도진이 헛기침을 하며 얼굴을 굳혔다.
같은 파트를 돌면 확실히 몸은 힘들지만 김지훈만큼 후배들을 챙겨 주는 치프도 없었다. 그런 사람의 경고라면 긴장을 해야 한다. 그것도 전에 없이 강하게 말이다.
마지막으로 진상미 환자를 보았다.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환자분, 솔직히 상당히 애매모호합니다. 만일 배 속에 밴드가 다시 생겼다면 유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복강경이 아니라 개복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진찰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도진아, 박순용 선생님.”
모두들 신중하게 진찰을 했다.
초췌한 얼굴의 진상미를 뒤로하고 의국으로 돌아왔다. 상의하는 과정을 환자가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다. 더구나 확실한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재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 경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오래 지속되잖아요. 벌써 하루가 지났습니다.”
“밴드가 또 생기는 게 가능하겠어?”
“애초부터 생길 자리가 아니었잖아요. 너무 드문 경우라 예측도 할 수 없고요. 박순용 선생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선생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다.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기자, 틈을 본 서도진이 박순용에게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좋은 일도 아닌데 후배와 머리를 맞댈 게 아니었다. 김지훈이 슬며시 의국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다들 수술 중이라 아무도 없었다.
‘이럴 땐 일석이가 있어야 하는데.’
입맛을 쩝쩝 다신 김지훈이 논문 자료를 꺼냈다. 금경태 과장의 수술이 확 줄어든 바람에 생각보다 시간이 더 남아돌았다. 오후 회진 때까지 놀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고, 찬물에 세수를 하며 정신을 집중하려 애쓰던 김지훈이 진득하니 자리를 지켰다. 금경태 과장과의 일도 이젠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후, 숙소가 시끌벅적해졌다.
“야! 유비무환, 좋은 말이야. 이래서 사람은 철저히 준비를 해야 돼. 마음이 한결 편하네.”
“무슨 소리야?”
“신기동 선생님하고 이혁민 선생님이 만만한 분이 아니잖아. 탈 거 예상하고 단단히 준비했더니, 오늘 비수하고 얼음 덩어리를 한 열 개는 맞았는데 예상외로 하나도 안 아프다. 지훈아, 봐 봐. 나 멀쩡하지?”
손일석이 마치 비수가 꽂힌 자리라는 듯 가슴을 풀어 헤쳤다. 김지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 말고 웃었다.
“정말 안 아파?”
“아니, 솔직히 조금은 아프다. 신기동 선생님이 그동안 칼을 단단히 가셨나 봐. 정말 예리하고 날카롭더라.”
수술하는 동안 툭하면 탔다는데, 왜 부러울까?
아마도 교수들의 마음과 손일석의 웃음 때문일 것이다. 금경태 과장에게 그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거의 말이 없는 이준영 교수와의 수술과 회진은 더없이 좋은 반면, 금경태 과장과는 찬바람만 불었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불같이 화를 냈고, 김지훈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게 화를 더욱 돋우는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적잖게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금경태 과장이 어떤 인간인지 똑똑히 알고 있다. 얼굴을 마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지나면 그뿐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도리어 금경태 과장보다는 진상미에게 더 신경이 쓰였다.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증세는 여전했고, 덩달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진상미를 찾았다.
진찰을 거듭할수록 외과적 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한 진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진평호와 전종훈을 비롯해 가족들과 어떤 관계인지도 잘 알고 있기에, 심리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실제로 복통 등의 신체적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몇 번을 확인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없네. 이러다 또 배 속을 확인해야 하는 거 아냐? 라파로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어서 수술만은 가급적 피했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알 수가 없네. 후우! 답답하다.’
진상미는 결코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종 의료 기관인 대학 병원에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모르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병실의 쓸쓸함이 겹쳐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진상미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김지훈의 얼굴이 좋을 리가 없었다.
송재덕 교수의 눈에는 그 모습이 너무 안돼 보였던 모양이었다. 회진을 끝내고 조용히 김지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훈아, 치프야, 너 금 과장하고 무슨 일 있구나? 그치? 힘들면 혼자 끙끙대지 말고 나나 이 교수한테 말해. 아니다. 아니다. 조금만 참아라. 이런 일도 얼마 안 남았다.”
걱정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핵심은 아니었다. 금경태 과장과의 문제가 벅찼다면 이미 이준영 교수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보다 뒤에 한 말이 더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순간 무조건 술을 사야 하는 손일석과의 내기까지 생각났다.
“예? 얼마 안 남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아니다. 아니야. 그게 말이야. 힘들면, 힘들면 내게 말해. 그것만 기억하면 된다. 암! 이 교수, 내 말이 맞지? 그치?”
“선생님, 지훈이는 걱정하지 마세요.”
약간은 당황한 것 같은 송재덕 교수의 말에 이준영 교수가 별다른 반응도 없이 김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이것도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송재덕 선생님 말씀대로 조금만 참아. 네 멘탈이면 이 정도 일쯤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다.’
오해라고 해도 걱정해 주는 교수들의 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내심 송재덕 교수의 말이 궁금했지만 꼬치꼬치 캐물을 상황도, 입장도 아니었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지훈이 이준영 교수의 물음에 안색을 굳혔다.
“진상미 환자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잘 모르겠습니다. 수술 후 장 유착은 분명히 아니고, 장염이라고 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유발할 만한 일도 없는 것 같고요. 배 속에 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준영 교수가 잠시 고민을 했다.
“이번 주까지 지켜보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으면 다음 주에 환자에게 말하고 개복하자. 오래 끌어서 좋을 일 없을 것 같다.”
결국 진단을 위해 또 개복을 해야 하는 걸까?
벌써 금요일이다.
입원한 지 5일이나 됐는데 아직도 진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하기만 했다.
“예, 선생님.”
김지훈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지훈아, 치프야, 배 속에 고무줄 생겼던 환자, 그 환자 맞지? 희한한 사람들은 끝까지 희한한 경우가 많아. 그래서 어렵다, 어려워. 교과서대로 아프면 얼마나 좋겠니. 얼마나 좋아. 하지만 이 교수 말대로 질질 끄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결국에는 환자가 손해를 보는 경우가 더 많아.”
“송재덕 선생님 말씀 명심해.”
“예, 선생님. 그런데 배를 열고도 아무 이상을 못 찾으면 어떻게 합니까?”
“의사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어. 이런 경우 배 속에 이상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확인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어.”
수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다. 진상미 환자 같은 경우는 언제든 닥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머릿속과는 달리 마음은 불편하기만 했다.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찜찜한 가운데 일과를 마쳤다.
늦은 저녁 진상미 환자를 다시 찾았다. 통증이 많이 약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복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어두웠다. 이러다 다시 증상이 심해질 것이다.
환자들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웃음 한번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갑갑하기만 했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고려하며 진찰했지만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환자에겐 미안하고, 스스로에게는 짜증이 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복통이 이렇게 어려운 증상이었나?’
정말 의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
“환자분, 지금도 왜 아픈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무엇을 간과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차마 개복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준영 교수의 말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정확한 진단하에 배를 열고 싶었다. 첫 수술 때처럼 운이 좋기를 바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사실 지금도 진상미에게 들었던 진평호와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면 그것이 원인일지도 몰랐다. 때론 마음의 병이 몸으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잠을 자기 힘들 정도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 정말 없었나요? 혹시 예전에 한 말처럼…….”
“그런 일은 없어요. 기대도 안 했어요.”
진상미가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은 채 대답을 했다.
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김지훈이 30분이 넘도록 병실에 머물며 수차례 촉진을 했다. 첫 수술을 하고 퇴원한 후 증세를 유발할 만한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세심하게 확인했다.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역시 별게 없네. 환자를 위해서라도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정말 밴드가 또 생긴 걸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재발했다면 수술을 다시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재발할 것이다. 결국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게 될지도 몰랐다. 환자를 위해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환자분,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김지훈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이삼 일 내에 원인을 못 찾는다면 결국 개복 수술을 권하게 될 것이다. 진상미의 어둡기만 한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그날 밤, 한 차례 심한 복통이 발생했다.
김지훈이 박순용과 함께 진찰을 하고 진경제를 투여했다. 진상미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한동안 병실을 오갔다. 그런다고 갑자기 뚜렷한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문득 병실을 감도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에휴! 이렇게 아파하는데 아무도 찾아오질 않네. 가족이라고 해도 등을 돌리면 이렇게까지 되는 걸까?’
“진단도 정확히 못하면서 할 말은 아니지만, 몇 시간만이라도 편하게 주무셨으면 좋겠네요. 혹시 또 아프기 시작하면 바로 말씀하세요. 제가 곧바로 오겠습니다.”
걱정과 피곤이 가득한 눈가를 비빈 김지훈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복통이 한결 누그러진 진상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제게 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 거죠?”
피곤에 젖어 눈이 까칠하기만 했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은 의아한 말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럴지도 몰랐다.
“다른 환자분이었어도 똑같이 했을 겁니다. 그런데 솔직히 신경이 더 쓰이긴 하네요.”
“이유가 뭐죠?”
“많죠. 일단 환자분 병명을 모른다는 게 미안하고, 이러다 또 배를 열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되네요. 어쩌면 환자분의 개인적인 상황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지금까지 가족들 중 누구 한명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외로움은 골수에 맺힌다. 진상미를 끝도 없이 힘들게 할 것이다. 경우는 달랐지만 김지훈도 이미 경험한 일이었기에 더욱 답답하고, 가슴이 아픈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김지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진상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대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절박함이 느껴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길 바라는지도 몰랐다.
“주제넘은 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주변에 아무도 없으시네요. 몸이 아픈 건 어쩔 수 없지만, 전에 들은 말이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라도 편하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때가 있었거든요.”
김지훈이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을 하고 보니 실수다. 순간 예전 기억이 떠올라 너무 진지하게 말했다. 이런 감정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정신과도 아닌데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건드렸다.
“어휴! 죄송합니다. 제가 의사와 환자 간에 지켜야 할 선을 넘은 것 같네요. 신경 쓰지 마시고 푹 주무세요. 그래야 회복이 되실 겁니다.”
김지훈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서둘러 일어섰다.
‘선생님도 그런 때가 있었다고요? 정말인가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김지훈은 자신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일순간이었지만 단순히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진상미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
“환자분, 왜 그러세요? 또 아프세요?”
진상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줄줄 흘릴 뿐이었다.
한참 동안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진상미가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걱정해 주는 사람 앞에서 가슴을 짓누르는 바윗덩어리를 토해 내고 싶었다.
“죄송해요.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너무 분하고, 창피하고, 무서워서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았어요.”
도대체 퇴원한 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걱정한 대로 진평호 때문일까?
“가족 때문에 마음이 아픈 것보다 더 아픈 일은 없는데,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김지훈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순간 설움에 겨운 울음소리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