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바람이 분다 Ⅱ (2)
드디어 3년차 세 번째 텀이자 치프로서 돈 첫 번째 파트가 끝났다.
이경석이 자신이 수술한 환자를 꼼꼼하게 살피고는 구미로 출발했다. 다음 텀으로 대장 항문 파트를 도는 신현수는 가운을 휘날리며 환자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가 새로운 파트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가운데, 김지훈이 홀로 의국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대장 항문 파트에서는 무엇을 배웠을까?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수술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만을 배운 텀이 아니었다. 전종훈 교수를 비롯해 이임순이나 진상미 환자 등을 통해 더 중요한 것들을 배웠다. 유난히도 교수들의 마음과 행동이 가슴에 남은 텀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의 가르침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여전히 같은 공간이지만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였다.
간담도 파트 차트를 앞에 둔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었다. 3년차 마지막 텀을 환상적으로 돌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세부 전공으로 택하고 싶은 분야다. 스승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얼굴도 보기 싫은 금경태 과장은 수술까지 등한시하는 상황이다. 아랫년차들 중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서도진과 박순용은 이번에도 질기게 따라붙었다.
‘이건 뭐, 환상이네. 일만 열심히 하면 좋은 일이 그냥 마구 벌어질 것 같은 이 불길한 예감은 뭐지?’
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이미 환자 파악을 한 상태인 데다 기분이 붕 떠서인지 논문마저 즐겁게 쓸 수 있었다.
어느새 창밖에 어둠이 내렸지만, 길이 밀리는지 저녁이 되어도 손일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식사 후의 나른함을 즐기던 김지훈이 수술 기구를 꺼내 들었다. 신현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너 그거 어디서 났어?”
“현수야, 너 수술 방에서 폐기되는 수술 기구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조금 구하기 어려웠지만 라파로 기구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평소에 안면을 쌓아야 돼.”
의료 기구는 산업 폐기물이기 때문에 폐기에도 엄격한 관리가 따른다. 김지훈도 사정사정하며 나중에 꼭 반납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동안 빌렸던 수술 기구를 성실하게 잘 반납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혹시 고경아가 힘을 좀 썼을까?
김지훈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라파로 기구를 침대 모서리에 걸었다. 그러고는 수술을 하는 것처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조작을 했다.
딸깍! 딸깍!
손잡이를 쥐었다 펼 때마다 기다란 막대 끝에 달린 조그만 기구들이 물렸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마치 옆에 모니터가 있는 것처럼 고개까지 돌린 모습이 꽤나 진지했다.
“너 혹시 라파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 될 건 또 뭐가 있어? 못 받아도 전문의 되면 무지하게 써먹어야 할 텐데 미리 연습 좀 하지, 뭐.”
“무지하게 써먹는다고?”
“현수야, 라파로로 꼭 담낭만 떼라는 법 있어? 아뻬도 할 수 있고, 논문 찾아보니까 탈장에도 유용하겠더라. 그리고 호치키스, 아니 스테이플을 생각해 봐. 결국에는 손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기구도 잘 다뤄야 할 것 같지 않아?”
신현수가 눈가를 찡그렸다.
솔직히 비슷한 생각을 했다. 김지훈이 먼저 말을 꺼낸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한발 앞서 달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계속 밀리는 것 같지?’
여전히 눈길도 주지 않고 라파로 기구를 놀리고 있는 김지훈을 보는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그런 생각은 언제부터 했어?”
“라파로? 내가 간담도를 하기로 마음먹었잖아. 그리고 이준영 선생님이 허구한 날 무슨 수술을 하시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지.”
신현수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장관 쪽에 대해서는 생각 안 해 봤어?”
“위장관에서도 가능한가? 어? 위장관 쪽에서도 기구를 사용한 보고가 있어? 정말이야?”
상당히 심하게 놀랐다. 금시초문인 모양이었다.
“국내에는 없고, 미국에서 시도하고는 있는 것 같아. 아직 초기 단계라 기구도 표준이 정해진 상태는 아냐. 하여튼 돈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무척 빨리 앞서간다.”
“그렇구나. 난 왜 그걸 못 봤지?”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역시 신현수답네. 국내도 모자라 미국 놈들 상황까지 꿰차고 있단 말이지. 아는 거 있으면 자세하게 얘기 좀 해 봐. 치사하게 너 혼자 알고 있지 말고.”
신현수가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비록 순간이었지만 쓸데없는 자존심을 앞세웠다. 김지훈처럼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물어볼 생각은 왜 못했는지 후회가 됐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트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신현수의 입이 막 열리려는 순간, 덜컥 문이 열렸다.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친구들! 잘 지냈나? 뭐야? 텀 바뀌는 첫날부터 왜 이렇게 심각해? 형을 봤으면 벌떡 일어나서 인사부터 해야지 말이야.”
“심각하긴 뭐가 심각해, 인마. 얼굴 좋아 보인다. 별일 없었지?”
“얼굴이 좋아 보이기는 개뿔. 어휴! 니들은 모를 거다. 가슴에 참을 인 자를 수도 없이 새기고 왔다. 경석이 형은 뒷목 잡고 쓰러질지도 몰라.”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자연스럽게 머리 3개가 모였다.
“강기웅 과장 성격 상당히 묘하더라. 전종훈하고는 분명히 다른데 사람 괴롭히는 건 어쩜 그렇게 똑같은지 몰라. 게다가 구미 병원에서 쭉 근무할 생각도 없는 것 같아.”
“그게 무슨 소리야?”
“솔직히 구미 병원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천안이나 서울 병원으로 올라올 욕심이 있으니까 근무를 하는 거잖아. 근데 기회만 있으면 그만둘 사람처럼 행동을 하는 거야. 그 말은 곧 금경태 과장에게 큰 문제가 닥쳤다는 얘기 아닐까? 믿었던 라인이 깨진 거지.”
신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있네. 아직 확실한 말은 못 들었지만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 거야. 절대 그냥 지나가실 분이 아니야.”
“하긴 금경태 과장이 그걸 모를 리가 없으니까 요즘 술독에 빠져서 환자도 안 보겠지.”
손일석이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내 예감은 틀리질 않아. 이렇게 되면 길어야 3개월이네. 과장 자리는 100퍼센트 내놓아야 할 거고, 잘하면 옷까지 벗게 될지도 몰라. 지훈아, 술 내기 어때?”
“옷 벗는 거에?”
“오케이! 벗으면 니가 사고, 안 벗으면 김지훈이 사고.”
“뭐? 에라! 이 자식아! 그냥 사 달라고 해. 그나저나 수술이나 제대로 받았어? 우린 그래도 괜찮았거든.”
이미 알고는 있을 것이 빤했지만, 차마 정규 수술까지 받았다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손일석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지훈아, 위기의 뜻이 뭔지 알아?”
액면 그대로라면 물을 놈이 아니다.
“뭔데?”
“위대한 기회의 준말이야. 형이 그런 위기를 그냥 흘려보낼 것 같아? 자식들, 어디 보자. 몇 개나 했을까?”
손일석이 헛기침을 하며 가방에서 전공의 수첩을 꺼냈다. 그러고는 김지훈 앞으로 스윽 밀었다. 빨리 펼쳐 보라는 눈빛이었다.
헉! 이럴 수가!
집도한 수술이 무려 30개다.
김지훈과 신현수가 경악을 하고 말았다.
“뭐야? 니 말하고 틀리잖아?”
“틀리긴! 참을 인 자를 수도 없이 새긴 이유가 뭐겠어? 성질 낼 때 알아서 피해 주고, 기분 좋을 때는 분위기 팍팍 맞춰 주는 게 쉬운 줄 알아? 그거 보통 공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후! 근데 왜 눈물이 나지?”
누구보다도 융통성이 많고, 때에 따라 적절하게 행동하는 손일석이었지만 정말 많이 참은 모양이었다.
잠시 죽일 듯 손일석을 노려보던 김지훈이 결국 피식 웃으며 어깨를 쳤다.
“맞다. 너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 같았으면 몇 개 못 받고 끝났을 거야. 일석아, 고생 많았다. 내가 술 한잔 살게.”
“어흐흐! 고맙다, 지훈아. 나 수술 받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이왕이면 술은 빨리 사라. 그리고 전에 소개팅 시켜 준다는 소리는 잊은 거니? 친구야, 그러면 안 된다. 으흐흐흐!”
김지훈의 어깨를 부여잡고는 눈에 침까지 찍어 바르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손일석이 아니면 이런 분위기는 절대 못 만들 것이다. 혼자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짜증부터 팍팍 내는 것이 사람이니 말이다.
한동안 그간의 일을 나누던 김지훈이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얼굴도 보기 싫지만,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지금도 금경태는 메이저 과인 일반 외과의 과장이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전공의들 입에서 언제 옷을 벗게 될지가 거론될 정도라니, 측은할 지경이었다.
금경태 과장은 그런 시선을 느끼고는 있을까?
아마 관심도 없을 것이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모습은 결코 일반 외과 과장이자 교수인 사람이 보일 모습이 아니었다.
원래 텀이 바뀌는 주말이 가장 바쁘긴 하지만 치프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필요한 때 이외에는 숙소에 박혀 무엇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리만 있어서 마음이 편하긴 한데 궁금하네. 도훈아, 구미 얘기 좀 해 봐. 내년에는 우리가 왕이잖아.”
“왕? 도진아, 꿈 깨라.”
2년차들이 구미 문제로 머리를 맞댔을 시간, 후끈한 열기가 치프들 숙소를 감싸고 있었다.
위이이잉!
주말 내내 쉴 새 없이 비디오테이프가 돌았다.
라파로를 이용한 담낭 절제술.
수술 기구를 들고 열심히 손을 놀리는 김지훈.
스테이플을 이용한 직장암 수술.
눈가를 좁힌 채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신현수.
“작작 좀 봐라, 이 자식들아. 그러다 눈 빠져.”
힐끗 눈길만 주는 모습에 손일석이 혀를 찼다.
“에휴! 내가 전생에 저 자식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목이라도 쳤나? 구미에서 그 개고생을 하고 왔는데, 어떻게 단 하루도 쉬지를 못해. 친구가 아니라 웬수네, 웬수.”
“그럼 책 그만 보고 쉬어, 인마. 책 닳겠다.”
아닌 게 아니라, 손일석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혈관 해부학과 위장관 관련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내색은 안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메이저 수술을 정규 수술로 받았다는 사실과 무려 30개에 육박하는 수술은 서로에게 강렬한 자극이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와도 후회하진 않을 테지만, 뒤처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파이팅! 파이팅!
새롭게 각오를 다진 치프들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후회하지만 말자.’
결국에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김지훈도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월요일에 있을 수술을 준비했다. 스승인 이준영 교수의 지식을 하나라도 더 빼앗아 오려면 지금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드디어 3년차 마지막 텀의 첫날이 밝았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구미 근무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손일석의 힘찬 목소리에 신기동 교수와 이혁민 교수의 얼굴에 꽃이 피었다.
신현수는 교수 4명의 회진을 도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수야, 치프야, 회진 돌자. 오상익 선생님은 올라오셨니? 구 교수하고 임 교수는 조금 있다가 올라온단다. 빨리 돌자. 빨리.”
일찌감치 이준영 교수와 회진을 돈 김지훈만 서도진과 함께 빈둥빈둥 스테이션 앞을 지켰다. 할 일이 많은 박순용도 꼼짝 없이 자리를 지켜야 했다.
‘왜 안 올라오는 거야? 설마 월요일부터 회진을 빼먹는 건 아니겠지?’
수술 방으로 가야 할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금경태 과장이 올라왔다. 술 냄새는 풍기지 않았지만 이젠 회진 시간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에 더욱 실망만 앞섰다.
내색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금경태 과장이 눈가를 잔뜩 찌푸렸다. 최근에 와서는 누구를 보든 그런 표정을 지었다. 심지어 신현수를 볼 때도 표정이 좋지 못해, 이제는 딱히 김지훈 때문에 그런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환자들은 어때?”
“특별한 문제 없습니다.”
이제는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환자가 적은 덕인지, 아니면 수술만큼은 깨끗하게 하는 덕인지 모두들 순조로운 회복을 보이고 있었다.
대충 차트를 훑어본 금경태 과장이 아무 말도 없이 휙 몸을 돌렸다.
회진 시작이다. 부리나케 문을 여는 인턴을 따라 박순용이 환자 앞에 섰다. 과장 회진은 처음인 탓에 긴장된 얼굴이었다. 김지훈과 서도진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옆에 섰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환자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형식적인 몇 마디를 던진 후 다음 환자에게 향했다. 환자들도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다. 지난 주말에 전공의 회진을 돌 때도 불평 하나 터트리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과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특별한 예외일지도 몰랐다.
불과 10여 분 만에 회진이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전공의들의 목소리가 어쩐지 공허하게 들렸다.
‘후우! 직접 회진을 도니까 훨씬 더 무성의하네. 환자들에게만은 신경을 좀 써야 되는 거 아닌가?’
수술 방으로 향하던 김지훈이 고개를 흔들었다.
금경태 과장이 권위를 상실한 것은 꽤 오래전이었지만, 전공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생각과 태도였다. 진심이든 아니든 환자에게 관심을 주고, 수술이 많았을 때는 감히 표출할 수 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외과 의사는 환자와 수술로 말을 하기 때문이다.
‘에이! 찝찝하네. 아무리 과장이라도 과장다워야 생각을 바꾸든지 할 거 아냐?’
수술실에 들어선 김지훈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부지런히 수술을 준비하는 김진호 교수와 고경아를 보는 순간, 찜찜하고 개운치 못했던 기분이 확 달아난 것이다.
‘지훈 씨, 파이팅!’
“지훈아, 드디어 간담도를 도는구나. 오늘부터 음성 팀이 다시 뭉치는 건가?”
“어? 정말 그렇네요.”
처졌던 어깨에 힘이 팍팍 들어갔다.
오늘 수술은 두 개였다.
라파로를 이용한 담낭 절제술과 간 내 담석을 제거해야 할 환자였다.
어제 눈이 빠지도록 본 라파로 수술 장면을 상기하며 첫 번째 수술 환자를 기다렸다.
순조롭게 수술 준비가 끝났다.
“마취과, 수술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예. 시작하셔도 됩니다.”
수술 방에서, 아니 병원 내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묵직하고 굵은 목소리가 차례로 울렸다.
김지훈의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드디어 간담도 파트 치프로서 스승과의 첫 수술을 시작하는 것이다.
환자의 배 속에 가스가 주입됐다.
삐이이! 삐이이!
적정한 압력에 도달했다는 신호음이 울렸다.
10밀리미터 트로카(복벽을 뚫는 기구)로 복벽을 뚫고 카메라를 넣었다. 약간은 부어오른 담낭 이외에는 특별한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5밀리미터 트로카로 세 곳을 더 뚫고 라파로용 수술 기구를 넣었다.
간을 밀어 올려 시야를 확보하는 기구는 박순용이 잡았다. 김지훈이 카메라를 움직이며 박순용의 손을 잡고 수술 시야를 확실하게 확보했다.
이준영 교수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과 담낭이 연결된 조직이 박리됐다. 어느새 담낭관과 담낭 동맥이 말끔하게 노출됐다.
“클립.”
철컥! 철컥!
클립으로 담낭관과 동맥을 잡고 잘랐다.
“콘돔.”
제거된 담낭을 콘돔 속에 넣고, 5밀리미터 트로카 자국을 통해 배 밖으로 끄집어낼 차례였다.
직경 5밀리미터가 넘는 제법 큰 돌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준영 과장이 손에 힘을 주며 끙 소리를 냈다. 김지훈이 그 와중에 피식 웃고 말았다.
‘콘돔이 없었으면 어떻게 꺼냈을까? 저 큰 손에서 나오는 힘을 버티다니, 참 질겨.’
수술한 자리를 깨끗이 씻고, 카메라를 돌려 가며 주변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깨끗했고, 어떤 문제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자식! 첫날인데 경석이만큼 손을 잘 맞추네.’
힐끗 김지훈에게 눈길을 준 이준영 교수가 조용히 말했다.
“마취과, 수술 끝냅니다. 김지훈, 주말에 뭐 했어?”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테이프 좀 봤어?”
“예? 예. 시간 나는 대로 봤습니다.”
“오늘은 케이스가 좋아서 쉽게 끝났다만, 계속 이렇지는 않을 거야. 방심하지 말고 열심히 준비해. 마무리해.”
“수고하셨습니다.”
낮게 깔리는 이준영 교수와는 달리 김지훈의 목소리가 방방 떴다.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같은 생각인지 고경아도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훈아, 너 간담도 한다고 이준영 선생님하고 손이 너무 척척 맞는 거 아냐? 간만에 라파로 들어와서 한 시간 만에 끝내면 어떻게 해?”
“그게 저 때문인가요? 이준영 선생님이 너무 빨리하셔서 그런 거죠. 역시 대단하세요.”
“그것도 맞는 소리지만 너나 박순용 선생, 그리고 우리 고 간호사가 아니면 힘드셨을 거다.”
김진호 교수가 소리 내 웃었다. 아직 피부 봉합 중이고, 환자도 깨지 않았지만 여유가 넘쳤다. 실력 있는 수술 팀이 확실하게 수술을 끝내는 것 이상으로 마취과에게 편안하고 안심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회복실로 옮긴 후, 김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머릿속으로 두 번째 수술을 준비했다.
한참 수술을 따라가고 있을 때, 서도진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선생님, 응급실에 환자 한 명 있습니다.”
“뭐? 오늘 당직 파트 놔두고 그걸 왜 나한테 얘기해? 무슨 환자야?”
“전에 이준영 선생님이 수술하셨던 환잔데, 같은 증상으로 내원했습니다.”
“그래? 누구지?”
이준영 교수가 수술을 한 환자라면 당연히 김지훈이 봐야 한다. 서도진의 노티를 받던 김지훈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같은 증상을 호소해? 그때 확실하게 처리해서 그럴 리가 없는데, 설마 또 생겼나?”
만일 재발했다면 정말 만만치 않은 환자다. 아니라면 첫 수술에서 놓친 것이 있다는 말이었다.
일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