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환자에게 좋으면 의사에게도 좋은 일이다 (2)
배꼽 상방 3센티미터부터 하방 7~8센티미터까지 열었다.
피하지방과 근육 층을 차례차례 절개했다.
신중한 손길이다.
송재덕 교수는 여유롭게 손을 맞췄고, 고경아는 필요한 기구를 정확하게 건넸다.
복막이 열리자 세컨인 박순용이 인턴에게 눈짓을 하며 재빨리 리트랙터를 걸었다.
김지훈의 어깨에 살짝 걸린 긴장과 수술 팀의 익숙하고 편안한 어시스트가 묘하게 어울렸다.
암 수술은 전이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에 따라 수술 방법만이 아니라 예후까지 모든 것이 달라진다.
혈류를 따라 퍼지는 원격 전이.
임파선을 따라 퍼지는 국소 전이.
암 덩어리와 인접한 조직으로 퍼지는 직접 전이.
‘원격 전이부터 확인하자.’
김지훈이 내쉰 숨에 마스크가 불룩해졌다.
“내부 장기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대장암에서 원격 전이가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장기는 간이다. 박순용과 인턴이 리트랙터를 강하게 끌었다. 마취과 간호사가 상복부가 보일 수 있도록 무영등을 기울였다.
선홍빛 간의 표면은 반질반질했고, 어떤 종물도 만져지지 않았다. 건강했다. 위와 비장 및 대망 등의 장기도 깨끗했다. 원격 전이는 없었다.
“병변 확인합니다.”
초기 대장암은 촉진하기가 힘들다. 암 세포가 장 내벽에 국한돼 종물을 형성할 정도로 크게 자라지 못한 단계이기 때문이다. 홍선호 환자 역시 그런 경우였다.
복부 CT와 대장 조영술 및 대장 내시경 소견을 떠올린 김지훈이 병변 부위를 찾았다.
‘에스 결장과 직장 경계부에서 6~7센티미터 상부.’
육안으로는 이상 소견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예상되는 지점을 만지던 김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상적인 촉감과는 다른 미세한 변화를 느낀 것이다. 딱딱하기보다는 탄력을 잃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런 느낌이 날 정도로 진행된 암이 아닌데 이상하네.’
“지훈아, 왜 그러니?”
“촉진상 정상 조직과는 약간 다르게 느껴집니다.”
병변 부위를 확인한 송재덕 교수도 다소 의아한 표정이었다. 무언가 감이 안 좋다는 눈빛이었다.
“일단 원격 전이가 없고, 외벽까지 침범하지는 않았으니까 임파선 전이만 없으면 초기 단계로 판단해도 된다. 천천히 확인하자. 천천히.”
에스 결장과 연결된 장간막을 확인했다.
‘별거 없어야 하는데 느낌이 안 좋네.’
결장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접혀 있던 장간막을 활짝 펴는 순간 김지훈이 답답한 소리를 냈다. 좁쌀만 한 크기의 임파선 3개가 보였다.
왜 사전에 발견하지 못했을까?
방사선 검사가 가진 한계였다. 임파선은 초음파나 복부 CT에서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가 적고, 크기까지 작다면 검사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 병변 부위 주변은 10밀리미터 간격이 아니라 5밀리미터 간격으로 촬영을 하지만, 좁쌀만 한 데다 병변에서 먼 경우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송재덕 교수가 혀를 찼다.
“지훈아, 안 좋다. 안 좋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할 때였다.
“일단 장간막 전체를 모두 확인하겠습니다.”
대장은 물론 소장과 연결된 장간막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다행히 더 이상 비대해진 임파선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국소 임파선 전이를 동반한 대장암에 준해 생각하고,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배운 대로 할 일이었다.
“마취과, 서도진 선생 불러 주세요. 선생님, 임파선 조직 검사 시행하고 일단 하부 쪽은 절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지.”
“고 간호사, 보비(전기 소작기) 주세요.”
보비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조직이나 혈관을 태워 지혈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전기로 조직을 잘라 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어느 정도 지혈 효과까지 있어, 수술용 가위를 쓰는 것보다 출혈이 훨씬 더 적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전기로 인한 영향이 미미할 때에 국한되며, 정밀한 절제를 요할 때는 수술용 가위를 사용하는 편이 훨씬 적합하다.
띠이이이이!
지혈을 할 때보다 상당히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좁쌀만 한 임파선을 차례차례 제거한 후 번호를 매겼다. 각기 위치가 달라 어느 조직에서 암 세포가 발견되는지에 따라 절제 범위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사소하지만 무척 중요한 조치였다.
“블랙 실크(Black Silk) 주세요.”
임파선을 제거한 부위의 지혈 겸 표식을 위해 검은 실로 수처를 했다. 이를 기점으로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어디까지 절제할지 결정할 것이다.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침착하게 진행하자. 잘하고 있다.’
곧 서도진이 들어왔다. 김지훈이 임파선 조직 3개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진아, 지금 준 순서대로 결과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절제할 부위를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어. 헷갈리면 안 돼.”
확실하게 주의 사항을 전달한 김지훈이 송재덕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조직 검사 결과에 따라 수술이 상당히 커질 수가 있었다. 반면 하부 쪽은 결과에 상관없이 자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받은 수술이다. 하부 절제까지는 진행해도 무방할 것이다.
김지훈은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않았고, 무리한 상황을 두고 볼 송재덕 교수도 아니었다.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부 절제 시작하겠습니다.”
무언은 곧 긍정이다.
김지훈이 신중하게 혈관을 확인했다.
직장과 에스 결장으로 주행하는 동맥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경계부는 이중으로 혈관이 분포하기 때문에 에스 결장 동맥을 묶는다고 해서 절제 부위의 혈류 공급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에스 결장 동맥을 찾았다. 굵은 동맥이 심장박동을 따라 꿈틀거렸다. 주변을 감싸고 있는 조직을 신중하게 박리해 동맥이 뻗어 나오기 시작하는 부분을 완전히 노출시켰다.
“켈리.”
따르륵! 따가각!
“타이(Tie)!”
송재덕 교수의 손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전공의들은 가장 기본적인 타이 방법인 원 핸드 타이(One Hand Tie)를 하는 반면, 교수들은 투 핸드 타이(Two Hand Tie)를 한다. 똑같은 손짓 한 번에 매듭이 이중으로 생기기 때문에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컷(Cut)하겠습니다.”
동맥을 잘랐다. 혈류가 차단되며 나뭇가지처럼 뻗어 나온 혈관들이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곧 에스 결장 하부부터 시작해 상부까지 검붉게 변했다.
검게 변한 부위를 따라 장간막을 절개했다. 숨은 혈관을 찾아 일일이 묶었다. 혈관 사이의 성긴 지방조직 역시 최대한 깔끔하게 타이를 해, 동맥 시작 부분부터 에스 결장 하부까지 이어진 장간막을 확실하게 잘랐다.
잘라야 할 에스 결장 주변을 깨끗하게 박리했다.
김지훈이 대장암에서 5센티미터 이상 떨어진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장까지는 2센티미터 정도 남았다. 수술 원칙을 지키면서, 굳이 복막에 묻혀 있는 직장을 박리하지 않고도 스테이플을 사용할 수 있는 알맞은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 자르겠습니다.”
“딱 좋다. 좋아. 자르자.”
김지훈과 송재덕 교수가 손을 내밀었다. 고경아가 장겸자 두 개를 각자의 손에 건넸다.
따르륵! 따가각!
날카로운 메스로 에스 결장을 잘랐다.
직장 쪽으로 남은 면을 깨끗이 소독했을 무렵 서도진이 들어왔다.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하나든, 서너 개든 조직 검사 결과는 거의 같은 시간에 나온다. 이번에는 도리어 빠르게 결과가 나온 편이었다. 그런데 벌써 장간막과 에스 결장 하부를 잘랐다.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김지훈의 손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도진아, 결과 나왔어?”
“예. 세 개 모두에서 암 세포가 보인답니다.”
“그래. 세 개 모두에서 관찰된단 말이지.”
김지훈이 답답한 신음을 내뱉었다.
초기 암이 진행된 암으로 판정되는 순간이었다. 최소 2기 이상으로 보아야 했다.
더구나 임파선의 위치도 문제였다. 마지막 샘플(Sample)은 하필이면 에스 결장과 하행 결장 사이의 장간막에 위치하고 있었다. 절제 범위가 확 늘었다.
“선생님, 에스 결장 전체와 하행 결장 하부를 포함해 광범위 절제를 시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집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은 내가 할 수술이 아니었나 보네. 그래도 여기까지 한 게 어디야.’
송재덕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다. 지훈아, 치프야, 그래도 호치키스는 사용할 수 있겠지?”
“예. 하행 결장 제거하고 남은 부분을 모두 박리하면 직장 초입까지 충분히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시작해.”
수술 팀 모두가 깜짝 놀랐다.
대장암 2기 환자다. 최소한 결장의 4분의 1 이상을 잘라야 하는 수술이었다. 더구나 에스 결장은 물론 직장과 하행 결장 및 평행 결장 일부까지 모두 직간접적으로 건드려야 한다. 누구도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강한 신뢰였다.
“지훈아, 치프야, 뭐하니? 결정을 내렸으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움직여야지. 그게 써전이야. 난 할 수 있는 수술만 준다. 못할 것 같으면 안 줘.”
김지훈이 눈가에 힘을 주고는 훅 숨을 내뱉었다.
암 수술이 주는 부담과 중압감을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상행 결장을 자르는 것처럼 하행 결장을 처리하면 된다. 다만 스테이플 사용을 위해 평행 결장과 연결되는 부분까지 모두 박리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었다.
‘예. 자신감을 갖고 하겠습니다. 같은 수술의 연장일 뿐이다. 보다 광범위할 뿐이야. 하자.’
“감사합니다, 선생님.”
김지훈이 가장 상부 쪽에 위치한 블랙 실크를 확인했다. 이를 기점으로 하행 결장을 어디까지 잘라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혈관의 분포와 주행 경로를 생각했다. 에스 결장과의 경계에서 10센티미터 정도 상부 부분을 자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부분에서 자르겠습니다.”
“그래. 시작해.”
문제가 없다는 말이었다.
하행 결장은 상행 결장처럼 후복막에 묻혀 있는 장기다. 자르기 전에 후복막에서 완전히 들어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야 자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하행 결장과 후복막의 경계부를 살폈다. 무작정 박리하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출혈을 야기할 수 있다.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혈관을 피하는 것뿐이었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몸은 참으로 신비했다.
하행 결장과 후복막 사이에는 혈관이 거의 없는 층이 있다. 제대로만 접근하면 거즈 한두 장 젖는 정도에 불과한 출혈만으로 하행 결장을 충분히 박리해 낼 수 있다.
“보비.”
조심스럽게 후복막을 보비로 지혈해 가며 열었다. 손가락을 거즈로 감싸고 드러난 부분을 슬슬 밀었다. 어느 순간 하얀 비닐 막 같은 구조물이 보였다.
‘여기다.’
과감해야 할 때였다. 손가락에 힘을 주며 후복막 사이를 쭉쭉 벌렸다.
하얀 막을 경계로 하행 결장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약간의 출혈이 발생했지만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평행 결장과 연결되는 부분까지 박리했다. 지금까지 조용히 손을 맞추던 송재덕 교수가 눈가를 좁혔다. 극도로 주의를 기해야 하는 부위였다. 주변 조직이 비장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잘못 힘을 주면 자칫 비장까지 찢어질 수도 있다. 절대 손상을 야기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무엇을 조심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해. 침착하게 서두르지 말고 해 봐.’
잠시 수술 부위를 보던 김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장과 연결된 조직부터 자르겠습니다. 켈리.”
기대한 대로였다. 김지훈은 어디에서 조심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송재덕 교수의 눈가에 흡족함이 살짝 걸렸다 사라졌다.
김지훈이 신중의 신중을 기해 조직을 잡았다. 비장이 움직일 때마다 식은땀이 흘렀다.
송재덕 교수도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였다.
따르륵! 따르륵!
“타이! 타이!”
연결 조직들을 조금씩 잘라 나갔다. 비장과 연결된 마지막 조직을 자를 때까지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마침내 하행 결장이 완전히 박리됐다.
이제 절반 정도 왔다.
하행 결장 하부로 들어가는 혈관을 확인했다. 일부분만을 잘라야 하기 때문에 함부로 동맥을 자를 수는 없다. 잘라야 할 부분에 연결된 혈관들을 세심하게 확인한 후 일일이 묶고 잘랐다. 마지막으로 하행 결장 하부를 잘랐다.
에스 결장 전체와 하행 결장 일부가 통째로 제거됐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남았다. 대장과 대장을 연결해야 한다. 연결 부위를 서로 끌어당기는 압력이 작용하지 않을 정도로 대장이 충분한 여유를 갖고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별 탈 없이 붙는다.
조심스럽게 하행 결장을 직장 쪽으로 당겼다. 절단면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두 면이 정확하게 맞닿았다. 하행 결장이 여유롭게 흔들렸다.
김지훈이 슬며시 기지개를 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분을, 아니 그 이상을 별문제 없이 끝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이제 스테이플만 하면 끝이네.’
“선생님, 스테이플 사용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 잘했다. 경석이 들어왔니?”
“예, 선생님.”
이경석이 살짝 고개를 들이밀었다.
김지훈이라면 훨씬 빨리 끝낼 줄 알았는데 생각한 시간보다 오래 걸려 의아한 참이었다. 수술 부위를 보던 이경석이 눈을 껌벅거렸다.
‘에스 결장만 자른 게 아니라 하행 결장을 다 박리한 거야? 전이가 있었던 모양이네. 어쨌든 엄청 빨리했다. 하긴 지금까지 에스 결장 자른다고 쩔쩔맬 김지훈이 아니지.’
“선생님, 많이 자르셨네요?”
“내가 안 잘랐다. 경석아, 호치키스 준비하자. 빨리 옷 갈아입고 들어와.”
수술실이 다시 부산해졌다.
이경석이 스테이플을 들고 환자 다리 사이에 섰다. 송재덕 교수는 여전히 퍼스트 자리에 선 채였다.
“스테이플 넣어 봐. 길이가 되는지 보자.”
항문을 통해 스테이플 몸체를 넣었다. 곧 직장 경계부에서 스테이플의 몸체가 만져졌다. 스테이플 조작을 생각하면 적어도 항문에서 5센티미터 이상의 여유가 있어야 했다.
“경석아, 호치키스 얼마나 남았니?”
“아직도 7~8센티미터 정도는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케이! 그럼 여유가 많네. 호치키스 나가자. 지훈아, 수처할 테니까 타이 단단히 하자.”
이제야 손이 바뀌었다.
송재덕 교수가 하행 결장에 스테이플의 머리 부분을 끼워 넣고 연속 수처를 했다. 눈에 환히 보이는 이상 타이 역시 어려울 것이 없었다. 머리 부분 중심의 막대에 하행 결장의 절단면을 단단히 묶었다.
이경석이 스테이플을 조심스럽게 밀었다. 직장을 통과한 몸체에 달린 막대가 보였다. 동일한 방법으로 남은 에스 결장을 수처해 막대 부분에 타이했다. 직장암 때와는 비교도 하기 힘들 정도로 수월하게 수처와 타이를 했다.
“지훈아, 확실하게 됐지? 확실하지?”
“예, 선생님.”
“경석아, 호치키스 연결하자. 천천히 하자. 천천히.”
찰칵 소리와 함께 막대와 막대가 연결됐다.
끼이이익!
레버를 돌려 스테이플의 머리와 몸체를 단단히 조였다. 딸깍 소리가 나며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됐다. 타이한 부분은 잘리고, 그 바깥 부분의 장이 연결됐다는 의미였다.
조심스럽게 스테이플을 뺀 이경석이 막대에 걸린 도넛 모양의 장을 서도진에게 건넸다. 조직 검사상 암 세포가 보이지 않아야 정상적인 장을 연결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수술의 성패가 달린 것이다.
초조한 시간이 흘렀다.
김지훈은 더욱 초조했다. 처음으로 정규 수술을 받았고, 메이저다. 다른 어떤 환자보다도 깊게 고민하고 준비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수술 내내 최선을 다했다.
만약 결과가 나쁘다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임파선 전이는 있지만 외벽도 침범하지 않은 암인데, 절단면에 암이 남았을 리가 없어.’
이상하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들 입맛을 다시며 연신 수술실 밖을 보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김지훈의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누군가의 소리 죽인 발소리가 들렸다.
수술실 문이 열렸다. 서도진과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선생님.”
김지훈이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적시며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수술 팀의 눈과 귀가 서도진에게 쏠렸다.
“프리(Free)랍니다.”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가장 중요한 과정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는 생각보다 고맙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 어느 때보다도 수술 팀과 자신에게 고마웠다. 잘 버텨 준 환자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모두 다 고맙습니다. 덕분입니다.’
“지훈아, 마무리해라. 마무리. 천천히 하자. 천천히.”
“수고하셨습니다.”
김지훈의 힘찬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