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희망은 삶의 힘이다 (1)
그 눈빛 그대로다.
이제 하루도 안 지났지만 악다구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조금이라도 마음속 응어리가 빠지길 바랐지만 고성문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이임순은 지금도 두려움에 빠진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김지훈이 훅! 하고 숨을 내쉬었다.
“환자분, 상처 치료하겠습니다. 보호자분, 커튼 좀 열어 주세요. 너무 어둡네요.”
보호자가 창가 앞에 서서 이임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김지훈이 입을 꾹 다물고는 말없이 드레싱을 했다. 이임순 역시 아무 말 없이 치료를 받았다.
벌려진 상처를 박박 닦아 냈다. 제법 아플 텐데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찡그린 눈썹에서 이임순의 고통이 엿보였다.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잃지 않았단 말이겠지. 죽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는 말은 살고 싶다는 또 다른 표현일 거야. 이임순 씨, 당신은 에이즈 환자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병을 이길 것이라고 믿어요.’
“하루 만에 많이 깨끗해졌네요. 금방 좋아지겠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은 표정을 지은 김지훈이 갑자기 눈가를 찡그렸다.
용변기가 보였다. 꼼짝도 안 하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로 수술한 지 일주일이 됐다. 더 이상 대소변까지 침대에서 해결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뜸 햇살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젖혔다. 이임순이 눈가를 찌푸리는 것을 보면서도 침대를 반쯤 일으켜 세웠다. 짜증 섞인 고함 소리가 바로 터져 나왔다.
“나 좀 가만히 놔두라는데 정말 왜 이래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두려운 걸까? 그것이 혹시 삶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애증일까?
어쨌든 반드시 넘어서야 할 일이었다. 단 한 발만 움직이면 더 이상 이임순의 앞을 가로막을 것은 없을지도 몰랐다.
침착하게 대응해야 했다. 김지훈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환자분, 저 보기 싫죠? 그럼 움직이세요. 그래야 빨리 퇴원을 하고, 내 얼굴을 안 볼 거 아닙니까? 이러다 맹장 수술하고 한 달도 더 입원하겠어요.”
침대를 완전히 세웠다. 이임순이 절대 일어나지 앉겠다는 듯 몸을 웅크렸다.
정말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었다. 나중에 오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이임순을 누르고 있었다. 스스로 깨지 못한다면 깨 주어야 할 일이었다.
헛기침을 하며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보호자를 보았다.
“어머니, 환자분을 침대에서 내려오시게 할 거니까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보호자의 눈이 동그래졌다. 침대에 앉는 것만으로도 그 난리를 쳤는데, 아예 일으켜 세울 심산이라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김지훈이 눈짓을 하며 이임순의 몸을 잡았다.
“왜 이래?”
김지훈이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임순을 침대 아래로 내렸다. 보호자가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이임순의 어깨를 부축했다. 고함이 터지고, 심지어 욕설까지 들렸다.
그때 쫙 소리가 났다. 심하다고 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김지훈이 뺨을 만지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임순이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보고 있었다. 싫다고 발버둥을 치다 사정없이 뺨을 때린 꼴이었다. 어쩌면 고의였을지 몰랐다.
한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이임순은 온갖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보호자는 김지훈의 손을 잡은 채 발만 동동 굴렀다.
여자 손인데 참 매웠다. 아직도 얼얼한 뺨을 만지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던 김지훈이 갑자기 쩝쩝 입맛을 다셨다. 보호자가 더욱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임순아, 아무리 힘들어도 이러면 안 되지. 어떻게 이런 짓을.”
김지훈도 사람이다. 솔직히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뿐더러 화가 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임순이 멀쩡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뒤엉켰다.
‘후우! 힘들다. 설마 고의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맞아 가면서 환자를 봐야 하나? 그래도 뺨 한 대에 환자가 서 있네. 손해야, 이득이야?’
고의인지 아닌지는 이임순만이 알 테지만, 어쨌든 의외의 결과를 얻었다. 지금 화를 버럭 내며 소리를 지르면 이임순을 압도할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내일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의사와 환자가 그런 관계를 맺어 득이 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었다.
김지훈이 애써 태연함을 되찾았다. 안 좋은 생각을 꾹꾹 눌러 담았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따 오후나 밤에 혹시 가능하면 다시 치료하러 들르겠습니다. 오프라 시간이 날지, 안 날지 모르니까 기다리지는 마세요.”
“아니에요. 다른 선생님들이 열심히 치료해 주시니까 쉴 때는 쉬셔야죠.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애가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런 애가 아니에요.”
보호자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어머니가 왜 죄송해하십니까? 그런 말을 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 이임순 씨.”
이임순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마주쳤다.
“미안하다는 말 필요 없습니다. 그런 말 백 번 듣는 것보다 지금처럼 한 발짝만 움직이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그럼 이따 시간 되면 뵙죠. 한 번 더 이러면 정말 화낼 겁니다.”
병실을 나온 김지훈이 뺨을 만지며 피식피식 웃었다. 병원 근무 이래 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결과가 초래될지라도 또 당하고 싶지는 않은 일이었다.
얼마나 손이 매운지 아직도 아프다. 환자만 아니었다면 한 대 때려 주고 싶었다.
“제길! 별일을 다 당하네. 이러고도 누워 있기만 해 봐라. 정말 가만 안 둔다.”
김지훈이 투덜투덜 중얼거리며 병원을 나섰다.
고경아와의 데이트는 항상 즐겁고 행복했다. 선배들의 말로는 곧 그런 시절도 사라진다지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할 일이었다. 이임순과의 일을 말하자 자기가 아픈 것처럼 뺨을 만져 주는 손길이 부드럽기만 했다.
“환자만 아니었으면 당장 달려가서 때려 줬을 텐데 속상하네. 많이 아팠어요?”
“무지하게 아프네. 뽀뽀해 주면 안 아플 것 같은데.”
고경아가 눈치를 보더니 뺨에 뽀뽀를 했다. 향긋한 냄새와 부드러운 숨결이 스쳤다.
“금방 안 아파지네. 역시 경아 씨 입술은 약이야. 경아 씨, 또 그러면 나 대신 꼭 때려 줘요.”
“걱정하지 말아요. 가만 안 둘 거예요. 나도 못 때린 뺨을 어디서 감히! 아이! 아까워.”
말이 좀 묘했지만 꼬치꼬치 캐물어야 손해일 것 같았다.
이임순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잘근잘근 씹으며 함께 밥 먹고, 영화 한 편 때린 후 커피를 마셨다.
“근데 경희가 안 보이네?”
“남자 친구도 없는 게 뭐가 그렇게 바쁜지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졸업 핑계 대고 만날 놀러 다니는 것 같아요. 이번 주는 친구 만나야 한다고 거꾸로 원주에 있네요.”
남자 친구가 없다는 소리에 김지훈이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문득 두 놈이 떠오른 것이다. 세상에 다시없을 친구인 손일석과 고재현이었다.
‘재현이 이 자식은 잘 지내겠지? 얼마 전에 통화했을 때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으니까 일석이를 한번 소개시켜 줄까?’
언뜻 보면 가벼워 보이지만 속은 진국인 놈이다. 성실하고 모가 나지 않은 성격은 부러울 지경이었다. 솔직히 여동생이 있다면 소개시켜 줄 의향까지 있었다. 하지만 고경아의 눈은 다를지도 몰랐다. 더구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렸을 때처럼 가볍게 사귈 수 있는 때도 아니었다.
김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경아 씨, 경희한테 일석이 소개시켜 줄까요? 어때요?”
“손일석 선생님이요? 음! 경희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한번 만나 보는 건 나쁘진 않겠죠?”
의외로 좋은 반응이었다. 예전에는 밥 먹듯 다녔던 나이트도 요새는 아예 발을 끊었으니 꼬투리를 잡힐 일도 없었다.
한동안 그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날이 까맣게 어두워졌다. 어제 먹은 술 탓도 있고, 내일이 제일 힘든 근무 날인 월요일이라는 점을 감안해 밤 9시쯤 고경아를 집으로 바래다주었다. 물론 이젠 사람들 눈만 없으면 키스 정도는 기본이다.
병원으로 돌아온 김지훈이 내과 병동부터 들렀다.
“혹시 이임순 환자가 걷거나 앉아 있지는 않았나요?”
“똑같던데요. 인수인계할 때도 별다른 말이 없었어요.”
드레싱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임순이 자고 있어 살짝 보호자만 만났다. 역시 특별한 변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저녁 식사로 나온 죽을 처음으로 다 비웠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보호자는 좋아하고 있었다.
잘 먹는다는 것은 회복의 신호다.
“어머니, 좋은 일이네요. 어려우시더라도 자꾸 앉히시고, 가능하면 화장실도 걸어가게 하세요. 아직도 침대에서 용변기를 쓰는 건 아니잖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보호자를 뒤로하고 병동으로 와 부랴부랴 환자 파악을 했다. 내일 수술할 환자들을 챙기고,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숙소로 올라온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참 일이 많았던 주말이었다.
***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이제 11월도 3주밖에 안 남았다. 치프가 돼 시작한 첫 텀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았고,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항상 틀에 박힌 생활이었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만도 했지만, 배우고자 하는 전공의들에겐 그럴 틈이 없었다.
수많은 환자와 수술이 주는 긴장.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교수들.
4년차가 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심해지는 압박감.
이혁민 교수의 눈에는 백지에 가까울 논문.
항상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할 아랫년차들.
사실 누구나 예외 없이 지칠 수밖에 없는 일정이었고, 김지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상에서 다가오는 즐거움과 희망이 아니라면 벌써 지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뺨 한 대의 효과인지 이임순이 드디어 변화를 보였다.
월요일 점심때 이임순은 일어나 앉아 있었다. 수술 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아 크게 웃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그날 저녁, 시간을 내 드레싱을 하고는 병실을 나오려는 순간 그만 가슴이 턱 막히고 말았다. 이임순이 스스로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한 것이다.
눈이 마주쳤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당연한 일에 불과했다. 사지 멀쩡한 사람이 아뻬 수술을 받고 이제야 한 발 내디뎠을 뿐이었다. 그것도 수술한 지 일주일이 넘어서였다.
하지만 보호자는 눈물을 보였고, 김지훈도 그 순간만은 벅찬 가슴에 입을 열지 못했다.
‘고맙습니다. 잘하셨어요. 당신은 맹장 수술을 한 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서 나오던 이임순이 김지훈을 보고는 얼굴을 붉혔다. 창피한 모양이었다. 하마터면 눈치 없이 웃을 뻔했다. 정말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은 이런 일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여자가 용변 보는 소리를 고스란히 다 들었다. 김지훈이 허둥대며 헛기침을 했다.
“나가려고 했는데 병실이 조금 쌀쌀하네요. 히터가 고장이 났나? 괜찮은데 왜 이러지?”
이임순이 아무 말 없이 침대에 누웠다.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던 김지훈이 침대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덥석 이임순의 손을 잡았다. 깜짝 놀란 이임순이 손을 빼려 했다.
“환자분, 남자가 아니라 의사로서 잡은 겁니다.”
의아한 눈초리만 보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HIV 양성이라는 사실을 잊고 자신이 삶을 영위하길 바랐다. 이임순의 한 발짝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어쩌면 오늘 또 다른 삶의 첫발을 디딘 것일지도 몰랐다.
너무 성급했던 모양이었다. 이임순이 손을 빼고는 돌아누웠다. 그래도 기분은 좋기만 했다.
숙소로 돌아온 김지훈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런데 이경석은 더 즐겁고 기대에 찬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오프를 가려던 신현수도 의아해할 지경이었다.
“경석이 형, 좋은 일 있어요? 입이 찢어질 것 같네요.”
“있지. 있고말고. 지훈아, 이임순 환자가 변한 거 알지? 역시 정성이야. 너까지 신경을 써 주니까 결국 돌아오네. 이준영 선생님도 마음 많이 끓이셨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렇지?”
뺨까지 맞은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무렴 어떨까?
“그거 때문에 이렇게 좋아한 거예요? 나도 지금 막 보고 왔어요. 형이 환자를 끔찍하게 생각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네요. 너무 잘됐죠?”
“그럼. 그리고 말이야. 한 가지 더 있다. 현수야, 너도 들어야 할 거야.”
막 숙소를 나가려던 신현수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 이준영 선생님이 뜻밖의 말씀을 하시네. 혹시 니들도 들었는지 모르겠어?”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경석이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뜸을 들였다. 뭔가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했다. 확실히 놀랄 일이 있다는 말이었다. 신현수도 무척 궁금한지 옆에 앉았다.
“흐음! 오늘 컨설트 환자 한 명을 봤는데, 수요일에 수술을 하기로 했어. 그런데 환자를 다 보시고는 갑자기 날 가리키면서 이러시는 거야. 환자분, 저랑 함께 수술할 이경석 선생입니다. 믿을 만한 선생입니다. 잘 봐 두세요. 이런 말을 하셨는데, 뭔가 감이 안 와?”
헉! 이 말은?
이경석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도 진하게, 아주 진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