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레이트 써전-485화 (485/1,329)

제9화 아! 여러모로 초조하다 (1)

병실 분위기가 우중충했다.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는 햇살 한 점 들어오지 않았고, 형광등 불빛도 유난히 싸늘하게 느껴졌다. 공기마저 차가운 것 같았다. 이임순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해야 힘을 낼 수 있을까?’

“환자분, 식사하셨죠? 제가 너무 늦게 왔나요?”

나름 분위기를 바꿔 본다고 밝게 말했지만 이임순은 눈가만 찡그렸다. 역효과다. 몸과 마음이 모두 괴롭고 아픈 사람 앞에서 속도 모르고 즐거워한 꼴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입맛을 다신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오후에 치료 받으셨죠? 확인만 하겠습니다.”

심지를 감쌌던 거즈를 펼쳤다. 여느 때처럼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았다.

냄새도 그렇고, 배출되는 체액의 색깔도 좋았다. 수술 부위가 잘 아물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 정도면 심지를 곧 뺄 수 있겠네요.”

보호자가 오래간만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럼 다음 주에 퇴원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됩니다만, 확실한 말씀은 못 드립니다. 우리 과 문제가 다 해결돼도 내과와 상의를 해야 해서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바라던 말이었다. 보호자가 이임순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렇게 마음을 졸였는데 문제없이 회복되는 것만도 고마운 일이었다.

‘보호자분이라도 웃으시니 좋네.’

심지를 다시 거즈로 감싸며 함께 미소를 짓던 김지훈이 입술을 모으더니 배에 난 수술 창까지 치료했다.

수술 후 5일에서 일주일 사이에 발생하는 가장 흔한 합병증이 창상 감염이었다. 어떤 환자라도 신중하게 살펴야 할 시기였다.

드레싱 정도는 능숙해질 대로 능숙해진 1년차들이었지만 입을 열지 않는 이임순은 예외적일 수 있었다. 의사와 환자 간의 관계가 서먹하다면 치료를 하기 쉽지 않다. 최소한 아프다, 아니다 정도는 말을 해 줘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봉합한 부위 주변을 조심스럽게 촉진했다. 순조롭게 회복된다면 어느 정도는 흉이 형성되며 딱딱하게 변할 때였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가장 바깥쪽을 촉진하던 김지훈이 눈가를 찌푸렸다.

‘이거 수상하네.’

잠시 고민을 하던 김지훈이 이임순을 보았다.

“환자분, 잠깐 따끔하실 겁니다.”

포셉으로 상처의 끝 부분을 쿡 찔렀다.

이임순은 통증으로 움찔거렸고, 김지훈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노란 고름이 흘러나오며 고약한 냄새가 확 풍겨 왔다. 창상 감염이었다.

난감했다. 다른 환자도 아닌 이임순 환자라니 더 난감했다. 잠시 머릿속을 정리한 김지훈이 최대한 신중하면서도 별일이 아니라는 투로 설명을 했다.

“환자분, 상처가 곪았네요. 수술 중 최대한 주의를 해도 맹장이 터진 경우에는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는 일입니다. 배 속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이유도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컨디션이 안 좋으면 합병증이 더 잘 발생합니다. 제발 운동 좀 하시고, 식사도 충실하게 하세요.”

이임순은 반응이 없었다. 보호자에게 추가 설명을 한 후, 인터폰으로 병동 간호사와 이경석에게 연락을 했다. 깜짝 놀란 이경석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곧 간호사가 드레싱 카를 끌고 왔다.

“그럼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불편하고 아프시더라도 참으셔야 합니다.”

실밥 두 개를 풀었다. 고름이 잡힌 부분은 상처가 붙지 않아 쉽게 벌어진다. 켈리로 조심스럽게 봉합한 부위 일부를 살짝 벌리자 예상대로 상처가 아주 쉽게 벌어졌다.

대부분의 경우처럼 피하지방에서 염증이 발생했다. 정상적인 조직이 나올 때까지 고름으로 뒤덮인 감염 부위를 제거했다. 마취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아플 것이다.

“거의 다 됐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임순이 계속 움찔거리면서도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곧 밝은 노란색의 지방조직이 나타나며 빨간 피가 흘렀다. 정상 조직이다.

‘감염 범위가 넓지 않아서 다행이네.’

소독을 한 후 생리 식염수로 깨끗이 씻어 냈다. 놓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벌어진 상처에 젖은 거즈를 넣었다. 이제부터는 상처의 물기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상처가 마르면 새살이 안 차오르는 데다, 젖은 거즈를 통해 숨어 있는 고름이 빠져나오는 효과까지 있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일이 아닌데 김지훈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환자의 피를 보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미안함과 최대한 확실하게 치료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상처가 깨끗해지면 다시 봉합을 하거나, 혹은 자연적으로 살이 차오르길 기다리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어떻게 할지는 살 차오르는 것을 보면서 결정하게 될 겁니다.”

치료를 거의 마쳤을 때 이경석이 허겁지겁 들어왔다.

“상처가 곪았다고? 어디야?”

“다행히 바깥쪽 일부에서만 고름이 나왔어요. 며칠 바짝 치료하면 금방 살이 찰 것 같아요.”

김지훈의 설명을 들으며 찬찬히 상처를 살피던 이경석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오후 회진을 돌기 전에 상처를 확인했다.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신경을 썼지만 고름이 잡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더구나 감염된 부위가 생각보다 너무 작았다.

‘상처가 쫙 벌어질 정도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지만, 이렇게 조그만 걸 어떻게 발견했지?’

정성 덕분인지, 손의 감각이 유달리 예민한 것인지 의아할 뿐이었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런 차이가 종내에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 수도 있었다. 환자와 자신을 위해서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할 일이었다.

보호자에게 다시 한 번 설명을 한 후 병실을 나왔다. 이경석의 얼굴이 굳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김지훈도 조금은 난처했다. 수술을 했으니 환자 얼굴을 보는 거야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다른 파트 환자를 치료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경석의 자존심을 건드렸을지도 몰랐다.

“형이 알아서 잘하겠지만, 나도 시간 나는 대로 치료할게요. 어후! 다른 환자 같았으면 나 몰라라 했을 텐데, 수술 들어간 죄가 너무 크네. 하여튼 이놈의 손이 문제야. 왜 이렇게 운이 좋은 거야?”

농담 식으로 너스레를 떠는 김지훈의 모습에 이경석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게 말이다. 신의 손인가 보다. 어쨌든 니가 제일 먼저 발견했으니까 신경 많이 써야 한다.”

“예.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빨리 낫고 안 낫고는 여러 요인에 좌우되지만, 의사들의 노력이 상당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자주 치료를 하면 그만큼 빨리 좋아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지금은 김지훈과 이경석을 비롯한 전공의들의 노력이 필요한 때였다.

이경석과 이임순에 대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며 숙소로 돌아간 김지훈이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고경아였다.

“이 밤에 웬일이에요?”

(토요일에 아빠하고 형부가 오신대요.)

“예? 아버님하고 형님 되시는 분이 올라오신다고요? 무슨 일로요?”

(형부가 지훈 씨 얼굴도 못 봤잖아요. 요즘 상당히 바쁘다고 했는데 이번에 시간이 난 모양이에요. 그런데 가능하면 언니네도 같이 보자네요.)

“훈철이 형하고 형수를요?”

(네. 아빠가 지훈 씨 잘 챙겨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으시데요. 괜찮겠죠?)

이런 일은 의외로 여자의 입김에 따라 결정된다. 승희와의 일도 있지만, 정훈철과의 인연이 지속되는 이유도 한수임 역시 김지훈을 마치 동생을 보는 것처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글쎄요. 훈철이 형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일단 형수하고 먼저 상의를 해 봐요. 좋다고 하시면 우리 일도 정식으로 말씀드릴 겸 같이 만나죠.”

(알았어요. 그럼 토요일 오후 6시에서 7시 사이로 시간을 잡을 테니까 미리미리 준비 잘하고 있어야 돼요. 수술 핑계 대고 머리 떡 진 채로 나오지 말고요.)

“알았어요. 근데 형님 되실 분은 좋으시죠?”

장인어른처럼 깐깐하면 정말 곤란할 것 같았다.

(그럼요. 최고죠.)

고경아의 목소리가 밝아 한결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손윗사람에 직업이 검사다. 은근히 가슴이 떨렸다.

‘검사라고 해도 가족에겐 무섭진 않겠지.’

꿈자리가 뒤숭숭한지 김지훈이 밤새 뒤척였다.

다음 날, 김지훈이 최대한 시간을 내 이임순을 찾았다. 이젠 상처에서 나온 거즈의 냄새까지 맡았다.

‘냄새가 여전히 안 좋아.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고름이 상처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텐데, 안 되겠다.’

그동안 이임순의 감정과 기분을 고려해 말로만 운동과 식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말 한마디 없이 하루 종일 꼼짝도 안 하면 없던 병까지 생길 판이었다.

“환자분, 미안하지만 앉으셔야겠습니다.”

이임순이 눈도 마주치기 싫은지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퇴원 언제 할지 모릅니다. 일어나세요.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습니다.”

눈빛을 굳힌 김지훈이 레버를 돌려 침대 윗부분을 세웠다. 덩달아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임순이 입을 열었다.

“침대 원래대로 해 줘요.”

짜증이 잔뜩 실려 있었지만 수술 이후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였다. 반가웠다.

“그래요. 그렇게 말도 좀 하세요. 얼마나 좋아요. 미안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침대에 기대지 마시고 혼자 일어나 앉으세요.”

“원래대로 해 줘요.”

“안 됩니다. 일어나 앉으세요. 그래야 상처가 빨리 회복될 겁니다.”

똑같은 말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김지훈이 까딱도 하지 않고 침대 윗부분을 완전히 세웠다. 이임순이 숨을 헐떡이다 말고 소리를 질렀다.

“나 좀 가만히 놔둬! 죽든 말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바로 죽음이라는 단어였다.

순간 김지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그게 어머니 앞에서 할 소리예요?”

“니가 뭘 알아? 의사라고 유세를 떠는 거야? 어차피 죽을 텐데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나가! 나가란 말이야!”

이임순이 거의 발작을 했다. 반말 따위는 얼마든지 해도 좋았다. 하지만 죽음이란 단어는 입에 올릴 말이 아니었다. 김지훈이 흥분을 하고 말았다.

“당신이 왜 죽어? 당신은 그냥 맹장 수술을 한 환자일 뿐이야. 이깟 수술하고 죽는 사람은 없어!”

“없다고? 그럼 나는 왜 죽어야 하는데? 왜? 왜?”

“당신은 죽지 않아. 당신은 환자가 아니야.”

김지훈을 노려보던 이임순이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에 질린 보호자가 부들부들 손을 떨며 움직이질 못했다.

이를 악물고 이임순을 노려보던 김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며 보호자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의사까지 흥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해야 했다.

하지만 달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는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래요. 나까지 흥분해서 미안하지만 더 소리 질러요. 마음속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날려 버려요.’

난데없는 소란에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다른 환자들까지 몰려와 기웃거릴 지경이었다.

김지훈이 들어오지 말라는 손짓을 하며 보호자와 함께 병실을 나왔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병실 앞을 지켰다.

한참이 지나서야 보호자와 함께 다시 들어갈 수 있었다. 지쳐 쓰러진 이임순을 보던 김지훈이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기만을 바랐다.

‘힘을 내요. 에이즈가 발병하기 전에 분명히 치료제든, 억제제든 나올 겁니다. 제발 그전에 쓰러지지 말아요. 싸워 보지도 않고 포기해서는 안 돼요.’

최소한 삶의 의지만이라도 되찾길 간절히 기원했다.

주말이다. 이임순 환자와의 일 때문에 아침부터 이준영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그 난리를 쳤으니 한마디 들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주말 집담회가 끝나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도리어 최근 들어 점점 심해지는 금경태 과장의 신경질적인 말에 신경이 더 쓰였다.

“내가 요즘 일이 있어서 다소 소홀하다고 해도, 각자 알아서들 일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내 수술이 아무리 줄었다지만, 이번 주 수술 건수가 이게 뭐예요? 다들 똑바로 합시다. 자기 밥벌이 하라는 말이에요.”

월급을 타는 이상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말은 맞았다. 사실 과장 입장에서는 자신의 과가 벌어 주는 수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실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술이 많은 주가 있고, 적은 주가 있는 법이다. 그렇다고 설렁설렁 일하는 교수도 없었다. 오히려 금경태 과장과 친밀한 구영선 교수와 임동완 교수가 가장 한가한 편이었다. 도대체 누굴 겨냥한 말인지 모를 일이었다.

“어후! 죽겠네. 이준영 선생님을 보면 더 돌고 싶은 파튼데, 반대쪽을 보는 순간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 회진을 도는 게 아니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게 말이 돼?”

이경석이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아침 회진 때 무슨 일이 또 있었던 모양이었다.

“형, 조금만 참아요.”

“니들은 운도 좋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일석이가 다음 텀으로 도니까 실감이 안 날 거다. 요새 머리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죽겠다.”

답답한 표정을 짓는 김지훈과 이경석을 보던 신현수가 한숨을 쉬며 콧등을 찡그렸다. 아버지인 신동석 이사장 역시 이런 상황을 빤히 알 텐데, 왜 두고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아직도 금경태 과장에게 원하시는 게 있을까?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가벼운 웅성거림과 고민들 속에 모든 일과가 끝났다.

김지훈이 오프를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임순 환자를 찾았다. 말없이 드레싱을 받긴 했다.

그런데 끝나자마자 한바탕 난리가 또 났다. 김지훈이 이번에도 침대를 세운 것이다.

“나 좀 가만히 놔두란 말이야.”

아예 처음부터 반말이다.

“일어나 앉아요. 왜 식사는 제대로 안 해요? 3주 만에 가는 주말 오픈데 마음 편히 좀 갑시다.”

“내가 당신 오프까지 신경을 써야 돼? 날 치료하는 파트도 아닌데 그냥 가면 되잖아.”

갑자기 할 말이 사라졌다. 지금까지 맡은 환자 이상으로 신경을 써 왔다. 솔직히 아무리 환자의 입장을 생각한다고 해도 화가 났다. 서운함을 넘어 무슨 배신을 당한 느낌인 것 같기도 했다.

“환자분 말이 맞네요.”

무언가 입안에서 마구 감돌았지만 뱉어 낼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며 병실 밖까지 쫓아 나온 보호자에게 인사를 하고는 숙소로 향했다.

‘환자한테 부담을 주고 있나?’

한동안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

3주 만에 가는 주말 오프를 찝찝한 기분으로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샤워를 하고 새 옷을 꺼내 입자 기분이 풀렸다. 가족이 될 사람들에 정훈철 가족까지 만난다는 사실에 은근히 설레면서도 조금은 초조하기까지 했다.

일찌감치 고경아와 만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점검을 받은 후,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했다.

이임순 환자 얘기가 나왔지만 김지훈이 손을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병원 밖에서는 환자 얘기는 하지 맙시다.”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던 고경아가 이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듣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가끔 맞장구를 치면 박수까지 치며 좋아하는 고경아는 사랑이었다.

어느새 약속 시간이 다가왔다.

조금 일찍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해 다시 한 번 복장을 점검받은 후 식당으로 향했다.

간판을 본 김지훈이 헛기침을 했다.

“경아 씨, 삼겹살집이네요?”

“첫인사하는 자리치고는 조금 그렇지만, 아빠하고 수임이 언니가 상의해서 정한 집이에요. 우리 형부도 삼겹살 굉장히 좋아하고요. PD 형부도 좋아하시잖아요.”

“그렇긴 한데.”

일단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그때 낯선 얼굴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0